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가끔 고양이 -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만큼이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했던 종이우산님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에 이어 이용한님의 『흐리고 가끔 고양이』를 읽으면서 나는 내 여행의 기억 속에 남은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도시락을 싸들고 친구와 함께 올랐던 남산에서 만난 고양이와 맛집을 찾아 헤매다 들어가게 된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여러 고양이들을 만났지만, 역시 남산에서 만난 고양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상 조금 못 올라서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던 친구와 내 곁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곁에 온전히 다가올 정도로 경계심을 풀고 다가온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려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픈가보다 싶어서 함께 챙겨간 과자를 던져 주었다. (꽤 오래전의 기억인데도 그 때 던져줬던 과자가 튀기지 않고 구웠다는 그 과자 ‘예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그 고양이와의 만남이 정말 인상 깊긴 했나보다. 어떤 과자였는지 기억난 김에 고양이의 이름을 뒤늦게 지어본다. 예감하신대로, ‘예감이’다.) 예감이는 던져진 과자를 입에 물고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돌아갔다. 친구와 나는 우리의 눈앞에서 먹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지만, 저렇게 먹어야 마음이 편하다면 저렇게 먹어야지 하며 멈췄던 수다를 이어나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예감이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먹긴 먹었는데, 입맛만 다신 표정이었다. 부족했구나! 하며, 이번엔 더 많은 양을 던져주었다. (과자가 칩 형태이다 보니 던져주면 과자가 부서질 확률이 높았지만, 던져주지 않으면 예감이가 도망가 버릴 것 같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던져주었다.) 이번에도 과자를 제 입에 물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전보다 양이 많았던 걸 알았는지 그 자리에서 조금 먹고 남은 양을 가져갔다. 그렇게 두어 번, 예감이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예감이를 위해 먹지 않고 남겨 둔 과자를 내주었다. 예감이가 차마 가져가지 못한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달려드는 비둘기를 쫓아내면서, 내준 과자를 다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친구와 나는 자리를 떴다. 과자를 내어 주면서, 이 과자를 먹고 배가 부를까? 과자만 먹으면 목이 마를 텐데,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네, 하면서 챙겨줬던 예감이에 대한 추억 덕분에 친구와의 남산 여행은 잊지 못할 여행으로 남았다. 조금의 과자를 내어 주었을 뿐인데, 예감이 덕에 잊지 못할 추억을 얻은 나로서는 책 속 곳곳에서 묻어나는 저자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번 맺은 고양이와의 인연은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했다. 이왕이면 고양이 여행을 하기로. (p.301)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책이지만, 책 소개에 소개된 구절처럼 ‘전국 각지에서 만난 그들의 생태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는 설명이 더 들어맞는 책이었다. 전국 60여 곳을 2년 반 동안 발품을 판 저자의 고생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책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 책.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그리고 이 비난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고양이만 유별난 것도 아닌데, 거참 이상하다. (p.344)

 

그런 한국이어서, 이 책이 더 애틋하다. 그런 한국에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짠함을 넘어 너무도 먹먹해서. 그런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캣맘-캣대디들의 속상한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다음 구절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것도 고양이일 것이다. (p.344)

 

어떤 묘연이 작가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고, 나에게도 어떤 묘연이 이렇게 고양이 책을 찾아 읽게 만들고 가방에 고양이 간식을 챙겨 넣어 다니게 된 캣맘이 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저 저 길과 바람과 묘연에 나를 맡기기로 한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건 분명 고양이일 테니까.

 

 

* 인상 깊었던 구절

 

고양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나는 좀 더 오래 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설령 그 길에서 아프고 슬픈 고양이를 만날지라도 그 낱낱의 사연과 희로애락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세상에 이런 고양이가 살다 갔다고. 그것은 때로 눈물겹지만 아름다웠다고. (p.5)

고양이 여행을 하다보면 고양이에 대한 그 동네 인심과 분위기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고양이의 경계심이 심할수록 고양이에 대한 인심이 사납다고 보면 틀림없다. (p.307)

 

고양이에게 야박한 집은 팔아주지 말아야지. 아마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애묘인이라면 대부분 같은 심정일 것이다. (p.314)

 

나도 모르게 울분이 솟구쳤다. 막상 그렇게 말하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해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아, 속상해도 그냥 참을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양이를 위해서. 이래저래 용궁사를 떠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p.341)

 

잠자코 고양이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 슬픔이라는 미래.

연민이 나를 등 떠밀었다. 사실 고양이와 아무 상관없던 내가 고양이와 함께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어떤 연민 때문이었다. 저 불쌍한 것들이 길 위에 던져졌다는 사실, 추위와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이 안락한 마음을 자꾸 건드렸다. 결국 나는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 나섰고, 사료 배달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고양이 책 세 권을 냈고, <고양이 춤>이라는 독립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그 길에서 고양이 여행을 떠나고 있다.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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