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어이 루나파크를 주문하고는 회사에서 심심할 때마다 (아니 회사에서 심심할 틈이 어디있단말이냐!!!) 하나씩 읽으며 헤헤헤 거렸다. 그리고 회사사람들 주제만화도 하나씩 찾아줬잖아. ㅋㅋ

새봄모드 옷입고 왔다가 덜컥 감기에 걸려버린 E대리님께는 스프링해즈컴!을 신나게 외치다가 똑 감기에 들어버린 모드의 루나양 만화를, 오늘 안에 캐시미어를 입고 왔다며 신나하던 L과장님께는 옥매트의 따땃함을 포기못해 집착하고 사랑하는 루나양 만화를, 우리 신입사원 H씨에게는 3년째 신입모드로 사느라 신입사원 증후군에 걸린 루나양 만화를 선물했다. 흐흐 다같이 헤헤거리면서 함께 즐거워했다. 봄인데 좀 헤헤거리면 어때. ㅎㅎㅎ (아 저 익숙한 풍경의 방좀 봐, 바닥에 널부러진 노트북까지 ㅎㅎ)

2

종종 에세이류의 책을 읽으면 머릿속이 산문모드가 된다. 마치 내가 산문이라도 쓸 것처럼 상황 상황을 받아들일 때 꼭 산문 버전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루나파크를 읽다보니 자꾸만 머릿속이 만화 모드가 된다. 이를테면 오늘 집에 들어와서 있었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실제상황
오늘은 엄마 교회 모임이 있던 날. 집에 돌아오니 식탁에 조기가 놓여져 있다. 동생이 식탁 위의 조기를 보며 한 말.
"오늘은 생선도 구우셨네, 지난 번에 쭈꾸미도 사오시던데, 쭈꾸미 요리는 안하셨나?"

그리고 이후 든 생각들

정상 모드였다면 이렇게 생각했겠지
(낯선 감정을 느끼며) 어머, 얘가 철이 들었나? 언제부터 이렇게 극존칭을 썼지?

아마 산문모드였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쓴다는게 아니라, 정말 생각이 이렇게 흐른다는 얘기)

나는 순간 동생의 존댓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동생은 언제부터 저렇게 부모님께 존댓말을 했었단 말인가. 군대란 철없던 동생을 저렇게 바꿔놓는 곳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그저 세월의 영향인가. 어쨌든 철이 든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면서도 그만큼의 사회화임을 뜻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참 슬픈 일이기도 하건만. 저렇게 부쩍 철이 들어버린 동생이 갑자기 타인같다. 그만큼의 세월을, 아니 그보다 몇년을 더한 세월을 나도 보냈지만, 나는 스스로 저렇게 존칭을 쓰는 내 모습이 여전히 어색하다. 그냥 철없는 딸이면 안되는 걸까?

그런데 만화모드의 나는 이렇게 생각이 흘렀다. (괄호는 상상속의 그림)

(놀라는 표정) 허억! 이런 극존칭을! (난감한 표정) 흐음..... 어색해 어색해.....(군복입고 경례하는 동생 모습) 쟤가 군대를 갔다오더니 철이 좀 들긴 든건가? (의기양양해서 어쩐지 좀 재수없는 철든 동생 표정과 그 뒤로 반짝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그 위로 덧입혀진 텍스트 '이전의 내가 아님') 아아,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 같아..........  (동생 그림 아래에서 방바닥을 문지르며) 동생이 저렇게 부모님께 존칭을 쓰는 동안 몇년이나 더 산 너는 뭘 했느냔 말이다. 역시 철이 없는 건 나뿐이었던가... 흑! (갑자기 바닥에 휙 하며 쓰러진다, 윗쪽으로 흩뿌려지는 물방울 모양의 눈물)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어색하단 말이지 나는 그냥 계속 철없는 모드 하고 싶은데 (둥실 떠오르는 부모님의 얼굴, 인자한 표정으로) 딸아, 그건 우리도 어색하단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의 딸이 돼주렴 (갑자기 샤방샤방 반짝반짝 눈으로 변하며 완전 사랑스러워지는 얼굴, 둥실 떠올라 날아갈듯한 몸, 뒷쪽으로 흩뿌려지는 꽃. 가슴 앞으로 맞잡은 양손) 엄훠, 어머니 아버지, 역시 그렇죠? (굳은 다짐을 한 듯한 표정) 그래, 나는 나로서 살아가면 되는거야. 내가 어떤 모습이든, 중요한 건 마음이잖아. 그래 역시 그런 거야 (나는 계속 의기양양하고 해피한 표정으로 샤방샤방모드 유지하고 있고, 뒤쪽으로 돌아가는 시니컬 모드의 동생 표정) 그래서 철은 언제 들건데? (샤방모드 웬디의 양 귀에 보호막이 쳐져 있다)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만화모드의 나의 생각들은 유쾌해서 좋지만, 으흠, 역시나 좀 매사에 오버스러워지는 면이 있다. 매번 오버액션 뒤로, 또다른 자아가 막 나를 질책하고 말이지. 그래도 며칠간은 이모드 유지될듯. 아, 그림그리고 싶다. -라고 하는 순간에도, 빵모자 쓰고 붓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한 표정 짓고 있는 모습 상상되고 막 -(오버자아) 저기, 정작 루나는 플러스펜으로 그리고 포토샵으로 색칠하거든?(질책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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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3-28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니팍에 초공감하시더니...열광의 반열에 진입하신 겝니다.

웽스북스 2008-03-28 01: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으흠, 어쩐지 약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죵 ㅜㅜ

turnleft 2008-03-2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만화모드 상상이 너무 잘 되요~~ >.<

웽스북스 2008-03-28 10:32   좋아요 0 | URL
후후후 저도 상상한 걸 그대로 옮겨서 그런가봐요 ㅋㅋ

무스탕 2008-03-2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웬디양님을 만났습니다. ㅋㅋ

웽스북스 2008-03-28 10:33   좋아요 0 | URL
헤헤 얼른 만화모드에서 빠져나와야 할텐데 말입니다

L.SHIN 2008-03-2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루나파크 책도 있군요. '통-' (리스트에 담는 소리 ㅋㅋ)

웽스북스 2008-03-28 10:33   좋아요 0 | URL
통! 아, 에쓰님한테는 재미없으면 어떠나..... (걱정한다 괜히 ㅋㅋ)

L.SHIN 2008-03-28 15:55   좋아요 0 | URL
왜요~ 저번 웬디님이 올려준 페이퍼 보고 재밌어 했는데~ ^^

순오기 2008-03-28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좀 만화스럽게 살 필요가 있어요.
잠시 게서 머물러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심 안되나요?ㅎㅎㅎ

웽스북스 2008-03-28 15:05   좋아요 0 | URL
흐흐흐 그럴까요 그럼? (긁적긁적 실은 좋아하고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