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라는 이 책의 제목이 조르바를 환기했고, 조르바를 조우한 이윤기를, 조르바를 춤추게 한 이윤기의 글쓰기를, 조르바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테지만 끝내 조르바처럼 춤췄을 이윤기를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쓰기』는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제 생각을 비틀지 말라”는 1장부터 “번역을 할 때 말의 무게를 단다고 생각하라”는 2장, “당신의 글에서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는 3장, “유행하는 언어에도 보석같은 낱말이 무수히 반짝인다”는 4장,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다면 신화의 언어를 보라”는 5장까지 총 5장에 걸쳐 쓰고 옮긴다는 것에 대한 이윤기의 글이 담겨 있다. 책을 다 읽고, 책을 부분 부분 다시 읽은 뒤에야 나는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쓰기는 곧 조르바이고, 조르바는 곧 자유이고, 자유는 곧 이윤기의 글쓰기였으며, 그의 글쓰기는 곧 자유를 갈망했던 이윤기다.’라고 말이다.

 

문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인생이 그렇게 풀린 (p.20) 그는 딱지본 소설에서 수십 년을 훌쩍 건너 뛰어 바로 ‘학원사’ 학생문고 쪽으로 한달음에 이른, 이상한 경험의 소유자였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생각했다. “아, 글이라는 게 세상을 이렇게 넓게 살도록 하는구나.”(p.21) “이 세상에 책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찌 살았을까.”(p.29)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글 읽기’와 ‘글 쓰기’에 대한 생각으로 깊어지는데, 이 구절이 책을 읽는 내 가슴을 친 구절이라 옮겨본다.

 

‘글 읽기’에 관한 한 나는 황희 정승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p.36-37)

 

이 구절로, 나는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웠고, 자신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이 모두 행복했을지 궁금해했을 이윤기를 다시 읽게 되었다.

 

옮긴이 이윤기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두기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 스스로 찾아 읽었던 건 아니지만 읽는 내내 행복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로 처음 접한 이윤기의 글을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싶어 무척이나 행복해 한 독서였다.

 

조르바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르바는 그리스의 현악기 산투리의 삶을 함께한다. 하지만 그는 산투리조차도 마음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가 아는 한 산투리에게도 자유를 향수할 권리가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연하의 자본가인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p.153)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의 이런 노력이 있어 나는 조르바가 ‘나’를 ‘두목’으로 부르는 것을 자, 편히 읽을 수 있었구나 싶어서 감사했다.

 

자신을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인 조르바와 동일시하며 살아 펄떡이는 말에 유난히 집착하던 언어 천재 이윤기. 그가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말하는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책을 보내려니 문득 이 구절이 떠오른다.

이윤기가, 학문의 세계가 아닌, 사람의 모듬살이에서 엿보이는 종교 현상에 대해 쓰고 싶었을 때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던 그 구절, 정민섭 사제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 (p.61)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자 신화전문가이기도 했던 그는 3년 전에 떠났지만, 그가 쓰고 옮긴 책들은 남아 오래도록 읽힐 것이며, 그는 여전히 소설과 번역과 신화라는 이름의,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백컨대, 나는 서점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다. 초등학생 시절, 과학실을 빌려 임시 서점처럼 만들고 ‘도서 바자회’를 열었던 그 때 그 공간부터 언제 가도 어김없이 기분 좋은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이 책의 추천글을 쓴 한겨레 문화팀장이자 건축 칼럼니스트 구본준은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아름다운 서점을 닮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서점이 곧 천국인 사람이었다.

 

단지 책이 좋아서 서점을 좋아하는 내게 서점이 좋아서 책이 좋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심어준 서점은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이었다. 정갈하지만, 그래서 다소 딱딱한 느낌의 대형 서점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던지라 책방마다 느낌이 무척 달랐던 헌책방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중 신촌에 있던 헌책방의 구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에 계산대가 자리해 있고 남은 공간은 하나 같이 크기가 다른 책장들이 있는데, 그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또한 제각각으로 꽂혀 있었다.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찾는 책을 검색해서 한 번에 찾는 일은 편리했지만, 그 책을 찾는 것으로 끝이었을 뿐 다른 책에 눈을 돌리고 손이 갈 기회가 적었다. 헌책방은 정갈한 맛은 없었지만 내 발길이 닿는 대로, 내 손길이 닿는 대로 접할 수 있는 책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신선했고, 재밌었다. 또, 책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툭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책탑으로 가득한 헌책방도 기억난다. 그 책탑 밑 부분에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책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무너질까, 책을 빼진 못하고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헌책방이었을지라도, 내겐 이렇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는 서점이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는 존재만으로도 행복하고, 가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 자신할 정도의 서점들 소개로 가득한 책이다.

프랑스 파리, 센 강 왼편 기슭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는 학생들의 거리 라탱 지구.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지금도 전 세계에서 모이는 젊은 작가 지망생들의 유토피아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03년에 극장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객석을 모두 떼어내고 서가로 대체되어 갤러리 벽면 전체를 모두 책으로 채운, 모든 분야를 망라해 35만 권이나 되는 책을 보유한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서점.

