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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청소를 했기에, 청소할 것조차 얼마 없는 이런 주말은 참으로 욕심이 많이 생기는 날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영화도 한편쯤 보고 싶었고, 책은 한 두권쯤 읽고 싶었고, 책장도 좀 정리하고, 영수증들도 좀 정리하고 싶었는데 오늘의 일과는
늦잠 - 밥 - 알라딘 - 독서 - 낮잠 - 독서 - 낮잠 - 독서 - 낮잠 - 독서 - 밥 - 교회 - 쇼핑 - 알라딘 - 청소 - 알라딘
그럼에도 책은 반권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는 건, 낮잠의 포션이 적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자고도 또 잘 수 있는 스스로가 그저 기특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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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깐 깼었는데, 그건 S로부터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인 S는 벌써 돌쟁이 아기아빠가 됐는데, 오늘 후배애들 상견례가 있어 이쪽으로 온다며 시간이 되면 잠시 얼굴을 보자는 전화였다. 나는 오늘 청소를 해야 하고, 밖에 나갈 계획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누나 집있는 쪽으로 가면 잠깐 나올 수 있나? 라고 하는데, 음,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돼, 라고 얘기하고 끊었다. 생각해보니 엄청 미안하잖아. 그러지 않아도 돼, 라니. 무슨 이런 엉망진창인 배려가 다 있담. 잠결이어서 가능한 거절이었는데, 덕분에 하루가 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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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로 내일 저녁에 있는 약속도 취소할까 생각중이다. 분명 가면 엄청 좋을 거 알면서, 역시 귀찮음을 무찌르고 오길 잘했어, 라고까지 생각할 거 알면서. 눈앞의 귀찮음이 먼저인 이 초특급 의지박약 아가씨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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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사님 딸인 고등학생 S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이름만 호텔인, 이상한 숙소에서 묵었었는데, S는 무려 한화콘도에서 묵었다고 한다. 아, 고등학교 수학여행 숙소가 한화콘도라니.... (부럽다, 으으 제주도 가고 싶다, 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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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출퇴근길에 지나는 여관 앞의 목련꽃이 피지 않아 긴장중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피는 목련이어서 매년, 얼마나 예뻐해주고 있는데. 너무 추워서 그대로 얼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출퇴근길에 그 앞에 서서 다른 동지들을 배신하고 먼저 틔운 꽃망울의 주인공이 없나 살피는데 얘들이 참 사이도 좋게 다같이 안피었다 -_- 한송이라도 피었으면 그게 누구든 정말 예뻐해주려고 했는데. 오늘 비도 내렸으니, 내일쯤은 피어있지 않을까 싶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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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의 음악을 듣고 있는 중이다. 이문세 아찌 노래만 들으면 나는 나의 중학생 시절의 많은 부분에 색을 입힌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자꾸 떠오른다. 별밤은 나에게는 마음속에 꼭꼭 간직한 하나의 작은 소망과도 같은 프로그램이어서, 옥주현, 박정아 등이 별밤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진행자도, 색깔도 다 바뀌었는데, 그 시간 대에 그 주파수에서 방송한다는 이유만으로 별밤이라는 이름을 쓰다니, 이미 그 때의 그 별밤이 아닌데 말이다. (진행을 꽤 잘한다고 누군가 얘기했을 때도 나는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 -_- 아무리 잘해도 그건 별밤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하지만 별밤을 듣던 그 시절의 내가, 이문세의 음악까지 특별히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틀어주는 최신 노래들이 좋았고, 팝들이 좋았지. 그 때의 내가 듣기엔 올드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일렉트로니카 음악들을 좋아하던 얼마 전까지도, 나는 예전 노래의 반주들이 막 촌스럽게만 느껴졌었다. 정말 사람이 변하는 건 일순간인걸까. 요즘은 김광석-양희은-이문세, 이런 음악들을 자꾸만 찾아 듣는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악들은 또 잘 못듣겠다. 오늘은 '종원에게'앨범을 들었다. 그러고보니 종원이도 참 많이 컸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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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힘겨워도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말하지는 않을 셈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눈물 흘리지 말아요' 이노래는 왜이렇게 좋은지. 이렇게 매일매일 스스로의 모순을 마주쳐도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