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 알베르토 모라비아 Alberto Moravia 시리즈 1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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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들의 높은 평가가 아니더라도 ‘경멸’이란 제목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했을 것이다. 격렬하면서도 매력적인 단어 아닌가, 경멸.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베니스 출신 유대인 건축가의 아들로 로마에서 태어나 병약한 청소년시기를 보내고 주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30대를 지내는데, 이 때 영화 <율리시스>의 제작에 함께 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경멸>이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을 경험담이라고는 할 수 없고, <율리시스>를 만들면서 친구이자 소설가, 영화감독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율리시스>의 감독이자 스스로도 대본작가였던 마리오 카메리니와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토론했던 걸 자료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에밀리아와 리카르도 몰티니는 결혼하고 2년 동안 완벽한 신혼시절을 보낸 젊은 부부. 리카르도가 작품의 화자 ‘나’다. 리카르도는 극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맹렬한 습작의 시기를 보내면서 신문사에 영화평론을 쓰거나 다른 잡문을 기고해 쥐꼬리만 한 원고료를 벌어 생활을 해왔다. 그러니 좁은 원룸에서 얼마나 춥고 배고팠겠는가. 로마라서 그렇게 춥지는 않았을 거라고? 눈 밝은 독자들아, 그냥 좀 넘어가자. 하여튼 이들은 가끔 비누나 화장지 같은 생필품을 살 푼돈이 부족할 지경을 당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사랑으로 역경을 이겨나가며 힘든지도 모르고 산 세월이었다. 나도 비슷한 신혼을 지내봐서 이해한다, 이해해.
  그런데 리카르도가 보기에 착한 아내 에밀리아는 유난히 집에 대해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 가난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중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공부를 작파한 채 돈을 벌기 위해 타이피스트로 일했던 에밀리아는 유독 집 없는 설움을 많이 탔다. 그래 ‘나’ 리카르도는 아파트를 분양받기로 결정을 하고 2년 동안 모아둔 돈과 대출을 받아 에밀리아 이름으로 계약으로 해 첫 중도금을 지불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곧바로 두 번째 중도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하는 고민으로 눈꺼풀 아래가 거멓게 변해버렸다. 바로 이때 등장한 인물, 영화 제작자 바티스타의 의뢰로 시나리오를 집필하게 되고 생활이 좋아져 두 번째 중도금은 물론이고 소형이기는 하지만 마이카의 꿈도 이루게 된다.
  그래 바티스타가 ‘나’와 에밀리아를 초대하여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2차로 자기 집에 가서 술 한 잔씩 하자고 제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직 자동차를 사기 전이라) 2인승 비싼 스포츠카로 자기가 먼저 에밀리아와 함께 가 있을 테니까 ‘나’는 택시를 타고 쫓아오라고 제안한다. 맨살이 드러나는 단 한 벌뿐인 검정 드레스를 입은 에밀리아는 불안이 깃들고 몹시 불편해 보였으나 ‘나’는 바티스타의 제의를 거절하지 못해 그의 뜻대로 하게 하는 일이 생긴다. 어쨌든 이리하여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부부는 아직 완공하지 않은 자기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먼지 쌓인 벽돌 바닥에서 어느 때보다 폭풍같이 격렬하고 기묘한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얼마 후, 바티스타는 ‘나’에게 독일에서 온 유명 영화감독인 레인골드(Rheingold: ‘라인의 황금’이란 뜻의 ‘라인골트’를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한 것일 듯)를 소개하고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를 영화화할 예정이니 레인골드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라고 일을 준다. 계약서와 즉각 선수금까지 건네주면서. 그러면서 아내 에밀리아와 함께, 작가 모라비아 스스로가 탄압을 피해 1940년대 초를 견뎌냈던, 카프리 섬에 있는 자기 별장에 가서 시나리오 작업을 할 것을 제의하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수긍해버린다. 일단 피렌체까지 가는 도중에도 바티스타는 에밀리아와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에밀리아는 이번에도 매우 불편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호소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바티스타의 뜻에 따르게 된다.
  이 과정에 ‘나’ 리카르도와 에밀리아 사이에는 지난 2년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간극이 생겨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져 있음을 확인한다. ‘나’는 에밀리아의 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극작가로의 꿈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한편, 에밀리아는 ‘나’의 집에 대한 욕구 때문에 시나리오 작품을 쓰게 되고 이 와중에 자신에게도 마땅하지 못한 일을 시킨다고 생각한다.
  오직 자기중심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멍청한 ‘나’ 리카르도는, 독자들이 벌써 알고 있는 이유 때문에 아내 에밀리아로부터, “나는 너를 경멸해.”라는 더 이상 모욕적일 수 없는 말을 얻어 처먹고 만다. 이 책이 320쪽까지인데, 리카르도는 그걸 285쪽에 와서야 거의 이거 아닐까 짐작을 할 정도니까, 둘 가운데 하나다. 리카르도가 저능아든지, 모든 일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소시오패스든지.
  여기에 책의 중간 부분인 12장부터 등장하는 레인골드의 별 색다르지 않은 <오디세우스>의 현대적 해석을 가져와 율리시스-페넬로페의 관계를 지식인-평범한 여인, 아내를 사랑한 남자-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 등으로 대척점에 있는 부부관계를 설정하면, 이걸 리카르도는 ‘나’-에밀리아의 관계에 대입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또 당연히 레인골드의 해석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진행한다. 근데, 말은 똑바로 하랬다고, 도대체 이게 뭐가 중헌디?

 

  재미없는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중요한 주제는 왜 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걸 넘어 경멸한다고까지 말한 정도가 되었을까 하는 것. 그걸 다 큰 사내새끼가, 얼마나 징징대는지, 아이고 징그러워라. 남자는, 공부하고 글 쓰는 거 말고, 적어도 인간관계 특히 부부 심리학에 관해서는 백치에다가, 여자는 남편한테 찍소리 한 마디 안 하다가 문제가 곪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가서야 그냥 뻥, 터뜨리고 마는 남성 의존형 인간이다. 왜 진즉에 하루 날 잡아 너, 이리 좀 와봐. 해놓고 따따부따 하지 못해 이 사달을 만드느냐고. ‘나’, 리카르도는 결국 아내 에밀리아가 왜 자기를 경멸하는지 알았다가 다시 자신의 뜻대로, 자기 편한 쪽으로 해석한 채 결말을 맺게 된다.
  그리고 리카르도의 심성보다 더 역겨운 마지막 장면. 어떤 씬인지 치명적 스포일이라 얘기는 못하겠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학적 해결 방법으로 싸놓은 거 닦았다는 말만.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 내가 알던 그 사람 맞나? 맞다. 읽기 전부터 알았다.
  ㄷㄹㅂ 님은 읽지 마시기를. 혈압 터져 일찍 먼 길 가시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내가 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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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9 09: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폴스타프 님 주구장창 징징대는 커플 *경멸* ㅋㅋㅋㅋ ㄷㄹㅂ 님 읽게 해보고 싶네요. ㅋㅋㅋㅋ

