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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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자와 글읽기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라고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서양 고전을 기반으로한 다양한 관련 이야기들이다
비유 가득한 문장들을 읽어나가는 건 때론 고역 그 고역 안에서 빛을 발하는 문장을 만나는 건 그만큼의 기쁨이기도 하다만 어쩌면 겉핥기에 그칠 수밖에 없나 싶다

로마인들이 도둑을 에둘러 표현할때 fur 라고 했다는데 책 읽는 행위를 훔치는 것으로 비유한 것은 타당하게 읽힌다

이 책은 대략 15~16권으로 예상되는 ‘마지막 왕국‘ 시리즈의 11번째 저작물이다 적지 않은 키냐르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 시리즈가 다 씌어질 지도 미지수 라는 번역자의 말도 맞고 그리고 국내 완역은 더더욱 미지수로 보인다

제1장
지상 낙원으로의 여행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의 세계가 좋다. 어느 책에서나 형성되어 떠오르며 퍼지는 구름 속에 있는 게 좋다. 계속 책을 읽는 게 좋다. 책의 가벼운 무게와 부피가 손바닥에 느껴지면 흥분된다. 책의 침묵 속에서, 시선 아래 펼쳐지는 긴 문장 속에서 늙어가는 게 좋다. 책이란 세상에서 동떨어졌으나 세상에 면한, 그럼에도 전혀 개입할 수 없는 놀라운 기슭이다. 오직 책을 읽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고독한 노래이다. 책 외적인 것의 부재, 떠들썩한 소리며 탄식이나 함성의 전적인 부재, 인간의 모음 발성 및 군상에서 최대한의 격리, 그리하여 책은 세상이 출현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된 심오한 음악을 허락하여 불러들인다.
9p

내게 바다에 대해 말하지 말라, 뛰어들라.
내게 산에 대해 말하지 말라, 올라가라.
내게 이 책에 대해 말하지 말라, 읽어라, 고개를 심연으로 더 멀리 내밀어 영혼이 사라지게 하라.
24p

나는 혼자 어둡고 고요한 집에 들어갔지. 지금 혼자 죽어가듯이, 책을 읽느라 평생 혼자였던 것 같네.
33

오직 ‘비非독자‘의 눈에만 글자가 살아 있는 생명으로 보이지 않는다
59

문학은 와해된, 가로막힌, 뒤죽박죽인, 침해당한, 신음하는 삶을 그러모아 이야기하는 진짜 삶이다.
59

기이한 무위 속에서 문인은 무한한 무언가에 몰입한다
100

손가락들을 그러모아 움켜 쥔 만년필이라는 조용하고 기이한 배꼽
검은 베이클라이트 재질의 작은 관은 사라진 무엇에서 그것이 부재하는 글자로 옮겨간다
그런 것이 사라진 대상과의 접촉이다
사랑, 침묵, 글은 현실세계에서 접촉을 필요로 한다
102

심지어 죽음으로 몸을 던지는 자 안에도 돌진하는 도약이 있다
123

어느 날 출생으로 침몰하여 다시 지상에 귀속되기
152

밤마다 나는 침묵 속에서 꿈을 꾼다.
새벽마다 나는 침묵 속에서 몽상에 잠긴다.
이것이 나의 위험한 삶이다.
157

자기 ‘dans(안)‘에서 취하기가 생각하기다. 생각은 내포하기다. 내포는 수태하기다. 수태는 존재를 시작하기다. 존재의 시작은 출생하기다. 출생은 시작을 이어가기다. 글쓰기는 시작의 시작을 거듭하기다.
170

한평생을 완전히 책 읽는 데 바치면 위험한 결과가 초래 된다.
유배. 침묵. 은둔. 사직. 이혼. 자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외로움. 모든 낮뿐만 아니라 밤도, 모든 꿈도, 심지어 글 쓰는 자의 성생활도, 그의 죽음마저도 연루된다.
189

