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이 된 Y씨가 내게 서른이 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어

스물 아홉이 막 됐을 때는, 내가 막 무언가를 마무리해야 하고 결산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서른이 되니, 다시 뭔가를 막 잘 시작하고, 다져놓아야 되는건가, 하는 느낌이 들어요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더 실감나는 건...

오늘 우리 지구가 나에게 선생님이 몇살이에요, 라고 물었거든?
우리 아이들은 내 나이를 항상 궁금해했어.
왜냐면 나는 항상 내가 백살이라고 답했었거든

그런데, 서른이 되고 나니까, 나는
내가 백살이라고도, 서른살이라고도 말하지 못하겠는거야.


여기까지 말했을 때 K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리하여, 나는 뒤이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구에게, 여러 번 머뭇 머뭇 하다가
응, 선생님은 지구를 처음 만났을 때 이십대 초반이었고 올해는 서른살이야.
라고 이야기를 했다.

서른살이야, 라고 씩씩하게 스스로를 정의하는 순간이
봉순이를 이야기하며 껄껄 웃으면서도 목에 뭔가 메이는 것 같았다는 토지의 석이처럼
꽤 모순적인 마음에 계속 어색했으며,
그 후에도 한참이나 서른살, 서른살, 계속 내 나이를 곱씹어야 했다.


사실 나는 스물 여섯살 때부터, 사실 내 나이에 적응을 잘 못했고
적응을 할때쯤 되면 한살씩 더 먹어서 다시 적응이 안되고 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지금 내 나이에 적응을 못하는 건
꼭 서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한살을 더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 한 살 더 먹은 나이가 서른이라는 사실은
어쩐지 내가 내 나이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꽤 민망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끊임없이 내 나이에 적응한 척, 쉽게 받아들이는 척...


(그리고 난 이 글의 제목을 서른, 이라고 썼다가 지워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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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05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나이에 왜 그렇게 신경 써요?
서른이나 쉰이나 정신세계는 별로 변한게 없더라고요.ㅜㅜ

웽스북스 2009-01-05 09:34   좋아요 0 | URL
전 스무살과 서른살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간극이 있어요 아, 이것도 문제

보석 2009-01-05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이 되었을 때는 몰랐는데 그 뒤로 기분이 묘하네요.ㅎㅎ

웽스북스 2009-01-05 09:34   좋아요 0 | URL
아, 그냥 좀 미리 진상을 떨고 있는거군요 제가. 하하. ㅜㅜ

시비돌이 2009-01-05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하게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웽스북스 2009-01-05 09:35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 시비돌이님도 쿨해질 수는 없는 종류의 인간 아니었던가요. 하하.

Mephistopheles 2009-01-05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은 과연 언제쯤 30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어쩌면...39에 빠져나올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그땐 40에 대한 딜레마가 도래하겠죠..^^

시비돌이 2009-01-05 04:01   좋아요 0 | URL
이거 악플이죠? ㅋㅋ

Mephistopheles 2009-01-05 09:27   좋아요 0 | URL
뜨끔! (맞다 누군가의 정의에 의하면 이것도 악플이겠구나..)

마늘빵 2009-01-05 09:29   좋아요 0 | URL
이거 악플 맞아요 =333

웽스북스 2009-01-05 09:35   좋아요 0 | URL
밤에 퐁당 빠졌다가 아침에 나옵니다. 무한반복이에요. ㅋㅋ
(서른이 되니 안달리던 악플도 달리는군요 으으..ㅋㅋ)

마늘빵 2009-01-0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으로 보면 그나마 좋은거죠. 나는 왜 원래보다 더 많게 볼까.

웽스북스 2009-01-05 09:3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아프님은 꽃미남이잖아요. ㅎ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09-01-05 09:39   좋아요 0 | URL
꽃미남(X) 꽃.중.년(o) =3=3=3=3=3

웽스북스 2009-01-05 10:01   좋아요 0 | URL
꽃중년은 메피님 아니었던가요? ㅋㅋ

깐따삐야 2009-01-05 12:15   좋아요 0 | URL
메피님은 '꼭'중년이에요. 케케케.

