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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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중독 무면허탐정 매튜 스커더의 <8백만 가지 죽는 방법>을 읽고 블로그에 짧은 글을 써둔 게 20년(!) 전이다. 그 책의 사건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해결되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매튜 스커더와 그를 알게 해준 작가 로렌스 블록을 잊어본 적은 없다. 두어 권 정도 매튜 스커더의 책을 더 사놓았는데, 오 그럼 20년이나 안 읽고 꽂힌 책의 책등만 므흣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는 건가?!

아무튼 이 책도 로렌스 블록의 책이라 갖고 있던 건데 6시 20분의 남자 때문에 허탈해 하면서 책장을 돌아보다가 그냥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엔 켈러에 반해버렸다. 알콜중독에 온갖 자기비하에 추레하게 찌든 탐정 매튜 스커더와는 정반대로, 성실하게 일하고 번 돈을 은퇴 이후를 생각하며 저축하고 일하지 않을 땐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소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정리된 삶을 사는 켈러. 그에게 뭔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성실하게 하는 일이 ‘청부살인’이라는 것. 그것도 그가 직접 의뢰인으로부터 청부를 받는 게 아니라 상사(!)가 의뢰를 받아 그에게 어디 가서 누구를 죽여라 지시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곳으로 ‘출장‘을 가서 ‘지시받은 일’을 완수할 뿐이다. 이런 일에는, 믈론 자신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나름 심사숙고해서 계획하고 일이 되게 하지만(흠 아무리 그래도 살인인데 이런 식으로 말하자니 약간 인지부조화 같은 걸 느끼게 되는데), 어떤 식으로든 복잡한 배경이나 음모나 치밀함은 없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기 주변의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데, 그런 일에 손을 빌려 주고 댓가를 받는그야말로 생계수단으로서의 킬러, 프로젝트마다 성공보수나 성과급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인 것만 같다.

그렇다고 켈러가 시이코패스인 건 아니다. ’일’이 없을 때 켈러는 -묘사란 것이 없이 건조하게 사실만 써내려간 듯한 문체 덕분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평온한 상태로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가장 맘에 든 건 ‘출장’가서 본격적으로 ‘일’을 실행하기 전에 주변을 정찰/관찰하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반지를 끼고 있는 웨이트리스를 보며 인근의 보석상에서 약혼자와 반지를 고르는 그녀를 상상한다든지, 마음에 드는 동네를 만나면 그곳에서 사는 자신을 상상한다든지. 그러다 거울의 자신을 보면서 말한다: 이제 그만 하지? 이거야 뭐 너무나도 잘 아는 모습.

강산이 변할 시간 동안 책장에 꽂혀있기만 했던 로렌스 블록의 다른 책도 이어서 읽을까 보다. 그런데 매튜 스커더를 좋아하긴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쉽게 읽어나가지 못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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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6시 20분의 남자 스토리콜렉터 10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허형은 옮김 / 북로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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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전체를 누구도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 집단‘이라는 게으른 전제 위에 필연적이라고 우기는 우연이 남발하는 엉성한 스릴러라고 하겠다. 정말 철두철미하게 돈 벌려고 쓴 소설이 이런 모양을 하고 있겠구나 나도 일조했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시리즈도 크게 좋아한 책은 없고 그냥 시간 때우기 좋으니까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꾸역꾸역 다 읽었는데(!) 이책은 아예 시간낭비 쪽이다. 내 편을 들 수가 없어!

그런데 2탄인 <경계에 선 남자>도 가지고 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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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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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에세이에다가 제목도 표지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알라딘이 계속 추천 리스트에 올리는 데도 흐응, 계속 남기고 있다가 오터레터의 글에서 전직 기자가 쓴 X세대의 이야기라고 아주 호의적으로 평한 것을 보고 나도 X세대인데 어디 한번, 하고 열었는데, 첫 문단이 ’도피하는 모든 이에게‘ 바쳐진 영화 <지중해>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인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그래서 급호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일단 글을 잘 쓴다. 나와 가치관이 비슷하고 어쩌면 취향도 비슷할 것 같다. 많은 것을 시작하고 그 중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려다 보니 금방 포기하는 일도 많다는 건 기질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빨강머리 앤의 말을 빌리면 동류, 혹은 같은 요셉-아니 아담이었나? 이삭? 나이가 드니 이런 중차대한 사실(!)도 헷갈리네 아무튼-을 아는 족속일지도. 작가가 책에서 드러낸 취향 중 난 아닌데 한 건 하드보일드. 작가는 싫어하고 나는 아주 좋아한다. 세부 사항을 다 생략 내지 걷어낸 것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하는데 나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 자신감 내지 자만심 내지 오만함이 좀 부럽거든.

