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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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읽는 제니퍼 이건으로 이렇게 단정하면 곤란하지만, 이이의 작품을 더 재미있게 해주는 진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범죄. 아주 대놓고 범죄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내 경우에 이건을 읽은 코스가 자잘하고도 상습적인 좀도둑질로 시작해, 각종 지능적인 사기를 거쳐 이번에는 합법적, 반쯤 합법적, 완전히 불법적 업소를 거느리는 폭력 조직까지 발전하면서 재미의 도를 높여갔다. 당연히 범죄가 스토리 라인은 아니지만 하여간 재미를 증폭시키는 인공조미료 역할을 단단히 한다.


  책에서 제일 먼저 소개할 인물은 에디 캐리건. 이름만 봐도 탁 아일랜드 사람이다. 아버지는 아일랜드에서 결혼해 딸 브리앤을 낳고, 브리앤의 엄마가 죽고나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 도착한 아버지는 외로운 곳에서 혼자 살 수 없어 여인을 만나 에디를 낳았다. 그리하여 브리앤과 에디는 이복 남매. 훗날 친남매보다 더욱 돈독한 정을 쌓고 살지만 어릴 때는 그럴 기회도 없었다. 에디의 엄마도 에디가 네 살이 되던 해에 티푸스에 걸려 생을 마감해버렸다. 아버지는 어린 두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브리앤을 뉴저지에 사는 외가에 보내고, 에디는 뉴욕 가톨릭 소년 보호소에 들여보냈다. 가슴이 천 길 나락으로 떨어졌겠지만 그때뿐, 에디의 인생에서 다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소년 보호소에서의 에디. 가톨릭 집안의 아이들을 모은 보호소니까 주로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가정의 아이들일 터인데, 아일랜드 아이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 남자 아이들이 모인 아동 보호소는 작은 정글. 이곳에서는 저절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할 수밖에 없다. 에디는 완력 보다는 사슬을 감은 문 틈새로 빠져나가는 능력, 원숭이처럼 가로등을 기어오르는 능력, 후디니 같은 탈출 묘기에 능했다.

  보호소 아이들은 열 살이 넘으면 낮에 밖으로 나가 자잘한 일을 해 돈을 벌기도 했는데, 에디는 좀 먼 동네에 가서 우연히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휠체어를 탄 노신사 드비어 씨를 만나 말동무도 해주고 카드 게임인 세븐카드 스터드도 배운다. 드비어 씨가 에디의 숨겨진 또다른 재주를 발견했는지 자신이 밑돈을 대주고 작은 포커게임판에 입성시켜 게임을 하게 하고, 매일 전날 한 게임을 복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드비어 씨는 신사. 그는 에디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1920년대니까 감안해 읽자.

  “절대 사기는 안 돼. 단 한 번이라도. 사기는 어린 여자의 처녀성 같은 거야. 한 번 했건 백 번 했건 차이가 없다고. 타락한 건 마찬가지야.”

  이 시절에 에디는 보호소 동기 가운데 중요한 두 명이 이스트 강에 빠진 것을 건져 목숨을 구해준다. 존 더넬런과 바트 시헨. 둘은 성인이 되어 대공황 시절에 존은 부둣가의 작은 보스이자 도박판을 관리하는 하급 갱단 두목, 바트는 주검사 사무실 소속 검사. 에디는 이들과 달리 보호소에서 나온 후에 보드빌에 관심을 두어 그곳에 진출, 작은 쇼에 출연해 보호소에서 계발한 자기의 재주를 공연하면서, 아름다운 코러스 겸 백댄서 애그니스와 사랑에 빠져, 미네소타에 사는 처가 식구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맏딸이자 작품의 주인공 애너를 낳고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지만 자기 몸을 거의 운신도 하지 못하는 장애 아이 둘째 딸 리디아를 낳는다.

  원래 성실한 성격의 에디는 극장주의 눈에 띄어 극장 하나를 관리하면서 주식에 관심을 두어 주식 중개인이 되고자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 신용거래로 주식 매수와 매도에 뛰어들어 큰 부자는 아니지만 아일랜드인 커뮤니티에서는 부자 소리를 듣는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대공황. 한 방에 거덜이 난 캐리건 가족은 집도 작은 아파트의 6층으로 이사하고, 근사한 차도 팔고, 갖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팔며 하루하루 지내게 되는데, 왕년에 목숨을 구해준 존 더넬런의 수하에 들어가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며 푼돈을 벌다가 존의 한참 위 보스인 덱스터 스타일스에게 발탁되어 주로 돈 세탁에 관계된 일을 하며 다시 넉넉한 생활을 잠깐 누린다. 스타일스 씨와의 면담에서는 그의 철학대로 가족을 데리고 스타일스 씨 집을 방문했는데 이때 에디와 함께 간 가족이 에너 캐리건, 맏딸이었고, 스타일스 씨는 한 겨울에 추위를 무릅쓰고 맨발로 맨해튼 비치에 발을 담근 에너가 아마도 마음에 들어 에디를 고용한다.

  에디는 열한 살 때 휠체어의 노신사 드비어 씨한테 어쨌든 사기 행각은 하지 말라는 교훈을 배웠던 터. 그간 스타일스 덕분에 잘 먹고 여유있게 살고, 무엇보다 둘째 딸 리디아를 위하여 전신 마비용 휠체어를 사 줄 수 있었지만 늘 자신의 일이 법 앞에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 찜찜했던 모양이다. 존 더넬런의 출연 목적은 에디와 딸 애너가 덱스터 스타일스와 관계를 맺게 하는 것과 비슷하게, 바트 시헨을 구해준 건 에디와 스타일스 사이에 균열이 발생해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을 하게 만드는 데 있다. 결국 에디는 바트 시헨에게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이탈리아 갱단의 고위 세력가 덱스터 스타일스에게 터미네이션을 당한다. 에디 자신도 결국 그렇게 될 줄 알고 가족에게 쇼핑백에 가득 든 현금과 예금통장을 남기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후, 온몸을 철제 체인에 감겨 무척 깜깜한 3월의 맨해튼 앞바다에 산 채로 수장을 당하는데, 보드빌 시절에 에디가 뭘 공연했다고? 후디니가 뭐?