이 세상에 유령 하나를 남기기는 죽기이다
205

알라딘 최상 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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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5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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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기전 잡썰
곰브로비치 읽기는 코스모스가 두 번째다
국내에 소개된 네 작품

페르디두르케(1937) 민음사 2004
포르노그라피아(1960) 민음사 2004
이보나,부르군드의 공주...(2012) 워크룸 2015
코스모스(1965) 민음사 2015

언젠가 번역투 때문에 읽다 집어던진 희곡집 이보나, 부르군... 으로 먼저 만난 곰브로비치
당시의 어처구니 없던 기억이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어떤 기대감이 늘 있었던 것도 사실

잠깐 언급하자면 '오페레타'에서
주인공이 'R' 발음을 프랑스식 'H'와 비슷하게 한다해서 원어 발음 특징을 살리기 위해 문맥을 어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의 'ㄹ'을 'ㅎ'으로 표기 한것, 이를테면 
소매흘 바호잡고 오흔쪽 어깨 아래흘
(소매를 바로잡고 오른쪽 어깨 아래를)
여허분, 우히의 소중하신(여러분 우리의...)
바호 다흠 아닌 거장 피오흐 선생
(바로 다름 아닌 거장 피오르 선생)
이라 번역 표기한 것.
굳이 이렇게 번역한들 원어 느낌을 살릴수도 없다고 보여서 출판사의 과한 오지랖이라고 본다
당시엔 몰랐지만 번역자가 무려 정보라 작가였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후보에 오른

한편 "코스모스"의 번역자는 우리말로 옮길수 없는 원어상의 말버릇을 각주를 통해 설명하는 것으로 처리했다
'어디서드~은'139p 각주 30 참조

2 처음 읽는 곰브로비치의 소설과 문장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어나갈 때 출간 순으로 읽는게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긴하다만 꼭 순서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튼 제일 마지막 작품부터 읽게 되긴 했다 아쉽게도 곰브로비치는 소설로는 장편소설 4권을 남겼을 뿐 다작을 한 작가는 아니었고 다소 이른 나이(65세)에 세상을 떠났다

소설의 첫 문장은 정확히는 두 번째 문장이지만 인상적이었다. (사진 참조)



문장의 길이나 그 뉘앙스로 유명한 고 박상륭 작가의 "죽음의 한 연구" 첫 문장이 떠오를 정도였다 폴란드 원서의 문장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을 정도로 이게 곰브로비치의 문체인건가 싶었다
시작부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쉼표로 쉼없이 이어지는 문장 스타일이 주인공 비톨트의 특징과 그로인한 작품의 인상을 살린다고 봤다
오래전에 읽다만 페르디두르케 와 나머지 한 작품까지 읽어보고 싶을만큼 나는 이런? 소설에 끌린다

3 제목으로 추정해보는 소설 코스모스
소설은 '우리. 두 명의 정신 이상자'100p 인 두 남자 비톨트와 그의 친구 푹스가 주요인물이랄수 있지만 주인공이 중요한 소설은 아니다

만약 내가 이 사물들과 장소들의 배합을 적확하게 판독할 수 있다면, 내가 고양이를 목 졸라 죽인 행위에 대한 진의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144

곰브로비치는 첫 장편소설로 페르디두르케(1937)를 써냈고 코스모스(1965)는 그의 생 마지막 장편소설이 되었다
코스모스 속 등장인물 레온은 비톨트와 대척점에 있는데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비톨트에 반해 레온은 버릇처럼 '베르그' 라는 무의미한 말을 내뱉는다
소설 속에서 레온의 베르그 놀이에 비톨트가 베르그 로 되받는 장면이 어쩌면 소설의 꼭지점 같은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코스모스kosmos 는 우주를 뜻하는 말로 의미의 광대함에 반해 비톨트는 아주 미세한 것들에 집착하는 '정신이상자'에 가깝다

