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1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5
윌리엄 윌키 콜린스 지음, 이주현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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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윌키 콜린스는 1824년에 화가 윌리엄 콜린스와 헤리엇 게디스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1812년생인 찰스 디킨스와 띠동갑이 된다. 콜린스 생일이 1월 8일, 디킨스가 2월 7일, 둘 다 이른 생년으로 양띠 맞다. 난데없이 디킨스가 나오느냐고? 음. 성질이 급하시군.
  윌리엄의 화가 아버지도 윌리엄. 그래서 영국에서는 보통 윌리엄 콜린스는 화가 아버지, 윌키 콜린스는 작가 아들을 일컫는다. 윌리엄은 주로 풍경화를 그린 사람으로, 19세기 초의 유럽 화풍에 막강한 영향을 지닌 나라였던 이탈리아로 이주하는데 이때 윌키의 나이가 열두 살. 그리고 프랑스로 다시 건너간다. 윌키 콜린스는 이 때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습득할 기회를 얻고, <흰옷을 입은 여인> 안에서도 중요한 등장인물 두 명을 이탈리아 인으로 설정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아빠 친구가 운영하는 홍차 상회에 계산원으로 들어간다. 경리원라는 직업이 자신의 적성하고 도저히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지만 어쨌거나 아무리 어려도 살림이 우선이라서 무려 5년 동안 일을 한다. 얼마나 지겨웠을까. 고생했다. 그리고는 습작시대. 1847년 스물네 살 때, 아버지 윌리엄이 세상을 뜨자 <윌리엄 콜린스 회상록>을 써서 1848년 드디어 최초의 책을 발간한다. 그리고 1851년. 앞에서 얘기한 띠동갑 찰스 디킨스와 서로 친구를 먹기로 하고, 콜린스는 친구는 친군데 디킨스를 자신의 평생 멘토로 받들 것이라 각오를 다진다. 실제 음으로 양으로 디킨스의 신세를 지기도 했고.
  1850년대부터 60년대까지가 콜린스의 전성기. 1859년에 <흰옷을 입은 여인>과 1868년 <월장석 Moon Stone>을 발표해서 얼마나 히트를 쳤는지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세상사람들아, 잘 나갈 때 몸조심하자. 이제 몸과 마음이 편해져 실제로도 배가 나오고, 딱 그만큼 이마도 벗겨지고, 거리 지날 때마다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부터 사인 좀 해달라는 공세에 시달리기 시작할 때, 아뿔싸, 그만 아편에 손을 대 중독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1870년대부터 콜린스의 작품은 찾아 읽는 사람이 없으니, 딱 그만큼 작품의 품질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위키피디아에 쓰여있다. 오호라,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하여튼 나는 이 책이 재미있어서 올해 안에 또다른 대표작 <월장석>마저 읽기로 작정을 했다.

 

  19세기 작품답지 않게, <흰옷을 입은 여인>은 다수의 출연진이 자신이 관찰한 것, 쓴 일기, 보고서, 진술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대단히 복잡한 사건을 풀어야 한다. 물론 19세기 작품이라 21세기 독자들은 문제가 나올 때마다 풀이 방법까지는 모르더라도 원인 정도는 충분히 눈치 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미스터리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건, 당시 독자들 입장에서는 모든 굴곡들이 기상천외한 것들이었겠지만, 이제는 독자들이 추리한 것들이 딱딱 들어맞은 때마다 감각할 수 있는 자잘한 즐거움이 연속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빅토리아 시대 신사계급이 사용하던 허례가 가득한 수식어를 진짜 사람들 간의 대화도 조금 꼬리꼬리한 냄새가 나긴 하더라도 즐길 수 있고.

 

