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궤도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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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부커상 수상작.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와 엘튼 존의 <rocketman>은 좋아하긴 하지만 세 번째 들으려면 어쩐지 기운 빠지고 힘들어서 다 못 듣고 그후 오랫동안 안 듣게 되는 노래들이다. 이 소설의 우주비행사들은 이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삶이란 가까이에서 보먄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매우 동감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 보는 것은 비극으로 보기에는 멀고 희극으로 보기에는 가까운, 딱 그런 거리가 있을까 나는 거기에 있고 싶다.

지구 저궤도에서 지구 시간으로 24시간 동안 지구 주위를 16번 도는 우주정거장은 그런 거리일까? 누구나 자기자신과의 거리는 너무 가깝기에 자신의 인생은 언제나 심각한 비극일 수밖에 없는데 마음 속에 비극을 적어도 하나씩 품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멀리 떨어진들 그저 희극이기만 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보잘 것 없는 게 저렇게 빛날 수는 없어.
또는 우리 존재의 의미는 크지만 무의미하다.
그 모든 게 무의미하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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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바깥에서, 떨어져서 봐야 하는

이곳에서 보는 지구는 천국과도 같다. 빛깔이 흘러넘치는 곳. 희망찬 빛깔이 터져 나오는 곳. 지구에 있을 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행성이 아닌 다른 곳에 천국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에서 우주비행사들은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 이미 죽어서 사후 세계로 온 게 아닐까. 죽어서 가는 곳이 비현실적이고 믿기 힘든 세상이라면, 저 멀리 아름답고도 외로이 빛을 발하는 유리구슬 구체야말로 그런 곳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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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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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속도를 내어 부지런히 많이 읽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두 달 동안 열 몇 권을 읽었다. 하라 료의 사와사키 시리즈 전부, 챈들러의 필립 말로 첫 번째인 <빅 슬립>, 존 르 카레의 카를라 3부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오너러블 스쿨보이>, <스마일리의 사람들>, 종이책으로 프랑스 작가 장마리 드 라 로블레스의 브라질 소설(!)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 글리고 세 번째 읽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추돌스).

다 무언가를 써두고 싶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또 막막해서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의 아내처럼 마음 속의 상자에 그냥 넣고 뚜껑을 닫았다…

세 번째 읽는 추돌스가 여전히 가장 맘에 든다. 장편소설인데도 모든 문장이 딱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큼 맞춰져서 단 한 문장이라도 빠지면 덜한 소설이 될 것 같다. 마지막의 베를린 장벽은 또 먹먹하고. 또 스마일리가 이렇게 못된 작전을 짰다니 카를라릉 찾기 전부터 카를라 저리가라 아닌가 화가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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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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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김기태의 다른 소설들이 궁금해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는데 <일렉트릭 픽션>만큼 산뜻하지 않은 데다가 어쩐지 지루해서 후기가 ’재밌다’로 도배되다시피 해서 찍어놓았던 이 책을 읽었다.

첫 작품인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읽을 때만 해도 내가 다른 작가를 읽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김기태의 소설 중 아이돌 그룹이 주된 모티브가 되는 작품이 있어서 더 그랬다. 요즘 작가들은 쓰는 게 비슷한 건가 싶을 정도. 그런데 두 번째 <스무드>에서 그만 ’뻑 갔다’. 아니, 이런 걸, 이렇게, 쓴다고? 이어지는 <혼모노>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까지 거의 숨 쉬는 것도 잊고 읽었다.

오랜만에 쫀쫀하게 잘 짜인, 진짜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 일곱 편의 소설이 다루는 소재들이 각양각색인데 매우 시의적절하고 세태를 잘 드러내는 것들이다. 게다가 그 소재들을 얼마나 연구했을지 세부적인 것들이 ‘소설’같지 않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결말이다. 아무런 기대가 드러나지 않는, 마치 마침표가 없는 듯한 결말들. 반짝임은 사라지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물론 아니고.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을 때는 소설이 너무 시대와 세태에 딱 달라붙어서 오래 읽히려나 싶었는데 이 소설은 일단 재밌어서 아주 나중에라도 읽힐 것 같다. 묘하게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기가 꺼려진다. 실망할까 봐.