아, 뭐예요 마지막에 자살(죽음)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Falstaff 2021-07-19 09:34   좋아요 2 | URL
읽으셨남요?
글쎄 이 책이 워낙 좋은 독자평을 즐기고 있어서 돈과 시간을 들여 읽지 마시라는 말씀은 못 하겠고, 거 참.
하여튼 이런 내용은 제가 제일 경멸하는 플롯입니다! ㄷㄹㅂ 님은 정말 읽으시면 안 됩니다. 부들부들...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19 09:54   좋아요 2 | URL
아니요, 저는 안 읽었습니다. ㅎㅎㅎ 안 읽을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21-07-22 21:39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가학적 성향이 있으신 겁니까?! 😱

잠자냥 2021-07-22 22:09   좋아요 0 | URL
다부장님 제가 좀….?! 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7-19 1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스타일이 좋던데 역시 폴스타프님은 화끈하신거 같아요 😎

Falstaff 2021-07-19 10:44   좋아요 3 | URL
아오, 전 내내 지겹게 읽다가,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 때문에 완전 빡쳤습니다.
근데 너그럽게 생각하니 아예 처음부터 영화를 위한 소설로 쓴 거 같아서 그나마 별점 하나를 더 보태준 겁니다.

결국은 어떤 작품이든지 재미나게 공감하며 읽은 사람이 제일 좋은 겁니다. 어차피 취미생활일 뿐인걸요. ㅋㅋㅋ

독서괭 2021-07-19 1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지 말라고 하시는데 읽고 싶어지는 이 리뷰 뭐죠? ㅋㅋㅋ ㄷㄹㅂ님의 반응도 궁금해요 ㅋㅋ

Falstaff 2021-07-19 10:50   좋아요 2 | URL
흑흑흑... ㄷㄹㅂ 님만 읽지 마시라 했어요.
다른 독자들 리뷰가 워낙 좋은 거에 쫄아서 마음과 달리 읽지 말라는 말은 차마 못했답니다.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7-20 0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 올해 제가 읽은 책 중에서 찌질남 1위에 등극한 남자 주인공입니다.
모라비아는 혹시 이 책의 주인공에 당대 이탈리아의 지식인의 모습을 대입한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진짜 센세이셔널 했을것 같기도 하더라구요. 이게 우리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면서 항의가 빗발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얘기는 없더군요. 그냥 사랑얘기로 본다면 저도 비추천입니다.

Falstaff 2021-07-20 08:42   좋아요 1 | URL
ㅎㅎㅎ 반갑습니다!!!
둘 다 답답한 젊은 부부입니다만 남자 쪽이 더 찌질해서 읽는 내내 고구마도 아니고 급성 변비 걸릴 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7-22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으면서 수천번 쌍욕할 것 같긴 하지만 어쩐지 읽고 대차게 까는 리뷰를 쓰고 싶기도 하네요 ㅋㅋ
그나저나 줄거리는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은밀한 유혹> 생각나게 하네요. 그 영화도 뭥믜 스러웠는데.. 사람들 왜 죄다 그렇게 바보같은 선택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개그우먼 김신영이 꽁트 하면서 했던 대사인데,
“너도 바보 선배도 바보 다 바보다!”
생각나네요. 아 속터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23 08:5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여러가지로 안 읽으시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한여름 삼복 더위엔 더욱 그렇습지요. 절대 속 안 터지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24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 다 짜증 답답했지만 저는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
그래 너 이리와봐라. 따따부따! 이걸 왜 못하는지 그게 참 답답해서요...ㅋㅋ

Falstaff 2021-07-24 21:02   좋아요 1 | URL
특히 서재 동무님들께서 좋다고 하신 책을 이렇게 후지게 이야기하는 데에는 조금쯤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아마 이해하실 듯. ㅋㅋㅋㅋㅋ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요.
그나마 타협하느라 별점 하나 정도는 더 올라갔을까요? ㅎㅎㅎ 저도 몰겄습니다.
 
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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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 소설의 교과서.
  이렇게 말해도 좋다. 추리 소설을 한마디로 하면 “작가가 독자에게 도전하는 진검승부”다.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곳곳에 다 마련해둔다. 독자는 책을 읽어가며 작가가 숨겨놓은 힌트(흔히 이걸 복선이라고 한다)를 찾기도 하고 못 찾기도 하면서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을 내린다. 내 경우엔 마치 보물찾기처럼 예상하지 못한 곳에 숨은 힌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기 때문에 추리 소설을 읽는 시간이 다른 장르보다 훨씬 많이 걸린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는 자기가 기대했던 결론과는 다른 결말을 원한다. 추리소설의 독자는 애초에 약간의 피학적 기질이 있는 법이라서. 이때 독자가 원하는 ‘다른 결말’은, 애초 자신이 기대했던 바를 능가해야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앞에 나열했던 힌트와 어긋나게 결말을 초래한다면 실망을 할 수밖에.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는 결말 부분에서 내게 두 번 무릎을 치게 했다. 거의 완벽하게 숨은 복선을 다 찾았다고 자신하면서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기대했다가, 연달아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이게 추리 소설을 읽는 기쁨이다. 그래서 나는 <레베카>를 추리 소설의 교과서라고 상찬하는 것이다.

 

  <레베카>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 스위스쯤으로 보이는, 스위스라고 생각하는 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으나 그건 다음으로 하고, 영국 땅을 벗어난 장소에서 스물한 살 시절 신혼의 여름을 보냈던 맨덜리 저택에 관해 꾼 꿈 이야기. 프롤로그다. ‘나’가 아닌 ‘우리’는 스스로 유배 생활을 선택해 살면서 영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이면 날마다 배달되어 오는 영국신문을 탐독하며 살고 있다. ‘나’의 꿈속에서 맨덜리 저택은 굳게 닫힌 철문과 황폐해 잡목과 잡초에 굴복해 과거의 영광을 다 잃은 모습이다. 우리, 나와 그는 그곳에서 신혼의 백일 남짓을 지내며 불의 시련을 겪어낸 셈으로 그동안 공포와 고독, 좌절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왜 그들이 맨덜리 장원을 떠나 이국에 머물게 되는지, 오랜 시간 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던 맨덜리 저택에서 있었던 불과 공포와 고독과 좌절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두 번째 부분은,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한 ‘나’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인 벤호퍼 부인에게 동반자 역할을 해주는 대가로 연간 90파운드의 임금을 받는 피고용인 신분으로 부인을 따라 몬테카를로에 와서 영국의 거대한 맨덜리 장원의 소유자인 맥시밀리언 드윈터 씨를 만나 결혼하는 내용, 드윈터(de Winter) 씨는 일 년 전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사건이 생겨 그때까지의 기억을 다 잊고 싶어 하는 인물로, 몬테카를로에 온 것도 기억을 지우기 위한 일이었다고 한다. 일 년 전의 사건이라고 함은,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아내 레베카가 자신의 보트를 타고 한밤에 바다로 나갔다가 침몰해 죽은 일이었다.

