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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5
리카르도 피글리아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마라도나와 돈크라이포미~ 밖에 아는 게 없는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 시절에 출간된 이
작품은 당시의 폭압적 상황 속에서 살았던 외삼촌을 찾아가는 여정과 그 주변인물들의 이
야기라고 할 수도 있는 1부와,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쏟아내는 아르헨티나 문학에
대한 그럴듯한 진짜같은 문학담론이 백미라고 할 수 있는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좀 지루했다. 또 포기할 뻔 했다는 뜻이다. 겨우겨우 1부를 읽고 이걸 더 읽어야하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포기했으면 큰일날뻔한 작품이었다.
히틀러, 카프카, 비트겐슈타인, 제임스 조이스 등의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2부는 정말
압도적이다. 내용은 당연히 그럴듯한 '뻥'이지만 이거 정말 그럴듯한데? 할만큼 귀가 솔깃
눈이 번쩍하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들이지만 보르헤스,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 등을 읽어
보고싶게 하고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는것 같다. 그리고 아를트와 보르헤스를 비교하고 아를
트의 문학이 왜 현대적인것인지 설명하는 렌시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독서의 재미를 선사한다고 본다.
한편으로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것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의지는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으며 그와 반대로 하찮은 우연으로 인한 인간의 삶은 인간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떻게 흘러
가는 것인지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패자'들에게 심취하게 됐다는 타르텝스키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니 좀많이 거슬리는 건
간접화법의 문장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그가 말했다,> 같은 화자를 언급한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읽는 리듬을 딱딱 끊는지 정말 짜증이 날 정도다. 이게 원래 작가가 그렇게 썼겠지만
번역상 의도 또는 번역의 한계라면 정말 안하니만 못한 부분인것 같고 원본도 이렇다면 아르헨티나어
특유의 말버릇인건가 싶기도 하다. 이런 부분은 번역자도 여실히 느꼈을 텐데 이정도는 부드럽게
수정해줘도 괜찮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부분을 수정한다고 전체 작품의 의도가 훼손되는 건
아닌것 같다. 정말 짜증 제대로였다는!!!
그리고 필요 이상의 각주. 어떤 각주는 꼭 필요한 것도 많았으나 단순 사실의 설명에 그친 각주 또한
많아서 이 역시 읽는 리듬을 따박따박 깨고 있다는 사실.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러하지만, 남미 소설도 메모를 해가면서 읽어가야 한다.
특히나 등장인물이 많고 혈연으로 엮여있거나 하면 가계도를 그려가야 한다. 저 유명한
『백년 동안의 고독』의 가계도를 생각하면 쥐난다... 다행히 등장인물은 그리 많이 나오
지 않으셨도다...
솔직히, 이 작품을 제대로 읽어낸건가 싶다. 남미 소설은 각 나라의 문화 역사 경제 등이
너무 낯설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라면 뭔가 가까운게 아닌가 싶지만 남미는...
이런저런 소개와 귀동냥으로 남미 작가들의 작품을 몇 읽기도 했지만 임팩트는 미미했고
역시 남미쪽은 내게 맞지 않아, 하는 부정적 이미지만 쌓여갔다.
마르케스, 보르헤스 같은 작가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을것 같기도 하다. 몇번 시도
했으나 번번히 실패. =.=
리카르도 피글리아 역시 남미 작가여서 과연 내가 읽어낼 수 있을까 이번에도 포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집어들었던 게 사실이다.
읽어 볼 마음이 생겼다면 1부는 진득하니 읽어나가시라. 2부를 기대하면서. 실존했던 작가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