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희곡집 1 박근형 희곡집 1
박근형 지음 / 연극과인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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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대기에도 민망한 연출가 이윤택과 더불어 우리나라 극작 및 연출을 대표했던 박근형. 이이의 바이오그래피는 수배하기가 쉽지 않다. 이너넷 책방 알라딘은 이렇게 소개했다.


  “1963년 월남한 실향민 박창봉(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조산리)과 지갑남(함경남도 신흥군 단봉리) 사이에서 막내이자 외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3년생. 정확하지는 않아도 연령별로 보면 우리나라 반만 년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은 신생아를 출산한 해로 기록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알고 있다는 거. 아마 이게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고 조루증의 상징인 “토끼”띠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하여튼 이 계묘년생들은 정수리에 흰 버터를 뒤집어쓰고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날 입때까정” 가장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소위 86세대의 좌장 격이면서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경쟁을 해보지도 않고 꿀 빤 세대”라는 지적질을 받기도 하는데, 계묘생들 입장에선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일 거 같다. 지금 말하는 기준은 평생 힘 없이 살면서 겨우 부모세대의 가난에서 벗어난 대다수 선량한 민중, 이젠 꼰대 민중이 된 사람들 이야기다. 근데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말자. 얼른 쓰고 밥 먹어야 하는 시간이다. 밥맛 떨어질까 무섭다.

  하여튼 박근형도 학벌위주의 사회에 속 치열한 경쟁에 치어, 전두환 정권이 작년부터 대학의 졸업정원제를 시행해서 입학정원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경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영부영 병역을 마친 다음 1986년 “극단 76”에 입단, 배우로 연극계에 첫 발을 뗀다. 잘했다. 일찌감치 자기 길 찾는 게 제일이다. 박근형은 자기 속에서 배우보다는 연출이 더 어울린다는 걸 발견하고 드디어 연출로 전향해 배고픈 성공의 길을 걷는다. 어쨌거나 지금은 서울예종 연극원 연출과 교수를 하고 있으니 뜨긴 떴다.


  1997년 자신의 극작품 <쥐>를 연출해 무대에 올려 인정을 받는다. <쥐>는 이 책의 세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관객이 입장하면 제일 먼저 배경으로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쾅쾅 때려준다. 이 음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통해, 문학사상 가장 훌륭한 전쟁 장면으로 회자되는 대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곡이다. 초연 당시엔 코다 부분에서 진짜 대포를 꽝, 꽝, 꽝, 꽝 발사해 극적 웅장함을 더해줬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관객 또는 독자는 전승기념이 아니라 전쟁, 모든 것을 다 폐허로 만들고 사람을 최악의 기근으로 몰아가는 재앙 만을 생각해야 한다.

  인류에게 가장 혹독한 시기가 도래한 것. 기아와 질병, 이산 등으로 남은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최고의 지향점은 하루 하루도 아니고 한끼, 한끼의 ‘목 넘김’인 상태. 아이들에게 애완으로 기르라고 아버지가 가져온 토끼는 그날 저녁거리로 엄마에 의하여 상에 오르고, 아버지는 고기가 토끼인 것을 알고도 맛나게 잡수시는 풍경. 이들은 사냥을 나가 거의 죽어가는 짐승을 가져와 도살을 해 음식을 만드는데 그게 숨이 넘어가지도 않은 사람이었다는 거. 아이가 사라져 미친듯이 찾아다닌 엄마에게 아이의 살코기를 대접하고, 엄마 역시 맛나게 먹는다는 crazily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어떻게 그토록 인정을 받았을까? 1997년, 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대가로 굴욕적인 통제를 당해야 했던 시절의 경제적 혼란과 공황이 아니었더라도 성공할 수 있었을지, 솔직히 무척 궁금하다. 하지만 그것도 다 이이의 운이다. 운에 대해서는 질투하는 게 아니다. 그저 축하만 할 뿐.


  박근형을 출세가도로 만들어준 진짜 작품은 1999년에 무대에 올려, 다음해인 2000년에 연극 관련 상이란 상은 싹쓸이해버린 <청춘예찬>이다.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했으니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연극제를 휩쓸면서 박근형을 극작과 연출, 두 부문의 국가대표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래서 《박근형 희곡집 1》에도 제일 앞에 실렸을 것.

  하지만, 두 연극관련 축제에서 희곡상을 받은 우수작품이라도 내가 싫으면 싫은 거니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사용하는 말(언어)들이 드러워서 못 읽겠다. 물론 꾸역꾸역 다 읽기는 했다. 이게 뭐야 근데. 아빠하고 아들하고 앉아 둘이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아서 쏟아지는 아들의 대사를 한 번 보자.


  “그래서 뭘 잘해서 병신 새끼처럼. / 내가 안 죽이고 데리고 사는 게 고마운 줄 알아야지. / 사람이면 안 그래 꼴에 애비라고 지금 폼 잡는 거야.”


  지금은 이혼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했다. 아버지가 열을 받아 화장실 세척용 염산을 들었더니 엄마가 악이 나서, “부어봐, 부어 보라고, 병신아!” 하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그래 정신이 나간 아버지는 엣다, 먹으라며 정말로 염산을 어머니의 얼굴에다 뿌렸는데, 어머니는 이때 눈을 감지 않아서 그냥 동공이 타버려 맹인이 됐다. 어머니는 이혼하고 나가서 맹인 안마사를 하다가 다른 맹인을 만나 재혼을 해 살고 있다. 아버지는 그일 이후 폐인이 되어 가끔 무작정 어머니가 일하는 안마시술소를 찾아가 어머니로부터 3만원이면 3만원, 5만원이면 5만원을 받아, 돈이 떨어질 때까지 날이면 날마다 김치를 안주로 깡소주를 들이켠다. 아들 청년은 고등학교를 2년 꿇고 졸업도 하지 않았으면서 티켓다방에서 못생긴 덕분에 아직 순결을 간직하고 있는 다섯 살 위의 간질병자 ‘간질’이를 임신시키고 집에 데려온다.

  나름대로 세기말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린다고 했지만 하여간 나한테는 과했다. 청년과 간질이 섹스를 하고 난 다음에 관객들에게 굳이 ‘빤쓰’만 입고 누운 남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섹스 후 파트너끼리 누워서 하는 대화를 속옷 입은 상태로 하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극에서 벗은 몸을 보여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장면에서 쓸데없이 벗기지 말라는 거다. 꼭 벗어야 하는 장면에선 정말로 다 벗기는 한이 있더라도. 연출가가 (소수의? 다수의?)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신체의 일부분은 관객 역시 다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보면 사실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말씀이야.

  그리고 비단 <청춘 예찬> 뿐만이 아니라 왜 욕을 그리 많이 하는지 난 정이 뚝뚝 떨어졌다. 작품 전부 다 그렇다.


