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윤리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
유영진 / 문학동네 / 228쪽
(2016. 12. 12.)




  나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를 둘러싼 것들은 무엇이며 이들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평생 따라다닐 이 질문은 어린이 시기에 시작된다. 많은 어른들은 어린이 시기에 이런 질문은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며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보류할 것을 아이들에게 주문한다. 하지만 어린이 시기는 삶의 토대가 될 자기와 타자, 자기와 세계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맺는 시기이기에 이 질문과 응답은 매우 중요하다.
(P.13)




  아이는 부모의 증상이다. 아이의 특정한 행동, 심리적 질환은 부모에게서 기인한다. 부모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을 아이의 무의식은 알아채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 어떤 갈등과 싸움이 있더라도 타자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은 그래서 윤리적 결단을 요구한다. 의사 결정권이 없는 아이에게 이런 윤리적 결단을 구호로서 요구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 삶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P.20)




  유소년기에 읽은 특정한 문학 텍스트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단순히 우연이거나 감동이나 재미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경험을 통해 생긴 심리적 외상이 문학 텍스트를 만나 상징적 파생물로 변형되기도 하지만,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이해 너머에 있는 무엇이 외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외상은 자기 삶의 경험과 뒤섞이기도 하고, 고유한 텍스트의 질문 형태로 남아 해석을 기다리면서 계속 보존된다.
(P.51)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질 싸움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 화를 그에게 곧장 돌려주면 된다. 문제는 싸움을 감당할 수 없거나, 화나게 한 사람이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어서 곧장 화를 돌려줄 수 없는 경우다. 이 경우 사람들은 화를 풀 다른 대상을 찾는다. 그 대상은 누구나 예상하듯 자기보다 약한자이다. 자기 때문에 생긴 화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화든 자기가 다스리지 못한 화는 이렇게 먹이사슬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이동한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는 존재는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이 화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 채 이렇게 화풀이의 종착역이 되고 한다. 이런 사회적 위치로 인해 화와 분노를 처리할 방법이 마땅히 없는 아이들은 그들 사이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를 찾는다. 그렇게 왕따와 학교 폭력이 생겨나고 햄스터를 믹서에 가는 동영상처럼 끔찍한 동물 학대가 벌어진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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