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리님이 여기 불친절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생각보다 친절한데요? 아저씨 밥도 잘 갖다주시고"

오랜만에 점심시간에 도무지 찾을 곳이 없어서 간 회사앞 분식점 김밥속으로,에서 밥을 먹다가 순주씨가 말했다. 그러게 웬일로 밥은 얼마든지 줄테니 먹으란다. 그런데 밥맛이 바뀌었다. 과장님은 이거 중국산 찐쌀 아니야? 라고 말한다. 찐쌀이 아니고는 밥이 이럴 수 없다면서. 그러고 보니 식당 앞에 붙어 있던 '우리 쌀로 밥을 짓는다'는 문구가 사라진 것 같다. 나가면서 제대로 본다는 걸 잊었네.

"김밥속으로,가 불친절한 때는 '돈이 안되는 때'에요. 지금 여기서 우리는 돈이 되는 손님이잖아요"

나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확실해진 건 김밥속으로 주인 아저씨의 얼굴을 보면서였다. 김밥속으로 주인 아저씨의 얼굴에는 정말 돈 욕심이 가득하다. 그 돈욕심이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 때는, 회사 후배인 수현씨가 김밥 한줄을 샀을 때 아줌마가 넣어준 단무지를 아저씨가 야멸차게 뺐을 때였다. 김밥 한줄에는 단무지를 넣어주지 말라는 구박과 함께. 심지어 거기 김밥은 천 오백원인데 말이다. 카드기는 수건으로 교묘하게 감춰놨다. 이천 오백원짜리 참치 혹은 김치 김밥을 사고 가끔 법인 카드를 내야하는 상황이 오는데, 그럴 때면 온갖 싫은 표정을 다 지으신다. 그래도 우리가 자주 가는 손님이라 거부는 못한다. 세금 빠지고 수수료 빠지면 남는 것도 없으시단다. 아! 탈세도 하시나보다. (국세청에 신고할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었다) 그래서 난 김밥속으로에 가면 꼭 카드를 낸다. 이건 나의 소심한 복수다. 아니다. 내 돈은 탈세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정당방위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 같은 바쁜 때에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네, 라며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면 늘 '1분'이면 자리가 난다며 일단 들어오시라며 잡는다. 1분만에 자리가 나는 법은 거의 없음에도 말이다. 그런 얘기를 해주면서 밥을 먹고 있는데 "손님이 꽉 찼거든요? 다음에 오세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 왠일이지? 오는 손님을 막다니? 라며 의아한 맘으로 고개를 들어 그 쪽을 보니 여자손님 하나가 들어오려는 걸 막는 중이다. 혼자 오는 손님이 테이블 하나 차지하는 걸 곱게 볼 리가 없지. 이 바쁜 점심시간에. 우리 테이블 뒤에 있던 그 빈 테이블이 여자손님 눈에는 안보였을까? 그 아저씨 눈에는 안보였을까?

싸고 가깝고 음식맛도 나쁘지 않은 김밥속으로에서 종종 김밥은 살지언정, 앉아서 밥을 먹는 일은 두달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이유는 이런 거다. 여기서 밥을 먹고 있으면 꼭 보기에 편치 않은 일이 보인다. 그러다보면 서둘러 밥을 먹고 나오게 되고, 먹고 나서도 불쾌한 감이 찝찝하게 남는다는 것. 분명 재료도 싸구려로 쓸거야,라는 근거가 아주 없지만은 않은 툴툴댐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두세달쯤 되면 또 까먹고 분식이 땡겨~ 하면서 가는 우리도 참...!

암튼 또 그렇게 불쾌하게 밥을 먹으면서 나온다. 우리는 다섯명이어서 테이블 두개를 이용했고, 이제 그 테이블을 떼면 두개의 테이블이 나온다. 대기중인 팀이 한 팀 있었고, 일어서려는 우리와 동시에 행색이 매우 초라한 아저씨 한 명이 들어온다. 자리는 분명 두 테이블이다. 그 아저씨는 그걸 확인하고 테이블쪽으로 걸어들어온다. 김밥속으로 사장님과 생김새와 마인드가 매우 비슷한 총무격의 종업원이

"잠시만요, 기다리는 분이 계시거든요?"
라며 아저씨를 저지한다. 아저씨는 황당한 표정이다.
"밖에 나가계세요"

그리고 앞팀 한팀은 여전히 안에서 기다리게 한다. 우리가 계산을 하고 나갈 때까지 김밥속으로 아저씨는 그 초라한 아저씨를 안으로 들이지도, 테이블로 안내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유리문 밖에서 계속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밖에서 기다린 적은 거의 없었던 나는 이제 여기서 김밥도 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원래 불친절한 음식점이어서 모든 손님들에게 다 불친절하게 대하는 곳이라면 이렇게까지 불쾌하지는 않았을 거다.

