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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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를 읽으며 거울을 보다.


    나는 25살입니다.  4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1년 동안 하게 되어, 남들처럼 취준생은 아직 아닙니다. 이렇게 대학교 쭉 다니면서 졸업하느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1년이라도 하겠어 라고 포부있게 말했지만 사실 4학년이 되는 것이 무서워서, 취준생이 바로 되는 것이 무서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거였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할 인턴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신 저는 아직 포부는 큽니다. 나의 회사를 차려서 멋들어지게 물건도 팔아서, 누구처럼 사원, 대리, 과장에 목숨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CEO로 폼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넘칩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처럼 스티브 잡스처럼 나도 아이디어 하나만 바로 나오면 바로 성공가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난 나름 성실하고, 착하고, 능력도 어느 정도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세일즈맨 윌리의 대사를 읽으면서, 그의 허황된 말을 들으면서, 거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현실을 알지 못한 채, 과거에 집착하고, 꿈만 꾸는 사람. 윌리는 아들 비프가 미식축구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때에 멈추어 서 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수학 성적 낙제로 멀리까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외도 현장을 들켜 버려 그 뒤로 아들이 틀어져 버리지만 윌리는 방탕한 아들을 외면한 채, 아들의 찬란했던 시대에 갇혀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꽤나 공부를 했고, 촉망 받았던 시기에 멈추어 서 있습니다. 집이 학교 바로 옆에 있기에 매일 집을 나서며 나의 찬란했던 과거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 과거를 믿고 있기 때문에.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는 법이라고 하는데, 윌리나 지금의 나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기에 미래가 끼어들 공간이 없는 겁니다. 사실은 무섭습니다. 현재가 과거의 좋았던 시절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금의 나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그거 하나 인정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참 이상합니다. 인정해도 나는 나고, 세상은 잘만 돌아가는데… 나는 저커버그나 스티브 잡스처럼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글로는 잘 써지는데 이상합니다. 빨리 4학년이 되어서 호되게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 나를 세일즈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팔았을까. 나의 시간? 나의 능력? 나의 힘? 나의 청춘? 지하철에 타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은 오늘은 무엇을 팔았을까요.  우리 모두가 세일즈맨인 시대. 대학생들은 자신을 팔아 직장을 얻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포장하고, 직장인들은 승진을 하기 위해 오늘도 업무와 싸우고, 다른 사람과 싸웁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고 잘 나야 누군가가 나를 집어갑니다. 인간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린 거겠지요. 노예 제도처럼 공식적으로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라서 더 무서운 비공식적 상품. 공식적으로 잘못된 노예 제도는 철폐를 하면 무너지지만 비공식적인 관념적인 상품은 없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상품이 아니라고 외치지만 이미 상품이 되어 있습니다. 세일즈를 해야 합니다. 미친 듯이 나를 팔아야 합니다. 가기 싫은 술자리도 가야하고, 주말에 친구 누나의 결혼식 대신에 회사 축구 예선전에 참여해야 하고, 잡다한 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 합니다. 작품 속의 윌리는 세일즈맨이기에 자신을 몇 번이나 팔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고, 비프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값어치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팔기 위해 용기를 냅니다. 내가 얼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차마 인간에게 가격표를 붙일 수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보다 질이 떨어져 보이는 녀석이 선택되는 불합리해 보이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래도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삽니다.  비프는 말합니다. 우리는 ‘고작 두 주짜리 휴가를 위해 일 년 중 오십 주를 죽어라 고생하는 거지. 그리고 언제나 네 옆의 녀석보다 한발 앞서야 해’라고.


    그렇다면 과연 나는 나를 판 대신에 무엇을 얻었을까요. 팔고 사는 것이 이 시대의 당연한 이치인데, 나는 왜 팔기만 하고 사는 것은 없을까요. 오늘 하루 난 무엇을 얻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오늘 조금이라도 내가 가지고 싶은 ‘인간됨’, ‘더 나은 나’를 샀는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냐고, ‘좋아’졌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네’라고 답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일 수도 있겠습니다. 윌리가 꿈꾸었던 초록 벨벳의 슬리퍼를 신고 전화 한 통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세일즈맨은 결코 살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허황된 꿈을 사고 싶어하는, 하지만 그걸 사기 위해서 자신을 그만큼 팔지 못한 소시민인 것일까요. 그런데, 작품 속에서 세일즈맨 윌리의 부인 린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라고. 린다의 입장에서 팔고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명하거나 돈이 엄청나게 많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윌리가 아무리 평범하고 소시민이어도 인간이라는 것. 우리들이 서로를 사고 팔고, 비교하기 이전에 우리 각자가 모두 인간이라는 점은 특별합니다. 우리는 상품이 아닌 것을 린다만 아는 것이겠지요. 나는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상품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나로 살고 싶습니다.  처절한 스펙의 시대에, 학교 간판으로, 직장의 이름으로 평가 받는 시대에 ‘나’로 평가 받고 싶습니다. 나의 선함, 나의 온정, 나의 용기, 나의 생각으로 다가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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