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결혼의 이유

결혼이라는 소설, 제프리 유제니디스, 민음사, 2017.


  “결혼해줘”

  “싫은데?”

  밤새 결혼하기 싫다고 외쳐대다 깨어났을 때 뭐 이런 어이없는 꿈에 시달리나 했다. 머리맡에 놓인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결혼이라는 소설』속 청혼하던 장면이 꿈으로 들어왔다는 걸. 꼼 속의 내 외침은 매들린에게 가 닿지 않아 매들린은 끝끝내 결혼하고야 말았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미들섹스』와 『처녀들, 자살하다』를 재밌게 읽었기에 집어든 책은 두 권만큼의 흥미는 덜했음에도 꿈에까지 찾아들 만큼의 인상을 남기긴 한 건가.

  1980년대 대학생 매들린, 레너드, 미첼의 ‘결혼’에 관한 관점과 그들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주된 줄거리다. 각자의 전공에 맞추어 공부를 하고 졸업을 앞두고선 진로를 고민하며 사회에 발을 내딛는 이들 세 청춘의 인생은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그 많은 생각거리, 고민 중 주요하게 차지하는 것엔 사랑과 결혼이다. 특히 매들린은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책속에서 결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고 현실에 대입한다. 하지만 매들린이 진중하게 읽은 책들에서 과연 그녀가 삶의 방향을 잘 찾아나갔는지는 모르겠다. 애당초 ‘영문학은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전공하는 학과’라고 생각한 매들린이 취업대신 선택한 대학원 진학 실패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매들린이 영문과를 선택함으로써 읽게 된 결혼과 사랑에 관한 책과 문장들이 각인된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을 꿈꾸는 매들린의 애정 대상은 레너드와 미첼이다. 능력 많은 레너드는 또한 많은 매력을 가진 남자로 보이지만 비관적이고 피해의식을 가지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미첼은 다소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부각된다. 그런 그이기에 현실에서 부닥친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생각들을 다져나가게 되는 것이 그의 성장을 돕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가 겪은 일들은 당황스러운 것도 많지만 스스로 선택한 여행에서의 깨달음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미첼에게 현실적인 용기를 주는데 주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확고한 매력을 가진 레너드의 저 끊임없는 우울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자신의 길을 잘 알고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듯해 보인 레너드의 정신적인 방황은 그래서 안타까이 여겨진다. 미첼과 매들린의 약간의 생각없음은 현실과 맞부딪치면서 강단있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상처, 그 우울의 깊이가 메꿔지는 것은 현실적인 맞부딪침으로써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그것이 마냥 ‘사랑의 힘’으로 극복된다는 것 또한 환상일 것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매들린은 한 사람을 선택해서 사랑과 결혼으로 이른다. ‘모든 문장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한 책’을 몹시도 사랑했던 매들린의 사랑은, 결혼은 마냥 문장이었을지 모른다.

  결혼이라는 플롯은 어떻게 현성되었는지에 관한 생각을 하게끔 하는 데서 이 결혼이라는 소설에서 내가 눈길이 간 것은 내 자신의 결혼에 관한 ‘부모’의 영향력이다. 매들린도 레너드도 미첼도 그들 인생에서 결혼관을 형성하는데 부모의 개입에서 놓여난다는 게 쉽지 않다. 결혼이 두 사람만의 결합이 아니라 두 가족의 결합이라는 우리나라의 결혼문화처럼 1980년대의 미국에도 적용되는 부모의 중요성 아니 영향력에 대해 실감했다. 세 명의 인물들마다 그들의 부모는 각각의 방식으로 자녀들의 삶을 살아가는데 개입하고 있다.

  부유한 매들린의 부모는 재력으로 매들린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주었고 그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끊임없이 충고한다. 레너드가 아닌 미첼을 선택하라고 하거나 사회생활을 원한다면 결혼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매들린의 선택에 한번도 기꺼이 여기지 않은 부모에게 반항처럼 생각의 방향을 달리하며 움직이는 것 또한 부모의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레너드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지속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이 그의 우울과 관계있다. 이민자 출신 가정이라는 생각을 달고 있는 미첼까지, 대학생에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이들 세 사람의 불안과 방황 속에는 이처럼 가정, 부모의 영향 또한 잠재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하는 집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안이 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불행을 자녀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는, 정서적으로 발육이 정지된 부모 밑에서 자란다면 그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가족을 떠나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차차 나이를 먹어 갈수록 아버지와 같은 성별을 지녔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자신을 몹시 싫어하는 것 같다면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불안과 방황에 있는 이들이 ‘안정’을 위해 선택한 것이 결혼이다. 결혼이란 두 사람의 결합이니 필연적으로 한명은 남게 되고 결혼을 통한 ‘안정’에서 탈락된 그는 전공인 종교에 힘입어 탈락의 아픔을 달랜다. 그러나 그또한 결혼을 통해 구원받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결혼 플롯과 함께 그 절정에 도달했으며, 결혼 플롯이 사라지면서 다시는 원래의 위치를 되찾지 못했다는 것이 손더스의 견해였다. 인생의 성공이 결혼에 달려 있고 결혼은 돈에 달려 있던 시대에 소설가들은 글을 쓸 만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던 셈이다. 장대한 서사시는 전쟁을, 소설은 결혼을 찬미했다. 남녀평등은 여성에게는 이롭지만 소설 장르에는 해로웠다. 게다가 이혼은 소설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인생의 성공이 결혼에 달려 있는 시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다. 제인 오스틴이 소설이 쓰던 빅토리아 시대에도 매들린과 두 남자가 캠퍼스를 누비던 1980년대에도 지금 2018년에도 여전히 ‘결혼’이란 인생에서 성공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다만 소설의 주제가 달라졌다. 더 이상 소설은 결혼을 찬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들이 읽는 소설은 현실보다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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