  작품의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이제 열아홉 살이 된 에너 캐리건이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거대 군함에 쓰일 부품 규격을 재는 일을 하다가, 잠수해 선박을 수리하거나 조사하는 다이버 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기어이 다이버가 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여태 소개한 내용은 에너가 아직 어린 시절에 국한한다.

  애너가 하고 싶었던 다이버는 1940년대 초반의 미국에선 여성이 진입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제니퍼 이건은 앤드리아 모틀리 크랩트리라는 퇴역 육군 여성 심해 다이버를 발견하고 이이를 모델로 해서 어떻게 다이버가 될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비롯해, 다이버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 당시 여성으로 과정을 감당하는 동안 가장 큰 장벽으로 여겨졌던 것을 충분히 취재했으리라. 여기에 독후감 초두에 썼듯이 인공조미료를 듬뿍 뿌려주기 위하여 이탈리아계 갱단의 최고 우두머리, 아마도 아흔 살은 넘은 듯 보이는 미스터 Q씨와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Q씨의 바로 아래 직급 정도로 보이는 덱스터 스타일스를 등장시킨다.

  덱스터 스타일스 역시 맨해튼 비치에서 이탈리아 음식점을 열었던 평범한 이탈리아 가정의 아들로 일찌감치 하이틴 시절에 Q씨 수하에 들어가 힘 깨나 쓰다가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여성 해리엇 베링어와 결혼한다. 덱스터도 훌륭한 갱 조직을 운영했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잘 나가게 된 건 처가집인 베링어 가문의 막강한 정치적, 경제적 끗발과, 베링어 가문과 Q씨의 묵언에 의한 이해관계가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덱스터가 아무리 갱이지만 그래도 사나이답고, 자기 나름대로 의리 같은 것이 있더라도 미국 작가의 작품 속에 갱단 두목도 아니고 두세 번째 두목이라면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곱게 살아있기 힘든 문학적 운명에 처해있기 십상인데 이 작품에서도 그럴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안 가르쳐드린다.

  하여간 세월이 지나 자기가 처단한 에디 캐리건의 맏딸 애너, 일찍이 자기 집에 온 애너를 품평하기를, 용감하고 강한 아이라고, “얘들이 우리보다 더 강해요. 쟤들이 그걸 모르니 우리로선 다행이지요.”라고 했던 건 이미 잊었지만, 다이버가 되고 무엇보다 특별나게 아름답지는 않아도 충분히 성인이 된 다음에 덱스터 나이트클럽에 와서, 아무도 함부로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덱스터의 테이블에 턱 나타나서, 그의 뇌리에 에너를 고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젊은 여성이 한 시절, 그렇게 믿고 일을 맡겼던 에디 캐리건의 맏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내가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다섯을 채우지 않은 것은, 예상했던 미국식 결말을 향해 착착 다가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반전이 혹시나 있을까 싶어 휙휙 날아가는 심정으로 후다닥 읽게 만드는 필력이라 할지라도,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소설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미국식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허탈해지는 심사를 숨기지 못하겠더라고.

  작품 속에서 미국 상선이 독일 유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당하는 장면도 나온다. 침몰하는 엘리자베스 시먼호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한 선원들은 여지없이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 꼴이 났더라도, 독자는 정의로운 미국인이 결코 인육 섭취 같은 극단적인 생존을 거부할 것이란 것도 알고 있고, 중요한 등장인물은 결국 끝까지 생존해 평온한 삶을 유지하리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기대했던 긴장감은 아쉽게도 애초에 1도 없었단 거다.

  씩씩하고 강인한 애너가 사랑이라기보다 한 순간의 욕정에 더 가까운 심정으로 살아생전 처음으로 맛본 엑스터시를 수반한 진짜 섹스를 통해 임신을 했을 때도, 다이버 일을 계속하기 위하여 임신중단을 결심하고, 공창에서 만나 친구가 된 넬을 통해 산과 의사를 찾아가 클로로포름 마취를 위해 마스크를 덮는 순간까지, 독자는 용감하고 강한 애너가 끝내 안 그럴 줄 알면서, 결국 출산을 선택할 줄 알면서도, 임신중단 수술을 받기 바랐지만, 제니퍼 이건은 단칼에 독자, 나의 바람을 거절해버렸다. 미국의 독자는 아직까지 속으로는 임신중단을 원하지 않거나, 적어도 임신중단 시행을 내놓고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제일 보수적인 나라가 미국이잖아.

  만일 유럽의 여성작가였다면,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였다면 아마도 단칼에 처리해버리고 말았을 거 같다. 왜 애너는 여러 사람 힘들게 출산을 선택했을까? 미혼모이며, 고모 브리앤의 도움이 없으면 결국 다이버 일도 중단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태였음에도. 혹시 모르지. 제니퍼 이건도 그걸 바랐지만 애너 캐리건이 바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을지도. 내가 임신중단을 지지했던 건, 만일 당사자 애너가 내 딸이었다면, 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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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 - 제171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치호 미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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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호 미치, 1978년에 오사카에서 출생한 일본 소설가. 여성이고 본명은 밝히지 않았다. 오사카에 있는 간사이 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하고 잡지 같은 곳에 글을 쓰면서 데뷔, 주로 남성 청소년의 동성애를 그린 BL소설가로 활동했다. 여러 작품이 만화로 나와 있어서 아마존 검색하면 화면이 숱하게 넘어간다. 2020년엔 대표작이라는 <예스 오어 노 오어 하프>가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회사원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글을 썼다고 하는데, 지금도 회사에 다니는 지는 모르겠고, 하여튼 그때는 평일에 서너댓 시간 글을 쓰고 주말에는 쉬느라 외출도 삼가했다 한다. 이쯤 되면 슈퍼우먼 맞다.