 

  마지막은 6백 쪽 가운데 4백 쪽 분량으로 이탈리아에서의 신혼여행을 끝내고 맨덜리 저택으로 돌아온 ‘나’가 경험하는 4개월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야 사실상 맨덜리 저택의 지배자이자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레베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레베카는 (종종 그랬듯이) 밤에 혼자 보트를 타다가 전복사고가 일어나 바다에 빠져 행방불명 된다. 두 달 후 시신은 영지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에지컴 해변에서 발견했는데 근해에 많이 돌출된 암초에 부딪혀 찢기고 수생생물에 훼손당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남편 드윈터 씨가 직접 신원을 확인해 영지 교회의 지하에 안장한 상태다.
  여기서 독자는 정당한 의문을 품는다. 바다에 빠진 시신을 두 달 후에 발견했다니. 시신이 훼손되어 알아볼 수도 없었을 터인데 유전자 감식이 없던 시절, 어떻게 신원을 밝혔을까. 나는 믿었다. 레베카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죽었다고 알려진 후 약 1년 반도 안 된 시점에 레베카는 영국 또는 외국의 모처에서 아직도 여전히 맨덜리 저택을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드윈터 가문에 의하여 어느 음침하고 은밀한 곳에 유폐되어 있을 수도 있고. 독자의 머리는 갈수록 미로를 헤맨다.

 

  저택과 장원의 모든 종사자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결코 스물한 살 먹은 새 드윈터 부인의 의견을 참고하려 하지 않는다. 집안의 모든 일에 관해 그들이 하는 말이라고는, “돌아가신 드윈터 부인께서는 …… 하셨습니다.” 일 뿐. 영지 소유자인 맥심이 태어나기 전부터 저택에서 일해온 집사 프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 죽은 레베카를 가장 숭배하는 건 레베카가 결혼해 저택에 들어올 때 함께 와 일을 시작한 댄버스 부인. 사람들은 뛰어난 솜씨로 거대한 집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댄버스 부인을 “참 대단한 사람, 다만 기름칠이 안 되어 뻣뻣하다는 게 문제”로 볼 정도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지만 과거에 함몰되어 누구라도 레베카의 자리, 드윈터 부인의 지위를 대신할 수 없다는 맹목을 가지고 있으니 ‘나’와는 처음부터 사이가 좋기를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맨덜리 저택이 책에 등장하고 상당 부분 나는, 겨우 스물한 살 먹은 화자 ‘나’가 마흔두 살의 남편 맥심 드윈터에게 하는 역할은, 저택의 코커스패니얼종의 개 재스퍼가 ‘나’에게 주는 위안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생각, ‘나’가 당연한 권리로 해고하거나 징계할 수 있는 시녀장 댄버스 부인이 시시때때로, “특히” 무도회에서 자신을 크게 물 먹인 일을 인내하고 있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는 하도 답답해서, 이런 작품이 어떻게 듀 모리에의 대표작이랄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심지어 지루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나’의 한심한 행동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야기는 ‘나’에게 큰 수모를 안긴 무도회 다음날, 드윈터 영지에 독일 함부르크 상선이 좌초하면서 큰 변곡을 만나 이른바 소용돌이를 이루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어려서 레베카와 함께 자란 사촌 잭 파벨까지 등장해 결정적인 반전을 준비하는데, 파벨이 내가 기대했던 결말에서 한 번 더 도약한 결론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도약 결론’을 읽고, 대부분의 독자가 그렇겠지만, 나는 추리 소설 작가가 내는 수수께끼를 너무 도식적으로, 상투적으로 해석해오지 않았나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서두에 말했듯이 작가는 독자에게 줄 수 있는 모든 힌트는 다 보여준다. 독자가 추리 소설을 ‘즐기고 싶다면’ 드러나는 힌트를 최대한 ‘다양하게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독자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다.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독자는 작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반전이라는 상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나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이 예상 밖 결론, 천재 악녀 레베카의 기상천외한 조롱을 읽고, 자빠졌다.
  세상에 이런 작가가 있고, 이런 뒤집기를 감행하는 레베카가 있다니.

 

  <레베카>는 명품이고, 추리 소설의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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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16 09: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리뷰를 읽고 레베카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책은 충분히 재독할 가치가 있으니까요. 아하하하하하하.
저는 레베카 읽고서 와, 이게 바로 소설이지 이게 바로 소설이야! 했었어요. 사실 초반에 화자가 등장할 때 뭐랄까..약간.. 어쩌라는건가..의 마인드로 읽었었거든요. 저 역시 읽다가 뒤통수 맞았었습니다. 크-

Falstaff 2021-07-16 09:20   좋아요 3 | URL
그러니까 독후감을 좀 괜찮게 썼다는 말씀이지요? ㅋㅎㅎㅎㅎㅎ
진짜 재미있는 추리소설입니다. 이 장르가 말이 쉽지 제대로 쓰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와, 정말 오랜만에 읽은 대박 추리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거의 다락방 님의 강권 비슷한 추천으로 골랐다고 하더라고요. ㅋㅋㅋ

잠자냥 2021-07-16 09:59   좋아요 3 | URL
우리 주정뱅이 폴스타프 님 그 전에 <브라이턴 록> 읽으셔서 이 작품이 더 좋았던 게 아닐깝쇼?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16 10:02   좋아요 2 | URL
아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상대적으로 기대치가 낮아져서 더 빠져버렸나? ㅎㅎㅎㅎ

잠자냥 2021-07-16 10: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마지막에 레베카의 그 광기어린 조롱! 카타르시스 대박입니다. 아, 악녀(?)인데도 너무나 멋진 베카언니! 꺄오~~~~

Falstaff 2021-07-16 10:18   좋아요 4 | URL
아이고, 저도 드윈터와 함께 거품 물고 자빠졌다니까요!
진짜 대박입니다. 세상에나....
실생활에선 베카 언냐하고 (격이 딸려서) 함께 못 사는 게 행복이란 걸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16 13:55   좋아요 4 | URL
아 저 이 책 읽었는데...마지막 레베카 그 광기어린 조롱이 뭔지 모르겠어요. 아 궁금해서 도서관 들렸다 가야겠습니다.

Falstaff 2021-07-16 14:09   좋아요 4 | URL
쿨캣님 / 그거 있잖아요. 아, 입이 근질근질해서 참...