곰브로비치 스스로 이 소설을 '검은 소설'이라고 명명했다는데 이것은 등장인물들의 어두운 내면과 태양이 밝은 한낮이라도 그림자는 어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제목으로 삼은 코스모스 라는 대우주는 암흑물질이라 불리는 어둠으로 가득차 있음을 생각해볼수 있다
아울러 곰브로비치의 첫 장편 소설 제목 페르디두르케 와 베르그 의 공통점은 모두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검고 광활한 코스모스의 밤하늘 아래에서 인간들을 대변하는듯한 비톨트는 끊임 없는 의미 찾기를 한다
당장 우리 자신들 또한 쉼없이 인생의 의미 찾기 그리고 나 자신의 의미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어쩌면 곰브로비치는 대우주 속의 인간이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라는 것의 무의미를 소설화 하려고 시작부터 작정한 작가가 아닐까 그런 생각
물론 그의 모든 작품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첫 소설과 마지막 소설만으로 성급한 짐작을 해본다
국내 출판계에서 과연 곰브로비치의 미번역 작을 계속해서 내줄지는 부정적이지 않을까해서 아쉽다만

여튼 꽂히는 책읽기는 늘 우연처럼 찾아온다
의미 부여라는 것은 결국 '인위'인 것이다 코스모스 라는 무위자연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괜찮은 읽기였다
참고로 아이러니겠지만 인위적으로 힘을 써야 일독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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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 결혼식 / 오페레타 제안들 8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정보라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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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하지 않지만 그럴듯 하고

그럴듯 하지만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들


이 책을 읽었으므로 일전에 읽다 만 "페르디두르케"를 다시 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이 책을 읽는다면 부록 '맨발에서 나체까지'를 먼저 읽으라하겠다.


'오페레타'에서

주인공이 'R' 발음을 프랑스식 'H'와 비슷하게 한다해서 원어 발음 특징을 살리기 위해 문맥을 어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의 'ㄹ'을 'ㅎ'으로 표기 한것, 이를테면 

소매흘 바호잡고 오흔쪽 어깨 아래흘

(소매를 바로잡고 오른쪽 어깨 아래를)

여허분, 우히의 소중하신(여러분 우리의...)

바호 다흠 아닌 거장 피오흐 선생

(바로 다름 아닌 거장 피오르 선생)

이라 번역 표기한 것.

읽는 내내 너무 거슬렸다. 출판사의 쓸데 없는 오지랖이 아닌가 싶다. 정말로 발음의 차이를 구현하고 싶었다면 단어를 늘려 표기하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 했어야 했다. 한글 자음을 일률적으로 교체한다고 원어의 뉘앙스가 전달되는 것도 아닌 어거지. 완전 왕짜증. 작품의 본질과 하등의 관계도 없는. <유헙 옷차힘 새호운 초대흘 인기흘 패션쇼흘 전조흘 우히 목소히 사항스허운 ...>

이게 말이야 마구간이야 도대체


지금 다시 보니 번역자가 무려 소설가 정보라 라서 더더욱 아쉬울 따름





책 속에서


왕자. 예! 저는 충분히 부유하니까 아주 특이할 정도의 가난뱅이와 약혼해도 상관없어요. 어째서 예쁜 아가씨만 제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거죠? 못생긴 아가씨가 마음에 들면 안 되나요? 그런 법이 어디 적혀 있냐고요? 나는 자유로운 사람인데, 마치 무슨 영혼 없는 기계처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런 법이라도 어딘가 있다는 거예요?


찌릴. 그녀는 바보가 아니에요, 바보 같은 상황에 있을 뿐이지.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으며,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외에 다른 신성성이란 없다.


헨리크. 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겠어?