  2021년, 이이가 마흔세 살 때 소설집 《스몰 월드》로 순문학 작가 데뷔를 해 주목을 받았고, 《창궐》로 2024년에 나오키 상을 수상해 내가 읽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다섯 권의 일본 작품 가운데 세 권이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이고 《창궐》을 포함해 두 권이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여러 번 말한 것 같은데, 일본 현대소설을 읽어보고 싶으나 아는 것이 없어서 일본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문학상 수상작을 선택해 읽어보았다. 앞서 읽은 책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사실 이 책을 끝으로 당분간 일본 현대소설하고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이치호 미치가 알려진 BL 작가. BL도 당연히 사랑인 건 마찬가지니까 사람의 섬세한 감정선을 묘사하는 데 특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 실린 여섯 단편들이 섬세하면서도 극단적이지 않다. 등장인물도 청소년이거나 젊은 청년 세대가 많이 등장해, 읽는 중에 틀림없이 작가가 젊은 층일 것이라 여겼는데 1978년생이란 걸 알고 놀랐다. BL 작가 출신이라지만 《창궐》 작품 중에 동성애 장면은 안 나온다.


  《창궐》 속에 <창궐>이라는 표제 작품은 없다. 나오키 상을 받은 것이 2024년. 우리나라에서도 엔데믹을 선언한 시기. 그러니까 여섯 작품은 모두 펜데믹 시절에 쓴 것이라고 봐도 좋겠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니. 실제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처음에 실린 <날개가 다른 새>에서 가끔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보이는 장면이 보이고 천천히 밤의 유흥가에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마지막 작품 <잔물결 드라이브>에서는 이제 자기 얼굴을 보이기 싫은 경우에 가끔 마스크를 쓰는 정도. 마스크 쓰는 것이 펜데믹 시기에 익숙했던 터라 예전처럼 경원받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펜데믹이 지나갔거나 거의 막바지에 달했다는 뜻이겠지.

  그러고보니 그렇구나.

  <날개가 다른 새>는 오사카 시절 중학생 시절 그저 알고 지냈던 동창 유토와 나기사. 유토는 원하지 않는 전공을 1년 하다가 때려 치우고 도쿄에 와서 주점 삐끼를 하며 살고 있던 차. 나기사는 파파카쓰, 나이 많은 남자와 사귀면서 돈은 받는 아가씨, 우리말로 원조교제 비슷한 걸 해서 먹고 산다. 나기사가 유별난 것이 도쿄에 와서도 오사카 사투리를 구태여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점. 사실 특별한 건 아니다. 나중에 굳이 사투리를 쓰는 이유도 자기 입으로 말하지만 소개하지는 않겠다.

  근데 유토가 생각해보니 나기사는 오사카 고향에서 이미 죽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험하게. 안나 카레리나처럼 정거장에 도착하기 위해 천천히 속도를 줄여 들어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 것도 아니고, 힘차게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건널목에서 뛰어들어 거의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신체 훼손을 당해 죽은 것이 틀림없다. 근데 지금 도쿄에 와 있으니, 정말로 나기사인지, 아니면 나기사의 도플갱어인지 막 헛갈린다. 하여간 죽은 게 맞다. 그게 정말로 나기사였는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


  반면에 마지막 작품 <잔물결 드라이브>는 화창한 토요일에 한적한 교외 역에서 트윗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딱 보면 소위 번개? 번개 맞다. 그것도 첫 번개. 어쩌면 마지막 번개. 당연히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나이와 성별도 각양각색이다. 계정이름이 ‘오이 정말 싫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마리골드’, 중년 남자 ‘팥빙수’. 소녀 같은 분위기의 ‘케이트 모스’ 그리고 승합차를 가져와 이들의 이동을 책임질 나이 많은 남자 ‘동물원의 겨울’. 모두 다섯 명.

  이들이 모인 이유는 집단 자살을 하기 위해서이다. 자살 방법은 번개탄. 진짜로 번개탄을 피우기 전에 독한 수면제를 몇 숟가락 퍼먹거나 산토리 위스키 같은 술을 왕창, 그러나 절대 토하지 않을 정도만 퍼 마시겠지. 어차피 번개탄의 일산화탄소에 중독이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토하긴 할 터이지만 그거야 죽기 바로 직전이니 알 바 없고. 그리하여 이들은 승합차에 올라 죽음의 장소로 이동하는데, 한 가지 작지 않은 문제가 있으니 이 가운데 케이트 모스가 불과 열두 살의 꼬마였던 것. 죽기에는 너무 어리잖아? 그래, 사실 더 큰 문제는 이게 아니다. 문제의 실행 장소에 가 보니 이미 다른 차가 한 대 와 있고, 동물원의 겨울 님이 운전석에서 내려 짙은 선팅이 된 차에 다가가 들여다보니, 차에 탑승한, 아니지, 탑승했던 사람들 모두 이젠 불이 꺼진 번개탄의 일산화탄소를 충분히 넘칠만큼 흠향하고 벌써 저승행 특급을 탔던 거다. 이후에 어떻게 됐는 지는 당연히 안 알려드리고.


  그러니까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은 모두 죽음, 죽음 가운데서도 자살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것 참, 시원하게 탁 이야기하면 틀림없이 스포일러라서 그럴 수도 없고, 밝히지 않으면 싱겁기 그지없는 독후감이 될 터. 그래도 결론을 말할 수는 없다. 재미있는 책이니 읽어 보시라고.

  다른 작품도 괜찮다.

