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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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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장편소설. 문학동네가 신공을 펼쳐 널럴하게 편집하고도 240여 쪽에 불과하지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예전 독재체제 하의 알바니아에서 사는 일. 여기에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가 다시 한 번 우정 출연한다.
먼저 죽은 아내를 다시 살려내기 위하여 지하세계로 내려간 오르페오 이야기. 둘이 깨를 볶으면서 살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가 너무 금슬이 좋아 저 올림푸스에 사는 신들 기분이 조금 언짢을 정도였나 보다. 질투의 신이 이를 배 아파해서 뱀 한 마리한테 주문을 걸어 에우리디케의 발뒤꿈치를 칵 깨물게 시킨다. 당연히 에우리디케는 30분도 넘기지 못하고 하데스의 나라로 떨어지고 말았지. 슬픔에 겨운 오르페오는 온 종일 수금만 켜고 세상을 돌아다니니 온갖 짐승과 신들도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바람에, 좋아, 한 번 기회를 주지, 오르페오로 하여금 땅 아래로 내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올 수 있게 딱 한 번의 배려를 해준다.
오르페오가 그 깜깜한 지하세계로 어떻게 내려가? 그때 수금과 함께 가져간 것이 겨우살이. 겨우살이 가지 끝에서 빛이 반짝거렸다나, 뭐라나. 하여간 이때 오르페오의 전기를 읽은 서양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성탄절에 현관을 이 겨우살이로 장식을 하는 거란다. J.G 프레이저가 쓴 <황금가지>에 나오는 이야기.
하여간 지옥문까지 내려갔더니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짐승이 대가리 세 개 달린 개 케르베로스. 헤라클레스가 아닌 이상 케르베로스 뒷다리에 된장을 바를 힘이 있는 인간은 없는지라, 오르페오는 현명하게도 자기 주특기를 살려 수금을 연주해 깊은 잠에 들게 해놓고 드디어 하데스를 만나 여차저차하니 에우리디케를 내 놓으슈, 단판을 지었다. 그랬더니 이제 전형적인 그리스 신화에서의 신들의 장난을 시작한다.
좋다. 데리고 땅 위로 올라가라.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천 개가 조금 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너 오르페오는 뒤를 돌아 에우리디케를 쳐다보지 말아라. 만일 뒤돌아보면 네 아내는 다시 지하 세계로 거꾸로 떨어져 박힐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 아시지? 이제 결말. 계단 기어오르면서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오한테 “넌 나 안 보고 싶었니? 여기까지 쳐 내려와서 어떻게 네 마누라 얼굴 한 번을 바라보지 않는 거니?” 바가지 득득 긁는다. 아내의 바가지 반,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반. 그래서 기껏 다 올라가놓고 막바지에 이르러 오르페오가 고개를 휙, 돌리고,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목뼈, 경추가 비틀리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부로 똑 떨어진다는 얘기.
근데 내가 좋아하는 건 이탈리아의 소설가 체사레 파베세의 이야기.
에우리디케가 바가지를 팍팍 긁으니, 이것 참,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바가지를 계속 긁히며 살아? 에우리디케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다시 생명을 얻는다 해도 어차피 또 죽어야 할 텐데 죽을 때의 고통을 한 번 더 겪으라는 말이심?
오르페오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여기서 끝내자!”
하면서
<떠나지 못하는 여자>에 출연하는 에우리디케 정도의 여성은 작품의 부제 “린다 B를 위한 진혼곡”에서 이름을 밝힌 린다. 린다가 극작가이자 주인공인 루디안 스테파를 흠모하는 건 틀림없다. 처음에는 작가와 팬 수준 정도였다가, 점점 루디안의 여자가 되는데, 아니다. 작품의 스토리와 보조를 맞추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첫 장면. 주인공이자 화자 ‘나’ 루디안 스테파가 당 위원회의 소환 명령을 받아 출석하러 간다. 그가 생각하기를 아마도 공연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희곡 작품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또는 어린 연인 마제나와의 관계 때문 아닐까 싶다. 때는 1980년대, 40년이 넘게 통치한 알바니아의 독재자 앤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 땅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일이라도 정부가 모르는 게 없던 시절. 그래서 연인 마제나와 싸운 것도 영 께름칙하다. 모든 커플이 그렇듯이 도무지 말로 따져 마제나를 이길 수는 없고, 가뜩이나 급한 성질에 뭐라 표현을 하긴 해야겠어서 그냥 한 방 콱 쥐어박았으면 좋겠는데 차마 그럴 수 없어 일단 머리채를 휘어잡았다가, 이봐, 정신차려, 손찌검은 절대 안 돼, 하는 정언명령이 들리는지라, “넌 정신분열증 환자야! 아니면 스파이든지!”라고 한 것이 언짢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마제나가 경찰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루디안이 나한테 스파이라고 했어요, 고발을 하면, 이거, 농담하는 게 아니고 정말로 큰일 날 수도 있는 거다.
