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가끔 고양이 -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만큼이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했던 종이우산님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에 이어 이용한님의 『흐리고 가끔 고양이』를 읽으면서 나는 내 여행의 기억 속에 남은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도시락을 싸들고 친구와 함께 올랐던 남산에서 만난 고양이와 맛집을 찾아 헤매다 들어가게 된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여러 고양이들을 만났지만, 역시 남산에서 만난 고양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상 조금 못 올라서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던 친구와 내 곁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곁에 온전히 다가올 정도로 경계심을 풀고 다가온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려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픈가보다 싶어서 함께 챙겨간 과자를 던져 주었다. (꽤 오래전의 기억인데도 그 때 던져줬던 과자가 튀기지 않고 구웠다는 그 과자 ‘예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그 고양이와의 만남이 정말 인상 깊긴 했나보다. 어떤 과자였는지 기억난 김에 고양이의 이름을 뒤늦게 지어본다. 예감하신대로, ‘예감이’다.) 예감이는 던져진 과자를 입에 물고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돌아갔다. 친구와 나는 우리의 눈앞에서 먹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지만, 저렇게 먹어야 마음이 편하다면 저렇게 먹어야지 하며 멈췄던 수다를 이어나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예감이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먹긴 먹었는데, 입맛만 다신 표정이었다. 부족했구나! 하며, 이번엔 더 많은 양을 던져주었다. (과자가 칩 형태이다 보니 던져주면 과자가 부서질 확률이 높았지만, 던져주지 않으면 예감이가 도망가 버릴 것 같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던져주었다.) 이번에도 과자를 제 입에 물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전보다 양이 많았던 걸 알았는지 그 자리에서 조금 먹고 남은 양을 가져갔다. 그렇게 두어 번, 예감이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예감이를 위해 먹지 않고 남겨 둔 과자를 내주었다. 예감이가 차마 가져가지 못한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달려드는 비둘기를 쫓아내면서, 내준 과자를 다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친구와 나는 자리를 떴다. 과자를 내어 주면서, 이 과자를 먹고 배가 부를까? 과자만 먹으면 목이 마를 텐데,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네, 하면서 챙겨줬던 예감이에 대한 추억 덕분에 친구와의 남산 여행은 잊지 못할 여행으로 남았다. 조금의 과자를 내어 주었을 뿐인데, 예감이 덕에 잊지 못할 추억을 얻은 나로서는 책 속 곳곳에서 묻어나는 저자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번 맺은 고양이와의 인연은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했다. 이왕이면 고양이 여행을 하기로. (p.301)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책이지만, 책 소개에 소개된 구절처럼 ‘전국 각지에서 만난 그들의 생태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는 설명이 더 들어맞는 책이었다. 전국 60여 곳을 2년 반 동안 발품을 판 저자의 고생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책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 책.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그리고 이 비난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고양이만 유별난 것도 아닌데, 거참 이상하다. (p.344)

 

그런 한국이어서, 이 책이 더 애틋하다. 그런 한국에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짠함을 넘어 너무도 먹먹해서. 그런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캣맘-캣대디들의 속상한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다음 구절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것도 고양이일 것이다. (p.344)

 

어떤 묘연이 작가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고, 나에게도 어떤 묘연이 이렇게 고양이 책을 찾아 읽게 만들고 가방에 고양이 간식을 챙겨 넣어 다니게 된 캣맘이 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저 저 길과 바람과 묘연에 나를 맡기기로 한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건 분명 고양이일 테니까.

 

 

* 인상 깊었던 구절

 

고양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나는 좀 더 오래 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설령 그 길에서 아프고 슬픈 고양이를 만날지라도 그 낱낱의 사연과 희로애락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세상에 이런 고양이가 살다 갔다고. 그것은 때로 눈물겹지만 아름다웠다고. (p.5)

고양이 여행을 하다보면 고양이에 대한 그 동네 인심과 분위기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고양이의 경계심이 심할수록 고양이에 대한 인심이 사납다고 보면 틀림없다. (p.307)

 

고양이에게 야박한 집은 팔아주지 말아야지. 아마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애묘인이라면 대부분 같은 심정일 것이다. (p.314)

 

나도 모르게 울분이 솟구쳤다. 막상 그렇게 말하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해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아, 속상해도 그냥 참을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양이를 위해서. 이래저래 용궁사를 떠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p.341)

 

잠자코 고양이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 슬픔이라는 미래.

