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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녀의 소설, 또는 소설 속의 목소리, 아니면 황정은이라는 자연인
그 모두가 결국 하나이겠지만 그것을 읽어가는 일은 묵묵하다거나 담담하다거나 뭐 그런 느낌, 기분이다.
'이건 뭐야'하고 황당한 소리와 함께 책장을 덮을 사람도 있겠지만 비틀린 걸, 비틀렸다,는 표현은
뭔가 적절하지 않지만, 잠시 곰곰 들여다보면 뒤틀린 것도 아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황정은 식 이야기를 알아먹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뭐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니고.
뻔해서 하나마나한 생각들이나 투명할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상을 그대로 복사하는 게
소설이라면 굳이 소설을 쓰거나 읽을 필요는 없다. 뻔한것도 '낯설게 하기'가 소설가들의 본업이다.
황정은이 그려내는 낯선 풍경들이 장쾌한 그랜드케년도 아니고 대기권 밖의 신비스런 장면도
아닌 입술 거스러미나 뜯고 있는 옆 사람 이야기인데 나는 그런 장면들에 탐닉하는 독자일 것이다.
물론 또래의 여러 작가들이 그렇고그런 일상에 대해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황정은 특유의 색깔이
강렬한 빨강이나 서늘한 청색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특유의 색깔은 이제 염색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생각한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지려는 이율배반적인 색도 색이듯이 C M Y K R G B같은 대표색이 아닌 파스텔
톤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그것의 매력을 본다면 황정은의 애독자가 될 것 같다.
각 단편들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건 읽었거나 읽을 이의 몫이라 지껄이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관심이나 어떤 의무에서 읽어야 할 이들은 찾아 읽을테니 굳이 미주왈고주왈 떠든다는 건
무의미 하다. 사실 귀찮다.
「오뚝이와 지빠귀」에서 "왜"라고 되묻는 장면은 남겨본다.
자빠지는 건 의지와 상관 없이 닥쳐오듯 대부분 그런 일상에 파묻혀 살지 않나
그것에 대해 왜 라고 생각하는 순간 노말-보통 이라 할 일상의 허물어짐은 시작이다
다들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생활을 위해 동분서주 뭣 빠지게 뭣 나게 뛰어다니고들 있잖은가 말이다
누군가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그 '왜'를 생각하겠지. 쓸쓸하고 비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