  만일 당신이 여성이고, 우연히 정말 마음에 드는 외모의 한 남자를 보았는데, 그 남자가 하필이면 배민 배달원이라서 예컨대 짜장면과 탕수육 세트를 주문하거나 아구찜 작은 것을 앱으로 주문하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가 음식을 가지고 올 확률이 있을 경우, 정말로 딱 내 마음에 드는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크게 먹고 싶지는 않지만 햄거버나 파스타를 주문해보고 싶을까, 아닐까? 나는 남성이라 여성 마음을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안다. 그럴 수 있고,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 다만 <로맨스>의 주인공 유리처럼 도무지 절제가 되지 않고 남편이 집에 있는 휴일 빼고 하루에 두 번씩 주문을 해대면 그건 집착이라고 생각할 뿐.

  근데 세상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몇이나 있지? 유미도 이래저래 헛물만 켠다. 오라는 남자는 안 오고 영 이상하게 생긴 남자만 줄창 올 뿐만 아니라 이 못생긴 배달원은 유미가 자기한테 반해서 주구장천 KFC에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을 오더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어째? 어쩌긴 뭐가 어째, 당연히 사고가 생기고 말지. 동네 소문이란 소문도 활랑 나 버리고.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냐? 그걸 이치호 미치가 참 귀신 같이, 재미있게 포착한다. BL로 다져진 솜씨가 거 참 녹록하지 않네. 이름을 기억해 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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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9-03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의 저라면 배민 주문 합니다. ㅋㅋㅋ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 재미있을 것 같네요. 😊

Falstaff 2026-09-03 20:1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작가의 책을 뒤져보고 있는데요, 수색 중입니다. BL 경향이 아직은 좀 덜 빠진 것도 같고 뭐 그래서 말입죠. ㅎㅎㅎ

바람돌이 2026-09-0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네요. 저도 책 제목이랑 작가 이름이랑 기억해뒀다가 찾아봐야겠어요. 음 그리고 저의 경우는 보고싶은 남자가 온다해도 하루에 1번 정도만 시키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체면도 차리고 돈도 없고.... 네 그것이 저입니다. ㅎㅎ

Falstaff 2026-09-03 20:22   좋아요 1 | URL
아휴, 당연한 겁니다. 누가 아름답게 생기라고 했나요? 배달 주문 횟수로 말하자면 은근히 배민 운송자가 알듯 말듯 딱 경계선이 되게시리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머리 좀 굴릴 듯합니다. ㅋㅋㅋㅋ
 
애니 존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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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가 아닌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은 2021년에 문학동네가 <루시>의 정소영 번역으로 출간해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이어서 1년 후에 찍은 소설이 <애니 존>. 이 외에도 전에 읽은 킨케이드가 <내 어머니의 자서전>하고 <미스터 포터>. 그러니까 <애니 존>이 네 번째 읽는 킨케이드라는 말인데, 이이가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분량은 사실 ‘장편’이라 말하기 민망하지만 구성으로 보면 장편인 건 맞는 듯.

  그러나, 실제로 자기 주변, 부모와 자신을 포함한 경험담 비슷한 걸 쓰는 데 특화된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짧지는 않은 장편을 미리 세 권 읽었으면, 앤티카 바부다 섬의 세인트존스 사람들과 부모 이야기는 다 읽은 셈이다. 2005년 현재 3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던 작은 도시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저러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고 있으며, 유별난 혼인과 혼외자 같은 것까지 몽땅 알고 있는 처지에서 <애니 존>을 읽게 된 꼴이다.


  <애니 존>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애니가 열 살 때 시작한다. 세인트존스 디킨스베이 스트리트 주택가에서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의 지붕을 수리하는 동안, 때마침 여름방학이라서 한참 외곽 지역인 포트 로드에서 살았던 짧은 이야기부터.

  왜 여기서 작품을 시작했을까? 어린 나. 이제 죽음에 관하여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마당에서 보면 저기 공동묘지가 보인다. 열 살 먹은 애니는 무덤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무서워한다. 언제 다시 애니 앞에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 때로는 꿈에도 나타난다. 엄마는 자신이 낳은 애니의 오빠를 포함해 아는 죽은 사람이 많다.

  얼마 후 시내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어느 날 애니보다 어린 ‘날다’가 엄마 품안에서 죽는 일이 생긴다. 엄마 친구의 빼빼 마르고 고열에 시달리던 딸. 날다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엄마와 엄마 친구가 아이를 의사 베일리 선생한테 데려가던 중에 엄마 품에서 축 늘어져 그걸로 끝이었다. 날다의 엄마는 울기만 해서 엄마가 염을 비롯해 장례 일습을 맡았다. 애니는 보았다. 엄마가 손으로 죽은 날다의 얼굴을 쓰다듬고, 물로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그렇게 죽은 아이를 만진 것을. 그 손으로 애니 자신의 머리를 빗질하고, 음식을 만들어 애니의 몸 속에 집어넣게 하는 것이 끔찍했던 기억.

  이어서 죽은 여러 사람을 떠올린다.

  애니보다 두 살 더 많지만 작은 체격의 지진아 소니아. 애니가 무척 좋아한 아이라서 소니아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괴롭혔던 아이. 임신중이던 소니아의 엄마도 갑자기 죽었다. 2년 동안 더 같은 반이었지만 이후로는 도무지 말을 걸 수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죽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다니, 너무 망신스러운 일 같았다.

  날다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길 건너 이웃인 미스 샬럿이 엄마와 서서 이야기하다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애니는 장례식을 쫓아다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숱하게 보았는데 그저 호기심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이웃 학교에 다니던 곱추 여학생이 죽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묻히기 전에 곱사등을 한 번 만져보고 싶었단다.


  2장으로 넘어가면 이제 아빠가 등장한다. 엄마보다 서른 다섯 살이 더 많은 늙은 아빠. 집도 짓는 큰 목수. 집안의 자잘한 모든 불운은, 아빠가 사랑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수많은 여자들 가운데 아빠의 아이를 낳은 누군가가 엄마와 애니한테 저주를 걸어 해를 입히고자 하기 때문에 생긴 일로 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사실 저메이카 킨케이드 본인이 아빠가 사랑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여자가 낳은 딸이라는 것을. 이미 아빠의 사랑이 식어 엄마 손을 잡고 찾아간 아빠는 엄마도, 친딸 킨케이드도 마치 소가 닭 보듯 했다는 것도. 이런 것들에 관해 킨케이드와 엄마도 별로 앙심을 품지 않고 살았다는 것도.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며, 그저 앤티카 바부다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까지.

