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타인에게 띄우는 말의 무게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12.


  갑자기 마구 점을 보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생년월일만 알려주면 과거의 내 삶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내 삶이 어떠할지를 ‘알려주는’ 영험함을 경험하며 내 미래의 불안을 날려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 그날에 태어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모두 같은 운명일 리가 생각하면서도 신년운세를 클릭하며 난해하고 다의적인 점의 언어를 타로의 언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선택에 처한 고민을 이리저리 대입하는 재미. 운명은 정해져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담은 마음은 분명할 거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속 나미야 잡화점은 그렇게 일종의 ‘점’집 같은 공간이다. 혼자 힘들어하고 있던 이야기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여지는 결정의 순간들. 불안과 우울과 걱정에 시달릴 때 누군가로부터 듣는 한마디 위로. 그러기에 보내는 편지, 그렇기에 말하는 내 사연들. 사람들 누구나 고민을 안고 있기에 타인에게 고민을 토로하며 위안을 얻으려 하고 내가 고민을 안고 있으면서도 타인에게 그 고민에 대한 의견을 전하기도 한다. 해결이 되었을지 내 말로 위로가 되었을지 아닌지 모를 말들. 그래서 또 궁금한 내 말에 대한 결과들. 미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타인에게 한 조언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그것은 그의 생애에 어떤 영향을 알고 싶은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판타지와 추리가 가득한 이 이야기의 힘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만 있지 않다. 어째서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도 나미야 잡화점을 그대로 두었는지 왜 먼훗날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창구를 부활시켰는지 타인의 고민을 듣는 이들로 청년 백수들이 등장했는지가 눈여겨봐진다. 왜,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지를. 내가 한 말에 대한 파장을 알고픈, 그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닐까.

  많은 사연들이 이 책 속에 있지만 내가 타인에게 건넨 위로의 말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같은 시간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그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이라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농담처럼 건넨 말에 누군가 상처받지 않았기를. 내가 조금 더 타인에게 그의 삶에 관해 이야기할 때 심드렁함이 아니라 장난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좀더 조심스러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9월 13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합니다.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에서 상담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으셨던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요. 기탄없는 의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처럼 가게의 셔터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오랜 동안 비어 있던 가게. 사람들의 고민편지에 상담을 해주던 잡화점에 또다시 옛날처럼 고민이 담긴 편지들이 오기 시작한다. 세명의 청년이 그 가게로 숨어든 그날 밤에. 나미야 잡화점은 시간의 흐름이 바깥과 다르게 흘러가 그 편지들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기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되는 일 없이 꼬이기만 하고 배운 것도 없고 어릴 적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세 명은 나미야 잡화점에서 다른 이들의 고민편지에 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인생 또한 돌아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상담해준 거,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야.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라도, 어쩌다 결과가 잘 나온 것이라도 우리한테 상담하기를 잘했다고 하니까 정말 기분 좋다.

 

  추리 소설 작가답게 퍼즐조각처럼 얽힌 인연의 고리들과 과거와 미래의 연결이 내용에 더욱 몰입하게끔 한다. 소설속에 쓰여진 것처럼 많은 이들이 답을 알면서 이미 결정을 지어놓고서도 상담을 한다. 누군가의 충고가 내게 와 닿기까지는 여러 번의 반박을 맞닥뜨리고 의견을 조율하면서 의지를, 결심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잡화점의 할아버지는 편지를 보낸 이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게 오래 상담편지를 받고 고민하며 답을 해준 결과 이제는 백지 한 장에 담긴 고민의 글씨까지도 꿰뚫어 본다. 백지 한 장. 인생이란 가끔 이렇게 백지 한 장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람을 믿어도 좋을, 얘기 나눠도 좋을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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