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김도언 지음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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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잘것 없고 지리멸렬한 인생들이 뒷골목의 돌맹이처럼 서로 부대끼며 뒹군다.
결코 '남'들처럼 행복할 수 없는 그저그런 인생들 말이다.

 
... 선재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황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래, 도대체 걱정할 게 뭐란 말인가. 이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사고 남들처럼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인가. 일요일 오전에는 집 앞에서 세차를 하고, 새로 개봉한
영화도 보고 동물원에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예쁜 여자도 만나는 것이다. 아무것도 책임질 게 없는 삶을
바라고 아무것도 빚진 게 없는 삶을 좇으면 되지 않겠는가. 가혹한 운명에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를
구속하지만 않는다면 나라고 행복하게 살지 못할 이유가 뭐냔 말이다. -p138

 
라고 해봤자 그렇게는 안되는 인생들의 이야기를
여느 소설과는 다르게 신(scene)번호와 공간 안에 이야기를 짧게 가두고 짧은 씬을 연달아
이어붙이는 것에서 오는 속도감은 자칫 늘어질 법한 일상풍경들을 긴장케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런 식으로 배치되지 않았다면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와는 상관없이 지루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았을까 싶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때문에 졸지에 급부상한 몇 권의 책 가운데
한권으로 알게 되어 구입했다. 다시 졸지에, 막 팔려나가는 책 때문에 가욋돈을 만질수
있었다는 저자의 블로그 글도 볼 수 있었다. 살다보면 이런 요행수도 있어야 살맛도 나겠지만
등장 인물들에게 이런 행운을 기대하긴 요원할 듯 싶다.

 
꽉 짜여진 거미줄 같은 틀 안에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들어앉아 있는 모습은 어찌보면 너무 짝이 딱
들어맞게 해놓은 건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으나 그것이 단점으로 읽히진 않을것 같다. 선재의 일기가
나오면 소라의 일기도 따라 나오는 걸 보면 작가의 의도 자체가 패牌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소설이라는 것이 원래 보잘것 없는 이야기나부랭이 이긴 하지만 읽어나가면서도 참 (답답이 아니라)
탑탑하다는 생각에 책을 들었다놨다... 했다. 그것은 이야기 속 인생들이 결국 현실이기 때문이겠지.
재미있지도 유쾌하지도 않는 걸 일부러 찾아 읽고 뭔가를 걸고 쓰는 사람들로 인해 불편한 사실들이
한 꺼풀씩 들춰지지만, 온 껍질을 뒤집어까발린다해도 여전히 불편한 건 불편한채 제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다. 

 
가득한 햇볕만큼이나 행인들로 붐비는 보도를 따라 걷는 어떤 날은, 뒷모습을 보이는 누군가 보다
앞서기 위해 좀 더 빨리 걸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마음은 생각을 따르지 못해서 결국
여전히 느릿느릿 걸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생각이나 마음까지 바뀌었다고 해도 마음 속에 또다른
마음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지 걸음 마저 무겁다.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뻔히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면서 흘러간다. 저 앞이 낭떠러지 라는 걸
알면서도 앞으로 갈수록 빨라지는 물살을 따라 갈 수밖에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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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조건 - 중국통 김영진 교수가 말하는 온고지신 리더십과 인재론
김영진 지음 / 문학마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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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전속이야기들의나열일뿐새로운해석이나차별화된목소리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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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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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문장에서 묻어나는 건 여전히 허수경의 시지만 그 문장과 문장의
행간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 타국의 들판 유적지에서 바람처럼
살아온 지친 이의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들판에서 발굴
캠프를 뒤로 하고 웅얼웅얼 바람 속에 흘려버리고 싶은 주술 같은 이야길
하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 이제는 너무 오래 그리고 멀리 가버린
건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고 보면 억측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스스로 유배시켜버린 것에 갇힌 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카라쿨양의 에세이」를 읽어가면서는 서걱, 가슴 한켠이 베이는 것 같았고
책장 귀퉁이를 접어놓은 시편들에선 여전히 허수경이구나라고는 했지만 내리
자마자 녹아 없어지는 서글픈 봄날의 눈 같은 말들이 빼곡히 시집 안에 옹송그
리고 있어서 편치 않은 마음 가득하다.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뭔가 위안거리를 찾고 있던 내 기대가 빗나가면서 든
착각일 것이다.


