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출근길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사서 선물로 받은 '비매품'
그의 산문집 읽Go 듣Go 달린다를 읽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흐흐
그 첫 파트인 읽Go 에는 김연수가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며 쓴 느낌들이 적혀 있는데
나는 이 파트를 읽으며, 이런 파트를 만들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책이 책을 부르다
그러니까 책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는 문구들을 옮겨적어보는 것.
물론 마음에 드는 것만
나는 책을 읽으며, 그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소개받는 일을 좋아한다
작가란 대부분 작가 이전에 왕성한 독서가들일테니 ^^
아, 김연수 좋아! ^^
1. 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의 주인공은 소설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책'을 만드는데, 낸 골딘의 작품을 들여다 보노라면 그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만하다. 그건 바로 타인의 삶 속으로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중략)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거리를 따라 걸으며 "그 때까지 살아왔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첫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기 딱 46분 전인 2001년 9월 11일 오전 여덟시의 일이다. 아무리 쿨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하얀 구름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죽음과 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소설은, 사진은, 시는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본직적으로 예술은 그처럼 뜨겁기만 하다.
* 폴오스터의 책은 한 권 (공중곡예사) 이후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싫었다기보다는 너무 흔해보여서였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라니 하하! (실은 최근 알랭드보통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도 비슷한 이유이니, 이런 호기가 또 어딨나 싶다)
2,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카잔차키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되면 절대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삶은 불가해하다느니 어쩌니 떠들어댈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나면 당장 책을 집어 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가 세상의 모든 것을 처음인 듯 바라보고 듣고 냄새맡게 만든다. 세상에 이런 책이 어디 있을까?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 번 읽고 나면 당분간 읽지 않아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방에 틀어박혀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때가 바로 조르바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이다. 일단 첫 장만 넘기면 된다. 그 다음에는 낄낄거리며 읽고 나서는 책을 집어 던진 뒤 밖으로 뛰어나가게 된다.
* 조르바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인걸까? 하지만 난 절대 조르바같이 될 수 없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음
3. 적과 흑 - 스탕달
속물적인 태도와 자존심이 그처럼 가깝다는 사실은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오묘한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 기나긴 소설에서 쥘리앵은 독자가 지루해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지점까지 자신을 몰고 간다. 그건 속물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공존하는 사람이기에 쥘리앵 소렐을 경멸할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다 (중략)
나는 쥘리앵 소렐, 드 레날 부인, 마틸드 등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그들은 권총을 가까운 곳에 놓고서는 호랑이와 친해지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는 책장을 덮은 뒤에 두고 두고 생각해볼 문제다. '불안에 대한 갈구'라고 스탕달은 이 책의 어딘가에 써 놓았다. 그래. 이 시대가 시시하게 된 것은 이제 불안을 갈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적 안전보장의 시대. 다들 더 높이 오르려고 하기보다는 다만 전락하지 않으려는 시대. 쥘리앵 소렐이 21세기에 더 매력적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4. 아Q정전 - 루쉰
이번에는 아Q정전을 읽으면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기만 했다. 혼자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삶이 자신의 의지에서 한 번 벗어나기 시작하면 자기 얼굴이 꼭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머저리 아Q. 가끔 나는 처형 직전에 노래 하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한 아Q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하고, 전혀 납득하지 못하기도 한다.
5. 소년의 눈물 - 서경식
서경식씨는 여기에 '나는 될 수 있으면 이 대목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라고 썼다.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서경식씨는 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대목을, 오랫동안 싫어했던 소설의 한 구절을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소년들이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리라.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만, 내 처지와 너무나 꼭같아서 차라리 혐오스럽던 책들만 오랫동안 자기 안에 살아남는다는 것. 올 봄에 도쿄에 갔을 때 누군가 서경식씨를 만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만나보고도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든다고 대답했다. 서경식씨라면 보자마자 나를 소년 취급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