  그러니 <애니 존> 2장부터 등장하는 아빠가, 부모 가운데 특히 아빠가, 엄마보다 서른다섯 살이나 더 많아 무척 늙었을 아빠가 애니와 더 돈독한 정을 나누는 걸 보고 의외라고 생각할 수밖에. 아무래도 처음 쓰는 장편소설이라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기가 좀 뭐했던 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미혼모가 키우는 혼외자 가정이라는 게 그리 자랑은 아니잖아, 1949년생이라면.

  이후 애니 존이 사는 이야기는 이미 다른 작품을 통해 다 한 번씩은 읽은 내용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했고, 열일곱 살이 되어 더 높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영국 유학길에 오르고 기타 등등. 성숙해가면서 가랑이에 터럭이 돋고, 초경을 하고, 가슴은 그다지 커지지 않는 이야기까지. 딱 하나 이 책에 나오지 않는 건, 열일곱 살 때 영국이 아니라 미국 뉴욕주 한 가정에 ‘루시’라는 이름의 입주보모로 들어가 사는 이야기만 빼고.

  그래서 이 책을 2022년에 읽지 않고, 다른 킨케이드의 작품을 제법 거친 다음에 읽으면, 별로 재미있지 않다. 139쪽에 본문이 끝나는 짧은 소설임에도 심지어 지루해지기까지 했다. 그저 자기 스토리에 자잘한 변주를 한 작품으로 읽힐 뿐. 한 작가의 소설은 역시 발표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니까. 그렇게 읽었으면 확실히 더 재미있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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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9-02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가장 대표작을 읽고나면 나머지가 좀 썰렁해지는 거 있죠. 그래서 순서도 잘 잡아야 하긴 하는데 그래도 어떤 작가를 처음 만나면 왜인지 그가 제일 잘 쓴걸 읽고싶긴 하더라구요. ㅎㅎ

Falstaff 2026-09-02 21:1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도 그렇더군요. 작가들도 비슷한 모양이더라고요. 노벨 상 받으면 이후 작품들이 시무룩한 경향이 잦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뭐 사람들이 거의 비슷.... ㅎㅎㅎ

dhk7112 2026-09-0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9쪽에 본문이 끝나는 짧은 소설임에도 심지어 지루해지기까지 했고 자기 스토리에 자잘한 변주를 한 작품으로 읽힐뿐이다

Falstaff 2026-09-02 21:16   좋아요 0 | URL
책 읽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그저 볼불복 아니겠습니까.
 
여름의 사실 ㅣ 창비시선 481
전욱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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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욱진이 누군가 했더니 한때 수필집 《선능과 정릉》을 쓴 시인이구먼. 선능은 올해 명예교수가 될 응식이네 2층집이 있던 동네, 내가 졸업한 대일고등학교가 저 정릉동 산 꼭대기에 있어서, 선능과 정릉, 두 능 다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곳이라 읽어볼 생각도 안 했던 책이군. 하긴 에세이 모음집이면 애초에 읽을 엄두를 내지도 않았겠지만. 전욱진의 “선능과 정릉’은 아마 우리가 ‘선정릉’이라 부른 삼성동 거기를 말했던 듯하다. 아니면 말고.

  별의 별 곳을 다 뒤져도 전욱진의 개인정보는 1993년 서울생이란 거밖에 안 나온다. 그럼 내 작은 아이하고 동갑일세. 왜 애꿎게 작은 아이 나이를 흘리는가 하면, 힘들여 시 쓴 시인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읽기는 어렵지 않게 읽히는데 정작 어떤 뜻을 전하려고 하는지 그게 매우 헛갈린다는 거다. 전田旭鎭 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즘 책방에서 이름을 낸 시인들의 시집 거개가 좀 그런 편이라서, 혹시 시 쓰고 읽는 일에도 세대 차이가 있는 거 아닐까, 이런 난감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를 전보다 확실히 드물게 읽는다. 가면 갈수록 시 읽기가 더 난감해진다. 그만큼 시에 대한 애정도 식어가는 것 같아 나도 아쉽다.


  이 시집의 시들이 다 어떤 뜻인지 모르겠다는 건 아니다. 가끔은 읽자마자 탁 이해가 가는 시도 있다.



  와사비



  물 맑은 냇가에서

  서늘하게 자라

  뿌리를 갈아 만들고

  일본산이 유명하다나요


  특유의 매운 맛과 향이 있는데

  혀가 아리고 콧등은 시큰하며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면서


  그러니 많은 양을 한꺼번에

  입에 넣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적당하면 알싸함 뒤에

  은근한 고소함을 느낄 수 있지요

  흰 살 생선을 칼로 저미는

  사람이 그랬습니다


  그때 나란히 앉아

  그 얘기를 들으며

  함께 기다리던 사람과는 이제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었고요


  그때는 동그란 눈을 같이 하고선

  이게 생선의 비린 맛을 없애고

  과연 감칠맛은 살리는 거군요


  다시 와서 먹는데

  맛있네요  (전문. p.64~65)