다락방 2021-07-16 17:16   좋아요 4 | URL
쿨캣님 저도 광기어린 조롱이 뭐였지? 싶어서 다시 읽어야겠어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16 20:05   좋아요 4 | URL
도서관가서 후반부 읽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ㅋㅋ
ㅋㅋ 그걸 광기조롱이라 하신거군요! 아 후련해요. 다락방님도 얼른 읽어보셔요. 아마 아시는 내용일텐데 단어 연결이 안되는걸거에요~😚

Falstaff 2021-07-16 20:53   좋아요 3 | URL
아, 우리의 쿨캣 님은 드디어 주화입마에 빠지셨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금요일이잖아요. 근데 금욜 오후에 하고 많는 좋은 데 다 놔두고 도서관 가서 ‘광기어린 조소‘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여러부우우운!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16 22:02   좋아요 3 | URL
책이 어찌나 너덜너덜 하던지요 ㅋㅋㅋㅋ 4년전 읽은 책이라 다시 읽으니 또 새롭더라구요~~주말 즐겁게 보내시고, 술도 맛나게 드세요~^^

독서괭 2021-07-16 13: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레베카>를 뮤지컬로 먼저 접했는데요. 원작소설도 재미있더라구요. 뮤지컬이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습니다. 아 뮤지컬 보러 가고 싶다..(뜬금)

Falstaff 2021-07-16 13:34   좋아요 2 | URL
근데요, 옥주현이 레베카가 아니라면서요? ㅋㅋㅋㅋㅋ (농담입니다.)

전 뮤지컬 못봤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관크 박멸운동도 마땅하지 않고요. 어느 날 갑자기 관객 엄숙주의가 몰아쳐 공연 보는 데 정나미가 좀 떨어졌습니다. -_-;;

coolcat329 2021-07-16 13: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별5 참 재밌게 읽었지만 이렇게 극찬을 하시니 당황스럽네요 ㅋ 다시 읽어야하나... 싶어요. 위에 다락방님처럼요...ㅋ

Falstaff 2021-07-16 14:10   좋아요 5 | URL
그래서 이런 추리소설, 그리고 스포일 극단혐 작품의 경우엔 따로 다 읽은 사람들의 이야기방이 있어야 한다니까요!!! ㅋㅋ

새파랑 2021-07-16 15: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로써 레베카 vs 레이첼의 대결은 레베카가 이긴 거네요~!!

Falstaff 2021-07-16 15:56   좋아요 4 | URL
옙. 제 경기장에선 베카 언냐가 1승.
하지만 다락방님의 링에선 이첼 언냐가 1승.
아직까지는 1:1 동점입니다. 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7-16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방학에 읽을 책을 더이상 늘리면 안되는데! 명품, 교과서란 말에 혹하지 않을 수가 없네용!!

Falstaff 2021-07-16 20:4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결론은 제가 책임지지 않는 거, 잘 아시지요?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7-19 0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읽었어요!!!! 아, 정말 재미있어요!!!

Falstaff 2021-07-19 08:5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런 댓글이 참 좋습니다. 기분도 좋고, 어깨도 으쓱으쓱하고요. ㅋㅋㅋ
 
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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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엄 그린이 쓴 책이라면 내용과 관계없이 일단 주목을 끈다. 더구나 이 책은 먼저 읽은 독자들의 호응이 잇달아 저절로 큰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그래 <브라이턴 록>이 내가 읽은 최고의 그린이었던 <권력과 영광>을 어쩌면 능가할지도 모른다, 라는 이스트를 살포하게 했을 수도 있다. 물론 <권력과 영광>도 오래 전에 읽어 스토리마저 가물가물한 터라 정확한 비교라고 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대가 컸던 만큼 지금의 실망 역시 설악산 울산바위 만하다.
  작품은 전형적인 탐정소설이다. 그러나 책을 소개하는 모든 사이트에서, 탐정소설의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악의 본성을 탐구했다거나, 가톨릭 교리와 신앙에 대한 물음을 담아낸 종교문학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애초에 종교적 소양이 없는 나는, 주인공인줄 알았던 찰스 “헤일은 브라이턴에 온 지 세 시간도 안 되어서 그들이 자기를 죽일 생각이란 것을 알았다.”라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종교는 개뿔, 작정하고 범죄, 스릴러 소설로 읽기로 작정을 해버렸다.
  이 헤일이라는 작자는, 1부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어린 시절에 길모퉁이의 신문판매원에서 시작해 판매부수 1만 부의 조그만 지방 신문사에서 주급 30실링을 받는 기자를 했다가, 셰필드에서 5년을 보낸 후 급여가 좋은 메신저 신문사에 입사해 오늘에 이른 사람이다. 메신저 사는 ‘콜리 키버’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1면에 키버의 사진을 실은 후, 키버가 어느 고장에 나타날 것임을 알려준다. 콜리 키버는 진짜로 해당 지역을 돌아다니며 메신저 사의 카드를 숨겨두는데, 카드를 찾은 사람에게 신문사는 10실링을 지불하는 일종의 보물찾기 게임과 유사하다. 근데 손에 메신저 신문을 한 부 들고 키버에게 “당신은 콜리 키버 씨입니다. 나는 일간 메신저 상을 요구합니다.”라고 말하면 매우 큰 상금을 받을 수도 있는 영업전략. 사건이 벌어질 당시의 콜리 키버로 분장하고 다니는 인물이 바로 찰스 헤일이고, 그가 카드를 뿌려야 하는 곳이 브라이턴, 요즘 교통수단으로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영국 굴지의 해안 휴양도시다.
  그런데 분량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1부가 끝나기도 전에 글쎄 이 찰스 헤일 씨가 살해당하고 만다. 엉뚱하게 사인은 심장 질환에 의한 자연사. 나중에 밝혀지는 진실은 붉은 색과 하얀 색이 마치 이발소 표시, 꽈배기처럼 돌돌 말린 ‘브라이턴 록’이란 이름의 막대사탕을 억지로 목에 쑤셔 넣어 질식사 시키려 하다가 기가 막힌 피해자의 심장이 먼저 오작동을 일으켜 사망에 이른 살인사건이다. 일과 중 빈 시간에 술집에서 헤일 씨를 ‘프레드’라고 호칭하는 한 열일곱 살이나 먹었을까 싶은 소년이 등장해 아는 척을 하기에 카드와 신문을 주고 10실링이 아니라 10기니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제의했지만 소년은 이를 거절한 후 빈 잔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트리고 술집에서 나가는 순간 ‘그들이’ 자기를 죽일 생각이란 것을 깨닫는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건 행위가 아니라 ‘17세 소년’이었다. 물론 책을 읽을 당시엔 10대 나이라는 장벽에 가려 그냥 ‘행인 1’ 정도의 등장인물인 줄 알았다.
  조금 후 거리를 지날 때 행상이 여러 물건을 사라고 하는 좌판 안에 면도날이 들어 있는 것을 본 헤일 씨는, 얇은 상처와 예리한 고통을 떠올리고, ‘카이트’가 죽은 것이 그런 식이었다는데, 이것 역시 간략하게 딱 한 줄로 처리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처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이 실제적으로 등장한 일이니 독자 입장에선 일단 기억을 해두는 수밖에 없다.