  국립극단에서 연출을 하던 박근형은 2001년에 조연출을 맡은 당시 초보, 아니면 신입 연출가(였던) 지망생 이은준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고 2002년에 의기투합해 “극단 골목길”을 창단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인 2003년, 우리나라 연극발전에 관해서는 공이 큰 동아일보가 그를 “차세대를 이끌어갈 연출가”에 1위로 선정이 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는 등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이후 이어지는 연극계에서의 활약을 다 이야기하면 입술이 부르틀 정도의 인물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실력이 있으면 뭐하나. 내가 읽기에 다분히 고의적으로 험한 단어를 골라쓰는 인종인 걸. 원래 계묘생들 사주가 그렇다. 어려운 굴곡이 생기면 운 좋게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63년 계묘생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다른 생년과 비교하면 이런 인간들의 비율이 많다는 거다. 어떻게 아느냐고? 아내가 계묘생이다. 꿈 많은 여고시절에 담임선생이 그렇게 이야기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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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3-02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아내 얼굴에 염산뿌려 눈 멀게 만들어놓고 다른 남자랑 재혼한 그 아내가 안마해서 번 돈을 타다 쓴다구요?!
읽기 정말 거북하네요.
아들이 아버지한테 하는 말도 그렇고 ㅠ

Falstaff 2022-03-02 08:41   좋아요 1 | URL
그거 때문에 아들한테 내내 욕을 얻어 ˝처먹지요.˝
이이 작품 읽어보면 연극보다 돈 팍팍 벌리는 영화쪽에 미련이 많은 것도 같고 그렇더라고요. 그러니까 설정도 거의 막가파 아니겠습니까.
 
패니와 애니 창비세계문학 12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백낙청.황정아 옮김 / 창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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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H. 로렌스는 좀 이상한 작가다. 어느 하나 읽으면서 독자를 열광시키지 못한다. 그냥 그렇다는 감상만 남기고 책꽂이에 꽂아 놓는데, 그런데 앙금이 많이 남는다. 대표적으로 나한테는 <아들과 연인>이 그랬다. 저 먼 시절, 소싯적에 소위 육체파 여배우 실비아 크리스텔이 타이틀 롤을 한 영화 <차타레 부인의 사랑>을 구경하기 남사스러워 영화 대신 소설책을 읽은 적이 있어, <아들과 연인> 역시 비슷한 분위기일 것이라 짐작했건만, 작가 로렌스가 출생한 탄광지역을 배경으로, 아들을 의지하고 살던 여인 앞에서 며느리자리가 들어오는 복잡한 심경을 그린 심리소설이었던 거다. 당연히 완고한 잉글랜드 중부의 탄광지역 사람들도 총출동해서 당시 지역사회를 반영하기도 했다. 하여간 다 읽고 그저 그렇다 싶은 작품, 정도로 그냥 넘어갔다. 근데 뭐가 씌웠는지 이어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 <무지개>,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일년에 한 편 씩을 독파해 나간다. 이번에 《패니와 애니》를 읽은 것은, 어떤 작가의 어떤 책하고 헷갈렸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읽었다고 지레짐작을 했다가, 초라한 DB를 검색해보니 읽지 않고 읽은 듯한 느낌만 가지고 지나쳤던 거였다. 로렌스가 그렇다. 강하게 흥미를 끌지는 못하지만 눈에 띄기만 하면 당연히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거. 하여간 이제 4년 만의 로렌스, 《패니와 애니》를 읽었고, 이걸로 판매중인 로렌스의 ‘소설 작품’은 완독을 하는 셈이다.


  1991년에 백낙청은 《목사의 딸들》이란 제목의 로렌스 단편선을 창비에서 찍는다. 이후 10년이 지난 2001년에 창비는 책의 5쇄를 찍을 생각을 했고, 말이 10년이지 10년 동안의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가격을 팍 올려야 하는데 5쇄를 찍으며 값을 올리려니 벼룩도 낯짝이 있지 소위 말하는 ‘개정판’ 즉, 중판을 찍으면서 정가를 8천원으로 책정했다. 이후 12년이 다시 흘러 2013년이 도래하고, “세계문학 독서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자” 창비 세계문학의 12번을 《목사의 딸들》로 하긴 조금 찔렸는지 8천원짜리 《목사의 딸들》에다가 황정아가 번역한 세 단편, <패니와 애니>, <눈먼 남자>, <해>를 포함시켜 1만3천원의 정가를 때린다. 22년 전에 번역한 작품에 단편 소설 세 편을 보태 가격을 63퍼센트 올렸다. 22년 전 번역, 63퍼센트 가격인상. 단편 세 작품 추가. 읽고 싶으면 사고, 비싸다 생각하면 읽지 말거나 도서관 가면 될 일. 책장사한테 뭐라할 일 아니다. 책장사한테 함부로 시비하지 마시라. 여차하면 코피 터진다.


  《패니와 애니》는 단편소설 일곱 편이 312쪽에 걸쳐 실려 있고, 역자후기, 작품해설 및 초판, 개정판, 개정증보판 서문과 작가연보, 발간사가 33쪽에 걸쳐 들어있다.

  일곱 편을 차례로 읽다보면 처음 네 편과 뒤에 황정아가 번역한 세 편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백낙청이 번역한 <국화 냄새>, <목사의 딸들>, <프로이센 장교>,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는 초기, 황정아 번역의 <패니와 애니>, <눈먼 남자>, <해>는 중기 작품이라고 한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국화 냄새>는 탄광 지하에서 갱이 무너졌지만 상처 없이 갇혀 질식해 죽은 남편, <목사의 딸들>은 하필이면 탄광촌에 박봉 봉급쟁이 국교회 신부로 부임했지만 노동계급인 탄부와 직공 가족들에겐 가오잡고 싶어하는 속물 신부 가족과 이에 반항하는 딸, <프로이센 장교>에서는 제대를 앞둔 당번병 병사를 괴롭히는 진급 포기한 늙은 대위,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에선 도기 제작소로 입양을 온 고아원 출신 양자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1차 세계대전 끝나고 집에 들러 벌어지는 사달 등 무대가 전부 탄광지역이나 공장지대 또는 그곳 출신이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가 태어난 곳이 저 먼 옛날 로빈후드가 리틀존과 함께 셔우드 숲에서 눈썹을 휘날리던 노팅엄의 탄광지대 출신이라 다분히, 특히 <국화냄새>와 <목사의 딸들>에선 이이의 초기 장편 <아들과 연인> 속에 하나의 에피소드로 쑥 집어넣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무지개>하고도 어울릴 듯하고. <당신이…>는 <사랑에 빠진 여인>하고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뭐 그렇게 이야기해도 크게 틀린 것 같지 않다. 아니, 그럴 듯하다.

