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에 일어나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섰는데 앞에서 걸어오는 여자가 작년에 돌아가신 성집사님을 닮은 거다. 성집사님이 돌아가실 때도 그렇긴 했지만, 나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그 시간을 잘 실감하지 못하고, 꼭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그 부재를 느끼고는 허망해하곤 하는데, 적절히 비가 내리고, 적절히 쌀쌀하던 오늘 아침이 딱 그랬던 것 같다. 지적인 집사님, 이라는 농담을 건넬 때의 새초롬한 표정, 같이 워십댄스팀에서 예배당 의자 밀어놓고 연습하던 기억, 주보에 내려고 집사님을 인터뷰하던 기억 같은 게 떠올라, 표정과 말투가 계속 생각나 조금 슬퍼졌다. 

다시 보니, 그 여자는 성집사님을 별로 닮지 않았었다.


2

재밌게도 J의 결혼식에 가려고 탄 KTX에 뉴스를 제공하는 곳이 J가 일하는 곳이었다. 일상이 사라진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터라 어느덧 계절도 사라져버린 듯했었는데 언뜻언뜻 고개를 들어 바라본 창밖은 내게 다양한 증거를 들어가며 '지금은 가을'이라는 걸 계속 입증해 주었고, 기자들보다 더 빠르게 뉴스를 전한다는 그 뉴스사는 역시나 내가 느끼고 있는 계절에 한 발 앞서, 오늘 설악산 대청봉에는 첫 눈이 5cm나 내렸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가을이건 겨울이건, 속속 오픈하는 다이어리샵 등과 같은, 어떤 물리적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왕복 6시간의 여정을 아깝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3

예배 형식의 결혼식은 정말이지, 갈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예배형식으로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그래도, 부를 찬송 정도는 내가 골라야지. 결혼식마다 부르는 '오늘모여 찬송함은' 이건 절대 부르지 말아야지. 말씀 본문도,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거 절대 하지 말아달라고 해야지. 결혼식을 볼 때마다, 그 천편일률성에 좀 질릴 때가 있다. 형식의 천편일률성이야 뭐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대한민국 교회 결혼에서 결혼하는 부부의 80%가 같은 찬양, 같은 말씀을 듣고 결혼생활을 시작한다는 게 나는 좀 끔찍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좀 다른 얘기지만, QT책 같은 걸 안사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모두 같은 날짜에 할당된 같은 성경본문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게 난 좀 끔찍하다) 아. 게다가 기도하는 목사님께서는 자녀의 축복을 기도하시면서 '요셉처럼, 다윗처럼, 바울처럼' 이라고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그만 기도시간에 웃다가 기절. 응? 하필 왜 저 셋? 다윗만큼 자식복 없는 사람 또있을까. 게다가 바울은 자식복이 아니라 자식 자체가 없는데.

암튼, 본인의 결혼식임에도 본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정말 결혼식은 부모님들의 행사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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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2009-10-1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웬디님 글에는 웬디님 말투가 팍팍 뭍어나네요^^

웽스북스 2009-10-18 13:18   좋아요 0 | URL
제가 막 읽어주는것 같죠? 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10-20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식을 안해도 된다면 왠지 제가 백만년전에 유부녀가 되는데 성공했을거 같아요 --;;

웽스북스 2009-10-22 01:5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역시~!

2009-10-21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2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09-10-2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것을 아시는 것은 아닐까? 뭐래....아침부터 미쳤대....ㅋㅋ

웽스북스 2009-10-22 02:09   좋아요 0 | URL
아. 역시 그런 지혜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