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세 걸음 이상 다가오지 않아준 배려 깊었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에게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아준 한결같은 친구들을 떠올리며 혼자서 설레어한다. -9쪽
나는 두리번거리다 프리지어 스무 묶음을 골랐다. 한 아름으로 안길 만큼이었다. 첫눈이 온 날에 봄꽃을 사고 싶었다. 첫눈 오는 날에 프리지어를 살 수 있는 기적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진 않을 거였다. -18쪽
의심이 많고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주눅이 든 채로 유년기를 보냈다. 언제부턴가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묻지 않고 혼자 조용히 상상해보거나 조사를 해보거나 하는 식이 됐다. 혼자서 상상하거나 공부할 때 의심이 많아서 이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한쪽이 늘 편치 못했다. 궁금증은 마음의 불편을 감내해야 할 만큼 컸고 혼자서 알아내느라 간혹 멋대로 이해하는 일은 내 몫이 되어갔다. -25쪽
낙관은 대체로 빗나갔지만 비관은 대체로 맞아떨어졌다. 낙관은 허술한 것으로, 비관은 치밀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주눅은 어느새 사라졌고 긍지 비슷한 게 생겨버렸다. -26쪽
한 세계와 또 한 세계의 문지방 위에서 기대에 대한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가장 농밀하게 흔들리는 시간을 산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화학적으로 성숙한다. 성숙에 대해 한 시인이 이렇게 말해놓았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꽃'에서-48쪽
살피다 마음을 먹는다는 말은 어쩐지 마음을 간식 정도로 생각하는 말 같다 마음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은 살피는 게 맞다. 마음을 따르고 싶다면 마음을 살피면 된다.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면 보살피면 되듯이. -51쪽
가엾은 여자, 아픈 여자, 두려운 여자, 눈물겨운 여자, 엄마라는 말은, 그 미음 발음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발음이다. 젖 한모금 같은 모음 하나를 입속에 담고 있다가 도라지꽃이 피듯 입술만 벌리면 내뱉을 수 있다. 사람이 세상에서 처음 배우는 말. 가장 쉬운 말. 그러나 물컹한. 거대한. 너무 따뜻해서 도리어 슬프고,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쉽지 않은 말. -62쪽
여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제 엄마의 슬픔이 된다.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이상한 슬픔을 모든 딸들은 부모에게 선물한다. 금 간 그릇처럼 슬픔 한 줄에 새겨져 있다. 그러고 장차, 한 남자의 슬픔이 된다. 그 이상한 슬픔으로 인해 한 남자의 절망에 가까워져간다. 그런 후, 자라나는 딸의 슬픔이 서서히 되어 간다. -64쪽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반짝거린다 전당포 안의 은그릇처럼.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사월과 침묵' 에서 -108쪽
그들을 위해서 세 명의 시인(심보선, 신해욱 그리고 나)이 조용히 천막을 쳤다. 광목천에 크레용으로 '문학천막'이라고 쓴 간판을 내걸었다. 안에는 촛불 두개, 집에서 싸들고 온 책 몇십 권, 그리고 공책 몇 권과 볼펜 몇 자루. 누군가 군중을 벗어나 조용히 있고 싶다면, 누군가 이 소풍길에서 느낀 소회를 어딘가 풀어놓고 싶다면 여기에 있어보라는 뜻에서였다. 작고 허름한 둥지 속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문학은 그런 거다. 소풍길의 대오에서 불현듯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저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기 위해서 잠시 대오를 이탈하는 일, 혼자만의 방에서 정연해지지 못하는 생각들을 기록해보는 일. -111쪽
우리는 타오르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무너진 골조물에 벽을 세우는 유일한 방법 이영주 '공중에 사는 사람'에서 -116쪽