  반면에 중기 단편들, 특히 <눈먼 남자>와 <해>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씨앗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작품들이 단편이라 줄거리를 여기에 소개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지만, <눈먼 남자>에서 눈이 먼 남편은 1차 세계대전 중 플랑드르 전투에서 두 눈을 실명하고 이마에 큰 상처를 입은 채 그레인지 저택으로 귀환한 모리스 워넘 씨고, <해>의 주인공 줄리엣은 의사가 옷을 모두 벗고 일광욕을 하라고 처방을 받아 아들과 함께 정말로 모든 옷을 벗은 채 일광욕을 해 피부가 가무잡잡하게 탄 상태다. 이이의 앞에 하루는 서른다섯 살 먹은 농부가 등장하고, 줄리엣의 벗은 몸을 정면에서 바라본 농부는 순간 줄리엣이 보기에도 확실하게 욕망이 솟구쳐 갈증이 가득한 눈길을 뚝뚝 흘리게 된다. 두 작품을 얼키설키 섞어 놓으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대강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즐길 만한 소설집이다. 이젠 로렌스의 매력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힌다. 그러고보니 주위에 로렌스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 내가 말하리라. 나는 D.H.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작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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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28 0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있는데 단편집인줄 몰랐어요. ㅎ 아들과 연인, 채털리 다 읽었는데 기억이 안나니 안읽은 거나 마찬가지같아요.ㅎㅎ
로렌스 좋으셨다니 저도 기대됩니다.

Falstaff 2022-02-28 10:36   좋아요 3 | URL
에휴, 댓글 많이 주셨는데, 이제야 놋북 열었습니다.
집에 있으니까요, 새벽에 일어나 책 잠깐 보다가 독후감 업로드하고, 아침 챙겨먹고, 먹은 거 설거지하고, 커피 내려 마시고, 일일 위생과 샤워하고, 건성피부라 보습제 바르고, 본격적으로 오전 책 읽고... PC 화면 여는 게 잘 안 되는군요. ㅋㅋㅋ

이 책 재미나요! 얼른 읽으시면 좋겠군요!!!

다락방 2022-02-28 09: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나를 만졌잖아요> 저 진짜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두 번 읽었어요! ㅎㅎ
<목사의 딸들>도 재미지고요. 하여튼 재미난 책입니다. 저는 <당신이 나를 만졌잖아요>가 <채털리 부인의 사랑>보다 재미있엇습니다. 후훗.

Falstaff 2022-02-28 10:40   좋아요 3 | URL
옙. <프로이센 장교>만 빼면 저도 다 좋았습니다. 프로이센...은 조금 지나면 금방 결론을 짐작할 수 있어서...
<채털리....>보다 더 재미있었다니, 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흠, 맞아요, 다락방님이 좋아하실 소잽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2-02-28 09: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D.H 로렌스의 작품에 하신 말씀 공감합니다. 이 작가 좋다! 막 이렇게는 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읽게 됩니다요. 전 죽음을 국화 냄새에 비유한 그 작품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Falstaff 2022-02-28 10:47   좋아요 4 | URL
그죠, 그죠. 로렌스 들어가는 사람들 좋아요! DH 로렌스, 제가 좋아하는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를 쓴 로렌스 더럴에다가 18세기의 문제적 작품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작가 로렌스 스턴까지!

DH의 시는 읽고 싶지 않고, 희곡 몇 개가 보이더라고요. 재미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한 권 정도는 읽어봐야 할 거 같아서 지금 망설이고 있답니다.

새파랑 2022-02-28 0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채털리 부인의 사랑 구매만 해놓고 못읽고 있는데 골드문트님의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급관심이 갑니다 ㅋ 이 책은 단편집이군요~! 장바구니에 일단 담아봅니다 ㅋ

Falstaff 2022-02-28 10:49   좋아요 4 | URL
오, <채털리...>가 대표작이예요! 채털리 부터 그냥 확 읽어버리세요!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02-28 1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채털리. 외설시비로 재판까지 했다는 얘기 듣고 고1 때 읽었는데^^ 엄마가 제 책장에 있는 책을 보시고 이거 야한 소설 아니냐고, 고등학생이 읽어도 되냐고 해서 당당히 “이건 고전소설이야”라고 했던 ㅋㅋ 특히, 비 오는 날 나체로 마구 뛰어다니고 이름으로 불러주는 그 장면은(기억이 맞나 모르겠지만..)!

Falstaff 2022-02-28 21:4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하여튼 재미있는 책입니다!
저도 오늘 알았는데, Mrs. Chatterley‘s Lover가 아니라 Lady Chatterley‘s Lover라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보다는 <레이디 체털리의 연인>이라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국이란 고리타분한 계급사회에서 Lady와 Mrs.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 아니겠습니까.

전 대놓고 읽어도 간섭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요.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02-28 21:55   좋아요 1 | URL
아 그러네요 레이디와 부인은 느낌이 다르네요^^ 엄마가 간섭을 하신 건 아니고 책을 읽으시고 고등학생이 읽기는 좀 거시기 하다 생각하신 듯요 ㅎㅎ

stella.K 2022-02-28 16: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채털리...>는 제가 중학교 때 읽었는데 국어 선생님한테 똭 걸렸는데
그냥 넘어가서 어리둥절했던 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읽을 땐 다소 지루했는데 읽고난 후 꽤 여운이 남고 몽황적인 문체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읽는다고 해 놓고 여태 못 읽고 있네요.
전작 완독 부럽습니다.ㅠㅋ

Falstaff 2022-02-28 21:43   좋아요 2 | URL
1. 국어 수업시간에 읽다가 걸렸는데 목숨을 부지하신 거예요? 우와.....
2. 선생께서 말만 들었지 어느 수준인지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시어, 야단을 칠까, 말까 순간적으로 괴민을 하신 거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ㅎ 저도 채털리는 두 번 읽었어요. 고딩 때 한 번, 다 늙어서 한 번. ^^;;

stella.K 2022-02-28 21:52   좋아요 1 | URL
아뇨. 읽으셨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저의 안목을 높이 사 주시더라구요.ㅎㅎ
그래서 정말 포르노와 에로스의 차이가 뭔지 분간이 안 가더라구요.
--->요기까지는 저의 책에도 다룬 내용이고
그 선생님 약간은 변태적이면서도 까탈스럽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여학교 남선생님들 대부분은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변태성을 드러내는 것 같더라구요. 그 시절 아주 괴로웠습니다요.ㅋㅋ

Falstaff 2022-02-28 22:13   좋아요 1 | URL
포르노와 에로스, 정확하게 분리하는 방법이 있습죠.
포르노는 아무리 강도가 세더라도, 3분 안쪽으로 지루해집니다. 오직 행위만 있기 때문에 도착자가 아니라면 단순 반복을 읽고/보고 감동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주 약한 사랑의 행위라도 금세 지루해지면 저는 포르노라고 단정해버립니다. 섹스가 아니어도 당연히 포르노일 수 있습지요.

독주가 2022-12-1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고 로렌스의 팬이 되었지요. 저평가된 작가중 하나임은 분명함!!