이번 문학동네의 시인선 시집의 제본방식과 디자인 편집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실로 꿰맨 방식 때문인지 책장을 넘기거나 움켜쥘 때마다 나는 찍찍- 소리는
귀에 거슬리고 표지 종이는 시집을 움켜쥐고 읽노라면 자꾸만 주름이 잡혀
또 신경 쓰이고 종이 재질 때문인지 원래 의도가 그런건지 인쇄된 활자들은
번진 것 같아 책이 참 싸구려 같다. 본문 종이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가격은 8천원이다.
제목을 이루는 서체는 비만한 돼지처럼 왜 그렇게 두껍고 뭉툭한지, 詩라는
것이 그렇게 살이 디룩디룩 찐 그런 글들이던가 오히려 그 극단의 반대에
서 있어도 모자랄 판에. 시 본문을 이루는 서체는 제목과는 극단적으로
다르게 얇고 작아 희미해서 매끄럽게 읽기에 부족하다
요즘 시는 행이 길기 때문에 행갈이를 하지 않고 시읽기를 해주겠다며
함께 특별판까지 냈는데 그따위 쓰잘대기 없는 짓거리 보다 기본에 충실한
편집과 디자인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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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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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밝고 건강하고 건전한 가족 안에는 별로 이야깃 거리들이 없다. 불온하고 기이하고 불행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만이 이야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저주스런 원동력이 있다. 그 구성원들의

동의 따위는 불필요하다.




어떻게보면 '가족'소설만큼 뻔한 소설도 없다, 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라고 나는 단정한 사람이다.

개인과 개인이라는 타자가 만나 생물학적인 결합으로 또 하나의 생물을 생산해 내는 합의적인

2인의 공동체가 '가족'이라는 괴물의 다른 이름과 다르지 않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동의 가면을

부여받아 뒤집어 쓰게되면 세상 그 어떠한 괴물과도 맞설수 있다. 마치 영화 '괴물'에서 괴물과

맞서는 그 가족들처럼.




여기에 기이하면서도 불가사이한 한 가족이 등장한다. 불과 물, 소금과 금 그리고 공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한 가족의 구성원이 맞나싶을만큼 가족이라는 조직에 구속되어 있다는

끈끈함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금은 어거지스럽게 상생과 상극인 원소들의 배치를 가족이라는

집합체 안에 장치한 작가 의도의 적나라함이 쉽게 노출 된다.




7-80년대 가난에 얽힌 가족사에 관한 소설이나 한때 '엄마'에 관한 영화나 소설의 리얼리티를 생각했다면

즉시 이 소설에 관한 관심을 티끌 만큼도 남기지 말고 버리길 바란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이라는 호칭은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신 그자리를 난데없이

불이라거나 물 아니면 공기나 금과 같은 물질들의 호칭이 난무한다. 다분히 의도한 바다. 어찌보면

이것은 위험한 의도일 수 있다. 물과 불을 여자와 남자 아내와 남편으로 배치했을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뻔할수 있다. 그 위험을 알면서도 써먹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자신감일까?

여하튼 시종일관 물질(또는 원소)의 이미지들이 곧 이야기가 된다. 잘 버무리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라 한다면

지루하지 않게 요소요소 뒤섞어가며 이야기는 흘러 간다할 수 있겠다.

이 이상한 가족 이야기의 끝은 도대체 어떻게되는거냐 싶어 빨리 마지막 장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작가가 고백한대로 바슐라르의 사유들이 소설의 일정 부분 동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특별한 서사보다

물을 토대로 한 각 물질의 '이미지 전개'가 이 소설이다라고 한다면 작가의 노력에 너무 가혹한 말일까.