  딱 그림이 그려진다. 일식집 바. 소위 ‘다찌’라고 부르는 곳. 좀 됐겠지, 전에 둘이 와서, 그게 옛 애인이 됐건, 그냥 친구가 됐건 하여간 둘이 와서 다찌에 앉아, 회를 떠주거나 초밥을 만들어 한 점씩 건네주던 요리사가, 이게 생와사빈데요, 하면서 이야기를 했겠지. 시집이 나온 게 시인이 스물아홉 살이니까 틀림없이 둘이서 일식집 다찌에 앉아 회 또는 초밥을 먹었던 것도 20대였을 거다. 그래 요리사가 설명해주는 걸 나름대로 재미있고, 새로운 지식이기도 하고, 또 진짜로 먹어 보니까 그럴 듯하게 맞는 말이기도 해서 딱 기억에 남았겠지. 그러나 그 사이에, 예전과 오늘 사이에 나 아닌 둘 가운데 하나가 내 곁을 떠났고, 오늘은 나 혼자 와서 회 또는 초밥을 먹었는데 외롭긴 했겠지만 맛은 그대로네. 하는 시. 이왕이면 전에 함께 온 사람이 옛 애인, 그냥 조금 사랑한 사람 말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죽고 살 만큼 사랑했던 이였으면 어땠을까? 뭘 어때, 그랬으면 아예 다시 와 볼 생각도 안 했겠지.

  이 시, 쉽다. 다 이랬으면 좋겠다.

  이런 시? 한 페이지만 넘기면 또 나온다.



  휴일



  거울 앞에 나 아니고 노동이 서 있을 때

  누군가 날 부르는데 노동이 고개 들 때

  곰살갑게 식탁 앞에 앉아 있을 때

  일인용 침대 위에 포개어 누울 때

  그게 나의 내부를 계속 궁금해할 때

  그래 나도 펑하고 보여줄까 고민할 때쯤


  쉬는 날이 온다


  정오쯤 일어나서

  햅쌀을 안치고


  거실 바닥 쓸고

  화분에 물도 주고 하는 날


  쓸모없는 나절을 꼭 보낸 다음

  사랑하는 소리를 듣고 내는 날


  노동한테 이겨먹기 위해

  내가 제일 가엽다는 생각 하나로

  누구 하나 미워할 필요 없이도


  간신히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날  (전문. p.66~67)



  이 시도 즉각 접수된다. 휴일 전경. 혼자 사는 청년의 휴일 하루. 아주 바람직한 청년이군. “거울 앞에 나 아니고 노동이 서” 있으면 내가 곧 노동이라 휴일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노동자 신분이겠군. 하여간 다각도로 싱숭생숭할 때 휴일이 온다나? 착한 청년이라니까. 오정쯤에 일어나 대강 얼굴에 물 묻히고 나가서 삼각김밥에 라면 사 먹는 게 아니라 햅쌀 안치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이런 청년 있으면 당연히 사위감으로 눈 여겨봄 직하다. 그리고 곧장 청소도 하잖아. 장가들면 아내 고생은 안 시키겠네. 이렇게 자잘한 거 해주는 남편이 진짜 귀염 받는 거다.

  그건 그런데, 다른 시들도 전부 이렇게 쉽고 편하지는 않다는 거.

  좋건 싫건 간에 오늘이 9월 1일, 하여간 어쨌거나 오늘부터 가을이다. 드디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왔다.” 그러나 아직도 겁나게 덥지? 좋다. 이 시집의 제목도 “여름의 사실”이니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를 기억하며 전욱진의 여름 노래 하나 들어볼까?

  여름은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면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리하여,



  몬순



  실바람에 거뜬히도 걷는 이가 많은

  강변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과

  그의 아들애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


  손잡고 이어진 둘을 내가 지날 때

  자주 강을 건너는 기관차도 지나고

  어머니가 무슨 말을 들려주었는지

  아들애가 말 따라 큰 소리 내더니


  ‘따우 호아’는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아이 어머니는 ‘기차’라고 일러준다

  고향에서 쓰던 말인가보다


  그렇게 같은 말소리가 거듭

  어린아이로부터 생겨나더니

  강을 가로지르는 긴 빗소리

  불어오는 물바람도 미지근히  (전문. p.16)



  이 시도 수월하게 읽힌다. 난 어지러운 시는 이제 어려워서 별로 끌리지 않는다. 고르고 고른 시 역시 그래도 빨리 접수되는 시였구나. 이 대목에서 한 번 웃어야 하는데 시 읽는 소양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거 같아서 웃는 것도 좀 민망하다. 

  근데 나로하여금 곤혹스럽게 만드는 게 2연 첫 행. “손잡고 이어진 둘을 내가 지날 때.”

  손잡고 이어진 둘은 틀림없이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과 아들애로 보이는 사람이겠다. 그런데 내가 이런 둘을 지나가? 여기서 ‘내’가 ‘나의’ 즉 소유격 일인칭대명사? 아니면 강변이니까 강보다는 좀 작은 내川? 이건 좀 알아야 시를 그나마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모르겠다는 말이다. 다문화 모자가 등장하는 거야 뭐 제목을 “몬순”이라 해 놓았으니 제대로 된 몬순이 흔한 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기구일 터이니 알아듣겠는데, 그래서 강을 가로지르는 길고 긴 비, 몬순이 올 것일진대, 저 “이어진 둘”이 뭐냐, 이거다. 처음엔 “이어진 돌”이라 읽어 징검다리 비슷한 돌다리로 알았지 뭐야. 이런 형광등 같으니라고. 혹시 이어진 둘이란 것이, 동남아에서 온 어머니와 다문화가정의 아들. 그러니 이것도 우리나라의 아열대화 비슷한 걸 떠올리게 쓴 것일까?

  글쎄 이런 건 시인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준다니까? 당신 생각이 맞습니다, 이러고 말 걸?

  하여간 장마, 이젠 기후변화로 장마를 극한 몬순이 끝나면 곧바로 들이닥치는 게 폭서다.



  폭서



  슬그머니 볕이 그늘로 들어온다

  팔월 목전에는 볕도 버거운가보다

  그늘은 기꺼이 자리를 내주고

  처지와 사정을 서로 묻고 답하며

  처음 만난 사이에도 알록달록한데

  지나가던 바람이 어디 길을 묻길래

  책을 덮고 내가 먼저 가르쳐준다  (전문. p.17)



  이 시도 재미있다. 더 좋은 건 짧기까지 하다는 거.

