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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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대소설에 대하여


    사실 한국현대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한국 문학은 주로 고등학교 다니면서 문학 지문으로나마 만났고, 기억나는 작품들로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삼대’, ‘오발탄’, ‘소나기’, 읽다 만  ‘토지’처럼 근현대 시기의 작품들뿐이었고,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필독서를 읽어야지 하며 주로 외국의 책들을 읽어왔다. 물론 소설 자체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읽었던 한국의 소설들은 대부분 암울한 시대상이 너무 드러나고,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뉴스, 신문에서 매일 암울한 소식투성이인데 소설마저 암울할 수는 없지 하며 일부러 외면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회사분에게 빌려 보게 되었는데, 처음 받았을 때에는 얇은 두께에 ‘모던 하트’라는 제목이 못 미더웠다. 그런데 너무 기대치를 낮추었었는지는 몰라도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나라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이 책을 통해서 발견한 기분이었다. 내용의 주요 축이 결국은 사랑, 로맨스 이야기였지만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학벌사회부터, 뉴스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층간소음 문제, 경력여성의 육아문제, 결혼 문제, 아이들의 과도한 영어교육 문제, 30대부터 걱정하게 하는 부동산 문제까지 이렇게 나열해보니 이 책은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들을 한번씩은 건드렸다. 하지만 억지로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고, 30대의 헤드헌터가 그 모든 문제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설정하여 자연스럽게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어느 나라의 소설이 층간소음을 한 장의 내용으로 생각해 낼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파울로 코엘료, 밀란 쿤데라의 그 이국적이고 부드러운 소설들과는 다른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묘미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국문학은 갈수록 위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안 힘든 분야가 어디있겠느냐마는 한국문학은 갈수록 그 영향력도 잃어나고 책의 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의 후보는 고은 시인으로 정해져있었고, 새로운 작가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좀 큰 서점을 가도 우리나라의 문학작품들이 좋은 자리에 차지해 있었던 기억은 없었다. 출판사, 소비자들 모두 무의식적으로 이국의 작품들을 동경하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나부터 그랬으니까. 암울한 시대상만을 드러낸다고 생각한 한국문학과는 다르게 외국의 작품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 평온한 세계라고 인식했었다. 눈 앞에 마주한 축 처진 현실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자 소설을 읽는데 소설에서도 시대의 부조리를 보게 되면 더 슬플 것이기에. 물론 이건 나만의 이유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학을 외면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소개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점이 쓰러져가는 한국문학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 직원분이 없었다면 이 책의 존재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한 신문사의 문예에서 수상한 작품이지만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엄마를 부탁해’나 ‘7년의 밤’처럼 간간이 인기 있는 작품들이 나오지만 모두 기성 주류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울 따름이다. 분명히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퍼져나갈 수 있을까. 기존의 출판사 중심의 판매정책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나는 비록 이 한권의 책이지만 한국 소설의 힘을 보았다. 외국의 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힘. 지금 당장 내 옆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현실성.  이로써 읽어야 할 책이 수도 없이 많은 와중에 더 늘어버렸다.  읽은 책이 1권 늘어날 때마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이 5권씩 늘어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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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21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 장가제도 아주 큰 악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에구 저도 한국 문단의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잎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못 읽으니 골라서 보게 되고 또 그래서 더 손이 안가는 것 같습니다. ㅠㅠ

윙헤드 2015-06-2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국문학을 더 많이 읽어야지라고 다짐은 했지만 앞으로 정말 읽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pingdam12 2015-12-2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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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겁지 않은 책에 대하여


