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뭐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나마 좋았던 것중 하나가 나름 자유로운 규정과 사소한 배려같은 것들이었다. 일례로, 우리는 교통비를 교통카드에 찍힌 금액을 전액 지원해줬었는데 (잘 읽으시길, 과거형이다) 그게 일정금액 일괄 지급으로 바뀌었다. 집이 가까운 사람들은 몇만원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고, 집이 먼, 수원이나 인천 등등에 사는 사람들은 2-3만원 정도는 손해일 수도 있는 금액. 나는 요즘엔 좀 여기저기 많이 놀러다녀서 지급되는 금액 이상의 금액이 계속 찍혔지만, 평소에는 딱 그 금액 정도 나오기 때문에 빨간버스좀 안타고 좀 덜 돌아다니고 하면 모자란 금액은 아니다.

회사에서는 형평성을 이유로 많이 받던 사람은 많이 받고, 적게 받던 사람은 적게 받았던 제도를 바꿔 일괄 지급하겠다, 라고 얘기하지만, 형평성이 뭔가에 대해서는 글쎄, 한번 같이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형평성이란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차비 걱정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기 때문이다. 방배사는 누구는 차비지원 받고 어머 4만원이나 남네, 하며 기뻐하고, 인천사는 누구는 죽도록 아껴도 2만원 손해보는 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형평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다. 방배사는 이과장님도, 인천사는 라대리님도, 적어도 일단 대중교통은 걱정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돕는 것, 이게 내게는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복지였달까.

게다가 운동, 어학 뿐만 아니라, 본인이 수강증만 가져가면 어떤 강의든 60%를 지원해주던 것도 일괄 모회사가 만든 (아무도 안쓸 것 같은) 카드에 현금으로 적립해준단다. 한도액은 2만원이나 줄었다 ;;

사실 금액으로 따지면 그렇다. 나야, 차비도 좀 아끼고 하면 어느 정도는 남을테고, 교육비 지원은 어차피 매달 받지도 못했던 데다가 (혜택을 받을 겨를이 없었달까...) 60% 지원이니 8-9만원 정도 하는 학원 끊으면 5-6만원만 지원을 받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더 잘된 건지도 모른다. 적립된 금액으로 커피도 사먹을 수 있고, 교보나 예스에서는 책도 살 수 있더라. 모 백화점에서도 쓸수있고 어쩌고하니, 그래 아무리 계산해봐도 좀 더 받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이젠 차비앞에서, 교육비 앞에서 어쩐지 쩔쩔 매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 (고정액 지급은 아무래도 급여의 개념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괜히 서운하기도 하고. 실은 그보다 더 불쾌했던 건, 자꾸만 자기네 방식으로 우리를 바꿔나가려고 하는 모회사의 대응방식이기도 하다. 회사가 인수되고, 급여인상률을 그룹사 방침으로 적용하고 (이봐, 우린 초봉이 다르지 않은가!! -_- 나같은 경우는 인상폭이 많게 잡으면 예년 인상률에 비해 1/4 정도까지 낮아진 셈이다.) 자꾸만 깐깐하게 죄려는 것 같아서, 매우, 심히, 답답하다. 허울 외엔 남는게 없달까...

'집 가까운 것도 경쟁력인거죠? (요즘 이 생각 많이한다. 아침 출근시간에도) 저는 한정거장 앞에서 내리면 차비가 100원 덜나오던데. 하루에 100원씩이라도 아껴야겠어요' 라며 팀원들끼리 툴툴거리다가 퇴근을 했다. 하지만,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정작 한정거장 앞에서 내린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실 이 내적갈등은 일주일에 두번쯤은 하는 거다. 물론 실행한 적은 최근에는 없다. 역시나 역이 다가오니 내적 갈등이 심해진다. 마음의 위원회가 열린다.

