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 - 블룸즈버리의 마모셋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메이 옮김 / 코라초프레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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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슬렁어슬렁 개가실을 걷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새 책이 신착도서 책상에 꽂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와 얼른 집어 들었다. 다른 건 하나도 안 보고 작가 이름만 탁, 봤다는 건데, 왜냐하면, 누네즈 책 읽고, 와따 이거 대낄이네, 감탄해본 적은 없어도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망친 책 역시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망쳐도 평타. 얼마나 안정된 작가이냐는 말이지.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미츠>를 검색해보니까, 출판사 코라초프레스가 처음 찍은 책이란다. 2026년 4월. 그래서 더 유감이다. 출판사가 처음 낸 책인데, 이왕이면 내 마음에 쏙 들어서 출판사도 좋아할 독후감을 쓰면 참 기분이 좋을 텐데 차마 그리할 수가 없다. 이건 누네즈 때문도 아니고, 출판사 때문도 아니고 더군다나 역자 메이 때문도 아니다. 불과 몇 주 전에 퓰리처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의 작품 <디 아워스>를 읽어서 그렇다.

  가뜩이나 작품과 삶이 노출될 대로 노출된 버지니아 울프가 1941년 3월 28일 아침에 외투 주머니 가득 무거운 돌을 잔뜩 집어넣고 3월 말이라 해도 여전히 차갑기만 한 우즈강 속으로 맨발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작품을, 불과 몇 주 전에 읽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던 거였다. 게다가 <미츠>에서도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랄 수 있는 언니 버네사의 젊은 맏아들이자 천하의 바람둥이인 ‘줄리언 벨’이, 1년 동안 중국 우한 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갔다 와서 또다시 스페인 내전에 자기 발로 갔다가 두 달만에 폭탄 파편에 맞아 죽을 것도 홍잉이 쓴 야~한 책 <영국 연인>을 통해 알고 있던 거고, 버지니아-레너드 부부, 언니 버네사-클라이브 벨 부부의 자유분방한 성생활, 혼인 중 버지니아와 비타 섹빌웨스트와의 동성애 등등 이미 거의 다 들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읽는 것이 그리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할 때나 떠올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이 더 이상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원래 영국 귀족 끄트머리 태생으로 어릴 때부터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힐 필요 없이 자란 버지니아 스티븐 양. 은수저를 입에 물고 머리 꼭대기에 허연 소기름을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최하 연 수입 5백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확보할 수 있었던 환경에서 자란 똑똑이 아가씨였다가, 유대인의 핏줄을 타고 났으니 귀족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주머니에 금화 떨어질 일 없는 부잣집 레너드 울프와 결혼해 자기 결정에 의하여 맨발로 우즈강으로 들어갈 때까지 전형적인 부르주아로 삶을 누린 사람.

  당연히 아무리 돈이 많고 신분이 높아도 행복하지 않다. 부르주아도 충분히 불행할 수 있고, 고독할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날마다 밤을 하얗게 새울 수도 있다. 아니다. “~할 수도 있다”가 아니라 정말로 “~한다.” 그러나 <미츠>의 시대적 상황이 1934년부터 39년까지. 간전기의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경에 쓰인 대로 어미 배 속에서 낙태되지 못한 것을 슬퍼할 정도로 살기 팍팍했던 시절에, 이 버지니아-레너드 울프 부부는 바버라-빅터 로스차일드 부부의 초청을 받아 케임브리지에 있는 로스차일드 저택으로 차를 몰아 행차한다. 여기서 남아메리카 원산인 암컷 유인원 한 마리를 처음 만나고, 원래 동물을 좋아했던 레너드의 눈에 들어왔다가, 몇 달 후에 로스차일드 부부의 해외여행 기간 동안에 암컷 유인원을 울프 부부가 맡아 키우기로 하는데, 이 유인원이 ‘미츠’라고 이름지은 마모셋이다.


마모셋


  잔디밭 건너편에서 발견한 잿빛의 조그만 생물. 얼마 전에 빅터 로스차일드가 런던의 중고품 가게를 지나다가 우연히 쇼 윈도우에서 발견해 아내 바버라의 생일선물로, 가게 주인이 사들인 가격의 열 배도 넘게 주고, 즉 달라는 대로 에누리 없이 다 주고 사온 생물체이다. 그러나 바버라는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전혀 관리를 안 했다. 결과 마모셋은 뼈 발육에 장애가 발생하는 구루병도 있는 거 같고, 윤기가 나지 않는 털은 거칠고 건조해 보였으며, 군데군데 상처가 아직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주로 쇠사슬을 걸었던 목 부근의 피부가 쓸려 있었고, 드문드문 털도 빠진 상태였다.

이렇게 1934년 7월 19일 밤의 첫 장면에서는 그저 울프 부부가 로스차일드 저택에 놀러가 미츠를 한 번 본 것으로 끝난다. 케임브리지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속에 앉은 버지니아. 이이는 생각한다.