브와지오. 나 혼자였다면 느꼈겠지만, 둘이서 무슨 일을 하면 안 그래, 둘이면 서로 따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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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2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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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대머리 여가수˝ 를 읽을때 이 작가는 너무나 멀고 어려워 다시 볼 일은 없겠다 생각했다
그런 작가일수록 때론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작가를 알아보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코뿔소 옆에 나란히 꽂혀 있어서 ‘읽기‘ 까지 빌려왔다

#이오네스코읽기 를 통해 간략히나마 살펴본 그의 생애는 결국 그의 작품을 낳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희곡을 싫어했다는 그가 희곡을 통해 유명해졌다

그의 생애를 보면 왜 코뿔소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이 씌어졌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가 조국 루마니아를 떠나 프랑스로 귀화하게된 시대적 배경과 부모의 불화에서 비롯된 그의 불안한 내면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코뿔소는 대머리여가수 보다는 한결 쉽게 읽혔다 지레 겁먹을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
전체주의적 시대상을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하는 것으로 풍자화한 작품이라는데 21세기적 시각으로 굳이 본다면 대중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코뿔소를 읽어가면서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과 그 상황이 떠올랐다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더이상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변한 세상에서 과연 개인 나는 얼마나 저항하며 언제까지 버텨나갈수 있을지

희곡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의든 타의든 이런 저런 이유로 코뿔소로 변하는 것에 동참하게 되고 결국 한 사람만이 끝까지 인간으로 남겠다 소리치며 막을 내린다

장 : 자연엔 자연의 법칙이 있어. 근데 도덕은 반자연적이란 말이야. ...
순수한 원시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119

코뿔소가 상징하는 바를 한가지로 국한 시키지 않고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본다면 장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이오네스코가 어떤 의도로 코뿔소를 썼든 간에 오독일지라도 끝까지 인간으로 남겠다는 베랑제 만이 과연 정답일까

극중 꼬냑을 자꾸만 마셔대는 바람에 본적도 없는 꼬냑을 마시고 싶어 하마터면 지를 뻔...

보지는 못했습니만 -> 못했습니‘다‘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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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 - 볼라뇨 20주기 특별합본판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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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셋트 기준의 리뷰


1권 비평가들에 관하여


로베르토 볼라뇨를 알게 된 건 2015년 경 후장사실주의 라는 동인그룹과 그 멤버들 (정지돈 오한기 박상우 박솔뫼) 때문이다

도대체 볼라뇨 작품이 처음 국내 출간된 건 언제일까 찾아보니 2009년 을유출판사 "아메리카의 나치문학" 이다 이후 대부분의 볼라뇨 독자들에게 익숙한 열린책들 에서 볼라뇨 작품들을 출간했다

확실히 다소 생소한 특정 작가가 국내에서 바람을 타게 되는건 기존 국내 작가(들)의 언급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것 같다 배수아 덕분이라 할만한 "불안의 서"의 페르난두 페소아 그리고 제발디언 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제발트 역시 그런 경우다


나름 볼라뇨 유행 시기에 몇 권 사둔 작품들 가운데 얇은 분량의 어떤 걸 읽긴 했지만 뻔하게도 희미한 기억조차 희미할 뿐이다 충동적으로 구입했던 "2666" 을 지금껏 방치하다가 역시나 충동적으로 1권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읽었다 1권을 읽어가는 도중에 도대체 '악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한...' 어쩌구 하는 카피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어 답답한 마음에 '옮긴이의 말'을 읽어봐야 했다

참고로 "2666" 을 읽겠다고 한다면 당연할지 모르지만 꼭 옮긴이의 말 부터 읽고 시작하는게 좋을 것이다


전체 1671페이지 가운데 1권 분량 304페이지는 약 18퍼센트 분량이다 아직 5부 가운데 1/5 분량만 읽고 이런 말은 그렇지만 옮긴이의 말로 판단해볼 때 비평가 4명의 등장과 그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찾는 아르킴볼디 라는 작가 이야기는 진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솔직히 1부는 없어도 그만이 아닌가 싶다

여성 살해 사건을 통해 악의 본질을... 그런 작품 치고는 글쎄다 워낙에 각계각층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 끝까지 다 읽은 후 손바닥 뒤집듯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으나 글쎄...

