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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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와 미셸, 두 형제 개인의 영역과 개인이 살아냈던 시대의 철학 과학 예술 사회 등을
망라햐여 지어낸 걸작이라 하겠다.

개인의 무기력함이나 결정론적 운명관은 곧 인류전체의 열등함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보면
산다는 건 절망적일수밖에 없다. 그러한 절망적 정황들을 겪어내고 있는 게 대부분 인간들의
삶이겠지.

「나도 자아가 하나의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그래서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어. 하지만 자아가 환상이라 해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인걸…….」
-73p

브뤼노를 중심으로 하는 욕망과 쾌락의 질주, 극단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미셸의 고독한
삶은 모든 현대인들의 모습과 다를바 없다.

결국 소설이 제시하는 나름의 해결책과 그에따른 미래에 대해 나는 긍정의 편에 서고 싶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아닌 그곳은 정말
'멋진 신세계'일까? 가능하다면 그 세계에서 살고 싶기도 하다만 너무 멀거나 영영 안오지 싶다.

다시 말해서, 소립자들은 서로 얼마만큼 떨어져 있든 간에 즉각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였다.
-136

두 개의 소립자가 결합되면, 분리시킬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가 형성됩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한 몸에 관한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187


대부분의 독자들이 짐작하듯이 소립자는 각각의 개인을 뜻한다고 본다.
소립자를 개인으로 바꿔 읽어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가늠할 수 있다. 뒤집어 본다면 이런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브뤼노가 그의 아들을 바래다주며 느끼는 절망감 같은 것도 같은 이야기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브뤼노는 아들에게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셸은 결국 하나의 통일체라고 할 수 있는 2세 생산에 실패한다. 그는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이나 사랑에 관심도 없었으며 이루지도 못했다. 미셸의 연구결과가 그의 사후에
만들어 놓은 모습은 당연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나는 찬성하는 바이다.

결국 그렇게밖에 안되는 삶을 살아버린 두 형제의 모습을 쫓아가면서 드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은
지금 우리가 내가 살아가고 살아갈 모습의 적나라함 때문이겠지.


꽤나 오래전에 무슨 이유로 질렀는지 모르겠고 몇 년 전에 좀 읽다가 말았다는 기억도 없이
다시 집어들었더니 어느 페이지 어떤 문장엔 밑줄도 그어져 있다. 책은 일단 당장 읽든 말든
삘이 꽂혔을 때 일단 질러놔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역시나 요즘 판형 책값이 많이 올랐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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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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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영화 '파이란'에서 장백지가 최민식을 부르는 음성이 읽는 내내 귀에 걸린다
"강재 씨..."

은교가 무재를 부를 때 마다 장백지의 음성이 덫입혀져 들리곤 했다
무재 씨...


2
황정은을 처음 읽는다
아마 k군?의 소개가 아니었나 싶다 그게 2년 전 쯤인가 보다
앞부분 조금 읽어나가다 덮어두고 요즘 일독했다 책과 독서란 것도 궁합과 때가
있긴 있나보다. 읽으려고 해도 읽히지 않는 때가 있고 스르르 다가와 살갑게 읽히는
때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책에는 특별한 서사(란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서 쓰기 싫지만)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읽고 나서)끌리는 작가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설이나 작가가 대중적
인기는 없겠지만 다소 지루하고 따분한 감도 있지만 그런것이 좋으니 어쩌랴
최근에 출간된 황정은의 소설집도 읽어보아야 하겠다


3
조곤조곤
작가의 입술 또는 입을 본 적 없으나 그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있는 입을 생각하면
조곤조곤 이라는 낱말이 딱.

나도 작가를 따라서
조곤
조곤
조곤
...


좀 이상하긴 하다


아주 차분해서 마치 진공의 구 안에 사는 어떤 사람들의 세계속 이야기랄까
무재와 은교가 나누고 건네는 대사의 뉘앙스가 인상적이다 그런식으로 배치한 작가의
의도 또는 작법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끌고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철거예정인 건물의 분위기나 등장인물들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

그림자가 일어난다니?
다소 황당하다고? 그렇지 않다. 그림자가 없으면 귀신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보더라도
그림자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의미없어 보이는 그림자에 알게 모르게
지배받고 있다고한다면 억측일까? 아님 말고. 난 억측이 아니라고 보는 바.