그리스 산토리니, 신들이 사랑한 에게 해의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산토리니 섬 북쪽 끝에 위치한, 일찍이 플라톤이 꿈꾸었던, 바다 저편에 전설의 왕국에서 이름을 딴 ‘아틀란티스’ 서점까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정말이지 아름다운 서점들을 책 한권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서점들은 사진으로나마 내 눈으로 보는 것도 좋았지만, 이 책에 실린 인터뷰와 칼럼 또한 아름다운 서점들만큼이나 매혹적이어서 이 책에 대해 만족하게 했다. 그 중 가장 와 닿았던 글은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인터뷰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눈으로 돌아볼 수 있고 내 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큼만 꽂혀 있던 그 작은 서점의 책들이 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존재가 되었던 것 같다. 음악, 미술, 철학 같은, 건축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책뿐이었으나, 정보가 지나치게 많지 않으니 내 상황에 맞게 책을 취사선택하기 쉬웠다. 서점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투적인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책이든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계관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 기능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p.41)

 

후지모토 소우에게는 자신의 눈으로 돌아볼 수 있고 자신의 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큼만 꽂혀 있던 그 작은 서점의 책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존재가 되었듯이, 지금도 세상 곳곳의 누군가가 이다지도 아름다운, 세상 곳곳의 서점들을 찾아 인생의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계관에 접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 서점과는 거리가 먼 서점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있어 ‘인생의 서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서점이 있다면 그 서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북폴리오 리뷰블로거를 2년간 해오면서,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정솔)의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시리즈와 오야마 준코의 『고양이 변호사』, 종이우산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이용한의 『흐리고 가끔 고양이』, 그리고 이 소설 아리카와 히로의 『고양이 여행 리포트』까지 고양이에 관한 책을 올해만큼 읽은 해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가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고, 고양이를 생각하면 먹먹했고, 귀여운 고양이 사진들을 잔뜩 봤고, 우리나라에 있어 고양이라는 동물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고양이 책이 될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올해 고양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들이 뒤섞여서 읽는 내내 싱숭생숭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사토루와 단지 그의 은색 왜건이 주차된 자리를 좋아했던 길냥이. 사토루가 챙겨주는 1일 1식을 챙겨 받으며 생활해 온 길냥이 ‘나’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때 ‘나’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사토루였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 사토루의 방에서 지내게 된 ‘나’와 그런 길냥이에 대한 사토루의 마음이 그려진 구절이 인상 깊었다.

 

“내 고양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선택은 솔직히 생각한 적 없었다. 태생이 길고양이여서 집고양이가 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는 신세를 지지만, 상처가 다 나으면 나갈 생각이었다. ……아니, 나가야겠지, 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갈 거라면, 이제 슬슬 나가주시지, 하고 쫓겨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나가는 편이 쿨하지 않나. 고양이는 스마트한 생물이니까.

이 집 고양이로 살아주길 바라다니……. 그런 말은 빨리빨리 좀 하라고.

(중략)사토루와 함께 근처를 한 바퀴 돌고, 나는 다시 맨션으로 돌아왔다. 2층 제일 앞에 있는 문 앞에서 야옹 울었다. 얼른 열어.

올려다 본 사토루는 마치 우는 것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여기로 돌아오는 거다, 너?”응. 그러니까 빨리 열라고.

“너, 내 고양이가 될 거야?”그래. 그렇지만 가끔 산책 정도는 같이 가자.

이렇게 나는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었다.

(p.15-17)

 

고양이 ‘나’가 사토루의 은색 왜건을 좋아했던 건 둘의 인연 덕분이었을까. 길냥이 ‘나’를 원했던 고양이 바보 사토루와 그런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어 ‘나나’라는 이름을 얻게 된 ‘나’의 잊지 못할 로드 무비가 담긴 이 책은, 사토루가 나나의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인간이었고, 나나 역시 사토루의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고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존재라면, 여행 동반자로도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라고 쓰는데, 책을 읽을 때 겨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나나의 묘생이 끝날 뻔 했던 그 순간엔 사토루가 있었고, 사토루의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엔 나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Pre-Report,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니 둘은 그런 연(緣)이었구나 싶어서. 그리고, 그 연(緣)은 서로가 만든 연(緣)이라서 더 애달팠다.

 

피할 수 없는 ‘어떤’ 사정으로, 현재이자 과거의 시간을 함께 여행한 사토루와 나나. 사토루는 나나가 있어 행복했을 것이고, 나나는 사토루가 있어 그 여행의 모든 순간 순간이 행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둘의 여행을 읽을 수 있었던 내가 제일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어 제로
롭 리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아이튠스가 등장하기 전 최고의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스템이었던 랩소디의 개발자이자 리슨닷컴의 설립자로, 음악 및 IT업계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활동을 해온 롭 리이드의 첫 소설 데뷔작인 이 책 『이어 제로(Year Zero)』의 주된 설정은 이와 같다.

