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저택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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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다

시월의 저택, 레이 브래드버리, 2018-01-22.


  환상적이고 서정적이다.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된 소설의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싶은 기이한 매혹이 있다. 오랜 시간 씌여진 연작소설이라지만 『시월의 저택』이란 제목 아래 일렬로 모이기에 어색함은 없었다. 워낙 기이한 인물들이 드나들기에 이야기의 전개가 느슨하거나 건너뛰더라도 상상력으로 메꾸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게 된다. 다만, 상상의 나래가 작가가 제시하는 것에 비해 모자랄 뿐.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시월의 저택으로 모이는 것은 가족들의 파티를 위한 것이지만 그들이 ‘기록’되기 위함이다. 무수한 시간을 사는 이들, 그들은 그러니까 유령이고 오랜 시간 살아 있어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기록되려면 하나의 마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유령들이 머문 공간, 시월의 저택이 존재했다가 사라지고 그 모든 것을 그려낼 존재로 유한한 인간인 티모시가 등장하는 것이 그래서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넌 찾아온 게 아니란다. 우리가 너를 찾아냈지. 셰익스피어로 발을 싸고, 포의 어셔 가를 베개 삼아 바구니 안에 들어 있었단다. 네 윗도리에는 ‘역사가’라는 쪽지가 핀으로 꽂혀 있었지. 너는 우리에 대해 적으라고, 목록을 만들라고, 태양에서 날아 내려오는 모습과 달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록하라고 보낸 거란다. 하지만 어쩌면 너도 저택이 불렀다고 할 수도 있겠구나. 너는 글을 쓰고 싶어 조바심치며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으니 말이다.


  신성한 빛과 생명의 언약에 대해 말하던 성인 티모시의 이름을 부여받은 필멸의 존재인 티모시가 시월의 저택의 가족들에게 스며들어 어떻게 시월의 저택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가족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기록한다. 마음으로의 가족뿐만이 아니라 신비한 능력을 지닌 그들처럼 되고 싶은 티모시는 유한한 존재인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며 내내 불멸과 필멸, 삶과 죽음이라는 고뇌를 생각하게 이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기에 티모시에 동화되어 자유롭게 날거나 타인의 생각속을 넘나들거나 벽을 뚫고 들어오거나 나무 위에 살거나 땅속에 살다가 17년 만에 비가 내리면 물을 타고 흘러나오기도 하고 무리를 지어 뛰어나오기도 하는, 먼 옛날 이미 죽었거나 어떻게 해도 죽을 수 없는 이 유령가족들을 신비롭게 바라보며 동경한다. 결국엔 죽지 않는 삶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르겠지만 유령 가족들은 말한다. ‘삶을 서두르라‘고. 죽음은 신비로운 것이라고.

 

“삶은 방문일 뿐이며, 잠으로 완결되나니. 나는 죽음이라는 잠에서 찾아왔으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거야. 생명이라는 잠 속에서 쉬기 위해 바삐 달려가는 거지. 내년 봄이 오면 나는 누군지 모를 아가씨나 부인의 벌집 속에 깃들인 씨앗이 되어, 생명을 받아 영글기를 기다리게 될 거야.”  


  그들은 분명 떠나갈 것이니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위로처럼 삶에 대해 말한다. 현실과 환상 속을 넘나드는 이야기에서 유령의 시선으로 보면 죽음을 아는 것이 환상이 되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고, 유한한 삶을 즐기라고 말하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지도 모른다.


“천국의 문에 들어가기 위해 도착한 죽은 이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 그대는 열정을 알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작은 목소리라고 적어라. 만약 답이 ‘그렇다’라면 그는 천상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 지옥에서 불타오르게 될 것이니.”


   그 삶이 행복한가. 영원한 그 삶, 그에 대한 대답은 ‘기억’이란 측면에서 대답된다. 그들은 시간은 무거운 짐이라고 말한다.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수한 전화의 현장을 분노와 파괴와 공포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또한 이미 죽어 있는 세계일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신비하거나 기괴한 능력을 가지고 사는 그들은 이미 삶과 죽음의 세상을 넘나들은 그들은 끊임없이 티모시에게 살아 있기를, 죽더라도 살아 있는 삶을 주문한다. 워낙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처럼 펼쳐져 유령가족들, 일족들의 삶에 혹하지만 신비롭다는 것 속에 왜인지 모를 슬픔이라 느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주 먼 뒷날 방문한 오래 묵은 집을 바라보는 것처럼 진한 향수와 서글픔이 공존하는 시월의 저택에서 시간이 주는 쓸쓸함을 곱씹게 된다. 이상하게도 책을 덮고 나면 한번의 삶이 훅, 지나가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사진첩을 들춰보고 있었던 듯이. 아직 남은 삶을 향해 행복의 시선을 돌리고 싶지만 아직 남은 사진첩이 남아 나를 끌어당기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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