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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역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는 생각밖에 할 게 없어, 오늘 나눈 얘기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당신들이 내게 새벽의 찬 공기와도 같은 존재같다는 생각을 한다. 당신들을 만나고 나면 코끝이 뚫리는 것 같고, 숨통이 트이며 시원해지는 것 같은 마음. 당신들은 분명 내게 위로자가 되어주지만, 나는 현재 나의 삶에서 당신들의 몫을 위로자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거기에서 그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아오고 나면 잠이 안온다. 생각할 게 많아서, 그게 기쁘고 또 참 고마워서. 괜히 헤헤거리고 좋아하면서 당신들 중 아무도 내 앞에 없는데 나 혼자, 함께함이 참 좋다고 주절주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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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서러운 건, 우리 중 대다수가 여전히 공부중이라는 건데, 직장인의 신분인 내가 그들만큼 공부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공부할 수 있는 양으로는 내가 절대 그들을 따라갈 수 없겠지, 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좀 부럽기도 하고 샘나기도 하고 그렇다. 몸과 마음은 안따라주면서, 욕심만 많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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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 나와 설거지를 하다가 내게 (밥벌이의 수단으로) 글을 왜 쓰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이 글을 쓸 정도의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스킬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넓지도, 깊지도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글을 쓴다는 건 스킬보다는, 결국 무엇이 담겨있느냐,의 문제이고, 내 안에는 잘 담아낼 컨텐츠가 매우 미약하니까.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이건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글을 쓰는 직업을 택한다면, 그로 인해 쓰게 될 생각과 마음에 반하는 글들을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다. 글을 씀으로써 생각을 정리해나가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글을 쓴다,는 행위에 어쩌면 필요 이상인지도 모를, 민감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짧으나마 미약하나마 경험을 했었고, 괴로웠고, 나는 그냥 그런 것과 상관 없는 일을 하겠노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글은 이렇게, 일기나 잘 쓰면서 살 수 있으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고.
그래도 일기로 쓰여질 소소하고 소박한 생각 정도는 어렵잖게 표현하고 살 수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지. 그런데, 때로는 그조차 참 어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