Falstaff 2022-12-17 17:32   좋아요 0 | URL
ㅎㅎㅎ 평가 여부는 다음으로 하고 그냥 내 마음에 들면 그게 대빵이잖아요! ^^
 
흰옷을 입은 여인 1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5
윌리엄 윌키 콜린스 지음, 이주현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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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윌키 콜린스는 1824년에 화가 윌리엄 콜린스와 헤리엇 게디스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1812년생인 찰스 디킨스와 띠동갑이 된다. 콜린스 생일이 1월 8일, 디킨스가 2월 7일, 둘 다 이른 생년으로 양띠 맞다. 난데없이 디킨스가 나오느냐고? 음. 성질이 급하시군.
  윌리엄의 화가 아버지도 윌리엄. 그래서 영국에서는 보통 윌리엄 콜린스는 화가 아버지, 윌키 콜린스는 작가 아들을 일컫는다. 윌리엄은 주로 풍경화를 그린 사람으로, 19세기 초의 유럽 화풍에 막강한 영향을 지닌 나라였던 이탈리아로 이주하는데 이때 윌키의 나이가 열두 살. 그리고 프랑스로 다시 건너간다. 윌키 콜린스는 이 때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습득할 기회를 얻고, <흰옷을 입은 여인> 안에서도 중요한 등장인물 두 명을 이탈리아 인으로 설정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아빠 친구가 운영하는 홍차 상회에 계산원으로 들어간다. 경리원라는 직업이 자신의 적성하고 도저히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지만 어쨌거나 아무리 어려도 살림이 우선이라서 무려 5년 동안 일을 한다. 얼마나 지겨웠을까. 고생했다. 그리고는 습작시대. 1847년 스물네 살 때, 아버지 윌리엄이 세상을 뜨자 <윌리엄 콜린스 회상록>을 써서 1848년 드디어 최초의 책을 발간한다. 그리고 1851년. 앞에서 얘기한 띠동갑 찰스 디킨스와 서로 친구를 먹기로 하고, 콜린스는 친구는 친군데 디킨스를 자신의 평생 멘토로 받들 것이라 각오를 다진다. 실제 음으로 양으로 디킨스의 신세를 지기도 했고.
  1850년대부터 60년대까지가 콜린스의 전성기. 1859년에 <흰옷을 입은 여인>과 1868년 <월장석 Moon Stone>을 발표해서 얼마나 히트를 쳤는지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세상사람들아, 잘 나갈 때 몸조심하자. 이제 몸과 마음이 편해져 실제로도 배가 나오고, 딱 그만큼 이마도 벗겨지고, 거리 지날 때마다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부터 사인 좀 해달라는 공세에 시달리기 시작할 때, 아뿔싸, 그만 아편에 손을 대 중독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1870년대부터 콜린스의 작품은 찾아 읽는 사람이 없으니, 딱 그만큼 작품의 품질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위키피디아에 쓰여있다. 오호라,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하여튼 나는 이 책이 재미있어서 올해 안에 또다른 대표작 <월장석>마저 읽기로 작정을 했다.

 

  19세기 작품답지 않게, <흰옷을 입은 여인>은 다수의 출연진이 자신이 관찰한 것, 쓴 일기, 보고서, 진술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대단히 복잡한 사건을 풀어야 한다. 물론 19세기 작품이라 21세기 독자들은 문제가 나올 때마다 풀이 방법까지는 모르더라도 원인 정도는 충분히 눈치 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미스터리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건, 당시 독자들 입장에서는 모든 굴곡들이 기상천외한 것들이었겠지만, 이제는 독자들이 추리한 것들이 딱딱 들어맞은 때마다 감각할 수 있는 자잘한 즐거움이 연속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빅토리아 시대 신사계급이 사용하던 허례가 가득한 수식어를 진짜 사람들 간의 대화도 조금 꼬리꼬리한 냄새가 나긴 하더라도 즐길 수 있고.

 

  중요한 사건은 1849년부터 1850년 사이에 벌어지고, 1851년에 최종 해결이 난다.
  먼저 ‘흰옷을 입은 여자’ 앤 캐서릭에 대하여. 1827년생이다. 교회 사환 캐서릭 씨의 외동딸. 여기서 ‘교회 사환’이란 단어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말로 사환이라고 번역했으나, 다 쓰러져가는 교회가 아니고 왠만한 규모의 교회에서 사환이라고 하는 직책은 교회가 주관하는 출생(세례), 혼인, 사망 등에 관한 등기 절차와 서류를 작성하고 보지하는 모든 책임을 지는 자리로, 적어도 변호사 사무소 서기 정도의 법적 지식과 능력, 여기에 종교적 믿음까지 있어야 했다. 캐서릭 씨가 줄곧 마음에 둔 하녀 처녀가 있었지만 여자는 소가 닭 보듯 해서 애간장만 태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처녀가 달려오더니 자진해서 자기하고 결혼하자고 하는 바람에 이게 웬 떡이야, 싶어서 혼인을 했다. 그렇게 낳은 딸이 바로 앤 캐서릭. 몇 년 후, 블랙워터 파크의 상속인이자 젊고 잘 생긴 준남작 퍼시벌 글라이드 경께서 시골까지 낚시를 와, 하라는 낚시질은 안 하고 한적한 교회의 제의실祭衣室 안에 들어가더니 캐서릭부인과 딱 둘이 바짝 붙어 앉아 속삭이는 걸 본 캐서릭 씨는 자기 딸이라고 주장하는 앤이 혼인하고 아홉 달이 안 된 상태에서 출생했다는 것까지 상기해내고는 집과 직장과 아내와 딸을 내팽개쳐 버린 채 아메리카로 건너가 버렸다. 과거의 교회 사환 캐서릭 씨는 미국에서 사업에 성공해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소설에선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제의실은 성공회 사제가 예배 옷으로 갈아 입기 위한 옷과 제기들을 보관하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출생, 혼인, 사망의 증거서류도 함께 보관하고 있어서 캐서릭 부인은 퍼시벌 경과 사업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 작가가 독자를 현혹시키려고 한 장치가 된다. 이 사업 또는 거래와 관련하여 캐서릭 부인은 퍼시벌 경의 치명적 약점을 틀어쥐게 되고 실수로 딸 앤에게도 퍼시벌 경은 자기 말 한 마디면 골로 갈 수 있다는 말을 해버린다. 퍼시벌 경은 자신의 ‘치명적’ 약점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앤을 사립 정신병원에 영원히 가둬버린다. 물론 캐서릭 부인에게는 무시무시한 협박(이란 채찍)과 충분한 생활비(라는 당근)를 동시에 제공하면서.
  앤이 정신병원에서 아주 모범적이고 얌전한 생활을 하며 스물두 살이 되었을 때, 평소 정숙한 환자라 특별한 경계를 하지 않는 것을 포착하고 어느 날 드디어 탈출을 해서 런던으로 가는 네거리의 빈 터에 몸을 숨겼다. 하필 이날 밤에 어머니가 계신 햄스테드에서 걸어서 런던으로 향하던 주인공 월터 하트라이트가 네거리를 지나게 되고, 앤이 월터에게 접근해 런던 가는 길을 물어 동행하게 된다. 월터는 반듯한 신사. 그리하여 아무 조건없이 한밤에 등장한 흰옷, 소복입은 여인을 보호하며 런던으로 입성하고, 마차를 태워 목적지까지 보내준다. 이어서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인을 찾는 마차가 도착해 앤의 행방을 수배하지만 못 들은 척해준다.

