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 - 서울 하늘 아래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송기정 옮김 / 서울셀렉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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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서울, 평양냉면

빛나-서울 하늘 아래, J.M.G. 르 클레지오, 서울셀렉션, 2017.


  왜 서울일까가 가장 궁금했다. 르 클레지오가 친한(?) 작가라는 이야기는 접했기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작가가 서울을 배경으로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을 때는 그렇게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한때 알던 이의 이름인 ‘빛나’라는 소녀가 등장하는 이 소설이 ‘서울’이어야 하는 ‘빛나’여야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책장을 넘겼다.

  소설에서 르 클레지오가 저자라는 사실을 지운다면 외국 작가가 썼다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로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묘사는 익숙하다. 다르게 얘기한다면 굳이 ‘서울’이어야 하는 이유나 ‘빛나’여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배경을 뉴욕으로 바꾸고 소녀를 ‘제인’이라 불러도 이 이야기가 가진 차별성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노벨상 수상작가가 ‘서울’을 배경으로 썼다는 이 소설에서 ‘서울’이 가지는 의미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익숙해서 그 배경에 대한 묘사에 무뎠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어쩌면 한국이란 나라, 서울이라는 배경이 필요했던 이유가 있다면 비둘기를 키우는 ‘조한수 아저씨’가 아닐까. 그의 어머니는 전쟁때 할아버지가 키우던 비둘기 한쌍을 데리고 38선을 넘어왔다. 어머니는 언젠가 그 새들이 고향으로 날아가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키우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조씨는 비둘기가 임무를 완성할 수 있도록 수위로 일하는 아파트 건물 Good Luck! 옥상에서 북에서 온 비둘기 자손을 키운다.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을 가진 한국. 당연 외국인들에겐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들의 사연들이 남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이 이야기는 현재의 한국이 가진 서사이니까. 클레지오는 한국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속에 분단국가의 상황을,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의 이야기를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고향의 가족을 향해 날리는 메신저 비둘기들의 여행은 환상적이면서도 마음졸이게 된다. 마침내 그 이야기들이 희망을 전하는 이야기로 대체되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인데 생각하게 된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진 날이라서가 아니라 평화의 상징은 이제 비둘기가 아니라 ‘평양냉면’이라는 글들이 뭔가 벅차오름을 느끼게 하는 날. 이러한 일들이 이어지면 이제 한국에 대해서 서울에 대해서 또다른 이야기가 만들어 질 것이다. 향수에 젖은 그리움 가득한 분위기만을 담지 않은. 비둘기가 날아가며 느껴지는 꿈과 희망을 생각하게 하며 동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형태의 그런 빛깔로.

  조씨의 이야기는 빛나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다. 빛나는 전라도 어촌에서 살다 교육은 서울에서 받으라는 부모님으로 인해 서울 고모댁에서 자란다. 고모와 사촌에게서 갖은 구박을 받으며 산다. 우연히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앓는 살로메, 김세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빛나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으며 살로메는 바깥세상을 보고, 상상의 여행을 한다. 소설은 빛나가 들려주는 다섯 개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나도 그들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훨씬 명확해 보인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서로 연결된다. 지하철 같은 칸에 탔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운명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살로메를 위해서이기는 하지만 그에 따른 수당을 받는 이야기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하는  듯했지만, 이 가상의 이야기들은 빛나가 말하듯 연결되어 있다. Good Luck!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연결이 되기도 하겠지만 이야기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삶과 죽음과 함께 윤회 사상이 전제되어 있다. 대도시 서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만큼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처하고 있는 상황도 그들 면면도 다르지만 도시 속에서 겪을 수 있는 익숙한 이야기가 현실과 환상의 교차로 진행된다. 빛나는, 이 소설은, 빛나기보다 쓸쓸하고 슬프다.


그녀는 내가 가진 욕망과 이야기에 좌우되면서 구불구불한 상상의 세계를 따라 맹목적으로 나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나는 그녀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면서 죽음의 시간을 늦추게 하는 에너지가 계속 흐르게 할 수도, 그 흐름을 멈추게 할 수도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삶과 죽음과 고통과 희망들이 교차하는 살이. 애정이 교차하고 만남과 헤어짐이 이어지는 살이. 살로메의 죽음 후에 더 이상 빛나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됐지만 빛나는 “해방될 것 같다”라고 말한다. “현재만 중요하고 산 사람만 중요한 이 큰 도시에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빛나에게 이야기는 살로메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빛나 자신의 세상살이를 견뎌내는 힘이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빛나가 찾아낸 이야기들은 죽음을 앞둔 살로메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얘기이기도 하고 현재를 살아가기 힘들었던 스스로를 먼 미래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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