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글을 쓰고, 청소년 친구의 문자를 받고 나니,
이 이야기를 좀 공론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주보에 올려줄 것을 요청했다

내년에 선생님 짤리는 건 아니겠지? (실은 그래도 상관없긴 하다 ㅋ)



청소년 주일에 고합니다!

지난 주일 아동부 예배를 마치고 제 마음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부 친구들이 조금 거친 언사로 현 정부의 미국 소고기 수입 정책에 대한 반발을 표했고, 어른들은 이런 친구들을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었죠. 아무것도 모르면서 애들이 휩쓸린다, 선동되고 있다,라는 기득권 언론들의 논리를 어른들이 펼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접하는 것을 바탕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밖에 없고, 그 프레임이 되주는 큰 틀 중의 하나가 언론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언론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면박하기 전에 아이들이 처한 현실과 그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에 대해 어른들이 한 번 더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속상했습니다.

88만원세대,라는 말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계실 거에요. 바로 현재의 20대 세대를 칭하는 말이지요. 취업난이다 비정규직이다 하며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 시대를 살 수 밖에 없는 요즘이다 보니 그들은 자신이 구조적으로 88만원 세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데 대한 책임이 없었음에도, 세상을 향해 '찍' 소리를 할 정신적/물리적 여유가 없습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우석훈 박사는 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이들에게 '다시 짱돌을 들라'고 도발하지만 이들은 짱돌을 들 기운도 의지도 없습니다. 개인적인 루트로 우석훈 박사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우석훈 박사는 20대가 일어설 경우를 대비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조직도 연대해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들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철저하게 개인화된 세대이기 때문에 내 앞가림이나 하며 입 닥치고 공부만 열심히 해야 좋은 직장에 겨우 들어갈까 말까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그 현실을 만들어놓은 것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어른들입니다. 20대의 정치적 관심을 없애고, 어려운 현실을 들이대며 그들에게 재갈을 물려, 그들을 위한 정책적인 배려는 굳이 하지 않아도, 그것이 다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따라서 다시 그들을 사회적으로 소외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정치하시는 어르신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양손에 꼭 붙들고 내주지 않으면서, 너희들이 이렇게 된 건 너희 책임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 한권 읽을 여유도, 사고할 마음도 주지 않으면서, 요즘 애들이 책 한권 읽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혹시 88만원세대라는 책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제게 개인적으로 얘기해 주세요. 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권의 20대 길들이기는 참 성공적이었지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10대들이 광우병 문제로, 짱돌 대신 촛불을 들고 일어서니 어른들께서는 참 많이 당혹스러우셨나봅니다. 언론들이 앞다투어 청소년들을 '잘 알지 못하면서 나서는 철없는 세대'로 매도합니다. 아이들의 시위 약속을 '괴담'으로 규정합니다.(저는 제가 괴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줄 알고 다시 국어사전을 찾아봤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철없는 것들'이라는 소리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현장으로 나옵니다. 시위가 있던 첫날 찾아갔던 청계천 광장은 그렇게 달려나온 청소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들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요, 어른들로부터 철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던 지점이 어디인지도 분명 제 눈에 보였습니다. 그래도 질서정연하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앞에 나와 똑똑하게 이야기하는 모습들은 퍽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수능을 며칠 앞둔 고3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학생은 자신은 꿈이 있는데, 광우병에 걸려서 그런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웃는 분들 계시겠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다는 말로요. 너희들이 뭘 몰라서 그런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검증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확률을 들이대며 아이들을 철없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상황은 누가 얼마나 광우병에 걸릴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규정하며 안심하라,며 충분히 야기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눈가림하는 건 한국 정부가 할 일이 아니지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한국 정부는 국민들을 위한 보호장치를 충분히 마련해야 마땅한데, 현 정부는 이것을 기만하고 있지요. 아이들이 화가 난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도 하지만, 더 크게 생각해본다면, 그들의 미래가 달린 다른 문제들 역시 그들에 의해 기만당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영어 교육을 중시하는 현 정부가 단순한 영어 해석의 착오로 인해 더 큰 위험을 안게 될 만큼 경솔한 정부였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들의 미래에 시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요?