 

  이어 등장하는 ‘릴리’라 불리는 여자. 나중에 거리에서 헤일을 다시 만나 진짜 이름이 아이다 아널드라고 알려준다. 아이다는 헤일 씨와 택시를 타고 펠리스 잔교 쪽으로 달리면서 뒷자리에 앉아 초면에 진한 키스를 열심히 나눈다. 헤일은 눈치도 채지 못했지만, 택시를 뒤따르는 25년형 모리스 자동차를 헤일이 눈여겨보고 있는 걸, 아이다는 그 와중에도 알고 있었다. 아이다 아널드가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며 맡은 배역이 아마추어 탐정인 것은 헤일 씨가 영원히 알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운명이긴 하지만. 잔교 입구 보도에 내린 커플. 진하게 키스를 하는 바람에 엉망이 된 얼굴을 고치러 유료화장실에 들른 아이다가 6분을 쓰고 화장실에서 나와 헤일 씨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시간이 13:30. 아이다는 헤일의 메모 한 장을 얻는다. 브라이턴 4시 경주, 블랙보이. 유명한 브라이턴 경마에 블랙보이한테 걸라는 뜻이다. 아이다는 정말로 경주에 블랙보이에 많은 돈을 걸어 열 배의 배당을 받는데, 이건 아이다에게 아무 소득도 없이 많은 돈을 펑펑 써가며 헤일 씨 사망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리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조연 로즈. 헤일 씨의 직업은 카드를 숨기는 일이다. 살인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17세 소년 핑키는 거구의 스파이서에게 헤일 씨의 행적을 위장하기 위해 대신 카드를 숨기게 하는데, 로즈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스노 식당의 로즈 담당 테이블보 아래에도 한 장을 둔다. 이게 결정적 실패. 로즈는 그날이 취직 첫날이었고 누구보다 기억력이 좋은 16세 아가씨라 정확하게 스파이서의 얼굴과 체구와 목소리를 기억한다. 냉혹한 소년 핑키는 살인사건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얼굴을 들켜버린 스파이서를 2층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실족사로 위장하고, 로즈마저 죽이면 하필 핑키 근처에서만 살인사건이 나는 모양새라 최악의 경우에 로즈가 법정에서 진술하지 못하게(우리나라 형사소송법 148조에도 있다. 정경심의 사모펀드 및 자녀 입시비리 등의 재판 참조) 무리수를 둬가며 결혼해버린다.
  문제는 17세 소년 핑키. 면도날로 겁만 주려고 했다가 그만 목에 깊은 상처를 입어 죽은 카이트의 수하에서 일하다가, 이제 작은 조직의 보스에 앉은 독종. 카이트와 함께 브라이턴 지역의 두 명의 맹주 가운데 한 명인 콜레오니와는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범죄 방면의 지적 능력밖에 보유하지 못해 조직은 점점 거덜이 나고, 자신의 수하도 직접 죽이거나 내쫓거나 해가며 스스로 폭망의 길을 걷는 애송이. 이 아이는 당연히 불행한 유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토요일 밤마다 아이가 보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부모가 해치웠던 번식을 위한 행위예술이 가장 깊숙한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러면서 가톨릭교도다운 선과 악의 갈등도 조금 보여주는데 이것을 가지고 선악의 본성을 탐구한다고 하면 조금 오버같다.
  하여튼 아이다 아널드, 릴리는 단 한 번, 그것도 짧은 시간만 로즈와의 만남을 통해 헤일 씨 아닌 인물이 카드를 스노 식당에 두고 간 것만을 두고 그가 살해당했다고 확신한다. 여기에 경마를 통해 벌어들인 거액으로 지역의 거물 콜레오니 씨가 묵는 호텔의 더블 방에 묵으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내가 이 책을 의미 있게 읽은 독자들과 다를 수 있는 의견은, <브라이턴 록>이 사건 해결의 과정을 그린 탐정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 작가의 시선은 아마추어 탐정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분량을 악당 핑키의 행위와 사고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보스를 잃은 복수로 찰스 헤일을 죽이고, 이 범죄의 은닉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을 죽이고, 애정 없이 무리한 결혼을 하지만 부모의 행위로 각인된 섹스에 관한 거부감 등등, 이 작품은 범죄소설의 외연을 한 심리소설에 가깝지 않은가 싶었다는 점. 간혹 이해하지 못할 행동과 어리석은 장면 등은 악당 핑키의 어린 나이로 퉁 칠 수 있을 것이라고 꼼수를 부리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마저 들었다.
  핑키의 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라고 하는 악의 본성을 찾는 일이라 하지 않았을까.(하필이면 악의 본성을 찾는 진짜 작품 <나는 고백한다>를 올 초에 읽어버렸다.) 이 작품에서도 악의 본성을 찾았을까? 아니, 아니. 난 이 작품은 애초에 영화로 만들기 위해 1930년대 수준의 독자로부터 재미를 끌어낼 수 있는 온갖 장면을 배열한 대중소설로 봤다. 아마추어 탐정 아이다 아널드가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이 너무 축소되는 바람에 추리소설이라도 그리 잘 쓴 추리소설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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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15 0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읽고 있는데 저도 읽으면서 악의 본성 운운하는 건 너무 과장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그렇게 악에 대한 얘기인가 싶고 말이지요. 저는 아직 끝에 조금 남았는데, 아, 브라이턴 록 막대사탕 스포 당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제가 읽은 부분에서 복선이 깔리긴 햇었지만요.

저는 이 소년 때문에-자신이 저지른 죄에 자꾸 함몰당하는- 스트레스 받으면서 재미있게 읽고 있기는 합니다. 아직 남았으니 마저 읽으러 가볼게요. 슝-

Falstaff 2021-07-15 09:50   좋아요 2 | URL
막대사탕은 진짜 덜 중요한 일이더군요.
진짜는 핑키의 심경변화를 쫓아가는 건데, 좌충우돌 본인은 무지하게 뇌를 굴리지만 이미 17세를 살아본 남자가 보기엔 어리석어서 영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락방 님이 무셔, 무셔 하시는 황산H2SO4를 포함해서요. 그것도 어차피 무대에 등장을 했으니 사용을 해야 할 텐데, 오, 노노, 그린 선생이 좀 오버를 했는지 작위적인 느낌이....
하여튼 재미나게 읽는 게 장땡입니다. 괜히 제 독후감때문에 재미 떨어지면 안 됩니다. 책이야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른 거니까요. ㅎㅎㅎ

새파랑 2021-07-15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추리소설 보다는 왜 핑키와 로즈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읽었어요 😊 그래서그런지 좋았습니다. 영화 시나리오 같은 느낌을 받긴 받았어요 😊

Falstaff 2021-07-15 09:53   좋아요 2 | URL
ㅋㅋㅋ 이래서 범죄 추리 소설은 다 읽은 사람들끼리 비밀 방이라도 만들어 이야기를 하게 해야 한다니까요. 여기다 다 말해버릴 수도 없고요. ㅋㅋㅋㅋㅋ

