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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M을 보내는 자리는 눈물바다였다. 중학생부터 아줌마 집사님들까지 모두 훌쩍이시는 바람에, 내 눈물은 역시 낄 자리도 없더라. 역시 축복 많이 받은 녀석이다. 나도 축복한다, M의 삭발 사진을 포토메일로 전송받았다. 하하하하하! 훨씬 낫다. 그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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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일을 할 생각이었다.만. 회사후배의 전화를 받고 또 홀랑 나가버렸다. 같은 동네 사는 사람들끼리의, 이른 바 주민 모임. 그래봐야 3명이지만. 원래 커피만 사주고 4시쯤 집에 와서 일할 생각이었으나, 목이 마르도록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은 6시도 넘고, 에헤라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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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1년 내내 내가 했던 고민이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려 고민도 했었구요. 근데 R씨, 결국 최저연봉 앞에 가서 내가 했던 고민이 뭔 줄 알아요? 어, 그럼 나 이 책을 살 때, 이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이 맛있는 음식 한 번 먹을 때, 계속 계산하고, 계속 고민해야겠구나, 이렇게 후배들한테 커피 한 잔 사줄 때도 큰 맘을 먹고 사줘야 되겠구나, 약속 한 번 잡을 때도, 두세번 더 생각하고 잡아야겠구나, 결국은 이런 고민들이 날 붙잡더라구요. 좋아하는 일이고,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나도 어느 정도는 돈 생각 안하고 갈 수 있어요. 근데 자꾸만 어느 선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나를 붙잡는 건 어떤 대단한, 정의, 혹은 대의명분 같은 게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런 것들이더라구요. 나도 이런 나 자신에게 놀랐고, 또 나 자신이 싫었지만, 그냥 내가 이런 걸 어떡하겠어요. 이런 달콤함에 길들여져 있는 걸. 언젠가는 나도 그런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런 고민들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는 게 또 나에요- 아마 R씨도, 정말 현실적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되면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될 거에요.

6-70만원을 받는 일이라도,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던 후배에게 내가 했던 얘기다. 작년의 나라면 박수 치며 응원해줬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참 나쁜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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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후배들을 내가 참 좋아한다. 회사로 엮인 관계에서, 인간적인 그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언젠가 내가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계속 보고 싶을 것 같은 좋은 사람들을 자꾸만 만나게 된다. 참 감사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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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놀다 들어온 관계로, 오늘 해야 할 일의 목표는 계속 축소수정중. 주말에 일 가져오는 건, 악취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할 걸 알면서 이번 주는 급하니까 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계속 가져 오는 건, 메멘토의 주인공이 와서 '누님' 하고 갈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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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09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영화의 영향일까요 말씀하시는 M이 왠지 강동원을 닮았을 것 같다는 상상을....?
2. 간만에 주말 출근을 했습니다만 그나마 이틀정도 고생하면 끝이 보이는 일이기에 할만은 하더라는..
3. 비교적 적은 보수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청춘들의 저 머리 위에서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비정규직으로 최대 이윤을 뽑아내는 이 시대의 암흑대마왕 오너들의 그림자가 보이는 걸 보면 저도 알게 모르게 사회생활에서 잔뼈가 굵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4. 그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한동안 연락 안하다 간만에 했을 때 반갑게 전화 받아주고 급조된 약속에도 총알같이 튀어 나오는..^^
5. 메멘토...라기 보단...버릇같은 걸지도 몰라요.일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건.=3=3=3

웽스북스 2007-12-10 00:03   좋아요 0 | URL
1. M은 성악도다운 풍채를 자랑하는 학생이에요 ㅎㅎ 강동원과는 거리가 멀구요, 자칭은 다니엘헤니입니다. 자칭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지요
2. 메피님도 참 바쁜 업종이신가봅니다. 전 목요일까지만 딱 바쁠 예정입니다. 실은 일 가져오고도 놀아서, 바쁘다고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ㅋㅋ
3. 그죠, 특히나 후배가 관심 갖던 공연 쪽이나 영화 같은 예술계 쪽이 그렇죠, 제가 관심 갖던 쪽은 암흑대마왕 오너와는 거리가 멀면서도 박봉을 줄 수 밖에 없는 곳이었지만 말이죠.
4. 메피님같은 선배라면 어쩐지 저도 급조된 약속에 총알같이 튀어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5. 다음주엔 절대 안가져오겠다며 엉엉 우는 것도 버릇이겠죠? ㅠ_ㅠ

비로그인 2007-12-1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요일에 일탈을 할 수 있다는건 님이 미혼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기혼여성은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거든요.
저도 일탈을 하고 싶어지는 제목입니다.

웽스북스 2007-12-10 14:12   좋아요 0 | URL
결혼을 해도 저는 매일매일 일탈하고싶어질 거에요
근데 다 쓰고보니 일탈,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발악'정도인 것 같아요 ㅋ

미미달 2007-12-1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번은. 뭐 저에겐 익숙한 행동 패턴이예요. ㅋㅋ

웽스북스 2007-12-10 19:46   좋아요 0 | URL
미미달님, 역시!!! 닉네임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