광우병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후에 발병되는 병입니다. 어른들은 그 전에 다른 병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다며 광우병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요? 10년, 20년 후에는 그 아이들이 한참 꿈을 펼칠 나이입니다. 그 아이들 중 누군가의 미래를 담보로 한 자동차 수출이 정말 더 소중할까요? 군대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그 소고기를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아이들 (한밀이의 말에 의하면 군대에서는 밥을 거부하는 것 역시 군인의 의무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의 두려움은 정말 그렇게 과장되고 터무니없는, 철없음의 소산일까요?

저는 우리 청소년 아이들이 참 기특하고 예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이렇게 낼 줄 아는 건 우리 세대도, 그리고 그 뒷 세대인 현재의 20대 초반 대학생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죠. 사실은 어른들이 나서서 그들의 미래를 보장해줘야 하는데, 어른들이 해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나서게 됐죠. 하여 그들에게 저는 다시 한 번 빚진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또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현 정부를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는) 은지와 재현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 좀 짱이라고 (아이들 유행어) 주눅들지 말고 이 기회에 생각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은지에게 선생님은 요즘 어른들 중 좀 짱이라고, 용기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이 기회에 세상을 향한 생각과 사고를 좀 더 넓게 키워가겠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좀 짱인, 멋진 비전교회의 어른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이 어른이 됐을 때, 이전 세대의 불행한 현실과 모순을 그대로 답습할 것을 강요하는 기성세대들에게 당당하게 노! 라고 이야기할 줄 아는 세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는 청소년 주일입니다. 지난 어린이주일 때 목사님께서 하셨던 이야기를 기억해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 조금 덜 쓰고, 조금 더 남겨 주기. 이 역시 그 부분의 연장선 상에서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그들의 마음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해줄 것. 그래서 그들이 세상을 향해 펼쳐낸 첫 목소리가 철없다,는 어른들의 한마디에 힘없이 꺾이지 않도록 충분히 지지해줄 것. 그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어른이 되어줄 것.

제 생각에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설마 저더러 빨갱이 선생님이라고 하시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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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5-1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극좌~!!!

웽스북스 2008-05-13 09:30   좋아요 0 | URL
그말을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었던 거죠? -_-

마노아 2008-05-13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 짱!

웽스북스 2008-05-13 09:31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더더 많은 학생들에게 더더더 짱인거 다 알아요

차좋아 2008-05-13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걱정....되요.(선봉에 선다는게 )
왠디양님을 통해 알고 있는 비전교회는 훌륭하지만..
그래도
웬디양님의 아이들 사랑이 그런 용기의 원천이라 생각하실 거에요(사모님 외..)
저는요
웬디양님 반 학생이고 싶습니다.

웽스북스 2008-05-13 09:31   좋아요 0 | URL
차좋아님, 저 아시죠?
선봉에 절대 서지 않아요 ㅎㅎㅎㅎㅎㅎ

그냥 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뿐이에요

우리반에 들어오면 좋아요
왜냐면 맨날 1등으로 끝내주니까 ㅋㅋㅋ

(아, 근데 요즘은 저 반이 없어요 알고보면 짤린건가? ㅋㅋ)

순오기 2008-05-1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며 눈가에 촉촉함이 묻어났어요~~~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없다면 그 나라는, 정부는 있으나마나 아니겠어요?
정부측 토론자로 나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국민대다수가 뭘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로 치부하더군요. 그러니까 그따위 짓거리를 겁없이 하는 거겠죠?
88만원세대보다 요즘의 10대들이 좀 짱이죠. 공개적으로 이런 글 올리는 웬디양님도 좀 짱이고요!!

웽스북스 2008-05-13 15:2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보다는 우리 10대들이 좀더 짱이지요 ㅋㅋㅋ
정부측은 좀 짜증~

순오기님이 잘 읽어주셨다니
참 다행이고 감사하네요

다락방 2008-05-14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호 시사인의 표지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글이네요. 시사인 집어들면서 웬디양님의 이 글이 생각났어요. 엇, 하면서요.

웽스북스 2008-05-14 09:25   좋아요 0 | URL
저도 읽으면서 제글 생각했어요
오늘 한겨레에도 10대에 집중하는 글 나왔던데
어휴 한 이틀만 늦었으면 민망해서 못올릴뻔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