전 핑키의 생각을 쫓아가다가 바로 그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답니다. 물론 그린 선생은 핑키의 즉흥적 결정과 구상유취한 행동들 때문에 나이를 17세로 한정했는지 모르지만... 아니,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잠자냥 2021-07-15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브라이턴 록 울산바위 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핑키와-로즈-아이다 이 세 사람의 심리를 좇으며 읽는 재미가 컸습니다. 애초에 범죄소설로 읽기엔 무리가 있어서(그 재미는 포기), 특히 로즈와 아이다가 서로 생각하는 선한 행위에 대한 정의가 매우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핑키는... 어쩌면 폴스타프 님의 말씀처럼 그레이엄 그린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나 어리석은 장면을 어린 나이로 퉁치려는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리기때문에 그 부모의 섹스에서 받은 상처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싶어요(전 이게 핑키를 괴롭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제가 될 뻔했던 아이가 악당의 삶을 살아가게 된). 핑키한테서 어떤 면에선 위스키 사제의 면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Falstaff 2021-07-15 10:20   좋아요 4 | URL
ㅎㅎㅎ 독후감 쓰면서 제일 눈치가 보이던 분이 잠자냥 님이었습니다.
아, 책은 맘에 안 드는데, 이걸 좋다고 하시니 여차하면 귀싸대기 맞겠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걍 할 말 하겠다, 해서 써놓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미리 100자평으로 간도 보고, 흐흐흐.... 이거 갈수록 눈치만 늘어서 큰일입니다.
아, 하여튼 제가 읽기엔 핑키와 로즈는 넘 유치하고, 아이다는 성격 설정에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답니다. (종교는 몰겄습니다. 저는 지옥 한 자리 예약해놓았어요. ㅋㅋㅋ)
그러니까 문제는 작품하고 독자의 합입니다. 에휴....

잠자냥 2021-07-15 10:57   좋아요 4 | URL
아이고 뭐 제 눈치를 보고 그러십니까! *찰싹*
서로 다른 평도 나오고 그래야 말이 되는 세상이죠? *찰싹*
앞으로도 눈치 보지 마시고 좍좍 써주세요! *찰싹* ㅋㅋㅋㅋㅋㅋㅋㅋ

폴스타프 님한테 핑키 정말 유치해 보였을 거 같긴 해요 ㅋㅋㅋㅋㅋㅋㅋ 뭔가 똥폼 잡는 애송이 새끼? ㅋㅋㅋㅋㅋㅋ 로즈는 세상 물정 정말 모르는 답답한 소녀고, 아이다는 이런 여자 주변에 있으면 저는 고구마 백 개 먹는 기분들 거 같긴 해요. ㅎㅎ

암튼 눈치 풀고 오늘 점심 맛나게 드십시오. *찰싹찰싹찰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15 13:03   좋아요 3 | URL
급식 먹고 왔습니다. 냉우동? ㅎㅎㅎ 처음 먹어봅니다.
냉우동 먹으면서 자꾸 뺨따구가 간질간질 하더니 그 시간에 누군가 귀싸대기를 날리고 계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서울이나 수도권 사시는 분들 아무쪼록 건강 조심하세요.
어제 울 삼실에서 확진자 나와서 코비드19 검사, 콧구멍 찔리고 왔습니다. 음성, 네거티브라네요. 다행이지만 은근히 서운한 건 왠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제 왼쪽 콧구멍도 이젠 동정을 잃었습니다. 흑흑흑흑......

붕붕툐툐 2021-07-15 20:44   좋아요 2 | URL
ㅋㅋㅋ여기가 *찰싹*의 근원지군요~ 두 분 덕에 한참 웃었습니다!!ㅎㅎ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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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모르탱에서 딸 다섯, 아들 다섯, 합이 십 남매 가운데 중간쯤 태어난 작가 알렝 레몽의 자전적, 회고 형식을 띈 짧은 소설이며 대강 150쪽 정도의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또 다른 자전적, 회고적 기록이며 역시 150쪽 가량의 또 다른 짧은 소설,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두 중편 소설을 묶은 책.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옛 속담이 딱 어울리는 집안이지만, 사실 실제로 십 남매를 둔 가족을 염두에 두면 집은 부유하지 않지만 아이들 다 똑똑한 편이고, 하나 빼고는 모두 건강하게 자라서 자기 밥벌이 하고, 웬만한 아이들은 전부 우등으로 학교 등록금 면제받고, 아 정말 이 정도면 된 거 아냐? 레몽이 열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때부터 10년이 지나서 어머니까지 여윈 삶. 열 남매 가운데 오직 하나만 조울증이 심각해져 강에 빠져 죽는 비극을 당했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하나가 좀 아쉽지, 냉정하게 봐서 괜찮은 집구석이다. 보라, 1960년대까지 인류의 평균 수명이 얼마나 됐는지. 스물다섯 살에 천애고아가 됐다고 궁상을 떨 필요가 있을까?
 천만의 말씀.
 한반도의 남쪽에서만 약 4,500만 명이 산다. 이건 적어도 4,500만 권의 소설책 또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스토리가 걸어 다닌다는 뜻이며, 세계적으로는 무려 60억 권의 소설책을 쓸 수 있는 재료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각 개인이 자신들 마음속에 담아 평생을 짊어지고, 견뎌내고, 맛보고, 후회하고, 아파하고, 즐거워하고, 웃음 짓는, 오직 자기만의 경험과 추억과 그것들의 확대(또는 축소) 재생산한 현재의 감정이다.


