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 조현진 / 책세상 / 168쪽
(2016. 12. 18.)

 




  스피노자의 인간관은 정신과 신체의 관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조건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스피노자가 지적하듯이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이는 일차적으로 인간이 항상 외부 대상과 맞닥뜨림으로써 직간접적으로 그것의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런 조건이 대부분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자기 보존 욕구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인간을 분노나 공포와 같은 수동적인 정서의 노예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선 인간이 외부 원인의 영향에서 항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존재로 파악되기 때문에 정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윤리적 과제로 제시되며, 이런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정념과 그 원인이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부각된다.
(P.9)




  '스피노자는 결과가 있으며 원인이 있으며, 원인이 있으며 결과가 반드시 따라나온다는 것을 자명한 공리로 간주하는 인과적 결정론자이며, 따라서 흔히 자유 의지라고 불리는 선택 의지는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선택 의지라는 것은 '내가 선택지 중에서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원인이 주어지면 결과가 반드시 따라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선택의 여지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럽게 선택했다는 생각은 오히려 선행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그렇게 판단한것에 불과하다는 게 스피노자의 선택 의지에 대한 비판의 요지다.
(P.70)




  스피노자에게 "실재성은 완전성과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어떤 부류의 개체가 존재하고 자기 보존하는 힘을 갖고 있는 한 그것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자체로 놓고 볼 때 일생 동안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나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은 동물에게는 없는 식물만의 독특한 능력일 뿐 아니라 식물의 조직화 수준에 걸맞게 생명을 유지하는 데 크게 공헌한다. 따라서 단순히 이동 능력이 부재 한다는 사실 때문에 식물이 동물보다 불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P.97)




  자기 보존 욕구를 선하다고 판단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악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또한 '인간 본성의 전형'이라는 개념을 통해 선과 악이 개념과 완전성과 불완전성의 개념을 복권시킨다. 여기서 인간 본성의 전형이란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어떤 인간의 이상적인 도덕의 경지를 가리키며, 그런 점에서 그것에서 가까울수록 더 완전하고 선한 인간으로 여겨지는 반면 그것에서 멀어질수록 덜 완전하고 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P.100)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주장 밑에 깔려 있는 두 전제, 즉 정신과 신체의 인과적 상호 작용설과 의지의 절대성을 문제 삼는다. 먼저 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정신과 신체의 연합이라는 관념이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 행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는 바가 없는 '신비한' 가설에 불과하며, 그래서 데카르트가 결국 신체와 정신의 상호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신을 끌어들이는 인위적 해결책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보기에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신과 신체가 서로 인과적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데카르트는 마치 그것을 자명한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P.109)



  스피노자의 철학은 또한 종교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통해 맹목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스피노자는 신의 본성에 대한 오해가 인간 본성의 결함을 비방하고 슬픔을 찬양하며 기쁨을 증오하는 미신적 태도로 연결된다고 본다. 이런 스피노자의 분석은 더 이상 목적론적 관점에서 신을 보지 말고 인간의 힘을 위축시키는 정서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기쁨을 추구하라는 '기쁨의 윤리학'을 대안으로 내놓게 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분명 종교와 관련된 많은 시사점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건전한 비판의 근거 역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스피노자의 종교 비판은 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P.124)



  스피노자의 인간관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철학사에서 이른바 합리주의자로 분류되는 스피노자는 역설적이게도 '이성'이 아니라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보존의 힘이 신체와 정신 모두에 관계될 때 이를 스피노자가 '욕망'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주장은 다른 합리주의자와 달리 인간을 정신과 신체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일적 존재로 보았음을 말해준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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