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야근을 했던 이유는 일본에서 꽤 규모가 큰 모 대행사에서 회사로 오는데, 현재 한국의 온라인 광고 시장에 대한 브리핑 자료를 좀 만들어 달라고 했기 때문. 아, 이거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 있어? -_- 라고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해버렸다. 하여튼 나는 가끔 이렇게 강약 조절이 안된다. 사실 실장님이 발표하기로 한 건데, 요즘 바쁘고 상태가 좋지 못한 실장님께서 내가 발표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운을 띄우셨다. 사실 그 말을 꺼낼 때부터 날 시킬 생각이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럼 차라리 빨리 얘기해 주시던가. 나는 애써 내가 발표하게 될 확률은 50%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80% 이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 발표하러 가기 싫어 아침에 옷을 그지깽깽이로입고 화장도 안하고 머리를 산발해서 출근을 해야 하나 심히 고민을 할 정도였다. 결국 옷은 그냥 멀쩡하게 입고 갔다. 잘못했다간 너무 데미지가 클 것 같아서 ㅜ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게 아닌데, 또 서두가 길어져버렸군. 결국 브리핑을 하게 됐고, 버버벅 하면서 겨우겨우 발표를 마쳤다. (오해말길, 통역 있었다) 한국에 방문한 일본 D사의 T부장은 우리 나라에 일본 브랜드의 광고를 집행할 때 우리 회사를 통해서 집행하는 것에 대해 고려중이라며 우리 회사에 대한 이러저러한 것을 물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일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놓고 뒤에 붙여진 말이 일을 진행하게 되면 '당연히' 일본어로 진행을 해야 하니까 였다. 아 그게 왜 당연한 걸까. 당연히, 귀에 와 탁 거슬린다. 과연 그 곳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직원이 있을까? 


2

몇번 언급된 적 있는 유학갈 친구 R의 환송회를 내일 해주기로 했다. 우리의 귀차니즘은 결국 달력도 주문 안하고, 선물을 뭘 살지도 오늘 정해서는 교보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가서 사기로 했다. 이번 선물의 컨셉은 '다시 학생이 되는 친구에게' 이다. 어째 고르고 나니 뿌듯하다. 나에게 선물로 주려고 골라놓은 것도 가서 눈으로 검증하고 왔다. 주문해도 좋을 것 같다. 앗싸!

교보에 간 김에 이번에 졸업하는 교회 아동부에서 우리반이었던 재혁이와, 내가 좀 이뻐하는 중학생 은지의 졸업 선물을 샀다. 나름 의미도 있으면서, 가격은 또 저렴해줘야 하니, 고르는 게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실은 스터디플래너,라는 다이어리가 있어 살짝 고민했으나, 어쩐지 애들을 너무 억압하는 제품인 것 같아 다시 놓았다. 그래도 선물로 엄청 팔리지 않았을까 싶다. (선물할 만한 게 너무 없다.) 결국 은지에게는 스터디플래너보다 좀 더 아기자기한 '즐거운 학창생활을 위한 다이어리' 라는 다이어리를, 재혁이에게는 디게 귀엽게 생긴 돼지저금통을 사주기로 했다.

즐거운 학창생활을 위한 다이어리에는 월마다 재밌는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떡볶이 맛있는 집, 읽어야 될 책, 뭐 이런 정보들이다. 그 중 하나로 글로벌 시대에 영어이름 갖기, 라는 게 있고 영어 이름들이 쭉 나와있는데 찾아보니 웬디도 있다. 뜻을 찾아보니 방랑자라고돼 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요즘 가끔 시사인에 칼럼을 쓰시는 이국운 교수님께 원고를 청탁드리기 위해 오피스로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이메일 어드레스를 알려드리자, 웬디의 어원이 아마 wind일 것이라며 바람둥이 아가씨냐고 놀린 적이 있었는데, 방랑자라는 뜻이 있었구나, 처음 알았다. 어쩐지 좀 안어울린다 싶으면서도 마음에 든다.

3

요즘 못된 선배되기 프로젝트 중이다. 아무래도 M이 입사 1년이 되도록 요모냥 요꼴인 건 애써 잡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답답하면 그냥 내가 해버린 무능한 선배의 탓인 것만 같아서, 말로 좀 몇 번 혼내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돌아오는 반응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저기, 하나도 안무서워요, 그거 혼낸 거에요?"

심지어 나는 화가 나서 부르르 떨면서 혼낸 거였는데, 친절했단다 -_- 난 진짜 카리스마가 넘치게 혼냈다고 생각했는데, 조곤 조곤 설명해주는 것 같았단다. 나름 나는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민이 컸는지, 수요일에 만난 M언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나는 M을 말로 제압하려 하는 게 문제이고, 걔는 이걸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걔가 제일 무서워하는 걸 찾아서 대응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줬다.