 1960년대 말의 어느 날, 정말 하루도 빼지 않고 통행금지 사이렌과 동시에 문간에 달린 벨이 울리던 한 가족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벨을 ‘요비링’이라 불렀는데 아무도 ‘요비링’의 어원을 알지 못했다. ‘씨유깽’은 ‘See you again'이란 건 1970년대나 돼야 알 수 있었지만 결국 ’요비링‘은 알지 못했다. 통금 사이렌과 거의 동시에 대문을 열면 어김없이 마당 안쪽으로 푹 쓰러지던 거구의 남자, 바로 내 아버지 ’이주사‘였던 거다. 형과 내가 180cm가 넘는 장신의 아버지를 억지로 끌고 현관으로 들어가면 팔짱을 끼고 기다리던 정여사의 본격적인 따발총 잔소리가 시작됐다. 어찌 그리 하루도 빼지 않고 날마다, 날마다, 그리고 날마다. 형과 나는 우울하게 벽에 기대서서 퍼질러 자빠져계신 아버지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어느 자식새끼가 부모가 싸우는 걸 보고 행복해 숨이 넘어가겠는가. 드디어 긴 한숨을 쉬며 잔소리, 사실은 일찌감치 과부가 될까 두려워 술 좀 작작 마시라는 훈계이었겠지만 집안의 세 남자는 훈계의 말씀이 언제나 너무나도 귀가 따갑고 지겨웠던 건데, 귀 따갑고 지겨운 잔소리를 다 마치고 정여사가 팔짱을 풀고 방에 들어가기 위해 방문을 여는 순간, 형편없이 널부러져 있던 이주사께선 여지없이 거의 말똥말똥한 눈길을 한 채 고개를 번쩍 들고 아들들에게 말했다.
 “네 어미 들어갔니?”
 정말 날마다, 날마다. 이주사의 시체놀이에 이은 정여사의 울고불고 난리굿이 지겨워 미칠 것 같던 어느 겨울밤, 이주사께선 웬일인지 조금 꼬부라진 혀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진짜로 내가 내일도 술 마시고 오면 개다, 개. 사람이 아니고 개다, 개!”
 다음날 뉘엿뉘엿 해가 지자, 어느 때보다 일찍 퇴근해 집에 도착한 정여사는 서둘러 저녁을 자시고 목욕재개하고, 세상에나, 짧은 세월 살면서 처음 봤는데, 화장대 앞에 앉아 색조 가득한 화장을 하는 게 아니냔 말이지. 밤이 깊어가고 외출할 일도 분명 없는데,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있겠느냐 이거다. 통통한 몸 여기저기에 화장수까지 뿌려가며 즐거워하던 모습을 근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시계바늘은 정여사의 바람과 달리 그냥 돌아가기만 했고, 9시가 넘더니, 10시, 지국총지국총어사와 흘러 흘러, 어느덧 11시가 넘어 조금만 지나면 내일이 도착할 시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라던, 세상 초유의 정여사 지시를 무시하고 뜬 눈으로 어떻게 사건이 진행될까를 주시하는 형제의 눈은 더욱 또랑또랑해져만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드디어 요비링이 요란하게 울리고 우린 방문을 아주 조금 연 채, 부부가 일기 필마에 올라 장창을 옆구리에 끼는 모습을 우울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걸로 알았다.
 “누구세요!”
 현관문을 열고 대문을 향해 날카로운 메조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관통했다. 괜히 내 뒷덜미가 찔끔해질 정도의 싸늘한 기운을 누구나가 느낄 수 있었으리라. 대문 앞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문만 열었다 하면 마당 방향으로 철푸덕, 쓰러질 이주사임이 틀림없으니까.
 “누구세요!”
 정여사의 피치카토 샤우팅이 한 번 더 형제의 귀에 들렸다.
 잠시 후, 대문 밖에서 이주사의 목소리가 분명한, 영장류의 목소리로 내는 의성어가 틀림없는,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멍멍멍, 멍, 멍”
 이 이야기는 정여사가 웃음을 참지 못해 결국 해피 엔드로 막을 내린다. 아주 잠깐 해피 했지만.


 그리고 불과 몇 년 후, 나는 다시는 이주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내 나이 만 열두 살이 되자마자. 어떠셔? 이런 에피소드에서 보듯이 익살맞은 육척장신의, 당시 변웅전 아나운서보다 잘 생긴 아버지, 곧이어 불어 닥친 풍비박산, 죽을똥살똥 난장판에다가 고생바가지, 국민훈장 동백장 서훈, 기타 등등, 기타 등등. 한 편의 소설 쓸 수 있겠지? 내 집안만 그런 거 아니다. 당신들도 이하동문인 거, 내가 안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구나에게도, 그가 만일 나와 마음속에 있는, 아니, 마음속에 든 응어리에 대해 이야기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에게 부모란 존재는 짐, 그리움(사실 나는 이주사, 정여사가 별로 그립지 않다), 쓸쓸함 비슷한 존재였다. 일반적인 얘긴 하지 말자. 당신이 받은 사랑, 누구나 받았고(물론 전혀 못 받았거나 아주 조금만 받은 사람도 있지만), 듣는 사람한테 별로 감동주지 못한다. 내가 냉정해서 그렇다고? 오케이. 상당부분 인정. 하지만 어쩌랴, 난 부모, 그것도 이미 돌아간 부모를 향한 사랑(진짜 헛된 사랑. 물론 전적으로 사적인 고백)과 그들로부터 받은 것들에 대한 그리움, 감동, 여전한(죽은 또는 늙은 부모의) 사랑, 안타까움 같은 것들에 대해 읽으면, 한 순간 마음이 찡하긴 하지만 곧바로 에이 썅, 하고 만다. “너만 그래?” 그런 건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건, 자신 가슴 속의 응어리를 잘 쓴 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이, 문학작품이 징글징글하고, 무섭고, 위대한 거다.
 바로 그 글쓰기의 징글징글함, 무서움, 그리고 위대함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의 앞 글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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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7-14 16:5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의 인생 이야기는 왠지 뭉클하네요 ㅜㅜ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는 사연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것 같아요. 이 책은 제목이 너무 좋네요 👍

Falstaff 2021-07-14 16:55   좋아요 5 | URL
윽. 뭉클하시면 안 됩니다. 재미있으라고 쓴 글인데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14 16:5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멍멍멍에서 빵 터집니다. ㅎㅎ

그나저나 역자 후기는 안 읽으셨죠? ㅋㅋㅋㅋ


Falstaff 2021-07-14 16:57   좋아요 7 | URL
역자 후기를 김화영이 썼잖아요.
진짜 명문입니다. 빛나는 아우라. 아름다운 문장들로 잘난 척하고, 삽질하고, 독자를 우습게 보는 우리나라 최고 불문학자의 드높은 명성에 조금도 꿀리지 않습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전화해봤더니 계속 그렇게 살겠답니다. ㅋㅋㅋㅋ

청아 2021-07-14 17: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의 재치와 유머의 출처는 아버님 DNA였네요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14 17:48   좋아요 6 | URL
ㅎㅎㅎ 좋은 건 제가 개발한 거고요, 못된 건 물려받았습지요.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7-14 17: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말 60억권의 사연들이 이 세상을 메우고 있는것 같아요. 글의 내용은 좀 슬프고 뭉클한데 일을때 제 얼굴의 미소는 무엇일까요! 소설쓰셔도 될것 같습니다.
강추합니다^^

Falstaff 2021-07-14 18:45   좋아요 4 | URL
ㅎㅎㅎ 재미있으셨으면 만족입니다. 즐겁게 읽으신 거 같아서 기분 좋습니다. ^^

coolcat329 2021-07-14 18:1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알콜 유전자는 아버지께 받으셨군요 ㅎㅎ
개인적인 에피소드의 재미있는 글이지만 결론은 문학의 힘! 동감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불륜을 이해하기 시작했거든요. 천하에 추잡한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그들의 사랑이 로맨스로도 보입니다. 이게 문학의 무서운 힘 아닐까요?

Falstaff 2021-07-14 18:50   좋아요 5 | URL
크, 확실한 건 알코올 유전자, 이거 물려 받은 거 맞습니다.
제가 연락하고 사는 친척들이 6촌 더하기 한 명의 팔촌, 누이들 형제들인데 초상나서 한 번 모이면, 으아.... 대단합니다.
아이고, 불륜까지 넘어가시면 곤란합니다만 어차피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미인 안나 카레리나도 결국 배나온 대머리 브론스키 백작하고 불륜을 저지르니 뭐라 특별하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 주위 분들에겐 그런 사주팔자가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라올밖에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7-14 19:19   좋아요 4 | URL
저도 책을 읽다보니 자꾸 사람들이 이해가 되어 큰일입니다~~폴스타프님, 맨날 먹고 책만 읽는 사람들은 그런 재주들이 없는 사람들입니다요^^

Falstaff 2021-07-14 19:53   좋아요 3 | URL
ㅋㅋㅋ 암요, 제가 잘 압니다. ^^

공쟝쟝 2021-07-14 19: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렇군요. 그런거군요! 일반적인 얘기를 특별하게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독후의 감..생생히 읽고 갑니다. 멍멍!