  중요한 사건은 1849년부터 1850년 사이에 벌어지고, 1851년에 최종 해결이 난다.
  먼저 ‘흰옷을 입은 여자’ 앤 캐서릭에 대하여. 1827년생이다. 교회 사환 캐서릭 씨의 외동딸. 여기서 ‘교회 사환’이란 단어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말로 사환이라고 번역했으나, 다 쓰러져가는 교회가 아니고 왠만한 규모의 교회에서 사환이라고 하는 직책은 교회가 주관하는 출생(세례), 혼인, 사망 등에 관한 등기 절차와 서류를 작성하고 보지하는 모든 책임을 지는 자리로, 적어도 변호사 사무소 서기 정도의 법적 지식과 능력, 여기에 종교적 믿음까지 있어야 했다. 캐서릭 씨가 줄곧 마음에 둔 하녀 처녀가 있었지만 여자는 소가 닭 보듯 해서 애간장만 태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처녀가 달려오더니 자진해서 자기하고 결혼하자고 하는 바람에 이게 웬 떡이야, 싶어서 혼인을 했다. 그렇게 낳은 딸이 바로 앤 캐서릭. 몇 년 후, 블랙워터 파크의 상속인이자 젊고 잘 생긴 준남작 퍼시벌 글라이드 경께서 시골까지 낚시를 와, 하라는 낚시질은 안 하고 한적한 교회의 제의실祭衣室 안에 들어가더니 캐서릭부인과 딱 둘이 바짝 붙어 앉아 속삭이는 걸 본 캐서릭 씨는 자기 딸이라고 주장하는 앤이 혼인하고 아홉 달이 안 된 상태에서 출생했다는 것까지 상기해내고는 집과 직장과 아내와 딸을 내팽개쳐 버린 채 아메리카로 건너가 버렸다. 과거의 교회 사환 캐서릭 씨는 미국에서 사업에 성공해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소설에선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제의실은 성공회 사제가 예배 옷으로 갈아 입기 위한 옷과 제기들을 보관하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출생, 혼인, 사망의 증거서류도 함께 보관하고 있어서 캐서릭 부인은 퍼시벌 경과 사업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 작가가 독자를 현혹시키려고 한 장치가 된다. 이 사업 또는 거래와 관련하여 캐서릭 부인은 퍼시벌 경의 치명적 약점을 틀어쥐게 되고 실수로 딸 앤에게도 퍼시벌 경은 자기 말 한 마디면 골로 갈 수 있다는 말을 해버린다. 퍼시벌 경은 자신의 ‘치명적’ 약점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앤을 사립 정신병원에 영원히 가둬버린다. 물론 캐서릭 부인에게는 무시무시한 협박(이란 채찍)과 충분한 생활비(라는 당근)를 동시에 제공하면서.
  앤이 정신병원에서 아주 모범적이고 얌전한 생활을 하며 스물두 살이 되었을 때, 평소 정숙한 환자라 특별한 경계를 하지 않는 것을 포착하고 어느 날 드디어 탈출을 해서 런던으로 가는 네거리의 빈 터에 몸을 숨겼다. 하필 이날 밤에 어머니가 계신 햄스테드에서 걸어서 런던으로 향하던 주인공 월터 하트라이트가 네거리를 지나게 되고, 앤이 월터에게 접근해 런던 가는 길을 물어 동행하게 된다. 월터는 반듯한 신사. 그리하여 아무 조건없이 한밤에 등장한 흰옷, 소복입은 여인을 보호하며 런던으로 입성하고, 마차를 태워 목적지까지 보내준다. 이어서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인을 찾는 마차가 도착해 앤의 행방을 수배하지만 못 들은 척해준다.

 

  하트라이트는 수채화가. 일찍이 수영도 못하는 이탈리아인 페스카 교수를 바다에서 살려준 적이 있어 이후 친하게 지냈는데, 별 수입이 없던 하트라이트에게 페스카가 컴벌랜드의 유서깊은 리머리지 가의 두 숙녀한테 미술 교습을 하는 개인교사로 추천을 해 그곳으로 가게 된다. 두 숙녀는 리머리지 가문의 한사 상속녀 로라 페어리 양과 로라의 씨다른 언니이자 영웅적 풍모에 냉철한 판단력, 행동력까지 지녔으나 거무잡잡한 피부색과 못생긴 외모를 가진 마리안 할콤 양. 사건이 진행될수록 마리안의 활약상이 대단해 하트라이트와 짝을 이루는 여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겠으나, 하트라이트는 19세기 소설의 주인공답게 우리의 마리안 대신 멍청한 대신 잘 하면 왕창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예쁜 로라를 사랑하게 된다. 몇 달 전 런던으로 향한 갈림길에서 한밤중에 만난 소복입은 여자와 놀랍게도 닮은 로라를. 그러나 지레짐작 마시라.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니까. 마리안의 가장 큰 소명은 씨 다른 동생 로라의 행복을 위해 이바지하는 것. 이이의 눈에 탁, 보니까 하트라이트가 겁없이 로라를 사랑하고, 로라도 이미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이 붙은 상태. 기겁을 해서 가정교사를 불러 격에 맞지 않는 사랑은 당장 그만두라 할 수밖에 없다. 마리안이 보기에도 하트라이트 만한 사람이 없지만 이게 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게다가 로라는 2년 전에 아버지가 숨을 거두면서 약혼을 해버린 거였으니.
  상대방은 블랙워터 파크의 상속인이자 완벽한 매너와 신사적 예절이 몸에 밴 마흔다섯 살의 남자 퍼시벌 글라이드 준남작. 그러나 이 독후감에서는 벌써 퍼시벌 경의 악덕에 관해 어느 정도 힌트를 남겨두었다. 퍼시벌은 원래부터 낭비벽이 말도 못해 그 넓은 토지를 다 저당 잡혀 먹고 알거지가 된 상태여서 로라와의 결혼을 통해 굴러들어올 연 3천 파운드의 수입과, 로라가 죽으면 받을 수 있는 3만 파운드의 현금에 눈독을 들인 상태.