사족) 이상문학상 심사 개요에 서른 편의, 일종의 롱리스트 작품 목록이 있는데 이 작가의 작품은 한 편도 없다. 심사 어떻게 하신 건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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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예소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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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몇 년 전 저작권 문제로 다소 소란스러웠던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의 (간접적) 여파로 올해부터 주관사와 책의 출판사가 바뀌고 표지도 살짝 바뀌고 책을 사 보니 구성도 바뀌었다. 아무 문제가 없이 20년 전과 똑같은 출판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고 책으로 묶어 냈다고 해도 시간이 그만큼 흘렀으면 책의 모습이 좀 변하는 것도 당연한데 마치 어제 읽었던 책이 오늘 바뀐 걸 손에 든 듯한 느낌이 잠깐 들었다.

대상 수상작으로 맨 앞에 실린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을 읽으면서 아, 소설도 20년 전과 달라졌구나 싶었다. MZ 페미니스트 딸이 ‘85민주‘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을 뼈대로, MZ 페미니스트 세대가 ‘85민주‘ 세대를 평가하고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서 새로운 혁명의 방향을 보여준다. 시간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85민주‘ 세대와 훨씬 가까운 나의 세대도 이제 지나간 시절의 일부로 역사에 한 발을 담갔구나 싶은 것을 이 한 편의 소설에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어서 실려 있는 이 작품에 대한 평론은 ‘소설가는 변했을지 모르지만 평론가는 20년 전과 똑같구나‘ 싶었다. 머릿속을 이론으로 가득 채워놓고 작품을 이론에 맞추는 건지 이론을 작품에 맞추는 건지 자기 생각이란 게 있는 건지 평론이란 건 원래 그런 건지 문장은 왜 또 그렇게 형이상학적인 건지 어떤 문장은 몇 번을 읽어도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걸로 문해력 테스트를 하면 점수가 형편없겠는걸.

이어지는 우수상 수상작들은 충격이 덜 했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와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단편소설이라면 이런 것이다‘라는 나의 막연한 감에 잘 들어 맞아서 그럭저럭 편안하게 읽었다.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도 형식을 그러했으나 나에게는 영 껄끄러운 퀴어가 소재로 전면에 드러나 있어서 조금 불편했고(사족을 달자면,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나는 퀴어에 아무런 반감이 없다. 선악善惡의 문제가 아니라 호오好惡, 즉 취향의 문제이므로. 그리고 이 ‘취향‘의 차원에서 나는 퀴어가 불편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의 고민이 바로 나처럼 주장하는 사람 때문에 더 힘들고 복잡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음).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과 최민우의 <구아나>는 산뜻하다. <구아나>에 삽입된 가상의 단편 애니메이션 ‘구아나‘는 어쩐지 살면서 어떤 국면에서 꺼내볼 만한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유의 경구 뒤에 ‘구아나!‘라고 외치면 될 것 같다.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이 나는 가장 좋았다. ‘저도 일렉트릭 기타를 좋아합니다‘ 한 줄에 담긴, 소심한 우리들이 내주는 작은 마음의 연대. 작가와의 대담도 이 작가의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의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상은, 이 여섯 편 중에서라면 <그 개와 혁명>에게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대상‘ 씩이나 받으려면 어떤 튀는 특별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그 개와 혁명>에 있다.

다 읽고 난 후 ‘지금, 이 시대의 소설‘과 소설이 그리는 ‘이 시대‘에 대한 막연한 인상이 생겼다. 예전의,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상문학상 단편소설의 인물들은 어느 시대에도 있을 것 같은, 그러니까 20년쯤 후에 읽어도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지금 이 시대와 너무 딱 달라 붙어있다(문지혁과 정기현의 소설은 예외). 그래서 30년 후에 어떤 세상이 올지 모르지만 그때 읽으면 이 시대의 ‘세태기‘라는 감상뿐일지도 모르겠다. 바꿔 말하면 30년 후에는 이 소설집을 일종의 ‘역사서‘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지혁의 소설이 다루는 계급의 문제는 언제든 있어왔고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기(같기?) 때문에,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섬세한 감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역사서‘와는 결이 다르겠고.

아무튼 잘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또 다른 책을 이어서 읽고 싶게 하니까 좋은 책, 맞다.
앞으로도 이상문학상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찐 사족) 영어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소설이 절반이다. 이런 건 왜 마음에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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