 

  하트라이트는 수채화가. 일찍이 수영도 못하는 이탈리아인 페스카 교수를 바다에서 살려준 적이 있어 이후 친하게 지냈는데, 별 수입이 없던 하트라이트에게 페스카가 컴벌랜드의 유서깊은 리머리지 가의 두 숙녀한테 미술 교습을 하는 개인교사로 추천을 해 그곳으로 가게 된다. 두 숙녀는 리머리지 가문의 한사 상속녀 로라 페어리 양과 로라의 씨다른 언니이자 영웅적 풍모에 냉철한 판단력, 행동력까지 지녔으나 거무잡잡한 피부색과 못생긴 외모를 가진 마리안 할콤 양. 사건이 진행될수록 마리안의 활약상이 대단해 하트라이트와 짝을 이루는 여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겠으나, 하트라이트는 19세기 소설의 주인공답게 우리의 마리안 대신 멍청한 대신 잘 하면 왕창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예쁜 로라를 사랑하게 된다. 몇 달 전 런던으로 향한 갈림길에서 한밤중에 만난 소복입은 여자와 놀랍게도 닮은 로라를. 그러나 지레짐작 마시라.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니까. 마리안의 가장 큰 소명은 씨 다른 동생 로라의 행복을 위해 이바지하는 것. 이이의 눈에 탁, 보니까 하트라이트가 겁없이 로라를 사랑하고, 로라도 이미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이 붙은 상태. 기겁을 해서 가정교사를 불러 격에 맞지 않는 사랑은 당장 그만두라 할 수밖에 없다. 마리안이 보기에도 하트라이트 만한 사람이 없지만 이게 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게다가 로라는 2년 전에 아버지가 숨을 거두면서 약혼을 해버린 거였으니.
  상대방은 블랙워터 파크의 상속인이자 완벽한 매너와 신사적 예절이 몸에 밴 마흔다섯 살의 남자 퍼시벌 글라이드 준남작. 그러나 이 독후감에서는 벌써 퍼시벌 경의 악덕에 관해 어느 정도 힌트를 남겨두었다. 퍼시벌은 원래부터 낭비벽이 말도 못해 그 넓은 토지를 다 저당 잡혀 먹고 알거지가 된 상태여서 로라와의 결혼을 통해 굴러들어올 연 3천 파운드의 수입과, 로라가 죽으면 받을 수 있는 3만 파운드의 현금에 눈독을 들인 상태.

 

  여기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인 포스코 백작. 우연히 백작부인은 로라 페어리의 막내 고모로, 로라가 죽기만 하면 자신 앞에 1만 파운드의 현금이 떨어진다는 공증문서가 있다. 하지만 1권에서의 포스코 백작은 큰 키에 당당한 체격, 무한정한 완력을 지녔으면서도 모든 예절에 깍듯하고 예술과 낭만을 숭상하는 멋쟁이 가운데 멋쟁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퍼시벌 같은 악당하고 친구가 됐는지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질 않지만, 완벽한 의상과 기호품과 숙소를 즐기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했을 것이니, 이제쯤 지갑이 비었을 거라는 건 처음부터 깔아 놓는 전제사항이다. 그러니 어리석고 성질 급한 친구 퍼시벌이 쥐뿔도 모르면서 로라와의 혼인을 위해 깝치다가 일을 망치지 않도록 옆에서 중요한 훈수를 두게 된다.
  결혼 후 6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글라이드의 블랙워터 파크 집구석은 불행한 가정의 유구한 전통, 불행은 거의 언제나 현금 흐름의 불통에서 시작한다는 전범을 따른다. 퍼시벌은 귀족은커녕 시중잡배도 그리하지 않을 것 같은 악다구니를 써서 로라로 하여금 자기가 상속받게 될 거액의 금액을 담보로 사채를 얻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고, 이를 막기 위한 마리안은 홀로 고군분투하는데, 갖은 예절과 사리에 밝은 포스코 백작 역시 마리안의 편을 들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 역시 잠깐 오해한다. 포스코 백작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중간은 생략하자. 결국 로라 페어리 글라이드는 심장병으로 사망진단을 받아 엄마 산소 옆에 묻히고, 앤 캐서릭은 다시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이렇게 정신없이 몰아칠 때, 우리의 주인공 하트라이트는 로라와의 사랑을 잊지못해 라틴아메리카 탐사에 지원했다가 1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서 귀국한다. 말을 들어보니 죽어도 잊지 못할 사랑, 로라 페어리 양이 주검이 되어 묻혀 있다고 해, 넋이라도 빌어줄 생각으로 페어리 양의 무덤가에 꽃 하나를 바치고 온갖 궁상을 떨며, 눈물도 한 방울 같이 떨어뜨리고 있을 때, 등 뒤에 두 여인이 짙은 베일을 쓴 채 나타난다. 누군가하면 마리안 할콤 양과 로라 글라이드 여사. 죽어 묘비도 세웠는데 이게 무슨 일? 죽은 지 삼일 만에 죽은자들 가운데 살아 나왔을까?
  앞으로 남은 건 하트라이트의 눈부신 활약으로 악당 퍼시벌을 징계하고, 퍼시벌보다 더 무서운 적인 이탈리아인 포스코 백작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
  미스터리 소설인만큼 하트라이트의 활약 속에 숨막힌 장면이 연출되고 드디어 결말로 치닫는데, 이 소설이 미스터리 소설인 관계로 양심상 여기서 더 이상 이야기를 보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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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2-25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심상 ㅎㅎ 아 그렇게 재밌다 하시니 담아갑니다 ㅜㅜ 2권 리뷰도 하실 거죠?

Falstaff 2022-02-25 09:40   좋아요 0 | URL
2권까지 다 포함한 내용입니다. ㅎㅎㅎ
근데요, 이게 19세기 작품이라서 그건 감안을 하셔야 합니다. 지금 읽으면 셜록 홈즈도 생각하는 게 좀 덜 샤프한 감도 들잖아요. 이 책도 그렇습니다.

독서괭 2022-02-25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남은 건~이 2권은 안 쓰셨다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Falstaff 2022-02-25 10:47   좋아요 1 | URL
그건 절정 부분을 일컫는 겁니다. 미스테리 소설에서 결말을 알려주면 야만인이죠. ㅋㅋㅋ

잠자냥 2022-02-25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단편집 현대문학 단편선으로 나와 있어요. 완독은 아직 못하고 몇몇 작품만 읽었는데 그것들도 재미납니다~ 라고 뽐뿌질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2-25 12:22   좋아요 1 | URL
저도 그걸 살까, 이걸 살까, 하다가 이게 대표작이라고들 해서 ㅎㅎㅎ
언젠가는 읽어야지요!!!

잠자냥 2022-02-25 12:43   좋아요 1 | URL
전 이걸 추가로 사겠습니다!

Falstaff 2022-02-25 13:24   좋아요 2 | URL
근데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성탄절이 12월 25일이잖아요.
사람이 배 속에서 열 달 동안 있잖아요.
12월 25일에서 열 달을 빼면 2월 25일, 오늘이잖아요.
오늘이 제 생일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노래 부르잖아요.