이 책을 처음 펼쳐보면서 스물한 가지의 원소들이 나열되는 프리모 레비의『주기율표』가 떠올랐지만

그런 생각은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주기율표』가 차가운 이성적 소설이라면 『물』은 뜨거운 감성적 소설이다.




물에 녹으면 사라지는 소금이라거나 물에서 나온 소금, 소금을 더욱 소금 답게하는 것은 불이라거나 또는

뉘앙스 적인 차원에서 그냥 '금'과 소'금'이라고 하는 두 물질의 극명한 차이점을 아주 적절하게 배치한 점 등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는 장치와 비현실적인 공간의 등장은 읽는 재미를 분명하게 주는 것은 틀림없다.

이것에서 만족하는 독자라면 후한 점수를 줄 것이요 그 이상을 원했던 독자라면 뭔가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까 싶다.

궁극적으로 김숨이 이 소설을 쓴 목적(내지는 이유)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 자체가 요즘 시대엔 촌스러운 걸까. =.=




여하튼 『물』이전의 작품은 어떨까 싶고, 그 이야기들 속에는 또 어떤 기발함을 동원했을지 궁금하고 앞으로

지어낼 그의 이야기에 기대를 해본다.







사족을 달자면, 본문 편집을 함에 있어 너무 벙벙한 행간과 들여 쓰기 그리고 필요이상의 행갈이로 인해

작품이 가지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것은 출판사 측의 책의 볼륨감 키우기나 아니면 편집상

종이의 대수 맞추기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아쉬운 점이다. 종이도 좀 두꺼운 게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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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지음 / 새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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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거나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설가들의 에세이 보다 시인들의 에세이가
더 읽는 맛이 난다. 총천연색 같은 우리말의 '결'을 시인들의 산문을 읽어가노라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김선우의 산문들을 읽어봤던터라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나갔으나 이전 산문들과는 좀 다른 어조랄까, 적잖은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가
득했다. 카랑카랑한 외침과 같은 목소리에 놀랐고 그가 바라는 일들이 현실에서 그
저 꿈에 머물면 어쩌나 하는 데서 안타까웠다. 사실 그의 바람은 많은 우리의 바람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희망이란 것은 언제나 '거리'와 함께 찾아온다. 지금 당장 여기에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 아닐것이고 완성됐다면 그것은 희망의 과거형일 것이다.
가망 없는 희망인지 지금 현재에선 모르지만 시인이여 계속 당신의 희망을 노래해 달라.

 
한편, 그의 말에서 엿보이는 그의 생활을 통해 오만하고 무관심한 우리들의 생활을
돌이켜 본다. 너무나 당연시 하는 모든 의식주의 문제 같은 것들. 도시생활에선 결코
체감하지 못하기에 너무 깊이 망각하는 문제들. 그것에서 오는 오만과 방종.
한번쯤 돌이켜 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을듯 싶다. 

 
그럴때마다 이 도시생활이란 것이, 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수도권에 몰려
사는 대한민국의 도시생활이란 것이, 정말로 역겨워지지만 그 역겨움 조차 중독된
도시사람들 가운데 나도 섞여 살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런 하루가 무섭도록 무심하게 지나가는데 속수무책이란 것. 과연 서울을 떠날수
없을것인가. 고민에 대한 대답은 뻔하게 나와 있지만 지금까지도 눌러 살고 있는 것.
훌쩍 서울을 떠나 강원도로 어디로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더욱
자신이 멀어만 지는구나 싶다.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는데 왜 유독 서울인지. 다 늙어서 귀농이랍시고 어디 시골로 가면
뭐하나 싶기도 하다. 갈려면 이정도 나이에 가야 뭘 배워서 일구든가 하지.
책 한권 읽고 별소릴 다.

 
흥미진진하게 읽어갔던
제일 마지막 꼭지와 관련 기사를 링크한다

http://www.cauon.net/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6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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