 

  여기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인 포스코 백작. 우연히 백작부인은 로라 페어리의 막내 고모로, 로라가 죽기만 하면 자신 앞에 1만 파운드의 현금이 떨어진다는 공증문서가 있다. 하지만 1권에서의 포스코 백작은 큰 키에 당당한 체격, 무한정한 완력을 지녔으면서도 모든 예절에 깍듯하고 예술과 낭만을 숭상하는 멋쟁이 가운데 멋쟁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퍼시벌 같은 악당하고 친구가 됐는지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질 않지만, 완벽한 의상과 기호품과 숙소를 즐기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했을 것이니, 이제쯤 지갑이 비었을 거라는 건 처음부터 깔아 놓는 전제사항이다. 그러니 어리석고 성질 급한 친구 퍼시벌이 쥐뿔도 모르면서 로라와의 혼인을 위해 깝치다가 일을 망치지 않도록 옆에서 중요한 훈수를 두게 된다.
  결혼 후 6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글라이드의 블랙워터 파크 집구석은 불행한 가정의 유구한 전통, 불행은 거의 언제나 현금 흐름의 불통에서 시작한다는 전범을 따른다. 퍼시벌은 귀족은커녕 시중잡배도 그리하지 않을 것 같은 악다구니를 써서 로라로 하여금 자기가 상속받게 될 거액의 금액을 담보로 사채를 얻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고, 이를 막기 위한 마리안은 홀로 고군분투하는데, 갖은 예절과 사리에 밝은 포스코 백작 역시 마리안의 편을 들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 역시 잠깐 오해한다. 포스코 백작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중간은 생략하자. 결국 로라 페어리 글라이드는 심장병으로 사망진단을 받아 엄마 산소 옆에 묻히고, 앤 캐서릭은 다시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이렇게 정신없이 몰아칠 때, 우리의 주인공 하트라이트는 로라와의 사랑을 잊지못해 라틴아메리카 탐사에 지원했다가 1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서 귀국한다. 말을 들어보니 죽어도 잊지 못할 사랑, 로라 페어리 양이 주검이 되어 묻혀 있다고 해, 넋이라도 빌어줄 생각으로 페어리 양의 무덤가에 꽃 하나를 바치고 온갖 궁상을 떨며, 눈물도 한 방울 같이 떨어뜨리고 있을 때, 등 뒤에 두 여인이 짙은 베일을 쓴 채 나타난다. 누군가하면 마리안 할콤 양과 로라 글라이드 여사. 죽어 묘비도 세웠는데 이게 무슨 일? 죽은 지 삼일 만에 죽은자들 가운데 살아 나왔을까?
  앞으로 남은 건 하트라이트의 눈부신 활약으로 악당 퍼시벌을 징계하고, 퍼시벌보다 더 무서운 적인 이탈리아인 포스코 백작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
  미스터리 소설인만큼 하트라이트의 활약 속에 숨막힌 장면이 연출되고 드디어 결말로 치닫는데, 이 소설이 미스터리 소설인 관계로 양심상 여기서 더 이상 이야기를 보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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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2-25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심상 ㅎㅎ 아 그렇게 재밌다 하시니 담아갑니다 ㅜㅜ 2권 리뷰도 하실 거죠?

Falstaff 2022-02-25 09:40   좋아요 0 | URL
2권까지 다 포함한 내용입니다. ㅎㅎㅎ
근데요, 이게 19세기 작품이라서 그건 감안을 하셔야 합니다. 지금 읽으면 셜록 홈즈도 생각하는 게 좀 덜 샤프한 감도 들잖아요. 이 책도 그렇습니다.

독서괭 2022-02-25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남은 건~이 2권은 안 쓰셨다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Falstaff 2022-02-25 10:47   좋아요 1 | URL
그건 절정 부분을 일컫는 겁니다. 미스테리 소설에서 결말을 알려주면 야만인이죠. ㅋㅋㅋ

잠자냥 2022-02-25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단편집 현대문학 단편선으로 나와 있어요. 완독은 아직 못하고 몇몇 작품만 읽었는데 그것들도 재미납니다~ 라고 뽐뿌질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2-25 12:22   좋아요 1 | URL
저도 그걸 살까, 이걸 살까, 하다가 이게 대표작이라고들 해서 ㅎㅎㅎ
언젠가는 읽어야지요!!!

잠자냥 2022-02-25 12:43   좋아요 1 | URL
전 이걸 추가로 사겠습니다!

Falstaff 2022-02-25 13:24   좋아요 2 | URL
근데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성탄절이 12월 25일이잖아요.
사람이 배 속에서 열 달 동안 있잖아요.
12월 25일에서 열 달을 빼면 2월 25일, 오늘이잖아요.
오늘이 제 생일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노래 부르잖아요.

˝기쁘다 구주 배셨네!˝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에게 수태고지 한 날이 오늘... 맞나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2-02-25 17:35   좋아요 1 | URL
문트 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오늘 맛난 안주와 쐬주로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Falstaff 2022-02-25 18:4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ㅋㅋㅋㅋ
오늘 도미회에 쐬주 한 병, 딱 상 차려 주더라고요. 벌써 좀 취해서리.... ㅋㅋㅋㅋ

coolcat329 2022-02-25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골드문트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
도미회 최고죠!

Falstaff 2022-02-25 19:09   좋아요 0 | URL
ㅋㅋ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