˝기쁘다 구주 배셨네!˝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에게 수태고지 한 날이 오늘... 맞나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2-02-25 17:35   좋아요 1 | URL
문트 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오늘 맛난 안주와 쐬주로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Falstaff 2022-02-25 18:4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ㅋㅋㅋㅋ
오늘 도미회에 쐬주 한 병, 딱 상 차려 주더라고요. 벌써 좀 취해서리.... ㅋㅋㅋㅋ

coolcat329 2022-02-25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골드문트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
도미회 최고죠!

Falstaff 2022-02-25 19:09   좋아요 0 | URL
ㅋㅋ 고맙습니다!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 시인선 28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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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숙. 1958년 개띠.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1988년 첫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출간. 기가 막히게 내 시선에서 비켜간 시인이다. 등단 당시 난 포천 이동 이리 노니는 골짜기에서 마빡에 작대기 세 개 달고 있었고, 첫 시집을 낼 때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밤마다 전력을 다해 교육세를 내고 있었다. 물론 황인숙이라는 이름은 들어봤다. 언제 한 번 읽어야지, 마음만 굳게 먹었을 뿐, 여간해 그렇게 되지 않던데, 그건 만 스무 살 되는 날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등단하는 소설가 김인숙과 이름이 같아 혼동한 것도 아주 작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한 번도 읽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읽어본 듯한 느낌이 드는 거.
  그리하여 오래 마음먹은 거에 비해, 그저 황인숙, 이름 하나 보고 시집이 눈에 띄어 서슴지 않고 사 읽었으니, 23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자명한 산책》. 그저 예사롭게 첫 번째 나오는 시를 읽기 시작했고, 시행이 더해가면서 허허허, 웃음이 나왔다. 시가 웃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시를 쓰는 시인을 어떻게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세월이 심술궂어서. 바로 이 시다.

 


  강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치 말자.


  *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차용.  (전문)

 


  시가 재미있다. 너 힘든 건 네가 알아서 처리하란 얘기. 시에서 말하는 이인칭 ‘당신’이 시인 자신이 될 수도 있으며, 시를 읽는 독자일 수도 있다는 역설적 함의도 상쾌하다. 그러나 역시 마지막 연이 기가 막힌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는, 강한 청유형 어미. 저 ‘말자’라는 말이 어떻게 ‘강한 청유형’이냐고? 그걸 꼭 말을 해야 아나. 나한테 말고 강에 가서 강한테 직접 말하라고 앞에서 명령을 한 바로 뒤에 나왔으니, 적어도 명령형이거나 강한 청유형이지. 또는, “이겠지.”
  <강>을 재미있게 읽어서 다른 시도 이것과 비슷하겠거니, 하는 마음이 있었다. 꼭 그럴 거야.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이후 게재한 시에 <강>처럼 조금은 거칠면서 속 시원하게 한 번 뒤집어주는 작품은 거의 없다. 바로 뒤에 나오는 <골목길>이후 상당한 분량이 시인이 길고양이 엄마로 사는 남산 언덕바지 해방촌의 풍경이다. 읽어보자.

 


  골목길

 


  울퉁불퉁
  동네 집 사이로 난
  좁은 계단 길에
  부러진 목발 기대앉아 있네요


  작은 목발이에요
  손잡이에 감긴 하얀 헝겊에
  뽀얗게 손때가 묻어 있어요
  참 작은 목발이에요
  부러졌네요

 

  지나가는 사람 드문
  울퉁불퉁 좁은 계단 길
  햇빛 한 줌, 잡풀 한 줌
  강아지 오줌 자국 한 줌. (전문)

 


  읽는 순간, 81번 시내버스 종점 해방촌의 저 까마득한 계단이 그려진다. 산동네 또는 달동네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세월이 지나 요즘에 그래도 조금 어색해진 곳. 시인은 제목을 <골목길>이라 해놓고, 골목이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이후는 “계단 길”이라 부르는 곳. 그곳엔 누군가 쓰다 버린 목발, 그에겐 매우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을 목발이 부러진 채 버려져 있기도 하고, 햇빛이 한 주먹 들어온 것처럼 잡풀도 나 있으며, 강아지 오줌 자국도 그려진 곳이다. 이런 장소를 함민복이 보았다면, 마치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 든 <금호동의 봄>에서처럼 계단이 시작하는 곳에 굵은 고무 파이프를 댄 똥차 이야기를 했음직하다.
  황인숙이 시집을 앞에서 인용한 <강>으로 시작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길고양이 돌보는 마음 약한 시인이다. 이이는 다른 사람들이 해대는 모진 소리를 견디기 힘들어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자신 역시 그런 언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마음 아파한다.

 


  모진 소리

 


  모진 소리를 들으면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더라도
  내 귀를 겨냥한 소리가 아니더라도
  모진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쩌엉한다.
  온몸이 쿡쿡 아파온다
  누군가의 온몸을
  가슴속부터 쩡 금가게 했을
  모진 소리

 

  나와 헤어져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내 모진 소리를 자꾸 생각했을
  내 모진 소리에 무수히 정 맞았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모진 소리,
  늑골에 정을 친다
  쩌어엉 세상에 금이 간다. (전문)

 


  이렇게 자잘한 삶이 시인의 주변에 널려 있다. 해방촌에 가려면 남대문에서 독일문화원 길, 소월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3호 터널 경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후암동 남동쪽 동네다. 즉 남산 아래. 그러니 조금만 올라가면 공원도 있겠지. 시절은 4월 중순이나 됐을까? 공원의 벚나무에서는 오소소,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벚꽃 반쯤 떨어지고

 


  한 소절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벚꽃나무 심장이
  구석구석 뛰고

  두근거림이 흩날리는
  공원 소롯길
  환하게 열린 배경을
  한 여인네가 틀어막고 있다
  엉덩이 옆에 놓인 배낭만 한
  온몸을 컴컴하게 웅크리고
  고단하고 옅은 잠에 들어 있다

 

  벚꽃 반쯤 떨어지고
  반쯤 나뭇가지에 멈추고. (전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청와대를 방문한 2019년 오전 열 시 반, 시청 네거리엔 모든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었고, 소공동 조선호텔 옆 지하도 계단실에서는 머리를 산발한 누더기의 투실투실한 여자가 때가 꼬질꼬질하게 덮인 얼굴을 드러낸 채 사지를 활짝 벌리고 잠에 빠져 있었다. 계단의 갈림길을 모두 차지한 여자를 피해 지나가야만 정문을 통과할 수 있는 조선호텔에서는 오랜 연애 끝에 초등학교 동창생 간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열렸는데, 만일 황인숙이 이 결혼식의 초대장을 받았다면, 지하도 갈림길에서 적어도 10초 동안은 이 노숙인을 바라보며 잠깐 머물지는 않았을까. 비록 공원 소롯길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던 작은 몸집의 여인네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작은, 바닥에 함부로 놓인 배낭 만큼 작은 몸집의 여자가 잠에 빠져 있을 때, 분홍 벚꽃은 반은 피고, 반은 지고.

그래, 사는 게 들어 있는 시가 좋다. 시의 잔 속에 작디작은 벚꽃이라도 한 송이 떠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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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2-24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9년 그 일을 기억하시는 분은 10초보다 더 오래 가지고 계시군요^^
벚꽃이 반쯤 피고 반쯤은 떨어진다는 구절이 굳이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마네요.