  8월에는 볕도 버거워 그늘이 기꺼이 자기 자리를 내준다는 건, 그늘에 햇볕이 쳐들어와버렸다는 뜻이겠지. 덥겠다. 더워도 오지게 덥겠다. 8월 더위는 충분한 습기를 머금고 있어서, 축하합니다, 오후 세시 현재 습도 89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저 숨이 턱턱 막힐 터인데, 이상하게 시는 그리 덥지 않다. 그건 바람이 지나가면서 묻는 길을, 내가 책을 탁, 덮으며 갈 길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하여간 책을 덮으면서 길 가르쳐주는 일 하나는 시원하잖아.

  당신의 여름도 그나마 견딜 만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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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01 0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포스트는 9월 1일에 업로드 했지만 사실 7월 초, 아직 장마가 시작하기도 전에 쓴 거라서, 9월 1일이면 당연히 늦더위가 여전할 줄 알았건만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비가 와장창 쏟아져 하나도 덥지 않다. 사람이 천기를 미리 짐작하는 일은 얼마나 우스우랴.

실버 2026-09-0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에 비가 오니 폭서가 언제였던가 싶네요

Falstaff 2026-09-01 20:21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오늘은 좀 따듯한 물로 샤워했습니다. ㅎㅎ

시네 2026-09-0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에 장마네요

Falstaff 2026-09-01 20:22   좋아요 0 | URL
가을 장마이기도 하고요.
 
돌체 ㅣ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3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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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말일이니 오늘을 기점으로 어쨌거나 여름은 간다. 펄펄 끓는 8월에만 세 번째로 네미롭스키를 업로드한다. 맞다, 더워서 내가 조금 미쳤다.

  세 번의 네미롭스키에서 두번째, <6월의 폭풍>은 재미없었다. 이야기가 분량에 비해 너무 방만하고, 등장인물도 수다한 바람에. 그런데 <돌체>를 읽고 전작이 재미없던 것이 다 이유가 있구나, 탁 알아챘다. 지난 주 독후감에 말했다시피, 네미롭스키는 2차세계대전 발발 이후에 모두 5부작을 <프랑스 모음곡>이란 제목으로 구성해서 1권 <6월의 폭풍>, 2권 <돌체>를 썼고, 3부는 대강의 스토리만, 4부와 5부는 제목만 정했다고 했다. 이건 <6월의 폭풍>을 한 편의 완결된 장편소설로 읽으면 나처럼 별 재미없는 작품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물론 각 권을 각각의 한 작품으로 읽어도 되기는 하겠지만 1권부터 5권까지 마치 대하소설 비슷하게 읽는 게 훨씬 바람직할 터였다. 물론 작가가 작품을 쓰는 도중에 세상을 떠서 애초에 불가능했지만. <6월의 폭풍>은 그러니까 5부작의 1권답게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의 단초들이 가능한 한 많이 나와야 하니 독자 기준으로 조금 난삽하게 느꼈겠다.

  2권 <돌체> 역시 한 권의 독자적인 장편소설로 읽힌다. 그러다가 작중 조금씩 어딘지 친숙한 분위기가 느껴질 때쯤 아하, 전편의 특정인물이 이 장소, 이 등장인물하고 연결이 되는구나, 알아채게 된다. 이럴 때 독자는 당연하게 자잘한 즐거움을 배로 느끼는 게 보통이기도 하고.


  <6월의 폭풍>은 1940년 6월 4일에 시작한다. 그로부터 한 열 달 후인 1941년 봄. 중부 프랑스의 작은 읍, 면 단위의 뷔시. 시내도 아니고 작은 농촌이 주 무대이다. 특히 부르주아 앙젤리에 가문. 이 앙젤리에 가문의 집도 독자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6월의 폭풍>에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코르뱅 은행에 다니던 잔과 모리스 미쇼 부부가 뷔시 방면으로 피난을 가 며칠 묵은 집이 바로 앙젤리에 저택. 그리고 프랑스 말로 뭐라 하는 바람에 1권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앙젤리에 저택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소작인 집의 주인이 브누아 라바리. 미쇼 부부의 외동 아들이자 죽어가는 프랑스군 부상병 장마리 미쇼가 몇 달 동안 요양을 해 완쾌한 집이다. 거기서 도시의 예쁘장한 대학생이기도 했던 장마리와 사랑을 만들어간 마들렌은 지금 집주인 브누아 라바리와 결혼해 아이도 하나 있다. 1권에서 약혼자 브누아는 프랑스 포로로 잡혀갔다가, 독일 땅에서 탈출해 뷔시의 집까지 걸어서 온 신체 건강한 공산주의자다. 그래서 귀족, 부르주아 알기를 개떡 같이 안다.

  앙젤리에 가문에 지금은 두 부인만 산다. 포로로 붙잡혀 독일로 끌려간 가스통 앙젤리에의 어머니와 아내. 어머니는 앙젤리에 부인, 아내는 ‘뤼실’이라고 하자.

  뤼실은 남편 가스통과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다. 당시에는 대지주의 딸이었지만 아버지가 잘못된 투자를 하는 바람에 재산을 날려 결혼과 동시에 남편 가스통은 아내 뤼실을 돌 같이 알기 시작했다. 이런 단계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디종에 사업상 드나들다 모자 판매점에서 옛 대학 시절 첫사랑이었던 여자를 만나 발작적으로 연애를 시작해서, 연애를 한 김에 혼외자도 하나 만들었다. 씨를 책임지기 위하여 가스통은 도시 변두리에 작은 집을 마련해 일년의 절반 정도는 사업 명목으로 디종에서 보내고 있다. 물론 뤼실도 이를 알지만 엄마 앙젤리에 부인은 전혀 모른다.