연민이 나를 등 떠밀었다. 사실 고양이와 아무 상관없던 내가 고양이와 함께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어떤 연민 때문이었다. 저 불쌍한 것들이 길 위에 던져졌다는 사실, 추위와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이 안락한 마음을 자꾸 건드렸다. 결국 나는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 나섰고, 사료 배달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고양이 책 세 권을 냈고, <고양이 춤>이라는 독립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그 길에서 고양이 여행을 떠나고 있다. (p.3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김은주(글) 양현정(그림)

『1cm+ 일 센티 플러스 : 인생에 필요한 1cm를 찾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

 
1cm+라는 제목과, 귀여운 일러스트도 좋았지만 목차에 더 눈이 간 책이다.
변화를 위한 변하지 않는 사실, 금지를 금지, 홍처리즘, 반대로가 새로운 바로.
목차에서부터 느껴지는 기발한 발상과 재기 발랄함에 이 책이 더 궁금해졌다.
무더운 여름, 지친 감성에 청량감을 한가득 선사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기도.
 

 

 

2. 리듬 『야밤산책 : 매혹적인 밤, 홀로 책의 정원을 거닐다』
 
야밤산책이라는 제목에 끌렸고, 책 뒤에 붙는 冊에 끌렸고, 담백한 표지에 끌렸던 이 책.
내가 아는 리듬님의 책인가 했는데 역시나,

네이버 '책'분야 4년 연속 파워블로거 리듬님의 책이 맞았다.
리듬님의 좋은 리뷰를 곁에 두고 읽고 싶어서, 리듬님의 블로그 이웃인 나로서는
이 책의 리뷰들이 이미 읽은 리뷰들일테지만, 그래서 더 갖고 싶은 책이다.
블로그에서 읽으면서도 이 리뷰, 두고 두고 읽고 싶다 생각한 리듬님의 리뷰였으니 말이다.

 

 

 

3. 김현정 『그럴 때도 있다 : 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

 

책 표지에 먼저 눈길이 갔던 책인데,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었다.

어릴 적 급성폐렴에 의한 열 때문에 청력을 손실하게 된 청각장애예술가의 영국유학생활기였다.

서울을 떠난 저자가 옥스퍼드와 런던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온 열정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출판사 소개의 글에서 '열정의 기록'이라는 문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을 테다.

뜨겁고, 맹목적이고, 때론 무모하지만 한없이 아름다운.

누군가는 지나왔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한가운데 서 있을 '그럴 때'는 분명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저자.

저자의 '그런 시절'이란 어떤 시절이었을까.

 

 

 

4. 최준영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글쓰기라는 것도.

그래서 어려운 일이고, 피하고 싶은 일인데 저자는 오늘도 쓴단다.

그런 저자가 어제도 썼고, 오늘도 쓸 글이 어떤 글일지 궁금해졌다.

 

 

5. 권준우 『가슴을 뛰게 하는 한마디 : 그래서 지금 행복해?』

 

제목보다 부제가 더 눈에 들었던 이 책.

'그래서 지금 행복해?'라는 문장이, '그.래.서 지.금 행.복.해 ?'로 보인 건 기분탓이었을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처럼 안전하고 심심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늘 '재밌게 살자'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있다. 문제는 생각만 한다는 것.

그래서였을까. 이 책이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아마도,

생각에서 벗어나 실천한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자극을 받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행복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꼼쥐 2013-08-0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에세이 분야 13기 신간평가단 중 1人입니다.
저는 <야밤산책>을 읽고 리듬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해밀님은 이미 리듬님의 블로그 이웃이었군요. 암튼 반갑습니다. ^^
 
마녀의 못된 놀이 - 따돌림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27
김경옥 지음, 문채영 그림 / 소담주니어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펼치는 그 순간부터,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본 그 순간까지 씁쓸했던 책 『마녀의 못된 놀이』. 그 이유는 이 책이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시리즈 중 ‘따돌림’편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따돌림이란 어쩌면, 이 책의 제목처럼 ‘못된 놀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돌릴 땐 영원히 모르지만,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고 나서야 ‘놀이’가 아니었음을 사무치게 깨닫게 되는 못된 놀이.

 

따돌림에 관해 이야기 한 많은 책이 있겠지만, 이 책이 재미있었던 건 화자인 ‘나리’의 입장에 있었다. 따돌림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용기가 없어서 따돌림 하는 것을 지켜보고, 여차저차해서 따돌림 당하고, 따돌림으로 슬퍼하고, 따돌림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정을 찾는 나리.