당신은 똑바로 걷고 있지만 당신의 그림자는 허우적거려요. 당신의 그림자가 똑바로 걷고 있을 때는 당신만이 허우적거려요. (중략) 우리의 허우적거림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일 테죠. 허우적거리는 것만으로 우리는,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고요. 허우적거림은 나의 자세를 헝클고 공기를 헝클지만 나를 넘어지지 않게 하고 공기를 고여 있지 않게 합니다. 이렇게 허우적허우적하는 표현들을 가장 따뜻하게 받아주는 우리의 마지막 장소는 어쩌면 시의 장소일 거에요. 그러므로 시의 장소에서는 질서를 꿈꾸지 말아야죠. 허우적거려야죠. -120쪽
말의 한계점에서의 서성거림이 시에 많이 들어온다. 나는 그것을 단순히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로고스라고 생각한다. 로고스가 되지 못한 말들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우리의 대화. 이걸 나는 인간의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사람에게 말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천만에. 사람에게 말은 업보였다. 말은 빚어지는 동시에 깨졌다. 그게 사람의 운명이고 사람인 한 그 멍에를 짊어지고 고해의 언덕을 힘겹게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사람에게 말이라는 것은 쓸모 있거나 아니거나 간에, 그 자체로 이미 트라우마다. -127쪽
사람의 말로 사람의 일을 기록해야 하는 시는, 그러므로 불가능성을 향해서 간다. 불가능한 줄 알고도 간다. 개의치 않는다. 그 불가능성이 시의 토양이고 불구의 자리에서 영원히 서성이는 자, 그자가 시인이다. 내가 만약, 시에 아프다는 말을 썼거나 괴롭다는 말을 썼거나, 불편하다는 말을 썼다면, 그것은 아픔을 흔쾌히 허락한다는 뜻이고 괴로움을 흔쾌히 수락한다는 뜼이고, 불편함을 흔쾌히 수락한다는 의지다. 그걸 즐기겠다는 것도 아니고, 넘어서겠다는 것도 아니고, 견뎌내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그걸 시인하겠다는 태도다. 불가능성에서 불구인 채고 시를 얻겠다는 것이다. -128쪽
이런 건 아니었는데 때문에 잠을 청할 시간에 뒤척이게 된다면 그 사람은 송경동의 편이자 가난의 편이다. 가난의 편에 서서, 가난하지 않은 삶의 가난을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가난하지 않은 삶이 도리어 불편한 사람이다. 안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밥그릇을 빼앗겨 내몰리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람들의 소식이 귓전에 들려오는 이 세상에서, 나만 안녕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괴물은 아직 되지 않은 사람이다. -132쪽
아이들은 으레 수천년 전의 성인과 같이 풍경을 바라보지 않는다. 스스로 풍경 속에 뛰어 들어가서 논다. 스스로 풍경의 일부가 된다. -150쪽
우리에겐 고향이 없지. 고향을 잃어버린 것도, 잊은 것도 아닌, 그냥 없을 뿐이야. 우리는 우리가 고향이다. 우리는 영원히 말아하지 않는 복사씨 살구씨이므로. -158쪽
사랑 앞에서 사랑을 믿는 행위는 거짓말을 숭배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노련한 거짓말이라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숭배에 관하여 노련하기 때문에 가능한 작당이다. 거짓말이 사랑을 부르는 것은, 사랑이 거짓말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작당이다. 영원히 변치 말자는 거짓말이 약속으로 둔갑하는 그 순간을, 사랑은 사랑한다. 영원하자고 말하는 순간을, 그 발화 자체를 겁내지 않는 만용을, 사랑은 사랑한다. 사랑은 그렇게, 자기 한계에 자기를 가두고 마는 얌전함보다는 자기 한계를 지워나가고 부숴버리는 강령 자체를 사랑한다. -160쪽
정작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말은 어릴 적 엄마에게 들었으니 지금은 들을 수 없는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 자체로 아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런 말을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픔이 된다. 자존감이 땅에 떨어진 그들에겐 애틋한 추억 한 조각이 오히려 힘겨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에 찬 말들 역시 지겹도록 주고받는다. 그 말에도 무감해질때까지. 힐난의 말은 현재진행형일 때 더욱더 고통이고 사랑 가득한 말은 과거완료형일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이다. 들려오는 말은 모두 악담인데 덕담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때 이럴 때 우리는 가장 비참하다. -163쪽