Mephistopheles 2009-01-05 14:15   좋아요 0 | URL
흥흥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댓글하나에 깐따님은 칼국수와 등갈비와 간장게장을 날리셨습니다!)

웽스북스 2009-01-05 12:54   좋아요 0 | URL
메피님 꼭 그런것만은 아니죠 ;p

ㅋㅋㅋㅋㅋㅋ

마늘빵 2009-01-05 17:55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이 이래서 좋다니깐. ^^ 메피님은 '꼭'중년.

웽스북스 2009-01-05 22:53   좋아요 0 | URL
왜이러세요 아프님
메피님은 꽃중년이십니다

(날아간 칼국수 등갈비 간장게장을 아쉬워하며 샤브샤브라도 건져보려는 1인)

BRINY 2009-01-0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살과 서른살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저도 그랬거든요. 철모르는 대학초년생에서 20대 중반에 갑작스레 많은 일을 겪게 되면서 스무살때 생각하던 서른과는 무척이나 다른 서른살을 맞았지만, 그게 나쁘지는 않더라구요. 그리고 낼모레 마흔이지만 여전히 나이에 적응못하고 살기는 마찬가지구, 이젠 그러려니~하고 있죠.자포자기가 섞인 '그러려니~'이지만, 그것도 그러려니~

웽스북스 2009-01-05 12:56   좋아요 0 | URL
으으으 맞아요 전 정말 대학교 1학년 때 어린이같았어요. 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하하하, 막 웃음이 나와요
그때 시집장가가고 했던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가정을 이루고 살았을까.. ㅎㅎ

깐따삐야 2009-01-05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S옹주가 놀러왔었는데 이젠 막 아줌마삘 난다고 놀려가지구 아줌마임을 세번 부정했다는.ㅠ
웬디양님이라도 부디 의연한 대처를...!

웽스북스 2009-01-05 12:56   좋아요 0 | URL
S 옹주야, 너도 금방이다, 라고 말하면
S 옹주는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그러는동안 깐따삐야님은 안 늙냐고 ㅜㅜ

Mephistopheles 2009-01-05 14:16   좋아요 0 | URL
혹시 첫닭이 울기 전에 3번 부정하셨나요..??

웽스북스 2009-01-05 14:38   좋아요 0 | URL
깐따삐드로? ㅋㅋ

메르헨 2009-01-0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말이죠...오늘 페이퍼 쓰다가 서른 셋...이라는걸 알고 놀랐어요.
그냥 한해가 가고 오는구나 했지요.나이가 한살 더 먹는거구나 하는걸 잊어버린거죠.
그러면서도 아들래미는 올해 여섯살이 된다는걸 아주 확실히 기억하고 말해주고 있었거덩요.
암턴...왜 일케 한해가 빠른걸까요? 체체쳇...ㅡㅡ^

웽스북스 2009-01-05 22:54   좋아요 0 | URL
아, 메르헨님, 정말 예쁜 나이에 결혼하셨네요
예쁜 신부였겠어요

요즘은 참 신부도 젊어야 예쁘구나, 뭐 이런것들을
결혼식 갈 때마다 생각한다는 ㅜ

무스탕 2009-01-05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정성이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만해도 애를 속여먹었거든요?
엄마 몇살이야? 물으면 서른둘~ 하고 대답을 해 줬는데 이젠 이녀석이 엄마 나이를 알아서 속이지도 못해요 -_-
조금만 더 나이들어서 애들 키워보세요. 세상에 속일 넘 하나도 없다니까요..

웽스북스 2009-01-05 22:5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정성이같은 아들 있었으면 속일 생각 못했을 거에요.

마노아 2009-01-0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독 서른살에는 사람들이 민감해지더라구요. 제 주변에선 서른 살 되기 전에 우울증 걸려서 주변 사람들 지치게 한 사람도 있었어요. 금방 익숙해지더만요.^^

웽스북스 2009-01-08 01:48   좋아요 0 | URL
어이쿠,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말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

10대가 될땐 별생각 없고
20대가 될땐 왠지 신나니까
30대가 될때 비로소 뭔가 인식이 좀 새로워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