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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비왕 ㅣ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5
알프레드 쟈리 지음, 장혜영 옮김 / 연극과인간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1873년 프랑스 마옌 주 라발에서 태어나 겨우 서른네 살이던 1907년에 파리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생을 마감한 알프레드 자리. 너무 짧게 살다 가서, 아니면 내가 아는 바가 적어서 그런지 크게 성과를 냈다고 하기는 좀 힘들겠다. 열다섯 살이던 1888년에 자리는 렌 고등학교에 입학해, 청소년들이 보기엔 참으로 기발한 인물을 만나게 되니 물리를 가르치던 에베르Hébert 선생이었다. 이 선생을 학생들은 차마 그대로 부를 수 없어 Hébe 또는 Eébe라고 불렀다.
자리의 학교 선배 가운데 샤를르 모렝이란 학생이 1885년에 이 에베르 선생을 폴란드의 왕으로 변모시켜 <폴란드인>이란 작품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샤를르의 동생 앙리가 자리와 동급생으로 입학하고, 자리의 글 솜씨를 알게 되자 형의 초고를 보여준다. 자리는 Hébe 또는 Eébe를 위뷔Ubu로 다시 바꾸어 <오쟁이진 위비>의 초본을 쓰고, 이게 몇 번의 변신을 거쳐 <위뷔 왕>이란 희곡으로 탄생한다.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가르강튀아>는 “고매한 술꾼 그리고 고귀한 매독 환자 여러분”한테 헌정한 작품이다. <위뷔 왕>을 읽어보면 저절로 <가르강튀아>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과장은 현저히 덜 하더라도, “배설과 돈, 성과 관계된 표현, 물욕, 식욕, 성욕에 관한 노골적인 묘사가 등장한다.”(역자 해설) 동시에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렇게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셰익스피어 비극/사극의 구성과 라블레의 희극성을 합해놓은 짬뽕밥의 결과는, 내용의 비극성보다 표현의 희극으로 향하는 것 같다.
폴란드의 방세즐라스 왕에 의하여 백작의 품계를 받은 다음 날, 위뷔 아범은 아내 위뷔 어멈과 자신을 따르는 보르뒤르 대장, 지롱, 필, 코티스 등을 규합하여, 다음날 백작 취임 기념 열병식에 위뷔 백작을 그토록 신임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참석해 자리를 빛내준 방세즐라스 왕과 세 아들 가운데 열네 살 먹은 막내 부그르라스 왕자를 뺀 두 왕자를 시해하고 왕관을 쓴다(역자는 믿는 도끼가 되어 왕의 발등을 찍은 맥베스와 닮았다고 해설에서 말한다). 취임하자마자 국고를 털어 국민에게 창고와 궁전을 열고 음식과 금을 내주어 인기를 끈 위뷔 왕은, 바로 다음 날부터 세금을 두 배, 며칠 있다가 세 배 늘려 착취를 일삼는 한편, 이제 사냥을 끝낸 뒤라 충성했던 사냥개 보르뒤르 대장을 지하 감옥에 유폐해버린다. 동시에 온갖 귀족, 법관, 세무관리 등을 눈에 띄기만 하면 사형에 처해버리는 폭정을 펼쳐 인심을 잃기 시작하는데, 와중에 보르뒤르 대장이 탈옥해 러시아로 건너가 폴란드의 하나 남은 적통 왕자 부그르라스를 왕위에 오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리하여 러시아의 알렉시스 황제는 군대를 이끌어 폴란드로 침공해 위뷔 왕과 전투를 벌이고, 궁전에서는 부그르라스 왕자가 위뷔 어멈을 내쫓고 왕위를 회복한다.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 위뷔 왕은 북해에서 배를 얻어타고 (햄릿이 사는) 덴마크의 엘시뇨 성으로 떠난다는 내용.
이 작품은 사실 내용보다 위뷔 아범, 위뷔 왕의 행위와 사용하는 언어, 시시때때로 변하는 임기응변과 비겁한 성격, 이를 다 합해 극을 희극으로 몰아가는 <헨리 4세>의 조연 폴스타프 닮은 행동이나, 숨을 한 번 죽인 가르강튀아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이 진짜인데, 거 이상하지, 비극에 비해서 희극은 진짜 공연을 보는 것이 더 좋더라는 말씀. 물론 번역 작품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