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을 환영하오, 필그림 선생" 스피커가 말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소?"
빌리는 입술을 핥으며 잠시 생각하다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왜 하필 나지요?"
"그것 참 지구인다운 질문이군.
필그램 선생. 왜 하필 당신이냐?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왜 하필 우리지? 왜 하필 어떤 것이지? 그 이유는 단지 이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오. 호박에 갇힌 벌레들을 본 적이 있소?"
"있습니다" 사실, 빌리의 사무실에는 문진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무당벌레 세 마리가 들어 있는 반질반질한 호박 덩이였다.
"필그림 선생.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호박 속에 갇혀 있는 것이오. 왜라는 건 없소"

 
   


오늘 오후에는 (나로서는) 매우 간만에 불라에 갔다. 차를 마시며 나와 H님은 제5도살장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하고 있었고, 불라 사장님은 우리의 얘기를 들으며 딴짓 중이었다.

불라 사장님은 달팽이를 키우는데, 달팽이가 알을 낳아, 그 새끼들을 따로 그릇에 담아 상추 위에 올려놓았다. 30마리쯤 되는 새끼들이 상추를 많이 갉아먹어서, 새 상추로 옮겨주려고, 한마리, 한마리씩 달팽이를 옮기고 있는데 그 중 한 녀석이 툭! 아래로 떨어졌다. 어두컴컴한 카페, 워낙 작은. 지름 1cm도 안되는 달팽이를 찾는 것은 어려웠기에, 달팽이의 운명은 거의 결정되는 듯 했다. 이 때 H님이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저 달팽이는 '왜 하필 나지?' 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사실 그 달팽이가 떨어진 데 무슨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저,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툭, 하고 떨어진 것일 뿐. 그렇게 가는거지.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인 불라 사장님이 핸드폰 불빛을 켜고 그 달팽이를 찾아내,
애기 달팽이는 다행히 살아났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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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1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5도살장, 어제 EBS에서 하던 영화랑 같은 건가?
졸다 자다~ 했더니만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당~~ ㅜㅜ

웽스북스 2008-09-21 19:48   좋아요 0 | URL
네, 그랬다고 하더라고요...ㅎㅎ

네꼬 2008-09-21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하필 저예요? 왜 하필 저를 이렇게 좋아하시는 거죠? (.. 죄송해요. 화제의 드라마 <에덴의 동쪽> 이연희 풍으로 해 본 거예요.) 웬디님, 이 책 어때요? 그의 에세이처럼 재미나요? 아님 제목처럼 무서워요? 아님 이 페이퍼처럼 심오(!)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네꼬

웽스북스 2008-09-21 19:49   좋아요 0 | URL
아, 그것만큼은, 이유가 없지 않아요 네꼬님.
그리고 이 책은... 네꼬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에세이는 제가 읽지 못했어요. ㅎㅎㅎ)

2008-09-21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1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09-2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께서 '애기 달팽이'라고 얘길하시니 뉘앙스가 굉장히 묘해요. 웬디양님은 '애기 달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실 분 같아요. 다른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아, 그런데 다른 표현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될까요? (뭐라는걸까?)

웽스북스 2008-09-21 19:5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싶은데 또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 이 기분은 뭘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