M은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아이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걸 제일 무서워한다. 그래서 어제는 M의 보고서를 계속 리라이팅 시켰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물론 이유가 없었던 건 아니다. 여기저기 오타들이 산재해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그냥 내가 고치던) 다섯시간 이상을 보고서를 들여다봐도 못찾아내더라. 줄맞춤이 어색한 곳이 있었는데 죽어도 못잡아내더라. 결국 M은 어제 9시 이후에 퇴근을 하고, 오늘도 그걸 찾아내지 못했다. 나에게 제발 알려주시면 안되냐고 하소연을 하는데 어림없다. 찾아보세요. 라고 분위기 잡고 눈깔면서 얘기하고는 뒤돌아서 "이번엔 좀 무서웠나요?" 라며 팀원들의 체크를 받는다.

누군가의 위에 있는다는 게 참 좋기도 하겠지만 실은 귀찮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동안은 M이 계속 회사에 있을 애도 아니고 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자꾸만 실수가 잦아지고 한두번 애기한 게 안고쳐지고 하니, 그런 부분에 대해 됐다, 내가 한다, 라고 생각하고 그냥 말아버리는 것 자체가 방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내가 좀 무서워질 작정이다. 흐흐흐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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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2-16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그게 왜 당연한걸까요. 쳇.

암튼 웬디양님은 방랑자란 말이죠. 어쩐지 낭만적이잖아요! 잘자요, 웬디양님 :)

웽스북스 2008-02-16 11:44   좋아요 0 | URL
그쵸 -_- 쳇쳇쳇이에요
근데 저 이시간에 이미 자고 있었어요- 양치질도 안하고 ㅜㅜ

antitheme 2008-02-16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만적이고 친절한 웬디양님 무서운 선배의 길을 택하셨군요. 무서우면서도 존경받는 선배가 되시길...

웽스북스 2008-02-16 11:46   좋아요 0 | URL
네네 제가 바라는 게 바로 그런건데, 아 이게 뼛속부터 우러나와야 되는건데 이렇게 죽도록 노력해야 하다니 ㅋㅋ 감사합니다 (__) 부디 그렇게 되야 할텐데요

순오기 2008-02-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그 오만함이 싫어 싫어~~ 하긴 우리도 약자한텐 밀어붙이니까 쩝~~~~이다!
마지막 부분에 추천 한방~ㅎㅎㅎ 꼭 태그처럼 맛을 뵈주세요!^^

웽스북스 2008-02-16 11:4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우리는 말레이시아나 이런 나라랑 거래를 한다면 당연히 영어로 하지 않을까 싶긴 해요. 물론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구, 다른 부분에서는 참 약자한테 못하긴 하죠 우리나라가 -_-

Mephistopheles 2008-02-1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흠흠흠...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을 채용 혹은 발굴하겠죠?
2.역마살은 괘안아요..문제는 도화살이겠죠.^^
3.전 아예 일을 안줘버립니다. 처음엔 조아라 하지만 일주일 지나면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잘라버립니다. (으미 무셔라). 사실 일을 안줘버린다 경지까지 갔다는 건 제가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웽스북스 2008-02-16 11:50   좋아요 0 | URL
1. 그쪽 회사랑 거래를 튼다고 해도 빌링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무조건 뽑거나 발굴할 수는 없죠- 일단은 그 쪽에서 우리 쪽으로 연간 집행 금액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뽑거나 발굴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턱대고 뽑을 수는 없으니 영어로 이야기하자, 영어가 되는 직원은 있지 않느냐, 라고 그 쪽에 이야기했어요 (물론 내가 아니구 전무님이)
2. 도화살, 그런거 없어요 -_- ㅋㅋ
3. 자를 수가 있는 위치라면 벌써 잘랐지요 략 1년 전에 ㅋㅋㅋ 일을 안주면 그거 내가 다 해야 하니까, 두고봐야지요- 메피님은 디게 무서운 상사일 것 같음.

Mephistopheles 2008-02-17 15:25   좋아요 0 | URL
아니요 다정해요.화나면 야차로 돌변하지만..^^

웽스북스 2008-02-18 01:28   좋아요 0 | URL
아 그게 진정 카리스마! 내가 바라는 건데 말이죠 ㅋㅋ

깐따삐야 2008-02-1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그게 당연한 거로군요. -_-
2. 조신한 방랑자. 웬디양님!
3. 웬디양님 같은 직장 선배가 있음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을 했어도 정말 잘했을 듯.

웽스북스 2008-02-18 11:57   좋아요 0 | URL
1. 재수없죠 재수없죠
2. 어머 그 이미지 너무 괜찮은데요? ㅋㅋㅋ
3. 선생님은 우리 엄마의 꿈이었는데 말이죠. ㅎㅎ 나는 애들 차별 안할 자신이 없다는 이상한 핑계로 요리조리 빠져나갔었는데, 아흑, 방학 때마다 후회하잖아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