Falstaff 2022-02-24 09:0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날짜도 기억한답니다. 6월 30일.
마음에 든 시집입니다. 기억했다가 또 읽어봐야겠어요. ^^

수이 2022-02-24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숙이 언니 좋아요 ❤️

Falstaff 2022-02-24 13:45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하기로 했어요. ^^

프레이야 2022-02-24 1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 님의 시집 리뷰엔 뭔가가 있어요
뭐지뭐지 하다 좋아요 꾹.
이 언니, 고양이 줄 간식과 물을 늘 휴대하고 다니는 시인으로 유명하죠.
강, 자명한 산책, 오랜만에 호명되네요.
반쯤,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듣기 좋습니다.

Falstaff 2022-02-24 13:47   좋아요 0 | URL
에이, 있기는 뭐가 있습니까. 그저 아마추어의 감상만 있는 독후감입니다.
이제 봄이어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 영하 10도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이기는 동장군이 없는 법. 두고 보세요. 며칠만 있으면 산수유가 쪼그만 노랑대가리를 들이밀 겁니다.

stella.K 2022-02-2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런 일이 있었나요?
그 사진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나요?
사진 제목이 있을텐데. 보고 싶네요.

Falstaff 2022-02-24 15:27   좋아요 0 | URL
^^;; 긁적긁적.....

stella.K 2022-02-24 15:36   좋아요 0 | URL
헉, 뭐예요? 안 갈쳐주실 거예요?
쳇! 몰라욧!...엉엉~

Falstaff 2022-02-24 15:47   좋아요 0 | URL
제가 형광등이라서, 지금 어떤 장면을 보시고 사진이라 하실꼬.... 아이고, 머리 속에서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막 들리는 거 같습니다. ㅠㅠㅠㅠㅠㅠ

stella.K 2022-02-24 15:5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자책까지...
전 당연히 아시는 줄 알고.
저 트럼프 방한 때 때 꼬질꼬질한 여자가
대자로 자는 모습요.
저 h님 댓글에 쓰신 6월 30일이면 무슨 신문에 난 기산가요?
저야말로 덩달아 자갈이 굴러가는데요?ㅋㅋㅋㅋ

Falstaff 2022-02-24 16:07   좋아요 1 | URL
그거, 사진 아니고요, 제가 육안으로 직접 본 장면입니다.
퉁퉁 부은 얼굴이 그냥 꼬질꼬질하게 때가 묻은 정도를 넘어 손으로 긁으면 손톱 밑에 콜타르 같은 것이 까맣게 낄 거 같은 여자가 허리를 약 7cm 정도 내놓고 널브러져 지하도 중간 갈림길에서 자고 있었어요.
그날 결혼한 커플의 신부가 제 친구 문영이의 큰딸이었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22-02-24 16:22   좋아요 1 | URL
아하! 그렇군요.
제가 오독했군요.ㅠ
 

 

  1. 5년 전에 처음 읽은 <처녀들, 자살하다>

 

  2017년에 처음으로 제프리 유제니디스를 읽었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나왔다가 지금은 품절인 <처녀들, 자살하다>. 미시간 주의 도시에서 한 부르주아 가정의 다섯 자매가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쓴 것으로 유제니디스가 1993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소설이었다. 유제니디스는 첫 작품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등극하는 기쁨을 맛보았고, 두 개의 작지 않은 상을 받아 기쁨 두 배가 되었다가, 1999년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 감독에 의하여 영화로 만들어져 돈벼락까지 맞는 행운을 누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몰라도, 자살에 이르기까지 자살 당사자들이 얼마나 죽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무수하게 날렸던 구조 신호, S.O.S.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간절한 마음으로 보낸 모스 부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다고 읽히지 않아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2. 신화적 상상력을 보탠 <미들 섹스>

 

  

  시간이 지나 <처녀들…>의 감상이 거의 잊혀지고나서 두번째 작품 <미들 섹스>를 읽는다.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 본인이 그리스 이민 2세의 부계에서 태어나서 그랬는지 터키의 그리스인 주거지역 출생의 그리스 부계를 가진, 여자로 길러졌지만, 제5알파환원요소결핍증후군이란 긴 이름의 장애로 남성의 생식기가 몸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 남자로 판명이 된 칼 스테퍼니데스를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당시엔 그리스 땅이었지만 사실은 어엿한 터키의 영토에서 생활했던 칼의 조부모의 다분히 그리스 신화적 생활방식과 터키 탈출, 남성으로 태어났다가 여성으로 살고, 다시 남성으로 바뀌는 또 하나의 그리스 신화 티레시아스의 유방 이야기를 정말로 찰지게 써놓아 단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도 2003년에 퓰리처 상을 비롯해 굵직한 상들을 싹쓸이한다. 이런 흥미 요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표지 디자인 때문임직한데, 실제 재미보다 훨씬 저평가된 거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3.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지 않았더래요. <결혼이라는 소설>

 

  <미들 섹스> 이후에는 굳이 유제니디스를 검색해서 <결혼이라는 소설>을 찾아 읽었다. <처녀들…>은 1990년대에 1970년대를 이야기하는 형식이고 <결혼이라는…>은 1980년대 이야기를 2010년대까지 끌어간다. 1980년대에 찬란하게 피어났던 젊음의 삼각관계. 천재에 버금가는 총명한 청년 레너드 뱅크헤드가 지방대학이지만 전직 총장의 외동따님 매들린을 꼬드겨 결혼에 성공하지만, 매들린을 짝사랑하는 순정파 미첼이 이들을 지켜보는 이야기. 놀랍게도 <결혼이라는…>을 정의하자면, “21세기에 쓴 빅토리아 시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처음엔 미첼과 매들린이 친했으나 애초에 조울증 증세가 심각한 레너드의, 조증 상태가 충만할 대 뿜어져나오는 천재형 광기에 반한 매들린은 레너드를 선택했고, 결혼해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대신에 결혼이라는 지옥 또는 거미줄에 걸려버린 진퇴양난까지 유제니디스는 빠짐없이 기록했다. 이들의 결혼에 좌절까지는 모르겠고 뜻을 접은 미첼은 인도 콜카타까지 날아가 마더 테레사 팀에 합류해 자원봉사를 하게 되는데, 이게 유제니디스가 직접 경험한 바인 것도 재미있다.

