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아름다움 -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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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증후군

남편의 아름다움, 앤 카슨, , 한겨레출판, 2016.


  존 키츠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남편의 아름다움』의 서사를 채운 앤 카슨의 글은 강렬한 이미지 위에 수려한 시어가 펼쳐진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배신당하고 이혼하는 ‘아내’의 내면의 감정들이 격렬하게 휘몰아친다. 더할나위없는 격렬한 감정은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라는 부제로 인해 탱고 리듬이 얹어져 더욱 강해진다. 운문 형태의 산문 호흡은 각을 세우면서도 유연한 파트너와 함께 한 탱고처럼 숨막히는 떨림을 준다. 이 떨림과 강렬함으로 몰고 간 것은 그저 남편의 ‘아름다움’.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허우적이는 아내의 토로는 미치도록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그에 대한 아내의 언어만큼은 치명적이도록 아름답다.

  열다섯에 만난 아름다운 그 남자. 어머니의 반대에도 결혼하게 된 남자. 그 무엇에도 충실하지 못했던 그 남자. 모든 것에 대해 거짓말 한 남자. 꼭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을 때도 거짓말을 하는 남자. 거짓말을 하는 게 편리하지 않을 때조차도 거짓말을 하는 남자.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안다는 걸 알 때도 거짓말을 하는 남자. 결혼한지 1년 남짓했을 무렵 수줍으면서도 자랑스럽게 정부가 있다며 아내에게 사진을 내밀던 남자. 많은 정부들을 두고 수시로 어딘지 모르게 증발해 버린 남자. 그 중에서도 꼬박꼬박 아내를 찾아 온 남자. 우편으로 이혼 판결을 전한 남자. 그 편지를 받은 중년의 나이까지 그 남자, 남편을 사랑한 여자. 남편을 사랑하게 한 그 ‘아름다움’. 그 모든 부정과 사기와 위선에 고통과 슬픔과 분노를 격렬하게 품고서도 끝까지 아내가 하는 말, “아름다움을 붙잡아라”.

  탐미주의 시인으로 유명한 존 키츠, 그의 시,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가」 의 마지막 구절은 “아름다움은 진리고,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는 그대가 지상에서 아는 모든 것이고,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이 말을 절절하게 외치는 아내에게 ‘아름다움’이라는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끔 한다. 왜 ‘아름다움’이 진리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끔 한다.


나는 많은 아내들처럼 남편을 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리고 거기에 붙들어 두었다.

힘이란 어떤 것인가?

친구들이나 가족의 반대는 그걸 더 강하게 할 뿐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지배력을 갖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아내는 알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그 어떤 행동에도 아내는 아름다움을 지닌 남편의 지배력을, 힘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는 진다. 기껏해야 그들의 행복(했을지 아닐지 전혀 아닐 듯한)한 결혼 생활은 1년 남짓. 아내의 감정은 그 시간 동안 이미 맹목적으로 세뇌되어 있었던가. 그 어떤 글귀에도 남편의 아름다움을 구구절절 묘사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아름다움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사람 자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여자, 아내에 대한 환멸이 느껴진다. 참을 수 없도록. 미(美)에 대한 기준은 다른 것이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개별적이니 아내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가 설사 나와는 다를지라 해도 내가 뭐, 어쩌겠는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갖고 있는 중년의 나이에도 그 추억을 안고서 여전히 남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여전히 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주장하는 아내에게 남편의 아름다움이란 그와 함께 보낸 그 모든 시절일까,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일까. 처연한 스물 아홉 번의 탱고를 듣는 동안 붙잡고 싶은 아름다움이 이토록 답답함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내게는 결단코 아름다움일 수 없게 해야지 생각했다. 남편의 아름다움에 맹렬히 지배당한 여자의 이야기에서 실비아 플라스가 연상되었다. 아니, 이 부정한 남편에게서 실비아 플라스의 남편 테드 휴스가 생각났다는 것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아, 부정한 남편에게 분노해야 할지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분노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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