그런데 좀 피곤하기도 하다. 의미를 찾고 없을 것 같으면 만들어서라도 부여하려는 삶에 대한 억척어린 태도, 늘 다큐를 찍으며 농담으로 넘어가려는 세상에 대해 정색을 하고, 툭하면 길거리를 울면서 쏘다니는 미친 여자가 되는 이가, 그걸 ’벌거벗듯‘ 솔직하게 드러내는 걸 읽으면서 뭐 이런 걸 보여주려고 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머릿속에 넣어두거나 나 말고 아무도 읽지 않을/못할 일기장에 쓰고, 울어도 골방에서 울 텐데. MBTI식으로 말하면 나는 이런 극F를 보면 싸늘하게 식어 극T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물론 극T다 싶은 인간 앞에선 극F적으로 신경질을 내겠지. 이건 중용이 아니고 극단적 스윙이니 그냥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인 것이다.

더 좋은, 나은 세상을 위해 인간다운 윤리적인 인간이 되려고 분투하는 삶이라. 나는 ‘타인이 있기에 윤리가 생긴다‘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접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살지만. 그래도 가장 밑바닥에는 어차피 죽는데, 나도 죽고 너도 죽고 50억 년이 지나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태양이 지구를 삼켜서 아무 것도 남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있다. 이런 바탕에서 나와 사람들을 보면 다 쓸쓸하고 약간 가엾고 조금 너그러워진다. 그러면 정말이지 힘줄 일이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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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네.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지 읽고 싶었던 글이 아니다. 읽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내가 -먼저- 썼어야 했는데 선수를 빼앗겨서, 라기보다 나라면, 내가 썼다면 기쁘게 미친 것처럼 쓰기만 하고 다 쓴 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을 것 같은 글이라서이다…

열정적 사익추구자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내 협애한 마음의 장벽. 물론 돈 좋다. 엄청 좋다. 그렇지만 가장 좋지는 않다. 돈이 가장 좋은 사람은 나랑 안 된다. 돈은 아무리 좋아봐야 두 번째로 좋아야 하는 것이다. 당장 생존을 도모할 방도가 없을 때가 아니고서야 돈이 가장 좋을 수는 없다.
겸허하게 인정한다. 내게는 윤리적 허영이 있다. 그걸 인정할 만큼은 내가 양심적이다. 윤리도 욕망이고, 그 욕망이 때로는 물욕이나 출세욕, 성욕보다도 강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궁핍한 마음의 소산이며, 그저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과 의류로 몸을 두르고 싶은 욕망과 근원적으로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녕 올바른 사람이고 싶은 것이라고 스스로는 믿고 있지만, 그것을 자꾸 현시하려는 나의 욕망은 나조차도 진의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어쨌든 윤리도 욕망이다. 욕망과 윤리는 상호 대립항으로 이해되지만, 윤리 혹은 윤리적 허영이 욕망의 사다리 제일 꼭대기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욕망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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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혼 씨의 가족은 그의 전처의 친척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혼에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 그 문제를 누구의 경우처럼 엄격히 따진다면, 아내가 네 명이었고, 그중 두 여인은 별거수당을 받고 있는 아인혼의 아버지, 즉 늙은 시 위원이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 솔 벨로, 이태동 역, <오기 마치의 모험 1>, 펭귄클래식. p 108.

*위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 분? ‘~여인은 ~아버지여서는 안 될 것이었다’라니?? 윌리엄 아인혼은 시 위원의 아들이다. 그리고 읽다 보니 아내가 네 명인 사람은, 즉 맨 처음 ’그‘라고 지칭된 인물은 시 위원인 아인혼-아들도 아버지도 성은 아인혼이고 시 위원인 아버지의 이름은 나오지 않음-인 것 같은데. 아버지 아인혼과 아들 아인혼이 구별이 되지 않고, 대명사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도 헷갈리게 써놓고, 앞 페이지에서는 건장하다고 묘사된 사람이 다음 페이지에선 팔다리에 힘이 없다-사지마비니까. 그런데 사지마비인 사람이 건장하다는 게 가능한가? 움직일 수 없으면 근육이 줄어들어 어떻게 봐도 ‘건장’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고 하고. 아니 무슨 하버드 스탠퍼드 듀크에서 연구교수 경력에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30년 이상 재직하셨다는 분이 이런 말이 안 되는 문장을? 편집자의 게으름인가?

… 내 문해력을 걱정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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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2-23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덮으셔요. 이태동 씨가 잠깐 헷가닥 했을 때 번역을 했는지, 자기 조교들 시켜서 작업을 했는지, 조교들이 한 걸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 그냥 출판사에 가져다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출판사 편집부 사람들도 낮술 거하게 때리고 교정 보았을 겁니다. 저도 이 책 아주 곤혹스럽게 읽었습니다.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태동이 번역한 벨로의 다른 작품 <허조그>는 또 괜찮습니다. 이래서 교수나 소설가가 번역한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meesum 2026-02-23 14:53   좋아요 0 | URL
헉 ㅠㅠㅠ 이 책이랑 훔볼트의 선물까지 읽어보려고 했는데 ㅠㅠㅠ

Falstaff 2026-02-23 14:58   좋아요 1 | URL
이 책만 그렇습니다.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

meesum 2026-02-24 09:18   좋아요 0 | URL
책에 대한 Falstaff 님의 보험이군요! 믿고 드는 든든한 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