  “그래도 로스차일드 부부에게는 부러워할 만한 것이 많았다. 부는 아니었다. 울프 부부는 부를 경멸했으니까. 그보다는 미래, 9월에 태어날 아기, 그들 앞에 펼쳐진 삶 전체였다. 한마디로, 젊음.”

  빅터 로스차일드 3세 남작이 레너드 울프보다 딱 서른 살 젊다. 그리고 이때, 1934년에 첫번째 아내 바버라는 임신중이었으니 로스차일드의 부 보다는 임신중인 것이 더 부러울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울프 부부는 결혼 때부터 딩크로 살기로 딱 합의를 했던 건데 그렇게 22년을 살아 이제 쉰두 살, 완경을 맞은 상태에 이제 와서 태어날 아기 타령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게다가 당대 세계 최고 부자였던 은행왕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를 부러워하지 않는 건 좋다 이거지. 근데 부를 경멸한다고? 유대인 족속이? 속으로는 아니겠지만 겉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 우리처럼 없는 집구석에서 사는 인간들은 백 년을 살아도 이렇게 딱 부러지게 말 못한다. 지들 스스로도 부르주아의 일원이니까, 집에 가면 침모, 식모, 찬모, 마당쇠, 집사 등등 하인, 하녀가 수두룩하고, 부부 가운데 한 명이 하인, 하녀에게 관대하면 다른 한 명은 혹독하게 살 수 있는 것들이나 자기 마음대로 글자로 쓰는 거다. 폼도 나고 뭐 그렇지.


  버지니아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내려온 영토와 혈통, 수 세기에 걸쳐 배양된 교양과 전통을 가진 자기네 집안 같은 귀족이 지금껏 사회 정의나 공동선을 위해 어떤 식으로 힘이 되었는 지는 말할 수 없었단다. (p.60) 그러나 (앞 인용에 바로 연결해 쓴 것처럼) 버지니아가 끝내 포기하지 못한 건, 푸른 피를 향한 찬미였다. 푸른 피? “내 몸에는 푸른 피가 흘러요.”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아니고, 각주에 쓰인 대로 옮기자면 “귀족의 고귀한 혈통을 말한다.”

  귀족이 1930년대에 국가와 민족과 국민과 세계평화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이바지하는 지는 모르고, 아마도 이바지는커녕 도움되는 일도 하나 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버지니아는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고귀한 혈통에 대한 자부심은 포기하지 못했고, 오히려 찬미했다. 내 말이 아니라 시그리드 누네즈가 쓴 것에 의하면.

  레너드 울프는 몰라도 버지니아는 확실히 귀족 출신의 부르주아 말석에는 앉는 부류. 그래도 빅터 로스차일드나 동성애인이자 깊은 우정도 나누고 있는 비타 섹빌웨스트 앞에서는 절대 돈 좀 있다고 입도 벙긋하지 못할 수준이다. 그래서 시그리드 누네즈는 쓴다.

  “울프 부부에게는 로스차일드 부부를 비롯해 화려한 생활을 하는 지인이 많았다. 한번은 버지니아가 비타의 시싱허스트성城에 갔다가 돌아와 ‘내가 중산층 출신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다.”

  이러면 앞에서 “울프 부부는 부를 경멸했다.”라고 쓴 건 백퍼 구라지? 글쎄 그렇다니까. 이 책이.


  시그리드 누네즈가 동물주의자인 건 아실 걸? <친구>에서 조금 냄새를 피우잖아. 이 책에서는 미츠라는 이름의 마모셋이 등장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약 4년간, 4년 조금 넘는 세월을 쓴 작품으로, 이 기간 동안 히틀러가 전쟁 위협을 하고, 영국은 히틀러를 달래기 위하여 협정을 맺어 체코 일부를 점령하게 내버려 둘 때까지인데 사실 나도 울프 부부가 정말 마모셋을 길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길렀나 보지 뭐. 그냥 믿자. 돈 안 든다.

  그래서 사실 미츠는 울프 부부의 애완동물일 뿐이고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네즈의 동물주의는 여전하다.

  울프 부부가 미츠를 데려오기 전에 핑카라는 늙은 개를 키웠다. 근데 부부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오는 날을 맞춰 죽어버렸다. 잘 묻어주고 이제 13개월 된 스패니얼 암컷 강아지 셸리를 입양했는데, 100페이지에 이 강아지를 보고 버지니아 울프가 하시는 말씀이,

  “대단히 고상한 외모”지만 “과연 지성이 있을까?”

  개한테 지성을 함양시키려면 ABC를 가르쳐야 하나, 미적분을 가르쳐야 하나? 성문기초영어 먼저? 아니면 공통수학의 정석이 먼저?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숭배할 만하지만, 나는 계급적 인간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별로 좋지 않아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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