따돌림 당할 것이 두려워서 따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잘못이라는 걸 알지만 차마 잘못이라 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 따돌림 받는 여느 아이가 그러하듯 사소한 이유로 따돌림 받고, 따돌림을 받고 우울해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따돌림 당해서 외로웠을 아이를 이해하고, 겉모습보다는 친구의 감춰진 면을 발견함으로써 진정한 우정을 찾게 되는 나리를 통해 나 역시 그러했고 요즘의 아이들 역시 그러할 따돌림에 관한 심리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내가 나리만 했을 시절에도 따돌림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요즘의 아이들에게 있어 따돌림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따돌림에 단순한 문제는 없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정도의 폭력이 되어버린 문제가 아닌가. 따돌림이 그 어떤 폭력보다 무서운 건, 육체적인 폭력은 없다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게 하는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따돌림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사소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새 스마트폰을 자랑하기에 잠깐 만졌는데 확 빼앗아가서 정말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완전 미친 공붓벌레처럼 학원밖에 몰라서, 학습 능력이 모자르고 늘 학교에 와서 큰 볼일을 본다는 이유로, 뒷담화가 와전되어서 등등. 나는 사소하다고 생각했으나 가해자 아이들에겐 위와 같은 이유들이 전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전부가 전부가 아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했겠지만 말이다.

 

“처음엔 다섯 마리였는데 요 파란색 열대어가 두 마리나 죽여 버렸어.”

“왜?”

“이놈은 성질이 사나워서 그런지 순한 애들을 계속 괴롭히더라고. 괴롭힘에 시달린 애들은 시름시름 앓더니 죽어 버렸어. 아마 어항이 작아서 영역 싸움 하느라 그런 것 같아.”

그러자 효정이가 어항을 콩콩 치며 말했어요.

“에이, 나쁜 놈!” (p.45)

 

다른 열대어들을 괴롭히는 파란색 열대어를 보면서 효정이는 “에이, 나쁜 놈!”이라는 말과 함께 어항을 콩콩 쳐가며 파란색 열대어를 혼낸다. 자신 역시 학교라는 어항 속 파란색 열대어임을 모른 채. 결국, 효정이는 어항이 깨짐으로써 나리네 집의 푸른 열대어처럼 밉상이 되었지만 효정이의 심리는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어항에 홀로 남아 외톨이가 된 푸른 열대어를 불쌍히 여기는 나리의 심리로 드러난다. “외로워 봤으니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지?” 효정이 자신이 친구들을 따돌려서 괴롭힌 것처럼, 효정이 역시 따돌림으로 외로움을 겪게 되는 건 아니지만, 따돌림 끝에 혼자 남아 처절히 외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반성해야 하는 게 못된 놀이 끝에 돌아온 효정이의 몫일 것이다.

 

이런 책이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너나 할 것 없이 널리 읽혀서, 학교라는 어항 속에서 언젠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따돌림’으로 고민할 아이들에게 때로는 힘이 되고 때로는 따끔한 교훈을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약 - 프랑수아즈 사강의 환각 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베르나르 뷔페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올해, 『길모퉁이 카페』로 처음 만난 프랑수아즈 사강. 나에게 있어서는 그녀의 두 번째 책이었던 『독약』. 195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한 사강은 석 달 동안 불쾌한 통증으로 인해 ‘875(팔피움)’라는 모르핀 대용약제를 매일 처방받게 되었는데, 석 달 뒤에는 약물중독 증세가 심해져 결국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입원 기간은 짧았으나 그때, 사강은 일기를 썼고 그 일기를 바탕으로 묶인 책이 바로 『독약』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환각 일기’라는 부제답게, 그녀의 일기는 확실히 ‘환각’의 그 어디쯤에서 쓰인 일기임은 확실하다.

