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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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 

세실, 주희[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젊은작가상 9년. 그동안 보아오던 낯익은 이름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올해 수상작가의 단편 한두편을 읽었으니 이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대거 신입사원을 만난 듯한 기분과 함께 세월이, 이렇게도 흘렀구나 싶었다. 점점 깨닫게 된다. 내가 살아온 경험치가 소설속 현장을 이해하는데 모자라다는 걸. 생각을 더하게끔 하는 소설속 주요 ‘사건’을 직접 겪거나 지근거리에서 보거나 몇 명에게서 전해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이나 행동반경이 그리고 사고방식이 어느 정도 ‘상상’을 동원하게끔 하는 ‘현실’에 있다. 분명 현실인데 내가 경험한 현실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아, 세월, 나이, 이해,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내가 살아온 그 틀에서 기본적인 이해를 하게 될 텐데, 이때의 나의 이해란 얼마나 보잘것없음일까, 아니 구시대적인 것일까. 이런 기분들로 인해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세실, 주희」속 대사를 빌려, 이번 작품집을 읽은 끝이 고작 나이듦을 느끼는 것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나도 너처럼, 주희가 여행 내내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었다. J처럼 무람없이 외국 사람들과 어울려보고 싶었고,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 끝이 고작 포르노 영상이 되리라고는 주희는 예상하지 못했다.


  박민정 작가의「세실, 주희」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은 동일한 경험을 통해서임을 새삼 실감했다. 감정이입과 이해의 깊이에 개입되는 동질감의 차이가 있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도. J와 주희와 세실의 경험이 병렬적 구조로 구성된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폭력을 당한 느낌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주희에게서. 주희는 뉴올리언스 마르디 그라 축제에서 겪은 끔찍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안내자이기도 했던 J에 대한 반감을 가진다. 타문화에 대한 동경과 J에 대한 선망이 어우러진 여행의 예상치 못한 결과는 당혹스러움 이상이었다. 하지만 주희는 그 상황을 복기하며 ‘모든 게 내 탓이오’ 쪽으로 무게 짓기도 했다. 포르노 영상의 피해자가 하게 되는 반성은 늘 안타깝고 화가 난다.

  주희가 깨달은 바는 단지 그것만은 아니고 주희가 겪은 일과 세실이 겪은 일은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소설에서 두 상황을 병렬선상에 놓고 있으므로 주희를 통한 세실의 경험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주희가 J를 통해 통렬히 깨달은 것을 세실에게 전가하는 것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배려를 가장한 무심함, 상황을 인지하면서 행하는 가해를 알기에 느끼는 공포였을지도 모른다. 좀더 ‘친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주희가 당한 그 불편하고 부당한 경험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전쟁영웅의 후손으로서 세실이 참여하게 되는 위안부 집회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더 타당했으리라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 또한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어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희에게 은연중에 질책하는 나를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다면 삶의 어떤 문제들에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한 다음, 그것으로 끝내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오지랖이 넓지도 않거니와 정의감이 투철하지도 않고 더하여 어느 정도 소심함마저 지녔다면 주희와 다를 리 없었을 거라는 깨달음, 굳건히 박혀 있는 집단의 이데올로기, 내가 아는 선에서의 이해, 그럼으로 인한 타인에 대한 몰이해, 그렇게 행하는 방관 내지 폭력. 내가 살아온 경험이 이미 굳어진 시각과 행동패턴의 나를 만들어 냈고 타인을 이해해보고자 경험타령을 해본다 한들, 그것의 온전한 이해는 나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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