1권을 읽으면 2권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야 하는게 보통의 경우 일텐데 어째 벌써 김이 빠지냐

깝깝하고 답답



2권 아말피타노에 관하여


아말피타노는 1권 중반 즈음이던가 부터 등장하는 인물로 비평가 네 사람에게 소개된 교수다

로사라는 딸과 함께 멕시코에 거주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2권 124페이지 얇은 분량이지만 한 권을 통째로 한 인물의 시시콜콜한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래야할 이유가 없어보여서 역시나 지루하기만 했다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작가의 죽음과 더불어 완성이나 다름 없다는 미완성 작품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거품이 끼게 하지 않았을까 라고 나는 평가절하 하고 싶다

전체 작품의 분량상 메가 소설이라고 하는진 모르겠으나 방대한 분량이라는 것을 지우고 찬사에 걸맞는 이야기가 담겨 있느냐에 대해 말해보라면 아니오 쪽으로 기운 상태다

이런 평가가 5권 완독 후 섣부른 평가였다고 반성하고 있을만큼 3권 부터 뭔가를 보여주었음 한다

만약 볼라뇨가 라틴 아메리카 쪽 문학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 영문학 쪽이었더라면 좀 더 쉽게 읽히지 않을까

백년의 고독 읽기를 번번히 실패한 것은 그 언어의 이질감과 복잡함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마찬가지로 2666에 자연스레 등장하는 칠레 멕시코 등의 정치 역사적 사실들과 인물들 역시 낯설고 솔직히 그리 알고 싶지도 않다보니 흥미가 생길 수가 없다



3권 페이트에 관하여


페이트 라는 인물은 뉴욕에 위치한 잡지사 기자로 흑인 남성이다

스포츠 담당 기자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멕시코 산타테레사(사건의 중심지)에서 열리는 권투 시합 취재차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2권의 인물 아말피타노 교수의 딸 로사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로사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는 듯한 장면으로 3권은 마무리 된다

전체 1671페이지 가운데 3권 까지 654페이지 약 39퍼센트

3권 말미에 와서야 뭔가 일이 벌어지려나 싶은데 이게 이럴 일이냐 싶기만 하다 3권 역시 초중반 페이트가 찾아간 인터뷰이의 지루한 말들이 많다 그것 역시 관계 지식이 있다면 나름 해석할 건덕지가 있는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관계 지식이 없다보니 장광설일 뿐

볼라뇨는 실제 사건을 소설화 했다고 해서 찾아보니

멕시코 후아레스 여성 연쇄 살인 사건

400명 연쇄 살인 시신만 있고 범인은 없다

이런 카피의 국내 기사가 있긴 했다

어마어만한 사건이고 고발 소설을 쓰고도 남았겠다 싶긴한데 사건의 규모나 충격을 생각하면 이렇게 뜸을 들일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설이란게 뼈대에 있는 살 없는 살을 덕지덕지 붙여가는 장르란걸 모르지는 않지만...

4, 5권에서 얼마나 사건의 면모를 소설화 해냈는지 모르겠으나 3권 까지 오기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4권의 제목이 범죄에 관하여 이고 소녀의 시체가 발견 되는 첫문장으로 시작하는데 범죄의 현장과 실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라뇨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것을 왜 소설화 할수밖에 없었는지 그 필요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단지 범죄의 전시만을 보여준다면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소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4권 범죄에 관하여


3권을 다 읽고 설마 그렇게 전개 되지는 않겠지 라고 썼었는데 작가의 성향을 너무 쉽게 간파한건지 아니면 그것밖에 다른 방식이 없었던 것인지

4권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범죄를 브리핑 해준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어떤 느낌이 와서 발생하는 범죄 브리핑을 카운팅 해봐야겠다 싶어 기록해가며 읽었다

