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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 - 2집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 스튜디오 브로콜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누군가, 내게 소원을 묻는다면, 나는 한가지 소원을 답하겠노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 적절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 물어보면 또 답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찌게 해주세요, 뭐 이런 답을 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 어쩌면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 ㅎㅎ) 그만큼 위로는 내게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함께 한숨을 쉬는 일. 등을 토닥여 주는 일. 때론 함께 울어주는 일. 화내주는 일. 혹은 가만히 들어주는 일... 그게 전부였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라는 말 한마디를 하는 일은 내게 매우 어려웠다. 왜냐면, 정말 잘 될 수 있는지, 내가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건 내 마음의 진심이 아니니까.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말은 할 수가 없고,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 같지, 울지 마
(중략)
모두 다 잘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울지 마
(울지 마)
세상은 원래 다 그런 거야, 라는 말도 차마 던지지 못하고, 다 잘될 거야, 라는 말도 차마 하지 못하는 이 마음, 그렇기에 그 누구도, 누군가를 감히 위로할 수 없고,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명료한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 일반화라면, 나의 문제로 국한시켜도 상관 없다.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명료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정작 힘겨운 날에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만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할 말이 너무 많은데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작아지고만 있고 (마음의 문제)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피곤에 빠진 채 살아가기도 한다. (열두시 반) 결국 그렇게 풀리지 않는 마음들 때문에, 특별히 우울한 기분이 아닌데도, 모두가 잠든 늦은 밤까지 잠못 이루기도 한다. (다섯시 반)
누구도 위로할 수 없다는 걸 내심 알면서도, 어리석게도 끊임없이 위로를 찾아 방황하는 우리는 이런 상황에 부딪쳐 결국 좌절에 빠진다.
아무도 나의 말들을 듣지는 않고
그저 편한대로 말하기만 했죠
너에게 생긴 일들엔 관심이 없어
그런 표정도 감출 수 없었죠
"어쩔 수 없어요, 결국 당신 마음의 문제이니까"
(마음의 문제)
마음 속에선만 자꾸 줄거나, 또 다시 늘어나는 말들, 그러나 결국 닿을 수 없는 진짜 마음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에 대한 안타까움, 상투적으로 오가는 언어들에 대한 지속적인 의심,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 없나요,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런 걸까 - 춤 (1집) - ) 그리하여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한 마디 짚어가며 말을 던질 수 밖에 없는 마음.. 아니 결국 던지지 못하게 되는 그 마음, (차마 할 수 없던 말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줘 - 이젠 안녕 - ) 쉽게 말하고, 쉽게 표현하는 만큼, 쉽게 잊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없던 일이 되나요 - 할머니 - ) 이런 것들에 대해, 언뜻 언뜻 1집에서 내비쳤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그 감성은, 2집에서는 정점에 이르며, 대부분의 곡이 하나의 지점으로 연결된다.
너무도 쉽게 '사랑해', 라고 말하는 노래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근원적인 지점을 짚어내고, 이를 노래하기에, 이들의 노래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내게 큰 위로가 된다. 쉽게 위로할 수 없음을 알고, 감히 위로하려 들지 않기에, 이 앨범은 조용히 내 마음에 들어와 자리 잡는다. 올 가을, 아니 이제 찾아오게 될 겨울이 지날 때까지, 내가 가장 많이 듣게 될 앨범은 아마도 이 앨범이 될 것 같다.
나는, 혹여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