  앙젤리에 부인은 전형적인 시어머니로 돈도 없이, 돈만 바라고 결혼한 것처럼 보이는 며느리 뤼실을 지극히 미워한다. 말도 거의 없다. 하는 꼴이 고운 것도 하나 없고 특히 뤼실이 책 읽는 꼴을 못 본다. 책을 폈다 하면 곧바로 타박이다. 할 일이 얼마나 없으면 책을 꼬나보고 그 모양이니? 상추쌈 먹는 모양도 꼭 시어미를 째려보는 것 같고.


  드디어 1941년 봄. 독일군이 뷔시에 세 번째로 들어왔다. 독일군은 점령지 주민에게 두려움, 존중심, 혐오감을 갖게 했고, 프랑스 시민으로 하여금 그들도 필요한 것이 있을 게 틀림없으니 독일군의 돈을 갈취해 그들을 이용해서 바가지를 씌우고 싶어하는 짓궂은 욕망을 갖게 만들었다. 책에 나오는 네미롭스키의 독일군은 우리가 그동안 영화를 통해 숱하게 본 악랄한 나치, 게슈타포가 아니다. 이 책의 역자 이상해가 번역한 베르코르의 작품 <바다의 침묵>에 등장하는 파리 주둔 독일군 장교처럼 매너 좋고, 기품 있으며 예술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할 줄도 아는 신사도가 몸에 밴 사람들. 중부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금발 머리에 창백한 피부와 깊숙한 눈동자를 지닌 꽤 큰 덩치의 젊은 사나이들.

  기억하시라. 지금 프랑스의 절은 남자들은 거의 모두 전쟁터에 나가서 근 2백만 명이 포로로 잡혀 독일 땅에서 박박 기며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꽤 그럴듯한 저자가 쓴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인류학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전쟁은 필연적으로 인구, 특별히 남성 인구의 감소를 가져와 여성으로 하여금 (본능적으로)출산 욕구를 높인다고 한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소나무일수록 솔방울을 많이 매달듯이. 젊은이라고는 여성들만 바글거리는 뷔시의 시골 동네에 젊고 잘 생기고 깨끗한 옷을 입은 남자들이 떼로 들어왔으니 여성들 마음이 어떻겠어?

  이런 독일병사와 연애를 하는 양장점 여자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죠?”라고 묻는 뤼시 앙젤리에에게 말한다.


  “뭐가 어때서요? 독일인이든 프랑스인이든, 친구든 적이든, 그 사람은 어쨌거나 남자예요. 전 여자고요. (중략) 여기 남자하곤 질이 달라요. 피부도 부드럽고, 치아도 하얗고, 키스할 때도 신선한 숨결이 느껴져요. 이곳 남자처럼 술 냄새가 나진 않죠. (중략) 전쟁과 그 모든 격변이 우리 삶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놨어요. 남녀 사이에는 그딴 거 다 소용없어요. 영국인이든 흑인이든 내 맘에만 든다면, 그에게 절 바칠 거예요. 가능하다면 말이예요. 제가 혐오스러우세요? 물론, 그렇겠죠. 당신은 부자에다 제가 알지 못하는 즐거움도 누리실 테니” (p.141)


  이 인용문에 내 메모가 달렸다. “마음에 드네.”

  근데 문제는, 독일군이 주둔을 하긴 했는데, 많은 병사들을 재울 장소가 없다. 사병들은 그냥 회관 하나 빌려서 자라고 하면 되겠지만, 부사관이나 장교, 그것도 위관, 영관, 장군 등의 계급을 나누어 그에 걸맞은 침실을 확보할 도리가 없다. 호텔 비슷한 것도 없는 동네. 그리하여 저 시골집, 불과 몇 달 전에는 프랑스 부상병 장마리 미쇼가 병을 다스리던 라바리의 집에는 열아홉 살 먹은 통역 장교 쿠르트 보네 중위가 묵고, 앙젤리에 저택에는 기병대 지휘장교인 부르노 폰 팔크가 들어가게 됐다. 앙젤리에는 지주이자 부르주아 저택, 라바리는 앙젤리에의 소작인 집. 그러니까 같은 중위라고 해도 쿠르트 보네가 아무래도 끗발로 쳐서 부르노 폰 팔크한테 한참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 그렇다. 지금 파리를 통치하는 군사령관의 친위참모가 폰 팔크를 가장 사랑하는 삼촌이고, 쿠르트 보네는 루이 14세 시대에 독일로 쫓겨간 프랑스 혈통이란다.

  보네가 들어가 지내는 소작인 집의 주인 브누아는 조금 의처증 기질이 있다. 있을 수밖에 없게 생겼다. 포로로 잡혀간 딱 그 세월 동안 자기 집에 부상병 장마리가 와서 지금의 아내 마들렌이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를 해 주었다는 걸 동네 사람들과 누이동생한테 들어 알고 있던 터. 이제 새롭게 새파란 독일 어린 놈이 집에 와서 젊은 아내가 아이한테 젖 먹이는 광경을 못 본 척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래서 사고가 나겠어, 안 나겠어?

  하지만 작품의 진짜 줄거리는 부부 사이에 사랑이라고는 1도 없으면서 결혼생활을 이어가다가 남편이 저 멀리 독일도 아니고 프러시아 지역의 포로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뤼시와, 그 집에서 달달한 사랑을 엮어갈 수도 있는 잘 생기고 훤칠하고, 피아노 연주가 수준급인 음악적 자질이 대단한 작곡가 선생 부르노 폰 팔크 중위 사이에 있다. 이거, 연애를 해야 해, 말아야 해? 요즘 소설이라면 연애는 모르겠고, 한 번 하기는 틀림없이 할 것 같은데, 1942년에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이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이렇게 재미난 건 내가 알려드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계시지?

  네미롭스키는 여기까지 쓰고 아우슈비츠에서 티푸스에 걸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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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8-3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하기는 했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8-31 14:30   좋아요 0 | URL
글쎄 안 알려드린다니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