 

은하계에는 과학, 예술,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고등생명체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유일한 단점은 음악을 더럽게 못한다는 것뿐. 이들은 지구 음악을 처음 접하고 뇌출혈과 황홀경에 빠진 1977년을 자신들의 원년(Year Zero)으로 삼을 만큼, 로큰롤과 팝 등 지구 음악에 심취한다.

 

소설가 박상의 소설 『15번 진짜 안 와』의 도입부에서 록(Rock) 음악에 빠진 신들이 떠오르는 설정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처럼 비슷한 설정을 접해 본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설정이다. 신 혹은 외계인이 지상 혹은 지구의 음악에 빠진다는 설정 말이다. 여기서, 작가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자. ‘음악 및 IT업계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활동’에 눈이 간다. 이어서, 이 소설의 다음 설정을 읽어보자. ‘그러나 수십 년 후, 빅뱅 이래 최대 규모의 저작권 침해와 부채로 우주는 파산 위기를 맞게 된다. 천문학적인 빚을 갚느니 차라리 지구를 파멸시키려는 은하계 반란 세력이 지구로 침입한다.’라니. 지구 음악을 처음 접한 1977년을 원년으로 삼을 만큼 지구 음악에 심취한 외계인다웠다. 심취해도 너무 심취해버린 나머지 빅뱅 이래 최대 규모의 저작권 침해와 부채로 파산 위기를 맞는 그들. 독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면 재밌기 그지없지만, 외계인들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빚을 갚느니 차라리 지구를 파멸시키려는 생각을 한 것 역시 재미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설정해서 소설을 쓰는 건, 비단 롭 리이드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설정에서 그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탄탄하고 맛깔나게 쓰는 건 분명 롭 리이드만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롭 리이드와 같이 IT분야와 음반 산업계를 잘 아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그걸 ‘외계’라는 소재에 녹여낸 건 롭 리이드만의 생각이었을 테니까.

 

특히, 나는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WoW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겁나게 먼 데서 접속한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맞을 거예요. 그에게 현직 대통령 이름이나 서울의 거리 이름을 물어보세요. 분명히 당황해서 말을 더듬을걸요.”

“진짜 한국인은 모두 온라인 트리인가 뭔가에서 이뤄지는 다른 게임을 즐깁니다.” (p.131)

 

외계인들에게는 지구가 출입금지 구역이라, 불법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워크래프트를 통해 인간과 소통을 하는데, 그 때 소통하는 지구인에게 자신들의 신분을 ‘한국인’이라고 한다니. 책을 읽는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참 재밌는 구절이었다. 외국에서는 외계인이 한국인이라고 둘러댈 만큼 물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영국의 국민 드라마라 불리는 SF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 애청자인 나는, 외계라는 설정이 낯설진 않았지만, 그 외계에 관한 자세한 설정들은 확실히 어려웠다. 닥터후의 경우, 영상물이다 보니 이해하지 못해도 그냥 볼 수 있었지만 책은 읽고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낼 자신이 있다면 극단적이면서도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돋보이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연상시키면서도, 특유의 신선함과 영리함, 재미를 선사하는 독창적인 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이유경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소설 책을 가장 많이 읽고, 사는 나로서는 반가운 독서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소설에서 삶을 읽는 한 소설 편력가의 독서 여정.'이라는 문구가 어찌나 반갑던지.

소설 내용을 요약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반적인 서평집과 달리 이 책은,

소설을 쓴 작가가 의도하지 않는 부분에 꽂히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서 의미를 찾기도 하는

저자의 독서가 담겨있다고 한다. 이 부분 역시 끌렸다. 나 역시, 작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법한 곳에서 울고, 웃고, 위로받고, 공감하는 독자 중 한명이니까.

세상을 알아 가는데 "소설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소설 전도사인 저자와

소설에 대한 진득한 공감을 위해서라도 이 책, 읽고 싶다.

 

 

 

 

 

 

 

 

 

 

 

 

 

 

2. 무무 <당신에겐 그런 사람이 있나요? - 그와 나, 그리고 별처럼 빛나는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

 

내게는 <오늘, 뺄셈>으로 기억되는 작가 무무의 신작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무무의 책으로는 두 번째 사랑 에세이인 이 책은, 카뮈, 셍텍쥐페리, 무라카미 하루키,

소크라테스, 소로, 레비나스, 셰익스피어, 브레히트, 비숍 등 작가와 시인, 철학자들의

내밀한 문장에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긴다. 또, <엘비라 마디간>, <이프 온리>,

<진실한 사랑>과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와 음악들을 다채롭게 소개하며,

남자와 여자, 그리고 별처럼 빛나는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사랑 에세이기도 하다.

제목부터 나와, 나에게 있어 '그런 사람'과 별처럼 빛나는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무무의 책. 무무는 작가와 시인, 철학자들의 내밀한 문장에서 어떤 사랑의 의미를 되새겼을까,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