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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주말이면 어떤 의무감으로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드는 막연한 찜찜함과 정체불명의
불안에 우왕좌왕할게 뻔한 일이었는데 느즈막히 눈을 뜬 오늘은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오히려 나가지 않고 처박혀 있어야만 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이런 주말 오전이
자전거를 탄 이래 과연 있었나 싶을 만큼.
오늘은 하루종일 이부자리도 그냥 둔채 그 속에서 책장이나 넘기고 싶은 그런 날이다.
여행기를 잘 보지도 않지만 본다고 해도 사진만 건성으로 넘기다가 마는데, 그것은
어딜가면 뭐가 맛있더라 어디는 뭐가 멋지더라와 같은 내가 살짝 경멸하거나 증오해
마지않는 것들에 대해 열광하는 모습들이 싫기 때문이다. TV에서도 저녁 시간만 되면
맛있다고 난리들을 치는 일명 '맛집'프로그램들 투성인데 도대체 그렇게 찍어대면
콩자루만한 남한에 맛없는 집이 남아나기나 할까? 도대체 혓바닥을 자극하는 맛이란게
얼마나 맛있을수가 있을까? 맛에 집착하는 모습들이 가히 좋아보이지도 않고 오버를
유도하는 카메라의 시각도 극히 혐오스럽다. 인간은 적당히 좀 처 먹고 살아도 된다.
이런 생각이 가득한 사람이 보기에 이 책은 꽤나 마음에 든다. 많은 여행기를 읽어본
건 아니지만 어쩌면 처음으로 저자의 동선을 따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곳곳에서 들춰내는 이야깃거리들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책들을
찾아보고 찜해놓는다. 어디가서는 어떤 영화를 이야기해 주고 어떤 곳에서 이야기해
주는 책들은 당장이라도 질러야할것 같은 조바심 마저 든다면 이 책은 내 꽈가 확실하다.
누군가 충실한 안내자가 있다면 꼭 한번 프라하에 가서 카프카의 집이나 그가 산책했다는
골목을 걸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이런 것도 뭘 알아야 보이는 것이라서 무턱대고
일단 가고보자는 식의 여행은 끔찍하게 싫기 때문에 그냥 쫄쫄쫄 따라다니면서 안내받는
그런 싱겁고 재미없는 여행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까지 뭐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며 이국의 골목을 배회하는 건 질색. 이러니 절대로 외국 여행을 갈 수가
없지.
즐기고 놀자판으로 가는 동남아나 중국은 질색이고 저어기 춥고 습한 이미지가 물씬 풍기
는 북유럽이나 동유럽이라면 다녀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왁자지껄하고 관광객 투성이인
파리나 런던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우산을 상비하고 다녀야 하는 변화무쌍한 런던의
날씨는 한번쯤 조우해 보고 싶기도 하다만 그래도 뭐 그냥 그닥.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끊임없이 뭔가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바쁜 현대인들은 마음이
허해서 더더욱 먹거리에 열중하는 건 아닐까. 한 이틀 죽으로 끼니를 대신해서 그런지 오늘 하루
끊임 없이 이것저것을 먹어댔다. 일단 뭔가 채워졌다는 포만감이 허기를 지우고나서야 없던 여유
가 생기는 건 확실히 먹는다는 게 얼마나 기본적인 조건인지 확인시켜준다.
카프카의 글은 행간마다 슬픔이 비비적대는 문장들이 마음을 할퀴어서 좋다. 슬픔의 끈질긴
점성은 도리 없이 매혹적이다.
카프카를 읽은 건 달랑『변신』한 작품 정도인데 카프카를 제대로 읽어봐야하지 않나 하는 열망이 불끈!
"밥 같은 건 먹지 않고 공기로만 어떻게 살아갈 수 없을까."
-쥘 르나르 『홍당무』
내 마음을 이토록 적확하게 표현해 주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말이든지... 정말로 이렇다면 식량으로 인한 엄청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신이 있다면)신은 어찌하여 인간으로 하여 먹어야 하도록 했을까?
내게 행복은 본디 여집합이다. 감당해야 할 것들을 감당하고 견뎌야 할 것들을 견디고
났을 때 그제야 존재감을 얻는 것, 그래서 황송하기 짝이 없는 것. 그런데 어떤 사람에
게는 그것이 그저 쉽기만하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행복 꽃가루는 내 몸속에 행복을 전
염 시키는 대신 이물질이 되어 나를 가렵게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 많은 대로변보다 누가 각혈을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적적한 골목길이
더 좋았다. 때로는 막다른 골목도 무방하다. 골목은 세상으로부터의 이지메가 아니라 배려이
다. 너만의 시간을 도려내 호주머니에 넣어도 좋다는 배려.
삶에 감탄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둔하고, 삶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사람은 우울하다.
후자에 가까운 사람으로써 그렇다하더라도 어쩔수 없는 게 아닌가... 감탄 보다는 두려움이
더 가득한 게 현실의 냉혹함이라고 체득한 사람이라면. 감탄만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이 행복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대전제를 향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돌진하고 있다.
행복만 하다면야 뭐... 그런 생각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인간에 대하여 인간임을 트집 잡을 수는 없다.
살아 있음이 수모이고 잡식의 습관이 수치다. 버릇이 된 생존본능과 알량한 허무가
매일매일 육박전을 벌인다. 못할 짓이다.
아지랑이의 별, 화내는 별, 갉아먹히는 별, 호기심의 별, 운명이 갈리는 별, 지금부터의 별….
지금부터의 별은 모든 것이 '지금부터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별이다. 어쩌면 가
능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의 끝없는 갱신 의지가 정말로 우리 삶의 터전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백은 자신의 결벽적인 자아를 주체하지 못하고 타인을 고문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먹고 놀고 사진찍기 바쁜 여행서의 저자들은 놀기 바빠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단지 보여주기만으로 이야기 하기를 대체해버린다. 여행을 하면서 나올수 있는 자기 이야기는 없고
조그만 수고만 하면 다 아는 사실만 열거하기 바쁘다. 그런 여행서는 재미도 감동도 없다. 어쩌면
여행서를 통해 그 여행자의 인간적인 여행이야기가 더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실용적인 여행서 보다
딴 이야기를 하는 이런 여행서를 쓴다면 그런 여행이야말로 떠나봐야 하는 여행이 아닐까.
어찌보면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어투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홀려 단숨에 읽어내려 간것 같기도 하다할
만큼 저자의 입담 또는 필력이 매력적이다. 번역가라는 생업이 한몫 하기도 했겠지만 그것만이라
하기엔 저자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진정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일상의 생활인에서 벗어나 여행지를 떠다니는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질퍽한 현실에서 발을 빼
현실이라는 땅바닥에 발을 딛지 않고 사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여행을 갈망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동경하지만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진흙발인 채로
날마다 같은 발자국을 찍으며 같은 거리를 왕복하고 있다. 쇼윈도의 마네킹과 온갖 공산품들을
보면서 TV화면에서나 보는 여행지를 동경하면서.
진흙 범벅이 된 발을 씻고 새하얀 발에 신발을 신기고 가는, 떠날 수 없는 여행을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해본다. 그런 설레임을 가지기에 이 책은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간만에 그런 설렘을
가져 봤다. 물론 나는 떠나지 못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