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하서명작선 3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정연욱 옮김 / (주)하서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 허영에 대하여

    귀족의 사회는 허영으로 가득 차 있다. 오만과 편견, 질투, 중매가 쉴새 없이 오가는 사회는 향락과 쾌락만을 추구할 뿐이다. 귀족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품위유지비라는 것이 많이 드나 보다. 매일같이 열리는 연회, 춤, 음주에도 그들의 삶은 끝없이 화려하다. 몇몇 귀족은 빚이 많은데도, 장교 의복을 살 돈이 없는데도 연회에 참여하여 사교를 해야 한다. 한국인에게 이런 사교 문화는 어색하다.  나는 미군부대에서 근무를 했기에 대대 파티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군인은 모두 정복을 입고 카투사들은 정장을 입고 참여하는 자리인데,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모두 서서 음식을 마시고 음료를 마시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카투사들은 멀뚱멀뚱할 뿐이었다.  이 새로운 문화는 가벼운 분위기, 서서 하는 대화이기에 짧은 대화 위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인들은 짧은 대화, 가벼운 대화에 상당히 약하다. 책에서도 귀족들의 사교에 중요한 것이 만남 초기의 대화인데, 한국인들은 깊은 대화를 잘하는데 겉도는 얘기를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삼겹살 집에 좌식으로 앉아 다 같이 고기나 구워먹으면서 소주나 진하게 돌려 마시는 것인데, 이것도 친한 사람들끼리만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왜 우리는 서서 가볍게 말하는 것에 이렇게 힘들어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변에 대한 배려 부족이 하나의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미국인들은 서로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곧 잘한다. 가게에서 줄을 서고 있어도 앞 뒤의 사람이 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 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가벼운 이야기, 생활 이야기 일 것이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모두 묵묵할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자리에는 날씨 이야기를 하여라,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아라 등 일종의 지침까지 인터넷에 떠돌아 다닌다. 러시아의 귀족들처럼 과장된 사교는 불필요하지만 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좀 더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사교가 꼭 필요하다.


- 전쟁에 대하여

    이 책은 500여 쪽에 달하지만 막힘 없이 빠르게 읽었다. 소설이라는 점도 있지만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를 잘 끌기 때문이다. 내용 중에 피에르는 귀족이지만 전쟁을 구경하러 갔다가 휘말리게 되고 거기서 인생의 반환점을 맞는다.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전쟁의 무당위성에 대해 성찰하기도 한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바꾸는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는 전쟁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전쟁의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구분되어지지 않는다. 피에르가 전쟁포로로서 총살의 위기에 처할 때, 총을 쏜 다수의 프랑스 병사들은 떨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고 말하였다. 죽는 자와 죽이는 자 모두에게 변화는 주는 전쟁. 하지만 우린 젊은 세대에게 전쟁은 하나의 게임으로 인식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여 총을 쥐고서도 이것이 사람 백 명을 실제로 죽일 수 있는 살상무기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FPS게임인 냥 이야기를 하고, 전쟁 영화를 보며 모두 영웅심을 키운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의 참혹함, 끔직함을 느낄 수 없었다. 끊임없이 터지는 대포소리, 신음소리가 가득 찬 부상병동, 전쟁 중 모닥불에서 먹는 식사. 활자로 만나는 전쟁은 아름다웠고 훌륭해 보였다. 몇 날을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실은 전해지 않고, 전쟁 중의 명사수, 명장군의 이야기만 화려하게 포장된다. 내가 만약 전쟁을 경험했더라면 이 책을 읽으며 생명의 숭고함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직 내가 이 대작을 이해하기에는 실력이 많이 모자란 듯 하다.


- 러시아에 대하여

    러시아는 솔직히 잘 모른다. 우리나라와 가깝다면 가까울 수 있는 나라이지만, 직접적인 경로는 북한에 막혀 있다는 점, 그리고 공산국가라는 인식이 아직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 쪽에 서 있기 때문에 더욱 교류가 없고, 그래서 더욱 모른다. 하지만 책을 통해 러시아의 민중을 들여다보고 고들의 문화를 들여다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또 다른 작품인 ‘안나 카레니나’를 봐도 그렇고, 안톤 체홉의 작품들을 봐도 그들의 인식이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한심한 국내 정치체계, 귀족들의 제 배 채우기 위한 허영, 국가 간 전쟁으로 인한 내우외환이 꼭 닮았다. 물론 이 책은 전쟁과 전쟁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와 거기서 생명의 숭고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모습들이 더 눈에 띄는 것은 왠지 모를 익숙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의 러시아도 책의 내용인 과거처럼 그렇게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닌 것 같다. 케이블 방송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 편인데, 거기서도 러시아 대표가 하는 말은 꼭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러시아는 지금 푸틴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니 국민을 위한 정치가 나올 리 만무하고, 노인복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지방의 사람들은 모스크바로 세금을 내서 모스크바의 복지는 훌륭한 불균형이라고 한다. 물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확대해석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문제들이 우리나라와 러시아에만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냥 러시아란 나라는 정감이 간다. 잘 모를 때 보면 차가운 나라이지만 파보면 파볼수록 정열적이고 따뜻할 것 같은 느낌. 러시아를 한 번 방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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