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형식을 만든다

 

 언론에서 뜨고 있는 작가라며 지인들 사이에서 작가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받은 작가에 대한 인상은 소설을 읽어가면서 전혀 달라졌다. 일단 언론은 이 작가를 전혀 소설에 관해 교육받지 않은 노동자 작가로 소개했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이 이미 온라인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어 책으로 출판된 작가이며, 이미 써 둔 글도 300편이 넘고, 기존의 소설 형식을 파괴하는 그동안 없던 새로운 작가라고 홍보했다. 작가와 글에 대한 소개만으로는 ‘노동’쪽에 방점을 두고 있어서 노동소설의 계보 쪽으로 생각했더랬다.

  소설을 읽고 나서 왜 언론은 작가를 계속 ‘노동자’ 작가임을 강조하는지 그것이 커다란 차별점이자 특성인 듯이 소개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장정일 작가가 등장했을 때 중졸임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이미 게시판에서 커다란 호응을 얻은 글이 출판되기는 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호응을 바탕으로 독자층이 구비되고 더 많은 독자로까지 확산되었을 김동식 작가의 책들을 한번에 읽었다. 그만큼 쉽게, 빠르게 읽힌다.

  강조하듯 익숙하게 보아오던 소설의 형식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익숙하게 보아오던 인터넷 게시판의 글과는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우화구나, 세태에 대한 풍자가 재밌고 옹골차기에 흥이 솟았고 삶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을 지속했다. 문장이나 구성의 힘 보다는 SF, 판타지가 가미되어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형태가 기묘하게 흐르는 것이 재밌는 요소라고 느꼈다. 

 최근 짧은 소설 역시 인기 있는 추세가 되었고 소설이라고 하면 생각되는 익숙한 패턴 또한 다양화되기도 했다. 김동식 작가 역시 이렇게 익숙한 소설 패턴을 벗어난 작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의 책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이야기 한편 한편의 틀은 같다. 그러니까 김동식 작가 자신만의 소설 형식, 틀을 구사하고 그 틀에서 이야기의 내용을 바꾸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흔히 한 작가의 책을 한번에 읽게 되면 작품마다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문장, 이야기, 구조를 보게 된다. 그것이 김동식 작가의 작품에서는 뚜렷이 나타나, ‘새롭다’는 말이 무척이나 식상하게 느껴졌다.

  인터넷 공포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고 하는데 대다수의 글들이 ‘공포’에 어울린다. 현실의 모습을 풍자한 글들이 한창 펼쳐지고 있었을 때에는 더더구나 엄청난 공포였으리라. 세상은 회색빛에 요괴가 가득하고 주위엔 온통 김남우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온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으리라 여겨지다가도 과연 ‘온 정신’이라는 게 어떤 상태인가고 묻게 된다. 적어도 이런 세계를 잘 컨트롤 하는데 ‘김동식’이라는 작가가 어울릴 거라는 생각을 한다. 작가 자신이 개척한 익숙한 패턴의 반복이 아닌 소설이라는 형식에서 익숙한 형태로 글을 쓰면 작가의 글은 어떤 묘미를 지닐까 궁금해진다. 300편이 넘는 글을 써두었다니 4~5개월 사이에 다섯 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이미 써두었던 이 책들이 출간되고 난 이후의 글, 그 글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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