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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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함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저, 민음사, 2015.12.07.


  특별히 유쾌할 일 없는데 웃음이 났다. 처음 몇 장을 넘기면서는 스릴러인가 했는데 판타지, 코믹 장르였다. 열편의 연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인공 보건교사 안은영을 비롯하여 모두가 명랑만화에서 봄직한 캐릭터들이다. 당연 이런 캐릭터의 열전은 명랑만화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주인공이 가진 남다른 능력 또한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일찌감치 학교는 온갖 귀신이야기가 출몰하는 전설의 장소다. 안은영이 일하는 M고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명확치 않은 생물들이 학생들을 위협하고 있다. 안은영은 이런 기운을 에로에로 에너지라 칭한다. 이런 것, 액토플라즘을 ‘보는’ 능력자 안은영은 이것을 퇴치하기 위해서도 애쓴다. 그녀가 가진 ‘능력’ 때문에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유령, 귀신 등, 나쁜 기운을 뿜는 물질들을 퇴치하기 위해서 보건교사인 안은영은 비비탄과 플라스틱 장난감 칼을 소지하고 산다. 이런 에로에로 에너지를 내뿜는 물질이 학생들을 위협하는 순간 저 멀리서 달려와 무지개 색 늘어나는 깔때기형 장난감 칼을 휘두르거나 비비탄 총을 쏘는 선생님이라니. 학생들이야 나사가 빠지거나 풀린 듯이 보건선생님을 보지만 안은영은 제 능력을 단지 ‘보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나쁜 에너지를 뿜는 공포스럽고 위험한 물질에 언제든 맞설 준비가 되어 있고 적극적으로 나쁜 에너지를 차단하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다 끌어모은다.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들은 너무나 오래 남았다. 어린 은영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열편의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귀신들이 갖는 기운은 이전의 생애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에서 연유한다. 이루지 못한 욕망과 욕구, 억울함을 한가득 지고서 몇 배의 파장을 이승에서 내뿜는다. 살아있을 때부터 얻게 된 불온한 감정의 덩어리는 그것을 얻게 된 곳으로 늘 되돌아온다. 남겨둔 것이 있다면, 풀지 못한 것이 있다면 얻은 그곳에서 해결되어야만 한다면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혼들은 얼마나 무한할까. 이 무한하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안은영이 선택한 것은 자신이 가진 친절함을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죽음과 폭력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무한으로 샘솟아도 충전과 방전을 오가며 끝까지 나쁜 기운이 세상을 휘두르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 새부터 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친절한’ 안은영의 기질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명랑스럽게 이끄는 힘이기도 하고 단조롭게 만들기도 한다. 온갖 복수와 악행의 화려한 마침은 인과응보, 권선징악이기에 안은영이 휘두르는 총과 칼은 장난감이지만 ‘선’이라는 초강력 기능을 탑재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안은영은 ‘인지’하고 있다. 이 직진하는 친절함이 가진 단점을.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사연많은 귀신들이 출현할 때마다 힘을 써야 하는 안은영은 방전되지만 다행히도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를 찾았으니 그것은 같은 학교의 선생님과의 스킨십이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대화와 활약상을 보다 보면 이런 고전적인 설정이 주는 안정감을 알게 된다. 무한한 긍정은 다소의 불안을 포함한다. 불안하기에 긍정의 힘으로 잊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나쁜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친절함’이란 말이 명랑만화에서 뛰쳐나와 서글픈 기분을 돋운다. 친절이란 상대의 친절 정도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절대적 친절함에 세상이 어떤 식으로 대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폭력의 상황에서 언젠가는 질 지 모르는 상황이 올 거라는 걱정에도 힘을 돋궈줄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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