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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평점 :
추리 소설의 교과서.
이렇게 말해도 좋다. 추리 소설을 한마디로 하면 “작가가 독자에게 도전하는 진검승부”다.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곳곳에 다 마련해둔다. 독자는 책을 읽어가며 작가가 숨겨놓은 힌트(흔히 이걸 복선이라고 한다)를 찾기도 하고 못 찾기도 하면서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을 내린다. 내 경우엔 마치 보물찾기처럼 예상하지 못한 곳에 숨은 힌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기 때문에 추리 소설을 읽는 시간이 다른 장르보다 훨씬 많이 걸린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는 자기가 기대했던 결론과는 다른 결말을 원한다. 추리소설의 독자는 애초에 약간의 피학적 기질이 있는 법이라서. 이때 독자가 원하는 ‘다른 결말’은, 애초 자신이 기대했던 바를 능가해야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앞에 나열했던 힌트와 어긋나게 결말을 초래한다면 실망을 할 수밖에.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는 결말 부분에서 내게 두 번 무릎을 치게 했다. 거의 완벽하게 숨은 복선을 다 찾았다고 자신하면서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기대했다가, 연달아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이게 추리 소설을 읽는 기쁨이다. 그래서 나는 <레베카>를 추리 소설의 교과서라고 상찬하는 것이다.
<레베카>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 스위스쯤으로 보이는, 스위스라고 생각하는 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으나 그건 다음으로 하고, 영국 땅을 벗어난 장소에서 스물한 살 시절 신혼의 여름을 보냈던 맨덜리 저택에 관해 꾼 꿈 이야기. 프롤로그다. ‘나’가 아닌 ‘우리’는 스스로 유배 생활을 선택해 살면서 영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이면 날마다 배달되어 오는 영국신문을 탐독하며 살고 있다. ‘나’의 꿈속에서 맨덜리 저택은 굳게 닫힌 철문과 황폐해 잡목과 잡초에 굴복해 과거의 영광을 다 잃은 모습이다. 우리, 나와 그는 그곳에서 신혼의 백일 남짓을 지내며 불의 시련을 겪어낸 셈으로 그동안 공포와 고독, 좌절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왜 그들이 맨덜리 장원을 떠나 이국에 머물게 되는지, 오랜 시간 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던 맨덜리 저택에서 있었던 불과 공포와 고독과 좌절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두 번째 부분은,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한 ‘나’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인 벤호퍼 부인에게 동반자 역할을 해주는 대가로 연간 90파운드의 임금을 받는 피고용인 신분으로 부인을 따라 몬테카를로에 와서 영국의 거대한 맨덜리 장원의 소유자인 맥시밀리언 드윈터 씨를 만나 결혼하는 내용, 드윈터(de Winter) 씨는 일 년 전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사건이 생겨 그때까지의 기억을 다 잊고 싶어 하는 인물로, 몬테카를로에 온 것도 기억을 지우기 위한 일이었다고 한다. 일 년 전의 사건이라고 함은,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아내 레베카가 자신의 보트를 타고 한밤에 바다로 나갔다가 침몰해 죽은 일이었다.
마지막은 6백 쪽 가운데 4백 쪽 분량으로 이탈리아에서의 신혼여행을 끝내고 맨덜리 저택으로 돌아온 ‘나’가 경험하는 4개월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야 사실상 맨덜리 저택의 지배자이자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레베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레베카는 (종종 그랬듯이) 밤에 혼자 보트를 타다가 전복사고가 일어나 바다에 빠져 행방불명 된다. 두 달 후 시신은 영지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에지컴 해변에서 발견했는데 근해에 많이 돌출된 암초에 부딪혀 찢기고 수생생물에 훼손당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남편 드윈터 씨가 직접 신원을 확인해 영지 교회의 지하에 안장한 상태다.
여기서 독자는 정당한 의문을 품는다. 바다에 빠진 시신을 두 달 후에 발견했다니. 시신이 훼손되어 알아볼 수도 없었을 터인데 유전자 감식이 없던 시절, 어떻게 신원을 밝혔을까. 나는 믿었다. 레베카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죽었다고 알려진 후 약 1년 반도 안 된 시점에 레베카는 영국 또는 외국의 모처에서 아직도 여전히 맨덜리 저택을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드윈터 가문에 의하여 어느 음침하고 은밀한 곳에 유폐되어 있을 수도 있고. 독자의 머리는 갈수록 미로를 헤맨다.
저택과 장원의 모든 종사자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결코 스물한 살 먹은 새 드윈터 부인의 의견을 참고하려 하지 않는다. 집안의 모든 일에 관해 그들이 하는 말이라고는, “돌아가신 드윈터 부인께서는 …… 하셨습니다.” 일 뿐. 영지 소유자인 맥심이 태어나기 전부터 저택에서 일해온 집사 프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 죽은 레베카를 가장 숭배하는 건 레베카가 결혼해 저택에 들어올 때 함께 와 일을 시작한 댄버스 부인. 사람들은 뛰어난 솜씨로 거대한 집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댄버스 부인을 “참 대단한 사람, 다만 기름칠이 안 되어 뻣뻣하다는 게 문제”로 볼 정도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지만 과거에 함몰되어 누구라도 레베카의 자리, 드윈터 부인의 지위를 대신할 수 없다는 맹목을 가지고 있으니 ‘나’와는 처음부터 사이가 좋기를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맨덜리 저택이 책에 등장하고 상당 부분 나는, 겨우 스물한 살 먹은 화자 ‘나’가 마흔두 살의 남편 맥심 드윈터에게 하는 역할은, 저택의 코커스패니얼종의 개 재스퍼가 ‘나’에게 주는 위안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생각, ‘나’가 당연한 권리로 해고하거나 징계할 수 있는 시녀장 댄버스 부인이 시시때때로, “특히” 무도회에서 자신을 크게 물 먹인 일을 인내하고 있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는 하도 답답해서, 이런 작품이 어떻게 듀 모리에의 대표작이랄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심지어 지루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나’의 한심한 행동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야기는 ‘나’에게 큰 수모를 안긴 무도회 다음날, 드윈터 영지에 독일 함부르크 상선이 좌초하면서 큰 변곡을 만나 이른바 소용돌이를 이루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어려서 레베카와 함께 자란 사촌 잭 파벨까지 등장해 결정적인 반전을 준비하는데, 파벨이 내가 기대했던 결말에서 한 번 더 도약한 결론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도약 결론’을 읽고, 대부분의 독자가 그렇겠지만, 나는 추리 소설 작가가 내는 수수께끼를 너무 도식적으로, 상투적으로 해석해오지 않았나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서두에 말했듯이 작가는 독자에게 줄 수 있는 모든 힌트는 다 보여준다. 독자가 추리 소설을 ‘즐기고 싶다면’ 드러나는 힌트를 최대한 ‘다양하게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독자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다.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독자는 작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반전이라는 상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나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이 예상 밖 결론, 천재 악녀 레베카의 기상천외한 조롱을 읽고, 자빠졌다.
세상에 이런 작가가 있고, 이런 뒤집기를 감행하는 레베카가 있다니.
<레베카>는 명품이고, 추리 소설의 교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