    이 책은 상당히 짧은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의 산문들을 엮은 책으로 스토리가 있다기 보다는 저자의 평소 일상과 생각을 좀 더 자연스럽게 드러낸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답게 자유분방한 책의 내용도 마음에 들었고,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편안한 기분으로 읽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거의 고전,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 세인트존스 대학교의 100권의 책들처럼 좀 있어 보이는 책이나 어려운 책 위주로 읽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지혜를 쌓기 위한 독서의 중간중간 무겁지 않은 책들은 쉼표처럼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준다. 그래서 내용이 별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책의 내용을, 책의 정보를 얻는다는 느낌보다는 저자를 알아간다는, 저자와 내가 비슷하구나라는 감정을 느낀다. 책을 읽으면서 알랭 드 보통이란 유명한 사람도 쓸데없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사랑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여느 사람들처럼 ‘보통’이구나 라고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의 그의 글솜씨에 부러움을 느낀다. 평소의 일상도 어떻게 풀어쓰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일상이 될 수도 있고, 단순한 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작은 것도 아름답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좋아하는 두 명의 작가, 알랭 드 보통과 밀란 쿤데라가 그런 능력은 참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특히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에서 무의미한 것에 대한 축복하는 글은 흉내를 내서 따라 쓰고 싶은 책이다. 이렇게 보면 나는 무겁고 있어 보이는 책을 읽으려고 하나, 사실은 이런 가볍고 따뜻한 분위기의 책을 더 좋아하기는 하나 보다.



- 동물원에 대하여


    이 책의 제목은 책의 소제목에서 따 왔다. 본문에 동물원에 가기란 제목의 산문에서 저자는 기념일에만 가는 동물원에 대해 생각하며 평일에 방문했던 동물원에 대한 생각을 끄적거렸다. 사실 가볍게 읽어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느낌을 되살려보면 우리가 항상 기념일에 자유로운 곳이라 생각하며 방문하는 동물원이 사실은 동물들에게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자유를 찾아서 구속의 공간으로 향한다고. 나에게도 동물원은 기념일 아니면 갈 일이 없는 곳이다. 어렸을 적, 체험활동이나 수학여행으로나 많이 갔었지 성인이 된 이후로는 동물원에 꼭 가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자의 내용을 보니 꼭 한번쯤은 평일에 가봐서 성인이 된 이후의 동물원에 대한 나의 감정을 한 번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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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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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를 읽으며 거울을 보다.


    나는 25살입니다.  4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1년 동안 하게 되어, 남들처럼 취준생은 아직 아닙니다. 이렇게 대학교 쭉 다니면서 졸업하느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1년이라도 하겠어 라고 포부있게 말했지만 사실 4학년이 되는 것이 무서워서, 취준생이 바로 되는 것이 무서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거였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할 인턴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신 저는 아직 포부는 큽니다. 나의 회사를 차려서 멋들어지게 물건도 팔아서, 누구처럼 사원, 대리, 과장에 목숨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CEO로 폼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넘칩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처럼 스티브 잡스처럼 나도 아이디어 하나만 바로 나오면 바로 성공가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난 나름 성실하고, 착하고, 능력도 어느 정도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세일즈맨 윌리의 대사를 읽으면서, 그의 허황된 말을 들으면서, 거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현실을 알지 못한 채, 과거에 집착하고, 꿈만 꾸는 사람. 윌리는 아들 비프가 미식축구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때에 멈추어 서 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수학 성적 낙제로 멀리까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외도 현장을 들켜 버려 그 뒤로 아들이 틀어져 버리지만 윌리는 방탕한 아들을 외면한 채, 아들의 찬란했던 시대에 갇혀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꽤나 공부를 했고, 촉망 받았던 시기에 멈추어 서 있습니다. 집이 학교 바로 옆에 있기에 매일 집을 나서며 나의 찬란했던 과거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 과거를 믿고 있기 때문에.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는 법이라고 하는데, 윌리나 지금의 나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기에 미래가 끼어들 공간이 없는 겁니다. 사실은 무섭습니다. 현재가 과거의 좋았던 시절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금의 나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그거 하나 인정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참 이상합니다. 인정해도 나는 나고, 세상은 잘만 돌아가는데… 나는 저커버그나 스티브 잡스처럼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글로는 잘 써지는데 이상합니다. 빨리 4학년이 되어서 호되게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 나를 세일즈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팔았을까. 나의 시간? 나의 능력? 나의 힘? 나의 청춘? 지하철에 타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은 오늘은 무엇을 팔았을까요.  우리 모두가 세일즈맨인 시대. 대학생들은 자신을 팔아 직장을 얻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포장하고, 직장인들은 승진을 하기 위해 오늘도 업무와 싸우고, 다른 사람과 싸웁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고 잘 나야 누군가가 나를 집어갑니다. 인간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린 거겠지요. 노예 제도처럼 공식적으로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라서 더 무서운 비공식적 상품. 공식적으로 잘못된 노예 제도는 철폐를 하면 무너지지만 비공식적인 관념적인 상품은 없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상품이 아니라고 외치지만 이미 상품이 되어 있습니다. 세일즈를 해야 합니다. 미친 듯이 나를 팔아야 합니다. 가기 싫은 술자리도 가야하고, 주말에 친구 누나의 결혼식 대신에 회사 축구 예선전에 참여해야 하고, 잡다한 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 합니다. 작품 속의 윌리는 세일즈맨이기에 자신을 몇 번이나 팔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고, 비프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값어치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팔기 위해 용기를 냅니다. 내가 얼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차마 인간에게 가격표를 붙일 수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보다 질이 떨어져 보이는 녀석이 선택되는 불합리해 보이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래도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삽니다.  비프는 말합니다. 우리는 ‘고작 두 주짜리 휴가를 위해 일 년 중 오십 주를 죽어라 고생하는 거지. 그리고 언제나 네 옆의 녀석보다 한발 앞서야 해’라고.