게다가 진짜 연인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여자 의사하고 비혼으로 살고 있었는데, 여자가 오스트리아 학회에서 수면기술, 의학용어로 하자면 마취기술 개선을 위한 워크샵에 참석하러 떠나는 걸 루디안이 극구 반대했다면 결혼까지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아, 이 의사가 다시는 책에 등장하지 않는 걸 보니, 아마도 오스트리아나 서유럽의 한 나라로 망명을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이런 여자 관계 때문 말고도 공연을 기다리는 희곡 속에 유령이 등장하는 것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스럽다. 알바니아는 엄연히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행해지는 자유국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심해질수록 인민들의 자유는 더욱 커진다는 진리를 세계에서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나라, 알바니아. 근데 이런 자유의 나라에서 감히 극중에 유령이 등장해? 유물론의 나라에서 말이지? 그런 같은 맥락에서 루디안, 너 혹시 신도 믿는 거 아냐? 이렇게 따지면 루디안이 비록 완벽하게 무신론자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변명할 마땅한 거리가 없을 수도 있다. 심문관이 우기면 말인데.
인민의 모든 행위를 알고 있는 정부가 불렀으니 분명 곱게 보내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잘 나가는 극작가거든.
이러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당 위원회.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저 까마득한 시절, 지금부터 4~50년 전 알바니아가 군주제였던 때 옛 왕실 측근 집안 출신의 아가씨가 자살을 해버렸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라의 유서 깊은 가문 아가씨가. 이 집안 모든 가족들은 오랜 세월 지방도시에서 유배중이다. 유배? 좀 센 단어구나. 소련에서의 유배와는 달리 그냥 한 지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정시키는 상태. 군인들 위수구역 이탈금지 정도로 생각하면 딱이다. 근데 자살한 젊은 아가씨의 책, 최근에 공연을 마친 루디안 스테파의 희곡 작품을 실은 책에, 공연을 했던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가지도 않았음에도 그 책에 작가 루디안의 자필 서명이 쓰여 있다.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고 쓴 헌사와 함께.
서명을 해 줄 수 있고 당연히 팬 미팅하면 습관적으로 해주는 헌사도 써줄 수 있건만, 문제는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는 글귀. 헌사를 읽어보면 누구나 루디안과 자살한 린다 B 사이에 공통의 “추억”이 개입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 당 위원회, 일종의 정보국에서는 옛 군주제 정권의 핵심 가문의 일원과 인기 극작가와의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봐야 마땅하다, 라고 당 위원회의 판사 등 당의 사람들은 주장한다.
어떻게 루디안의 책이 린다 B의 손에 들어갔을까? 린다가 루디안의 팬이라는 건 앞에 얘기했고, 그이 공연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은 린다는 고등학교 동창한테 연극도 보고, 책도 사서 사인까지 받아 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한 거다. 이 와중에 그 염병한 친구년이 루디안한테 접근해 안다리후리기를 걸어 자빠뜨렸으니 친구가 누군고 하니 지금껏 시간 날 때마다 함께 침대에 오르는 어린 미제나.
그러니까 미제나는 린다가 보기에 자신과 루디안 사이의 매개인이다. 당장은 아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떻게 말하게 되었으니, 미제나와 루디안 사이의 몸 접촉 모두를 이야기한 건 아니고, 키스했다, 정도. 린다와 미제나 둘 모두 레즈비언 성향이 1도 없지만 루디안의 입술이 닿은 미제나의 입술에 린다는 입을 맞춘다. 루디안이 린다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고 하니까 린다도 미제나의 단추를 풀고 가슴을 만져보고, 자기 단추를 풀어 미제나의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본다. 이런 방식으로 미제나를 통해 루디안과의 접촉을 상상해보는 거겠지.
린다는 미제나가 건강검진을 하러 갈 때 함께 따라가서 유방 촬영을 한다. 유방암이 걱정스러워서? 아니다. 유방암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으면 좋을 거 같아서. 그 정도 되어야 지방도시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해 루디안이 사는 수도 티라나로 갈 수 있으니까. 이런 린다 B가 죽었다. 자살해버렸다.
그러면 하데스가 통치하는 하계下界로 들어가버린 린다 B를 위하여 누군가가 수금을 켜면서 케르베도스를 잠재우며 땅 아래로 내려가야 하겠지? 이런 방식으로 지난 엔베르 호자 정권 시절의 알바니아를 비틀어버리는 이스마일 카다레. 근데 읽는 내내 의아했던 건, 카다레가 그리스 신화를 자주 가져다 쓰는 건 알겠는데,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는 조금 무리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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