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2시는 택시 잡는 게 어려운 시간대
웬만하면 금요일엔 야근도 회식도 안하는 게 상책이지만
뭐, 쉬운 일은 아닌 거다

일좀 하다가 동기들의 모임에 홀랑 넘어가서 11시쯤 나가 와인을 두잔쯤 마시니
적당히 알딸딸한 것이 기분이 좋다
비록, 와인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_- ㅋㅋ

혼자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택시를 잡으러 국기원 사거리까지 갔으나
오늘 택시를 잡기가 엄청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걸

나는 주로 콜택시를 부르거나 모범택시를 타는데
일단 안전하고, 카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

콜택시는 어차피 거절당할 게 뻔해서 애저녁에 포기하고
모범택시도 오늘같은 날은 거의 잡기가 어려운 걸 알기에
현금을 일단 좀 마련하고, 일반 택시라도 잡으려 했으나


여섯번쯤 거절당했나보다 흑!

아저씨들이 차를 세우면 뒷문쪽으로 세우는 게 아니라
앞문쪽으로 세우신 후 먼저 행선지를 묻는다

ㅇㅇ ㅂㄱㅇ이요 라고 말하면 바로 씽~

우리집까지 약 2만원 가량의 택시비를 받을 수 있으나,
올 때는 빈 차로 나올 확률이 높으니,
오늘같이 손님 많은 날은 골라 태우겠다는 심산이다

뭐,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나, 여섯대쯤 놓치면 심통이 난다
하지만 심통이 난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_-
(실은 한시간까지도 기다려본 적 있다)


아, 이를 어쩌나 하며 다음 택시를 세웠다
행선지를 말하려는데 아저씨는 말없이 뒷문쪽으로 세운다
반신반의하면서 차를 타서 행선지를 말했더니 아저씨 말없이 출발하신다


"택시 잡기 힘들죠?"
"네, 오늘 같은 날은 저희 동네로는 잘 안가려고 하시네요"

택시 운전을 시작한지 3개월이 됐다는 아저씨께서는
한 번도 승차거부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손님들이 많이 서있을 때는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

1순위로 태우는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라고 하신다
흑,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택시 아저씨가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감동

"아저씨, 좋은 분이신가봐요"

로 시작해 30분동안 아저씨와 도란도란 어찌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왔는지
나는 그새 아저씨 가족 사항을 다 파악한다

아저씨 부인께서 나이 50에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셔서
지금 D여대 사회복지학과 1학년으로 다니는 바람에
대학생이 집에 셋이란다

아들, 딸, 부인



부인 이야기, 아들 이야기, 딸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것 같은 아저씨.
지난 학기 학비만 1500만원이 들었어도, 그냥 마냥 좋고, 자랑스러우신가보다

(학비가 이렇게 비싸다니 -_-)


택시 외에 다른 사업도 하신다던데,
적지 않은 나이에, 열정적으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나도 뭔가 부릉부릉


택시 잡는 것 때문에 괜한 스트레스였는데
좋은 아저씨를 만나 기분좋게 잘 왔다


그러고보니, 우리 부모님도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할 때 이렇게 자랑스러워하실까?
흠, 아무리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별 자랑스러워할 만한 대목이 없긴 한데 -_-

또 '어떻게든' 찾아내는 게 부모님들의 주특기이긴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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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0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아저씨 참 좋은 분이군요. 나이 들고 뒤늦게 공부하시는 분들도 몇몇 있더라고요. 주변에도 보니. 우리집은 여건이 안되서 지금까지 아르바이트 뛰시지만. -_- 근데 어제 결국 와인 마시러 갔군요. 그럼 일요일날 나와야겠네 =333

웽스북스 2007-12-01 10:02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귀가 얇아서 꼬시면 홀랑 다 넘어가요 ㅠ_ㅠ
그래도 11시까지 버티다 나갔따는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33333
요즘 택시운전사 분들도 잘사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택시비 카드영수증 나오면 아저씨 집주소가 가이 나오는데 잘사는 동네가 많아서 허걱 한다는!

이매지 2007-12-0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택시비 영수증나오면 집주소가 나오는군요;;
우리집은 잘사는 동네가 아니니 뭐 ㅎㅎㅎㅎ
어제는 월말인데다 금요일이라 차가 엄청막힌다고 하던데.
그래도 웬디양님 무사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
맨날 나쁜 택시아저씨들 욕하지만 좋은 택시아저씨들도 많아요~
(절대 아빠가 택시한다고 편드는 거 아님 ㅎ)

웽스북스 2007-12-01 12:4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알아요 이매지님 ^^ 좋은 아저씨들 많아요
저 택시아저씨들이랑 가끔 수다 떨면서 올 때 많거든요
지난번에 신촌에서 탔던 아저씨는 택시드라이버 지식인이라고 불러드리고 싶을 정도였는데, 운전 시작한지 얼마 안된 분들 무선으로 차 문제 얘기하면 다 들어주고 어디가서 고치면 친절하다, 안심해라, 이런거 다 알려주시더라고요 ^^ 사실 뭐, 빈차로 나오는 거 나같아도 싫을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여섯대쯤 거절 당하니까 심통이 나긴 하더라고요- 대신 전 어디가면 손님 많아요- 이렇게 가면 되요, 이런 것도 알려드려요- 대부분 아시긴 하지만 ㅋㅋ

주소는 영수증에 다 나오는 건 아니구요
카드영수증에만 나와요- 그냥 미터 영수증은 요금만 쭉- 나오구요
개인 가맹으로 돼있으니까 다 나오는 듯 해요

마노아 2007-12-01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한 이야기에요. 그 아저씨 참 마음이 따스해 보입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도 밖에서는 고슴도치 어버이겠지요. 아마 우리들도 그렇게 될 거예요^^;;;

웽스북스 2007-12-01 20:38   좋아요 0 | URL
그죠 근데 대체 뭘 갖다 자랑하고 계실지 궁금하긴 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