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을 '온전히' 치르고 티켓을 사는 일은 거의 없는 내가, 루시드폴 때문에 처음으로 콘서트 티켓을 지른 사건. 그것도 이미 두달 전에. 그러니, 얼마나 오매불망 기다렸던 날이었던가.

예전에 이승환 콘서트에서도, 윤도현밴드의 콘서트에서도, (물론 다 공짜로 티켓이 생겨서 갔던 것들이지만)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확실히 가만히 앉아서 노래와 대면하는 식의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루시드폴 콘서트의 정적은, 그래, 돌이켜보건대, 좀 많이 고요하긴 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재밌던 건 고요한 정적이 흐르다가 노래가 끝난 후에, 기침을 참던 사람들이 콜록 콜록 대던 순간. 기침조차 허용되기 어려운, 오로지 기타 소리와 그의 노래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메우던 공연이었다.

공연은 내가 좋아하는 '새'로 시작해 '오 사랑'으로 끝났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이라는 말이 불필요하다는 건 안다. 도무지 좋아하지 않는 곡은 별로 없으니. 그래도, 저 두 곡도, 정말 너무 좋아하는 곡들이니까.) 한 곡 한 곡 나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억제가 안되지만, 억제 해야한다, 그저 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반가움을 표할 수 있을 뿐. 새가 끝나고 나의 하류를 지나,가 나오고, 풍경은 언제나가 나오니, 아이고, 좋구나.

한마디도 안하고, 쉬지 않고, 그저 민망할 때마다 레몬 꿀차를 마셔가며 부끄러운 듯 노래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참 루시드폴 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성격의 사람이니 이런 노래를 쓰겠지. 그래도 2부에서는 제법 농담을 하는데, 어라, 이건 유머 코드가! 맞는 것이지. 하하. 이번에 준비한 건 새 노래인데요, 아, 새 노래는 맨 첫곡으로 했죠. (첫곡 = 새) 니나는 아무래도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 개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는, 성급하고 자기 중심적인, 하지만 굉장히 설득력 있는(!!! ㅋ)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맞는 말 같다 (^-^v)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강아지를 대상으로 쓴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가 유일하게 '사랑해, 사랑해'를 말한 노래라고 한다. 소속사 사장이 그 노래를 보더니, '야 니가 대상이 개가 되니까 이런 가사를 용기내어 쓰는구나' 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하하.

암튼, 이런 순간에는 자신과 마주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가사들은 올 한해 내 모습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내고, 나의 이십대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끄집어내고, 그렇게 끄집어져 나온 내가 다시 노래와 어우러지고, 그 노래가 다시 나를 위로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건 마지막 곡인데요'는 오늘의 가장 아쉽고 당황스러웠던 대사. 그래도 마지막 곡이 '오 사랑'이어서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계속, 너무해 너무해, 사람이었네도 안하고, 국경의 밤도 안하고, 그건 사랑이었지도 안하고,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도 안하고, 그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도 안하고, 사람들은 즐겁다도 안했는걸. 이라 말하며 아쉬워했다. 사실 끝나면 어쩌지 끝나면 어쩌지, 아직 이것도 안나왔는데, 이것도 안나왔는데, 설마, 설마, 하던 순간들이었다. 다행히 앵콜 두곡은 국경의 밤과 사람들은 즐겁다였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물론 10집 가수가 10집에 수록된 모든 노래를 콘서트에서 다 부를 수 없듯, 그 역시 주어진 시간 내에 최선이라 여겨지는 곡들로 선곡을 했겠지만, 그럴 바엔, 게스트를 부르지 말던가. 라는 야속함까지. ㅜㅜ 우리는 우스개로, 루시드폴 너무 박하다고, 루시드박 아니냐고, 아님 박시드폴 아니냐고, 계속 아쉬움을 표했지만, 어쩌면 아쉬움을 택한 그의 전략이 훌륭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집에 와서도 계속 이렇게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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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2-27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웽스북스 2008-12-27 12:39   좋아요 0 | URL
아프님 메롱 하고 싶다. 하하하.

니나 2008-12-2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되는꿈... ㅠㅠ.... 어제 루시드폴 씨디 틀어놓고 잤어....

웽스북스 2008-12-27 12:40   좋아요 0 | URL
사실 산이 되는 꿈 다음에 나왔으니 내가 되는 꿈은 나가 아닌 냇물일거야 그치 그런데 나는 그게 자꾸만 내가, 나 자신이 되는 꿈, 이라고 들리더라고.

마노아 2008-12-2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루시드 폴 공연 갔을 때 참 좋았는데 너무 조용해서 살짝 졸았던 기억이..;;;
저도 그때 공짜 공연이었거든요. 원래 공짜표로 가면 공연을 잘 못 즐기고 오는 법칙이 있대요. ㅎㅎㅎ
이번에도 브라질 노래 불렀나요? 처음 들어보는 그 낯선 언어의 노래가 참 신선했어요. 가사 어케 외웠을까 경이롭기까지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