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아야, 성집사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나니
라고 조금 전 집에 돌아온 엄마가 물었다, 나는 아니, 라고 답했다
장례식장에서 내게 망자의 이름은 낯선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망자의 가족 이름에서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찾아내
빈소로 가곤 했었는데
오늘 장례식에서의 망자의 이름은 내게 낯익다
3년쯤 전, 친하지 않던 회사 팀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던 걸 제외하면
내가 아는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간 건 처음이다
그래서, 집사님의 사진이 낯설다
특히나, 아프기 전, 밝고 하얗고 통통한 얼굴의 사진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안양 장례식장은 세번 가봤다
(갈 때마다 주변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마음이 잔뜩 움츠러들곤 한다)
K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 S오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두번째
그리고 집사님이 돌아가신 오늘이 세번째 방문이다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가는 일이 많아지면 나이가 든 거라는데,
이제 누군가의 조부모님, 부모님이 아닌,
내게 소중한 누군가의 장례, 라는 걸 실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구나
라는 마음이 자꾸만 든다
나이가 좀더 들면,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에도 익숙해질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스스로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눈이 빨갛게된, 이제 고등학생인 성집사님의 딸 S를 보며
짐짓 밝은 척하고 계신 남편 C집사님을 보며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면서 끊임없이 타인을 챙기시는
성집사님의 언니인 사모님을 보며,
첫조카라 이모와 특별했던 M의 흔들리는 뒷모습을 보며
말을 건네는 일이 여전히 어려운 나는
그저 오래 기도를 드릴 뿐이다
망자에 대한 기도보다, 산자를 위한 기도가 더 길고 길다
슬픔을 빨리 잊게 해달라는 건 어쩐지 망자에게 좀 미안한 것 같기도 하여,
그저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달라는 기도밖에는 드릴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는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니
이런 황량한 때에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나누고 난 뒤에는 한켠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가는,
그것이 미덕인 우리나라의 장례식 풍경은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도 꿋꿋이 산 자는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주길
망자는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리라
그리고, 그렇게 잘 살아야 할테고
그 와중에도 돌아오는 길에 장례식장 앞 쓰레기더미에서
작렬하는 일회용품들을 보며 나 잠시 분노 -_-
(이놈의 성격을 어쩌면 좋으랴)
그런데 생각해본다
이조차 쓰지 못한다면,
그 부족한 일손에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면,
그것도 참 어려운 일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