그림자가 나를 데려가고 나는 그림자에 홀려 따라가고.
누구나 자기가 자신의 주체라고 여기지만 때론 자기 자신도 주체되지 못하는 자신을 따라
자기를 파괴해 버리는 일. 자주 듣는 일들 아니던가.
그림자를 따라가면 안된다는 외부의 충고는 무의미하기에 내 안에서 마음이 일어나
그 마음을 따라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강 한가운데까지 다리를 따라 걸어가고 하는 일.
그림자가 일어나는 일과 같은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아님 말고. ㅋㅎㅎ

그림자는 어둡다. 마음 한 켠 땅거미가 깔리듯 어두워지기 시작한다면 그림자가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든 누구든.

어두운 마음을 응시한 시간이 참 오래 돼기도 했다는 생각이다. 갈수록 너무가 쌓인다. 너무 쌓인다.


4
은교와 무재.
세상엔 그들과 같은 연인도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있기를 바란다.
은교가 부르는
무재 씨
무재가 부르는
은교 씨

모르긴 해도 같은 톤의 두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딱 그럴것이다
그런 연인들이 있다면 부디 행복하시라


은교와 무재가 있음으로 소설의 이야기가 존재키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주인공은 없다 '百의 그림자'는 아주 공평한 소설이다 비록 소설 속 상황은
공평하지않지만서도. 무슨 말이냐
은교는 은교의 이야기를 하고 은교가 아는 사람들을 조곤조곤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내가 주인공이라고 너 따위는 대략 생략하겠어,가 아니라는 말이다,라고 하면 언더스탠?


5
지금은 가동 나동 다동 라동 마동 모두 철거가 됐겠지
여 씨 아저씨 공 씨 아저씨 유곤 씨 오무사 할아버지 은교 씨 무재 씨 ...
그들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거기 한번 가봤을텐데 무재 씨가 은교 씨를 부르던 목소리

은교 씨

하고 부를 때 먼 데서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타인에게 무관심한 누군가는 '슬럼'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들처럼 자꾸만 외곽으로 가야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그림자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
그런데 나는 영화 파이란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스치듯이 본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짧게 나오던 장백지의 음성 한 조각이 어딘가 떠돌다가
불쑥 귀에 내려앉았을 뿐이다
이유 같은 게 있을리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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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문학과지성 시인선 386
이준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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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참 어렵다
소쇠르와 비트겐슈타인이 불려나오는 비평가 허윤진의 해설을 읽으며 뭔가 고개가
까닥할듯 말듯하고 있는 텍스트 그대로 읽어서는 과연 이것이 그런 연관성 위에
씌여진건가, 알 수 없는 시어들로 넘쳐나는 시집을 어렵게어렵게 그러나 겉만 핥으며
마지막 장을 넘겼다
전문 문학적 안목과 지식 없이는 읽어내기 어려운 시들을 써야 시를 '잘'쓰고 뭔가
있어보이는 시인인듯한 시단의 분위기라고하면 억측일수도 있지만 여하튼 어렵다.

물론 본 시집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네까짓것들이 '천재' 시인의 시를 감히 알기야 하겠니? 싶은 시집들을 보자면 갈수록
시집으로부터 눈길이 멀어진다. 결국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하겠지.
그렇다해도 시를 쓰기 위해 발버둥치는 문학도들은 끊이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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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4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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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보급판 1쇄 7,800원
Mr.know 세계문학 판형

지금은 상하 분책해서 판매되고 있던데 딱 마음에 드는 판형이 사라져서 아쉽다
꽤나 두툼해서 솔직히 읽어낼 자신은 없었는데 완독하고 나니 뭔가 개운하달까. ㅋㅋㅋ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관계되는 사람들-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를 내세워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네 편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모두 알게 모르게 얽혀 있어서 각 화자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나머지 사람들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유의해서 읽어봐야할 것 같다.

소설책 한 권이 어떤식으로 씌어지고 수정되고 출판되는지, 몰랐던 독자들이 읽는다면 다소
놀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현실인 것이다. 작가의 원고가 온전히 수정없이 출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이 소설의 큰 틀은 이것이다. 물리적인 책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 틀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작가의 목소리는 4명의 인물에 의해 각자의 입장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에 관한 것이라면 어떨까 싶다.
어느쪽 손을 들어줄 문제는 아닌것 같고 각각의 영역과 역할이 확실히 있고 독자들의 선택권은
그만큼 넓은 것이다. 

이런 주제거리를 근간으로하고 펼쳐지는 주변이야기들은 비평가 편과 독자 편으로 갈수록 흡입력있고
때론 서두른 마무리로 읽히기도 하지만 재미있었다. 작가 편은 좀 지루했고 편집자 편은 무난.
 