인간이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을 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의 숙주가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잊기보다는 익숙해지기. 고통의 숙주가 되어간다는 것은 통증의 수위만큼을 인내심으로 제방을 쌓아두는 행위이다. 인내심이란 제방은 한꺼번에 무너져버리거나 혹은 서서히 균열이 간다. 결국 인내심은 거짓말의 또 다른 얼굴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164쪽
추억은 요물이었다. 살아가는 지금은 맨눈으로 보게 하질 않았다. 추억은 경험치라는 편견의 도수에 맞춰진 안경이었다. 물흐르듯 자연스러울 나의 선택들을 막는 트라우마로 직조된 장애물이었다. 추억은 번번이 고정관념이라는 굳은살로 새로운 사물들을 새롭지 않게 만지게 했다. 추억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처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꿈과 다르지 않았다. 인과관계는 까맣게 잊힌 채로 제멋대로 기억을 기억하는 몹쓸 것이었다. -169쪽
새벽 네시는 하루가 얼마가 남았는지를 생각할 수 없는 곤란한 시간이지만 하루가 시작되려면 얼마나 남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설레는 시간이다. 하루 24시간 중에 그나마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미묘한 시간인 것이다. -175쪽
비미를 향한 미적 태도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용감하게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176쪽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 내게 편지로 물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또다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에서 내내 말했듯이,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질문보다 더 절박한 질문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 에서 -177쪽
열아홉 살은 희망 따위를 믿는 마지막 나이다. 진정으로 유유할 수 있는 나이가 스무살일 거라는 희망을 주먹 안에 꼭 쥐고 있을 나이가 열아홉이다. 자신이 살아온 찌질한 일상과는 확연히 다른, 더러는 자신감에 차오르고 더러는 겸손해지기조차 할 수 있는, 진정으로 키가 크는, 진정으로 세상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중심까지를 날렵하게 가로지르는 튼튼한 날개가 어깨죽지에서 돋아날 수 있는. 그래서 절망과 설렘 사이에서 쉼 없이 멀미를 하는 나이. -180쪽
conflict에는 갈등과 충돌이라는 상(호)충(돌)의 의미가 바탕에 깔려있었고, struggle이라는 말에는 안간힘을 쓰는 상태라는 의미가 바탕에 깔려있었다. 나는 struggle에다 밑줄을 긋고 페이지 귀퉁이를 접었다. (중략) 부조리한 상황에 대하여 지치지 않고 안간힘을 쓰는, 고귀한 삶에의 의지. 여기엔 포기하지 않는다는 억척스러움이, 꼿꼿하고 굳세지만은 않다는 인간다움이, 낑낑대는 듯한 근근함이 포함돼 있었다. 피냄새는 조금 덜했지만 살냄새가 났고 땀냄새가 났다. -187쪽
빨리 걷는 출근길 인파 속에서 슬리퍼를 찍찍 끌며 걷는 걸음도 투쟁이고, 남들이 땅 보는 법을 공부할 때 하늘의 별자리 보는 법을 공부하는 것도 투쟁이고, 모두가 식도락을 즐길 때 소박한 풀밭 밥상에 만족하는 것도 투쟁이고, 금전출납부를 쓸 시간에 음악을 듣는 것도 투쟁이고 궁리를 할 시간에 몽상을 하는 것도 투쟁이고, 판단을 할 시간에 사색을 하는 것도 투쟁이다.-189쪽