    그렇다면 과연 나는 나를 판 대신에 무엇을 얻었을까요. 팔고 사는 것이 이 시대의 당연한 이치인데, 나는 왜 팔기만 하고 사는 것은 없을까요. 오늘 하루 난 무엇을 얻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오늘 조금이라도 내가 가지고 싶은 ‘인간됨’, ‘더 나은 나’를 샀는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냐고, ‘좋아’졌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네’라고 답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일 수도 있겠습니다. 윌리가 꿈꾸었던 초록 벨벳의 슬리퍼를 신고 전화 한 통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세일즈맨은 결코 살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허황된 꿈을 사고 싶어하는, 하지만 그걸 사기 위해서 자신을 그만큼 팔지 못한 소시민인 것일까요. 그런데, 작품 속에서 세일즈맨 윌리의 부인 린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라고. 린다의 입장에서 팔고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명하거나 돈이 엄청나게 많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윌리가 아무리 평범하고 소시민이어도 인간이라는 것. 우리들이 서로를 사고 팔고, 비교하기 이전에 우리 각자가 모두 인간이라는 점은 특별합니다. 우리는 상품이 아닌 것을 린다만 아는 것이겠지요. 나는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상품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나로 살고 싶습니다.  처절한 스펙의 시대에, 학교 간판으로, 직장의 이름으로 평가 받는 시대에 ‘나’로 평가 받고 싶습니다. 나의 선함, 나의 온정, 나의 용기, 나의 생각으로 다가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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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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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인턴을 시작하기 전, 2015년 3월 동안 나름대로 다양한 책을 읽었다. 2015년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휴학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사실상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 보고자, 혼자서 도서관엘 가거나 동네 카페에 가서 책을 많이 일고는 했다. 사실 인턴이 바로 되지 않고 계속 지원하는 입장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없어 책을 읽기도 한 거였는데, 4월 달부터 바로 인턴 일을 할 수 있어서 충분히 내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일을 하는 요즘도 자주 드는 생각이 ‘이런 일을 내가 평생 할 수 있을까’, ‘왜 저 사람들은 이 일에 하루 종일 매달리는 걸까’ ‘목적이 무엇일까’ 등등이다. 인턴인 나도 황금보다 소중한 25살의 하루의 10시간 정도를 회사에서 보내는 것인데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기다리면서 이 일을 하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단지 일 이란 것을 하고 싶어서,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서 하는 것뿐이다.  그럼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온전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것이냐고.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다는 내 목적, 꿈을 위해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기다리고, 큰 일을 기다리고, 행복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결코 행동하지 않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 나는 지금 내가 부모님과 살고 있는 곳에 10년도 넘게 살았고, 해외여행을 하면서 동네를 그리워하는 성격으로 보아 나아가지 못하는 성격이다.  마치 블라디미로와 에스트라공이 나무 밑에서 헤어진 다음 날 똑 같은 나무 밑으로 다시 모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 역시 기다리는 것이 있다. 고도라는 사람으로 그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결코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기다리는 것. 나 또한 그런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 역시 비슷한 것 같다. 왜 일을 하냐고, 왜 사냐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물어본다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돈이나 집 마련이 아니라 인생에서 정말로 기다리고 있는 것. 행복이라고 추상적으로 답을 한들, 추상적인 고도의 존재마냥 결국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명확하다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것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면 된다. 나아가면 된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그래서 이번 년도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 움직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몸을 단련하여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상태. 내 보내면서도 아까운 청춘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으니 기다리지 말고 움직여야겠다.