꽤나 거창한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그냥 소설 한 편 맛있게 잘 읽었다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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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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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꽤나 유명해진 작가, 박민규의 작품을 읽기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뭔가 마뜩찮은 느낌에 읽기를 주저해 왔었다

왜 사람들은 소설을 써서 소설가가 되고, 나 같은 사람은 왜 굳이 소설을 바득바득 읽는지 모르면서
소설책을 사들여 일부러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소설이라는 걸 읽는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나는 무엇을
얻고 싶은걸까 위안인가 아니면 그저 킬링타임인가

20대 청춘에서 50대 노년까지 멀고도 가까운 인생사를 아주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에 홈
빡 반할만했다 때론 너무 그럴듯하고 동감이 가는 대목에서 정말 '잘 쓰는'작가구나 하는 생각까지.
현재와 미래 까마득한 과거를 오가며 잡아오는 소재 선택이나 진짜같은 감정이입이 되는 사소한 몇
마디의 문장들까지. 
머리로 어거지로 만들어 세워놓는 뻣뻣한 캐릭터들이 아니라 흔하게 보이는 주위의 사람들 같더라는
말이다. 마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매끄러워서 미끄러지듯 따라가게 만드는 흡입력. 물론 엉
뚱한 이야기를 펼치는 작품도 있으나 소설집 전체를 말하자면 훌륭하다는 것이다.
소재와 어조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어거지스럽거나 투박스럽지 않다.
먼 미래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지구 인간들의 다소 쌩뚱맞은 작품에 대해선 아직은 판단 보류다. 

side A「근처」「누런 강 배 한 척」「굿바이, 제플린」,side B「낮잠」「별」

같은 작품을 보면 이 작가가 인생에 대해서 또는 산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갈만하다랄까... '프로'작가라면 당연할 것 같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디테일을 보자면 꽁
짜나 날로 소설가가된 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맞게 마련인 인생 후반기의 화자들의 눈길과 생각 처지를 읽어가자면 난 절대로 늙을 때까지 살
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고 만다. 그만큼 생생하다는 것이겠지. 뭔가를 보고 써 옮긴다해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소설가들이 써내는 이러한 소설들, 그러니까 삶의 불편한 진실이랄까 들춰내기 싫은 일들
을 쓰고 읽는 건 왜일까. '재미'도 없고 유쾌하지도 않는 소설들을 왜 써내고 그런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려
는지 모르겠지만 안다고 해도 탐탁지 않기만 하다. 소설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현실에서 패퇴하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굳이 다시 한번 그런 인생을 들춰낸다고 무엇이 바뀌는가 바뀌어 왔던가? '소설 무용론'이
이런 맥락에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순문학 진영에서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보면 참 부질없다는 느낌도
없지않다. 문학개론 같은 수업시간에 배웠겠지만 지금 다시 개론책을 들춰보기도 싫고. 세계적 거장들이
쏟아낸 불후의 명작들이 과연 인류의 역사의 방향을 얼마나 돌려놓았을까? 아니면 그것은 그저 기념비적인
위치만을 차지한 장식에 불과한 걸까. 뭐 이런 잡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거다. 젠장.
닥치고 일이나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장땡이다. 책은 무슨 얼어죽을 독서냐. 낄낄낄.

감각적으로 딱딱 끊어놓은 행갈이와 맛깔나게 써먹는 쉼표로 호흡 건너뛰기 같은 것도 저자의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잔잔하게 후벼파는 그의 솜씨가 대단하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문장 안에 작가가 완전히
화자에 동화되어야만 가능할 것 같은 작품들이다. 너무 '빠'같은 말들인건가 ㅎㅎㅎ

「비치보이스」에서는 딱 20대 초반의 목소리와 감성을 건조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건너왔을 법한 일들 말이지. 뻔한 걸 그럴듯하게 이야기했다는거지.

「龍龍龍龍」龍 네 자가 모인 한자는 '말 많은 절' 자라고 하는데 무협지 느낌 물씬나는 분위기지만 무협이라는
무늬를 지우고 읽어보면 무슨 이야긴지 작가의 능청스러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박민규처럼 다작을 하는 젊은 작가도 드물다고 본다. 그가 써낸 장-단편 작품들을 거꾸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각만. 68년생인 작가가 좀 더 노년에 가까워지면 어떤 작품을 우리 앞에 내놓을지 그것도 흥미롭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듯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쓴다고 어느곳에서 읽은바 있는 데 그런 그의 의지가 그에게
걸맞는 보답을 안겨주기를 조용히 응원하련다. 아울러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 모든 글쟁이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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