내릴까? 아, 고작 100원 때문에 30분을 걸어? 그래,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자. 아니야, 그래도, 이건 나름 저항의 의미도 있는 거야. (혼자서 -_-) 점심 저녁 많이 먹은 것도 생각해봐. 충분히 걸어도 좋을 거리야. 운동한다고 생각하자. 아, 그래도 귀찮은데? 지금 들어가면 30분이나 더 쉴 수 있잖아. 으흠, 으흠...

그래도 확실히 100원을 아낄 수 있다는 건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았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스윽 내렸다. 몰라몰라. 그래도 100원 아끼니 된 거야. 라고 말하며 교통카드를 찍고 나오는데,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나온 액정을 보니. 100원이 싼 게 아니었다. ㅜㅜ 지하철 값 오르면서 다시 금액이 책정된 모양인데, 우리 집 쪽 지하철역과 같은 가격이다. 이런 뭥미한.  하도 오래동안 내적 갈등에서 승리한 적이 없어서 미처 몰랐던 거다. 이런, 동기가 사라져버렸다. 겸사겸사 살도 좀 빼보려고 했는데 말이다. ;; 100원에 이리 궁상을 떨다니. 후후훗. (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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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0-03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으면 아무리 그래도 100원 아끼자고 30분 걷는거 고민도 안합니다. 제가 좀 부자예요. ㅎㅎ
저희도 월급체계에 교통비가 그냥 정액으로 들어가 있으니 그걸 그냥 월급이라고 생각하지 교통비라고 생각은 안들더라구요. 복지정책의 경우 정말 얼만큼의 액수냐 하는 것도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그 내용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공평하게 혜택이 돌아가느냐 하는 면도 고려되어야 할텐데 점점 그런 마인드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웽스북스 2008-10-03 00:51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원래 좀 사소한데 궁상을 잘 떨어요. 택시비 3000원 아끼려다가 빗길에 30분동안 걷고 20분 버스 기다린적도 있어요. ㅎㅎㅎㅎㅎ 제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어요. 이래서 또 디게 아끼고 사는 것 같지만 의외로 큰 구멍들은 숭텅숭텅 뚫리고 그래요. 어휴. 쓰고보니 슬프다.

아무래도 정액으로 들어간 교통비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젠 차비아끼기 놀이를 해보려고요. ㅎㅎㅎ

동녘 2008-10-0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차시 카드를 한정거 전에서 찍고 내릴 정류장에서 내리면 100원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웽스북스 2008-10-03 12:15   좋아요 0 | URL
하하핫 지하철이라는 ㅜㅜ

2008-10-03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4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10-0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감각의 문제라고 봐요. "교통비를 지원해준다니, 웬디양님네 회사 좋으네. 일괄로 주든 어떻게 주든 주는 게 어디야"라고 생각했다가 아아 이 얼마나 패배의식이냐(훌쩍) 하는 마음에 그만 무너졌어요.

우리 회사는 점심 식권이 나와서 그걸로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요, 그 식당들이 모두 담합이라도 한 듯이 맛이 없어요. (으아아악) 개중엔 맛난 식당도 있긴 한데 거긴 식권이 안 됨. 그 식당에도 식권 오픈해달라고 총무 이사님한테 몇번 징징거리면서 이것도 약간 궁상이라고 생각했답니다. -.- 암튼 어딜 가시든 그 백 원 내가 줄 테니깐 걷지 말아요!

웽스북스 2008-10-04 23:16   좋아요 0 | URL
점심식권이 나온다니. 아아 그게 어디냐, 하다가 저도 그만 무너지고 ㅜㅜ

네꼬님 식권식당 말고 내 생돈을 다 내고 먹는 식당도 너무 맛이 없어요. 뭐든 매일 먹으면 지겹고 맛없는 것 같아요 ㅠㅠ

있죠, 저는 저녁 식대가 6000원 나오던 시절에, 6000원으로는 먹을 밥이 없다고, 7000원으로 늘려달라고 징징거렸던 과거가 있어요. (그래서 올라가긴 했지만 -_-v) 이정도면 퀸오브 궁상 아니겠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