우리는 알고 있다. 봄날에 내렸던 어이없는 폭설도 극렬한 투쟁임을. 아스팔트의 균열 사이를 비집고 나온 잡풀도 투쟁하는 중임을. 엉뚱한 행동, 기괴한 상상력, 불편한 공간, 까칠한 성격 등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우울하고 슬프며, 서럽고 괴로워 흐물대는 우리의 실상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이 기괴한 모습을 지닌 텍스트, 이 우울한 모습으로 무장된 사람을 극구 옹호하는 것도 우리에겐 투쟁의 일부다. 여기엔 싸우고 이겨서 쟁취해낼 거란 의지 따위는 없다. 낙오를 각오한다는 의지 또한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다는 천성과 이렇게 해야만 내가 조금은 행복해진다는 진심이 있을 뿐이다. 내팽개쳐진 인간의 천성과 인간의 진심을 사모하기 위해 삶을 낭비해도 괜찮다는, 투쟁이 있을 뿐이다. -190쪽
그러나 그 사람은 정말 그대로였을까. 어쩌면 살 냄새, 땀 냄새, 눈물 냄새를 풍기며, 이전에 있던 자리와는 다른 곳을 향해 환형동물처럼 조금씩 이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191쪽
변두리로 밀려난 생이었지만, 변두리에는 나처럼 밀려난 생들의 주옥같은 진실들이 포진해 있음을 알게 되어 눈물겨웠다. -200쪽
근근함을 이어가는 데에는 나름의 비법이 필요했다. 지금 내가 선택하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이라고 우겨 말하기, 내가 원하는 삶은 저 멀리 외딴 곳에 있지 않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범주 안에 있다고 자기 세뇌하기 등등, 이런 비법을 거치자,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나는 저렴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202쪽
한의원에 찾아가니 내 체질은 고영양식이 맞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의원을 나오면서 나는 뼛속까지 저렴한 인생이구나 생각했고 안도했다. -203쪽
시인으로 산다는 비참은 방식이 좀 다르다. 먹고사는 게 미참해서 더 큰 비참을 외면하는 삶이 아니라 더 큰 비참의 참담함 때문에 먹고사는 비참을 외면하게 되는 삶. -205쪽
조금 위험하게 말하자면 생활의 비참과 영혼의 비참의 연관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그 연관 고리를 끊어냄으로서 생활의 비참에 영혼만큼은 물들지 않기 위해서, 자본 논리를 벗어나 다른 층위에서 삶을 바라보기 위해서, 최소한 노예는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는 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206쪽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느다. 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중에서. -210쪽
따뜻한 문장을 가장 꺼려했다. 따뜻한 문장은 삶을 달관한 듯한 깨달음과 위로로 포장되어 있기가 십상이다. 위선에 가깝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삶과 손쉽게 화해해버렸다는 의미애서 패배자의 모습과 비슷한 뒷맛이 남는다. 삶의 녹록지 않음을 분별력 있게 가늠하지 않은 채로, 손쉽게 화해한 태도가 배어 나와 속임수와도 비슷한 뒷맛이 남는다. 사랑을 겪기보다는 사랑을 포장하려는, 그래서 환심을 쉽게 사려는 얇은 상술도 보인다. 따뜻한 문장으로 위로하기란 너무 쉽다. 생은 아름답고 살만하다는 낙관은 누구나 얻고 싶어하므로. 따뜻한 문장은 인기 품목이 된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런 위로는 어딘가 삶과 유리돼 있다. 생이 어찌하여 아름답고 그리고 살만한지를 알기 위해 치러야 할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은폐하려 한다. -214쪽
우리는 겪은 불행들을 더 잘 이해하면서 더 겸손해지고 예민해진다. 그리고 성장하고 늙어간다. 그 과정 자체가 삶이고,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고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고귀한 경험들은 따뜻한 온도의 문장이 아니라 밀도 높은 문장만이 감당할 수가 있다. -215쪽
우리에게 생일이란, 나를 떠나 떠돌던 내가 어색하게 나와 마주하는 하루인지도 모르겠다. -226쪽
곡진한 말은 간절함보다 더 고요하고, 정성보다 더 아련하며, 사려보다 더 신중한 말이다. 말을 아끼려고 아끼는 게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말. 말들의 타임캡슐.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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