 

결국 간호사는 수간호사를 불렀고(아주 좋음), 나에게 그걸 줬다(앰풀).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학대받고 싶지 않다. 다른 방법이 있으니. 통증은 나를 작아지게 한다. 그리고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p.3)

 

일기에서 환각 속을 헤매는 그녀가 느껴졌다기 보다는, 환각 속에서 벗어나려는 그녀의 몸부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나는 나를 감시한다’거나 ‘나는 다른 짐승을 감시하는 짐승’이며 그 짐승은 ‘내 안에 있는 짐승’이라 표현하지만, 그녀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 자신과 함께 살지 않은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담배를 입에 문 건강한 작가의 건방진 자세로 마지막 문장들을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게 놀란 참이다. (p.18)

 

약물의 포로가 되었음에도 여느 날의 사강이 그러했던 것처럼 글을 쓸 때 나오는 그녀만의 자세로 마지막 문장들을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독약뿐만 아니라 독약과도 같은 고독, 독약과도 같은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사강의 의지. 어쩌면 그 의지는 사강에게 있어 ‘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상황에서 글을 쓰고―일기일지라도―, 보들레르와 샤토브리앙과 아폴리네르와 랭보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그 아무리 글 쓰는 것이 천직인 작가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작은 해독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중독치료는 가벼웠고 일기는 유익했다. (p.7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려고 했던 그녀의 의지가 약물중독의 늪에서 그녀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훗날, 마약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는 그녀이지만― 또, 그녀의 말마따나 교훈적인 혹은 교훈적이지 않은 마지막 문장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삶을 살아가고 글을 잘 쓸 것’이라 다짐 할 수 있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고, 그 약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또다시 다른 약물에 의존해야만 했던 그 지독히도 불행한 아이러니 속에서 말이다.

 

p.s. 사강의 일기가 더 와 닿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글과 묘하게 닮은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 덕분이었고, 거칠고 날카롭기 짝이 없으며, 창백하고 여윈 뷔페의 그림은 사강의 글로 인해 더 쓸쓸해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행복한 길고양이 2
종이우산 글.사진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오늘, 고양이 간식을 샀다. 살 것이 있어 잡화점에 들어갔다가 애완동물 코너에 눈길이 갔더랬다.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를 위한 강아지 간식과 나란히 놓인 고양이 간식 중에, 나도 모르게 고양이 간식을 먼저 집어 들었다. 이 책, 종이우산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을 읽고 난 후의 변화였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길냥이를 위해 사게 됐는데, 나는 이렇게 캣맘이 되고 내가 주는 고양이 간식을 받아먹을 길냥이는 나의 작은 식객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인연이 ‘오늘도 날 기다릴 거야.’라는 믿음과 ‘오늘도 내게 밥 한 그릇을 내어 줄 거야.’라는 믿음이 만나 생겨난 작은 기적이라는 것도.

 

 

사진을 잘 모르는 나도 잘 찍은 사진이라는게 느껴지는 길냥이 사진과, '이 보다 더 적절할 순 없다' 싶은 글과,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예쁘고 때로는 쓸쓸한 길냥이의 모습이 담긴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사랑스러운 마음이 샘솟는다. 그건 사랑스러운 길냥이의 모습을 기막히게 포착해내고, 잘 담아낸 작가 종이우산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고양이의 존재가 본래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처럼,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고양이를, 나는 언제부터 좋아했던 걸까. 좋아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좋아하고 있구나하고 깨닫게 된 건 정화히 기억난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라는 책을 구매했을 때였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좋아해서 눈이 갔지만, 책장을 뒤로하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고양이 듀이의 모습을 보는데 책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8년 1월의 아침,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희망이 사라져가는 마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동상에 걸린 채 도서 반납함에 버려진 고양이를 발견한 사람은 이 마을 도서관의 사서 비키 마이런. 알코올중독자였던 남편과 이별하고 외롭게 지내던 그녀는 고양이에게 '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같이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후 듀이는 조용하기만 했던 도서관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둘씩 변화시킨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시골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온 동네를 하나로 묶어준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줄거리)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 모두가 살다보면 간혹 그렇게 트랙터의 날 사이에 말려들게 된다. 우리 모두 멍이 들고 베이기도 한다. 때로는 날이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몇 군데 긁히고 약간의 피만 흘리고 빠져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럴 때 당신을 바닥에서 일으켜 꼭 껴안아주며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누군가가 있느냐는 것이다. 수년간 듀이를 위해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남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듀이가 아프고 춥고 울고 있을 때, 내가 곁에 있었다. 나는 듀이를 안아주었고, 모든 것이 다 잘 되도록 보살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진정한 진실은 우리가 함께한 긴 세월 중 힘든 날이나, 좋은 날이나, 그리고 사실 우리 인생의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나지 않는 더 많은 나날 동안 듀이가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듀이는 아직도 나를 껴안고 있다. 고맙다 듀이야. 고맙다. 네가 어디에 있건, 정말로 고맙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본문 중에서)

 

듀이의 이야기처럼 버려지고, 길 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고양이들로 인해 힘을 얻는다.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 존재를 내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