 

 

  4. 단편은 이래야 하느니라, 《불평꾼들》

 

   단편집 《불평꾼들》은 원래 제목이 《신속한 고소 Fresh Complaint》로 작품집에 마지막으로 실린 단편의 제목이었는데, 가장 앞에 실린 작품의 제목을 우리말 제목으로 삼았다. 유제니디스가 1960년생. 작품활동을 30년이 훨씬 넘게 했건만 장편소설이 세 편이고 단편은 열여덟 편 가량 발표했다. 《신속한 고소 Fresh Complaint》에 실린 것을 포함해 모든 단편 소설 중 몇 편은 다음에 장편소설로 확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고, 책을 읽으면서 장편에 들어있는 에피소드를 발견하는 일도 있어 반갑기도 하다.
  책에 실린 열 편의 단편소설. 재미있다. 여든여덟 살의 치매 초기 할머니 델라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일흔 살 할머니 케시. 이들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읽는 두 여자 알래스카 인디언의 생존기인 <두 늙은 여인>을 매개로 어쨌든 삶을 현명하게 이어가는 따듯한 이야기인 표제작 <불평꾼>도 좋고, 콜카타에서 1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고 이제 시암만의 열대 섬에 휴양차 왔다가 이질에 걸려 박테리아를 굶겨 죽이기 위하여 단식을 시작해 드디어 완치됐다고 믿는 <결혼이라는…>의 주인공(가운데 한 명) 미첼도 재미있다. <미들 섹스>에서도 등장한 뉴욕의 대학병원 내분비 내과 전문의 루스 박사는 <신탁의 음부>에서 이름도 바꾸지 않고 다시 등장해 자신의 견해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학회의 마지막 순서로 공로패를 받고는 술에 취해 실수로, 실수인지 아닌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면서, 호텔 계단실 저 위에서 공로패를 떨어뜨려 산산이 박산을 내고 만다.
  <결혼이라는…>의 매들린처럼 틀림없이 불행해질 결혼은 저지르기 싫지만 아이는 하나 낳고 싶은 토마시나는 옛 애인들인 스튜 워즈워스, 짐 프리슨, 그리고 윌리 마스의 정액을, 새삼스레 섹스를 통하는 방법 말고, 그들의 재량에 의지해 소량 추출하여 잘 블랜딩한 다음 체내에 주입, 임신을 하기로 결정을 한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크게 파티를 연다. 섹스를 매개로 하지 않았고, 토마시나가 이미 자궁벽이 얇아질 대로 얇아진 40대 여성이란 점을 감안한 짐 프리슨의 아내는 기꺼이 남편의 정자를 공여하는데 미소를 지으며 동의해 벌써 몇 씨씨의 정자를 채취해 세면대 아래 작은 통에 보관중이다. 게다가 자기 남편의 아이일 확률도 33퍼센트에 지나지 않느냐는 말이지. 토마시나는 역시 40대가 되도록 자신과의 결혼을 기다리며 세월을 죽여나간 165센티미터의 키는 작지만 매력이 넘치는 윌리 마스에게도 방법을 상세히 설명을 하는데, 하, 이건 정말 재미난 이야기라서 결말을 알려드릴 수 없어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작품의 제목은 <베이스터>다.
  브라운 대학을 우등 졸업한 유제니디스가 다시 입학한 스탠퍼드 대학원의 문예창작 학과는 졸업 논문 대신 졸업 작품을 제출해 통과해야 하는 모양인데 이때 낸 것이 <변화무쌍한 뜰>이다. 이혼했거나 별거중인 마흔세 살 먹은 아일랜드 남자 숀이 로마에서 돌아온다. 공항에서 미국인 여성 여행객 두 명, 예쁘게 생긴 애니와 못생긴 마리아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온다. 그랬더니 집 앞에 궁상맞은 꼴로 앉아 있는 이혼한 친구 맬컴이 보인다. 숀은 애니 한 명하고만 집에 들고 싶으나 어쩔 수 없이 객식구 두 명과 함께 들어가보니, 텅 빈 냉장고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 애니 한 명이면 시내 음식점이라도 가겠지만 군식구 입도 입인지라 돈이 아까워 가지 못하는 숀. 뜰을 돌보는 건 집을 비운 아내가 하는 일인데 아내가 없으니 아주 엉망이다. 그런데도 거기서 숀은 먹거리, 아티초크를 찾았다. 그래 아티초크를 데쳐 요리를 하고, 식사 후에 주사위 게임을 하면서 못생긴 마리아와 맬컴이 자는 사이에 어떻게 한 번 해보려는 마음이 숀, 그리고 애니도 충만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면 그건 소설도 아니라서 일은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 거.
  이때 유제니디스가 다른 작품을 발표한 상태,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른바 등단을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면 초기 작품 열 편을 선정해 책을 만든 거 같다.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도시 취향이 맞다. 야생과 자연의 이야기보다 도시인들이 벌이는 발칙한 난장판을 훨씬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단편집 《불평꾼들》은 내 취향을 제대로 직격한다. 이것을 다시 이야기하면, 깨끗한 심성과 맑은 영혼을 가진 분들이 읽기엔 조금 난감할 여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떠랴.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덮으면 그만이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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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02-22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불평꾼들>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페이퍼 감사합니다.

Falstaff 2022-02-22 09:0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별 다섯 개짜리 독후감을 쓸까, 페이퍼를 쓸까 하다가 이쪽으로 왔습니다. 읽고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단발머리 2022-02-22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녀들, 자살하다> 읽어보려고요. 다 읽고 싶은데 속도가 따라주지 못해서 제일 끌리는 걸로 간신히 한 권 골랐습니다. 좋은 페이퍼 감사해요!

Falstaff 2022-02-22 10:56   좋아요 1 | URL
전 그 책이 유제니디스 가운데 별로 좋지 않았거든요. ㅎㅎㅎ 다 인연입지요.

새파랑 2022-02-22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불평꾼들은 읽어봐야 겠군요 ㅋ 품절은 못읽으니 😅 일단 단편읽고 장편을 도전해야 겠군요~!!

Falstaff 2022-02-22 10:57   좋아요 2 | URL
좋은 선택입니다. 오랜만에 만족한 단편집이었습니다.
아니네요! 서머싯 몸 단편선도 재미나게 읽었으면서...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2-02-22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어요.
천천히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작품에 입문해봐야겠어요^^

Falstaff 2022-02-22 10:57   좋아요 2 | URL
옙. 천천히 읽으셔요. 뭐든지 급하면 탈나더라고요. ^^

coolcat329 2022-02-22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또 하나의 훌륭한 단편을 추천하시네요~
골드문트님이 추천하지 않는 책은 저도 읽기 싫은데 ㅎ 이상하게 처녀들...은 땡깁니다.

Falstaff 2022-02-22 12:23   좋아요 2 | URL
ㅋㅋㅋ 땡기면 해치우셔야지요!

stella.K 2022-02-24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이거 읽어보고 싶긴한데
제가 말씀하시는 그꽈를 교집합적으로 좀 가지고 있어서
읽을 수 있을까 다소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근데 그게 의학적으로 가능한가요? 세 사람의 정자를
섞어서 주입한다는 게.ㅋㅋ
솔직히 표지가 책 선택을 좌우하기도 하죠.

Falstaff 2022-02-24 15:45   좋아요 1 | URL
거기서 딱 정자 한 개가 수정에 성공하는 거지요.
기발하지 않아요? 옛 애인 세 명을 섞어서 에라, 복불복이닷!
근데 거기서도 한 작자가 아주 골때린 방법...이라기보다 수작을 벌이는 것이 을매나 귀여운지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stella.K 2022-02-24 16:0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요 <불평꾼들>은
봐야겠군요.ㅋㅋ

Falstaff 2022-02-24 16:03   좋아요 0 | URL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