- 멍청한 세상에 대하여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이 총 4명이다.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라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명의 가난한 인물들과 포조와 럭키라는 부자 상인과 그의 노예. 얼핏 보면 그들의 대화는 멍청하기 짝이 없고, 논리도 없고, 순서도 없지만 대화 중간중간에 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을 날린다. 예를 들어 울고 있는 에스트라공에게 포조는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나의 행복은 결국 누군가의 불행으로 연결이 된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을 만들기 위해서도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유해한 화학물질을 들이마시며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힘들게 하는 인턴 업무가 결국은 회사의 고위 임원을 위해서 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  하지만 우리 모두는 멍청하기에 타파하지 못한다. 제대로 아는 바 없이 말로만 지껄이는 자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럭키를 험하게 다루는 포조를 보고 무엇인가 부당함을 느끼고, 항의를 하려고 하지만 이내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결국 포조의 의도대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에스트라공은 포조의 먹다 버린 닭다리에 정신이 팔려 버리고, 에스트라공에 비해 좀 더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블라디미르는 포조에 반감을 보이지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해 결국 그들과 함께 하게 된다. 부자 상인인 포조라고 해서 딱히 똑똑한 것은 아니다.  먹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했던 말은 결코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와 꼭 닮았다. 무엇인가 잘못 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포악한 사람과 당하는 사람. 모든 원인은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4명의 대화도 너도 나도 내 말만 하기에 대화가 끊기고 주제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모두가 그때그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을 내뱉을 뿐이다. 우리 사회도 모두들 제각기 제 말만 한다.  너무 많은 말로 인해 우리는 혼란을 가질 수 밖에 없고, 흐름을 놓치게 된다. 지금 내 글도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너무 많은 글을 써서 흐름을 놓쳤다. 혼자서도 이런데…..멍청한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조용히 지켜보면서 생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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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하서명작선 3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정연욱 옮김 / (주)하서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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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에 대하여

    귀족의 사회는 허영으로 가득 차 있다. 오만과 편견, 질투, 중매가 쉴새 없이 오가는 사회는 향락과 쾌락만을 추구할 뿐이다. 귀족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품위유지비라는 것이 많이 드나 보다. 매일같이 열리는 연회, 춤, 음주에도 그들의 삶은 끝없이 화려하다. 몇몇 귀족은 빚이 많은데도, 장교 의복을 살 돈이 없는데도 연회에 참여하여 사교를 해야 한다. 한국인에게 이런 사교 문화는 어색하다.  나는 미군부대에서 근무를 했기에 대대 파티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군인은 모두 정복을 입고 카투사들은 정장을 입고 참여하는 자리인데,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모두 서서 음식을 마시고 음료를 마시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카투사들은 멀뚱멀뚱할 뿐이었다.  이 새로운 문화는 가벼운 분위기, 서서 하는 대화이기에 짧은 대화 위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인들은 짧은 대화, 가벼운 대화에 상당히 약하다. 책에서도 귀족들의 사교에 중요한 것이 만남 초기의 대화인데, 한국인들은 깊은 대화를 잘하는데 겉도는 얘기를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삼겹살 집에 좌식으로 앉아 다 같이 고기나 구워먹으면서 소주나 진하게 돌려 마시는 것인데, 이것도 친한 사람들끼리만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왜 우리는 서서 가볍게 말하는 것에 이렇게 힘들어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변에 대한 배려 부족이 하나의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미국인들은 서로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곧 잘한다. 가게에서 줄을 서고 있어도 앞 뒤의 사람이 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 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가벼운 이야기, 생활 이야기 일 것이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모두 묵묵할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자리에는 날씨 이야기를 하여라,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아라 등 일종의 지침까지 인터넷에 떠돌아 다닌다. 러시아의 귀족들처럼 과장된 사교는 불필요하지만 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좀 더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사교가 꼭 필요하다.