1993년 1월을 시작으로 1997년 12월 까지 제대로 카운팅한게 맞다면 109건의 여성 살인 사건이 소설에 실린다

대략 5페이지 마다 한번 사건이 브리핑 되는 셈이다

각 사건은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된다

발생 지역과 당시 범행 정황들 그리고 사망한 여성의 인적 사항등과 법의학 검시관에 따르면... 이라는 반복적 문장으로 시작하는 검시 결과들

사망 여성들 대부분은 어리고 젊은 공장 노동자들이며 대부분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는다

물론 소설이 범죄 브리핑의 나열만으로 이루어진건 아니다

산타테레사 지역의 검찰 경찰 시장 언론인 범죄자 등등이 등장하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석연치않은 많은 점들을 흘리듯 보여주며 정치권력과 마약 카르텔을 비롯 범죄권력이 뒤엉켜 있는 멕시코를 짐작케 한다

볼라뇨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처참한 여성 살인 사건을 끊임없이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계속해서 상기시킴으로써 지옥과도 같은 현실 속의 멕시코를 알리려고 한게 아닐까 짐작도 해 보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입장에서는 109번 사건을 나열한 그 방법적 선택에 과연 이 방법이 최선이며 효과적인 것일까 싶다

그래서 벽돌책처럼 두꺼운 이 4권의 무수한 범죄의 범인은 누구고 잡혀서 법의 심판을 받느냐는 생각은 볼라뇨에게 쓸모 없는 것인지 기대하면 안된다

아직 마지막 5권의 두꺼운 내용을 모르긴하지만 솔직히 2666 이 소설이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기만 하다


그런 기다림의 핵심은 바로 무력함, 그러니까 매우 라틴 아메리카적인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한 매우 친숙한 느낌,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면 매일매일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988



5권 아르킴볼디에 관하여 및 총평


5권은 1권의 주요 인물들인 비평가들이 찿던 그 아르킴볼디 라는 한스 라이터와 그 가족들의 일대기 그리고 소설가로 거듭 나면서 출판과 그 주변의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스가 독일군으로 전쟁에 참전하면서 자연스레 전쟁 속에서의 인간들의 적나라한 상황을 제시하기도 한다

4권에서 다루었던 범죄 사건 이야기 가운데 등장한 범인으로 수감된 자가 아르킴볼디의 조카라는 것이 연결 고리이고 아르킴볼디는 멕시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조카를 보기 위해 멕시코로 떠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밑도 끝도 없이 끝난다

전체 5부 가운데 그나마 제일 재미?랄까 할 수 있는건 5부가 아닐까


총평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피만 대작

빨랫줄에 널려있는 옷가지들 처럼 다섯 권으로 나누어 널어놓기만한 이야기

쓸데없이 부피만 커서 오히려 부피만큼의 기대를 품게하지만 거품만 가득해 욕먹을 소설

도대체 무수한 찬사를 날린 이들은 이 소설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나는 왜 볼 수 없는지

좋은 소설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작가 개인의 해석 방식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2666에는 그런게 없다 라고 감히 단정 한다

2666이 2666년이든 뭐든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소설속 악의 모습에 놀라기는 커녕 시큰둥할만큼의 현실을 살고 있다 그렇게 무뎌진 인간을 소설을 읽고 티끌만큼의 뭔가를 느끼게 하려면 이런 참상의 물량 전시와 엉성한 짜집기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방대한 분량으로 압도하지 않더라도 독자를 압도하는 소설은 넘쳐난다

도대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은게 마지막 장을 넘길때 드는 한줄 느낌이다

아 그걸 노린건가


그옛날 알라딘 중고로 24000원에 샀는데 현재 프리미엄이 붙어 최고가 30만 최저가 7만이니 나는 한 5~6만에 내놔봐야겠다


작년에 판형을 크게 하고 다섯 권 합본판을 선보였는데 x짓의 또다른 전형을 보여줬다 장식용 책 과시용 소장용 책으로 만들 생각을 말고 실제로 읽을 독자를 겨냥하기를 바란다

낱권이면 들고다니기라도 하지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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