Falstaff 2021-07-14 19:54   좋아요 3 | URL
아오, 그러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는 말씀이지요? ㅋㅋㅋㅋ
이 맛에 북플 한다니까요!!!

공쟝쟝 2021-07-14 20:29   좋아요 3 | URL
물론이죠. 동의하고. 웃프기도 하고. 내가 참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구나 싶고. 이맛에 하는 북플에도 동의요 ㅎㅎ

붕붕툐툐 2021-07-14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너무 잼나서 어떡해용? 진짜 폴스타프님 가족 얘기 소설로 꼭 쓰셨음 좋겠어요. 그럼 제가 ‘다들 이런데 이걸 꼭 책으로 내야했어? A~ㅅ ㅅ ㅑㅇ‘ 말하면서 가슴 뭉클, 눈물 글썽 할게욤~🙆

Falstaff 2021-07-14 21:28   좋아요 2 | URL
ㅎㅎㅎ 재미있었다고 하시니 기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ㅋㅋㅋㅋ
 
위비왕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5
알프레드 쟈리 지음, 장혜영 옮김 / 연극과인간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1873년 프랑스 마옌 주 라발에서 태어나 겨우 서른네 살이던 1907년에 파리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생을 마감한 알프레드 자리. 너무 짧게 살다 가서, 아니면 내가 아는 바가 적어서 그런지 크게 성과를 냈다고 하기는 좀 힘들겠다. 열다섯 살이던 1888년에 자리는 렌 고등학교에 입학해, 청소년들이 보기엔 참으로 기발한 인물을 만나게 되니 물리를 가르치던 에베르Hébert 선생이었다. 이 선생을 학생들은 차마 그대로 부를 수 없어 Hébe 또는 Eébe라고 불렀다.
  자리의 학교 선배 가운데 샤를르 모렝이란 학생이 1885년에 이 에베르 선생을 폴란드의 왕으로 변모시켜 <폴란드인>이란 작품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샤를르의 동생 앙리가 자리와 동급생으로 입학하고, 자리의 글 솜씨를 알게 되자 형의 초고를 보여준다. 자리는 Hébe 또는 Eébe를 위뷔Ubu로 다시 바꾸어 <오쟁이진 위비>의 초본을 쓰고, 이게 몇 번의 변신을 거쳐 <위뷔 왕>이란 희곡으로 탄생한다.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가르강튀아>는 “고매한 술꾼 그리고 고귀한 매독 환자 여러분”한테 헌정한 작품이다. <위뷔 왕>을 읽어보면 저절로 <가르강튀아>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과장은 현저히 덜 하더라도, “배설과 돈, 성과 관계된 표현, 물욕, 식욕, 성욕에 관한 노골적인 묘사가 등장한다.”(역자 해설) 동시에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렇게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셰익스피어 비극/사극의 구성과 라블레의 희극성을 합해놓은 짬뽕밥의 결과는, 내용의 비극성보다 표현의 희극으로 향하는 것 같다.

 

  폴란드의 방세즐라스 왕에 의하여 백작의 품계를 받은 다음 날, 위뷔 아범은 아내 위뷔 어멈과 자신을 따르는 보르뒤르 대장, 지롱, 필, 코티스 등을 규합하여, 다음날 백작 취임 기념 열병식에 위뷔 백작을 그토록 신임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참석해 자리를 빛내준 방세즐라스 왕과 세 아들 가운데 열네 살 먹은 막내 부그르라스 왕자를 뺀 두 왕자를 시해하고 왕관을 쓴다(역자는 믿는 도끼가 되어 왕의 발등을 찍은 맥베스와 닮았다고 해설에서 말한다). 취임하자마자 국고를 털어 국민에게 창고와 궁전을 열고 음식과 금을 내주어 인기를 끈 위뷔 왕은, 바로 다음 날부터 세금을 두 배, 며칠 있다가 세 배 늘려 착취를 일삼는 한편, 이제 사냥을 끝낸 뒤라 충성했던 사냥개 보르뒤르 대장을 지하 감옥에 유폐해버린다. 동시에 온갖 귀족, 법관, 세무관리 등을 눈에 띄기만 하면 사형에 처해버리는 폭정을 펼쳐 인심을 잃기 시작하는데, 와중에 보르뒤르 대장이 탈옥해 러시아로 건너가 폴란드의 하나 남은 적통 왕자 부그르라스를 왕위에 오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리하여 러시아의 알렉시스 황제는 군대를 이끌어 폴란드로 침공해 위뷔 왕과 전투를 벌이고, 궁전에서는 부그르라스 왕자가 위뷔 어멈을 내쫓고 왕위를 회복한다.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 위뷔 왕은 북해에서 배를 얻어타고 (햄릿이 사는) 덴마크의 엘시뇨 성으로 떠난다는 내용.
  이 작품은 사실 내용보다 위뷔 아범, 위뷔 왕의 행위와 사용하는 언어, 시시때때로 변하는 임기응변과 비겁한 성격, 이를 다 합해 극을 희극으로 몰아가는 <헨리 4세>의 조연 폴스타프 닮은 행동이나, 숨을 한 번 죽인 가르강튀아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이 진짜인데, 거 이상하지, 비극에 비해서 희극은 진짜 공연을 보는 것이 더 좋더라는 말씀. 물론 번역 작품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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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3 10: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 작품은 폴스타프 님 같은 ˝고매한 술꾼˝을 위한 작품이군요! 저도 고매한 술꾼 단계에 올라가면 읽어보겠습니다. 아직은 비루한 술꾼이라... ㅋㅋ

Falstaff 2021-07-13 10:43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술꾼은 고매합지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21-07-13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치 않아도 궁금했는데 여쭤 보기도 뭐하고
이제야 알았네요.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ㅋ
웬지 제목이 술 안주가 생각이나는 제목입니다.ㅋㅋ

Falstaff 2021-07-13 12:48   좋아요 1 | URL
아, 이 작품을 궁금해 하시는 분도 계시네요.
진짜 읽어보면 뭘 풍자했는지 몰라서 정신 사납습니다. ㅋㅋㅋ
데친.... 미나리에 삼겹살 올려서 말입니까? ㅋㅋㅋ 너무 더워서요.

stella.K 2021-07-13 13:24   좋아요 1 | URL
아, 아뇨. 폴스타프라는 이름 말이어요.ㅠ
그래도 별점은 네 개를 주셨으믄서...ㅋㅋ

Falstaff 2021-07-13 13: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렇군요.
희극을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랴 보너스로 별 하나 더 주었습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