- 전쟁에 대하여

    이 책은 500여 쪽에 달하지만 막힘 없이 빠르게 읽었다. 소설이라는 점도 있지만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를 잘 끌기 때문이다. 내용 중에 피에르는 귀족이지만 전쟁을 구경하러 갔다가 휘말리게 되고 거기서 인생의 반환점을 맞는다.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전쟁의 무당위성에 대해 성찰하기도 한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바꾸는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는 전쟁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전쟁의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구분되어지지 않는다. 피에르가 전쟁포로로서 총살의 위기에 처할 때, 총을 쏜 다수의 프랑스 병사들은 떨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고 말하였다. 죽는 자와 죽이는 자 모두에게 변화는 주는 전쟁. 하지만 우린 젊은 세대에게 전쟁은 하나의 게임으로 인식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여 총을 쥐고서도 이것이 사람 백 명을 실제로 죽일 수 있는 살상무기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FPS게임인 냥 이야기를 하고, 전쟁 영화를 보며 모두 영웅심을 키운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의 참혹함, 끔직함을 느낄 수 없었다. 끊임없이 터지는 대포소리, 신음소리가 가득 찬 부상병동, 전쟁 중 모닥불에서 먹는 식사. 활자로 만나는 전쟁은 아름다웠고 훌륭해 보였다. 몇 날을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실은 전해지 않고, 전쟁 중의 명사수, 명장군의 이야기만 화려하게 포장된다. 내가 만약 전쟁을 경험했더라면 이 책을 읽으며 생명의 숭고함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직 내가 이 대작을 이해하기에는 실력이 많이 모자란 듯 하다.


- 러시아에 대하여

    러시아는 솔직히 잘 모른다. 우리나라와 가깝다면 가까울 수 있는 나라이지만, 직접적인 경로는 북한에 막혀 있다는 점, 그리고 공산국가라는 인식이 아직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 쪽에 서 있기 때문에 더욱 교류가 없고, 그래서 더욱 모른다. 하지만 책을 통해 러시아의 민중을 들여다보고 고들의 문화를 들여다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또 다른 작품인 ‘안나 카레니나’를 봐도 그렇고, 안톤 체홉의 작품들을 봐도 그들의 인식이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한심한 국내 정치체계, 귀족들의 제 배 채우기 위한 허영, 국가 간 전쟁으로 인한 내우외환이 꼭 닮았다. 물론 이 책은 전쟁과 전쟁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와 거기서 생명의 숭고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모습들이 더 눈에 띄는 것은 왠지 모를 익숙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의 러시아도 책의 내용인 과거처럼 그렇게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닌 것 같다. 케이블 방송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 편인데, 거기서도 러시아 대표가 하는 말은 꼭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러시아는 지금 푸틴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니 국민을 위한 정치가 나올 리 만무하고, 노인복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지방의 사람들은 모스크바로 세금을 내서 모스크바의 복지는 훌륭한 불균형이라고 한다. 물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확대해석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문제들이 우리나라와 러시아에만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냥 러시아란 나라는 정감이 간다. 잘 모를 때 보면 차가운 나라이지만 파보면 파볼수록 정열적이고 따뜻할 것 같은 느낌. 러시아를 한 번 방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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