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거룩할지어다

라틴어 수업-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2017.


  이탈리아 정치 혼란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하는데 투자할 금융도 없고, 남의 나라라서인지 그 혼란과 불안이 와닿지 않는다. 그동안 외국인은 한국에 전쟁위협과 정국불안정 소식에 얼마나 불안했을까. 휴전된 나라이니만큼 전쟁 조짐·위협에 매우 민감했는데 정작 한국인들만은 불안을 모르고 무심한 반응이라 의아해 한다는 얘기 또한 수없이 들었다. 전쟁 위협에 덜 민감했더라도 평화 분위기에 벅차오른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역시 ‘조국’ ‘민족’ 이런 것을 무시할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 나라가 어떤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지,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며 ‘나’를 형성해 가는데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을.

  그러다 문득 이탈리아하면 무솔리니와 파시즘만을 떠올렸는데, 이탈리아의 역사에 로마제국이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늘 두 나라를 분리해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많은 변화와 재편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별개로 인식하고 있던 것은 여전히 ‘다른 나라’의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로마 제국의 문화적 유산은 전세계에 산재하며 그 중심에 이탈리아가 있다. 심지어 사어가 되어버린 라틴어조차도. 나라만큼은 멸하여 사라졌지만 문화와 언어만은 뿌리를 깊게 두고서 영원히 소멸하지 않았다. 철학, 문학, 과학 등등 모든 학문에도 라틴어가 생생해서 책을 읽다 보면 항상 ‘라틴어’를 배우고 싶다는, 배워야 할까 생각하게끔 한다. 그렇다면 『라틴어 수업』이 매우 효용성 있는 책 아니겠는가.

  실제 수업의 강의안이 책으로 엮어졌다는 이 책은 라틴어를 읽히는 단순 어학 강좌가 아니라 로마와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강의였다고 하는데 한국인이자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재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인 작가의 경험과 통찰이 재미와 흥미를 주었기도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학생들은 학점 이수를 떠나서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하게끔 한 강좌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라틴어를 배우는 수업에서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한두 시간의 이야기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 언어 속에 깃든 삶의 이야기가 쉴새없이 쏟아지는 강좌에서는 낭만이 지식이 풍겨져 나온다. 익숙히 알고 있던 단어의 어원과 파생된 단어들, 그 속에 깊게 담긴 뜻들을 살펴보다 보면 분명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생기게 된다.

   

어원학을 바탕으로 할 때 ‘거룩한’이란 말은 분리의 개념, 의식의 순결에 해당하는, 특별 조건이 아니면 다가설 수 없는 불가촉의 어떤 것이라는 개념을 말합니다. 라틴어 ‘사체르sacer'는 ’거룩한‘이란 뜻도 있지만 ’저주받은‘이란 뜻도 있는, 양가감정이 함께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거룩할지어다sacer esto”라는 말로 저주를 나타냈고, 이 문구는 로마인들의 단죄 양식이 되었어요.


  이 책을 읽지 않았던들 ‘거룩할지어다’가 저주의 표현임을, 로마인의 욕설은 세련되고 섬세하여 마치 욕설인지 모르듯 하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라틴어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여 ‘거룩’한 느낌 또한 지워지지 않았는데, ‘거룩할지어다’가 이토록 저주의 말로서 단연 으뜸이란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나온다. ‘거룩할지어다’.

  그렇다. 이 책은 거룩하다. 지극히 경건하고 담백하다. 그리하여 정화의 느낌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불편함도 있다. 말씀을 고이 따르지 않는, 못하는, 불건전한 사람임을 자꾸 느끼게 하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