얄밉다는 말도 김밥속으로에 갖다대니 귀엽다, 이건 정말 나쁘다. 아, 이 빈약한 표현력, 더가면 욕이 나올 것 같단 말이지.


혹시 나같은 사람 없나, 하고 검색해보니 이런 검색결과가 나온다.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8&dir_id=80601&eid=keeJa8wFKZ2H7/OKpBCyrHfl16cNmyBL&qb=sei55LzTwLi3zg==

강남역 7번출구 8번출구 비추천 음식점, 가지 말아야할 음식점
(이렇게 써놓으면 검색도 되나? 내가 쫌 쪼잔하고 집요하다 뒤끝이 백만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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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0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같은 세상에 저런식으로도 장사가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할 뿐입니다.^^
저러다 괜히 사람 잘못봤다 아저씨가 김밥속으로 들어가는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웽스북스 2007-11-08 10:24   좋아요 0 | URL
어어어 아저씨를 김밥속으로 넣는다? 굿~ 1만원에 파는 롱~김밥으로 (아 나 너무 잔인해 ㅋㅋ)

마늘빵 2007-11-0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목이 좋은가보군요. 그래도 장사가 잘 되는거보니. 그래서 점심시간에 혼자 분식집 가서 밥먹는건 눈치보인다니깐.

웽스북스 2007-11-09 01:14   좋아요 0 | URL
네 목이 좋은 편이죠- 강남역 8번출구쪽 스타벅스와 커피빈 맞은편이니까요 ^^ 아프님도 지나가다가라도 절대 절대 가지 마세요. 김.밥.속.으.로- 이제 논문도 끝나셨으니 혼자 분식집 가실 일도 없으시겠네요 ^^

시비돌이 2007-11-09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장님 웬지 안쓰럽네요. 살만할텐데, 굳이 그렇게 사셔야 하는지, 그렇게 사시니까 살만해진건지, 근데 거기 되게 자주 가는데, 김밥속으로는 못봤어요. 전 모퉁이에 있는 골목집인가에서 수제비라짬뽕 이런 걸 즐겨 먹죠. ^^

웽스북스 2007-11-09 09:36   좋아요 0 | URL
성격 자체가 원래 그러신듯- 가끔 은행에서도 만나는데 돈을 갖다 맡기는 얼굴이 또 얼마나 표독표독해 보이는지 말이죠! 지나가다가 흘깃 한번 보세요- 라면집에서 강남역쪽으로 서른발자국만 걸어가면 되요~ GS25 바로 옆! 절대 들어가지는 마시고요... (사람많은 시간에 혼자라면 더더욱~)근데 그 골목집 수제비라짬뽕 맛있죠 ㅋㅋㅋ 걸쭉한 것이~ 그집 김치볶음밥도 맛있어서 자주 먹었어요 ^^ (언제쯤 한번은 스쳤을듯? ㅎㅎ 요즘엔 잘 안가지만 ;;)

시비돌이 2007-11-09 18:08   좋아요 0 | URL
아, GS23 옆집이 케밥속으로군요.(나름 플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ㅋㅋ) 두세번 갔던 것 같아요. 근데 전 성격상 사람 많을때는 아예 안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이랑 움직이는 시간도 좀 달라서 사람 없을때만 갔기 때문에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웽스북스 2007-11-10 00:08   좋아요 0 | URL
앗 이미 가셨던 곳이군요- 케밥속으로 캐안습 ㅋㅋ
앞으로는 가지 마세요!

가시장미 2007-11-0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 지금 김밥먹고 있는데.. 으흐흐흐... 글의 내용과 전혀 상관 없는 댓글! -_-a

웽스북스 2007-11-09 13:05   좋아요 0 | URL
흐흐 무슨김밥 드시나요? 저는 김치김밥을 좋아한답니다~

푸른신기루 2007-11-10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저씨 참 나쁘네요. 미워요!!
그렇게 굴어도 장사가 되나보네요, 쳇쳇쳇.

웽스북스 2007-11-10 00:09   좋아요 0 | URL
아 전 그걸 맨날 혼동하는 얼빵한 아가씨랍니다 ㅋㅋ
감사해요 ^^

산사춘 2007-11-10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 읽고 같이 불쾌해졌었는데(칭찬인가?),
태그읽고 유쾌해졌어요.
분명 악행이 더 있었을 거야요. ㅎㅎ

웽스북스 2007-11-10 01:08   좋아요 0 | URL
그죠그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ㅋㅋ
제 별명이 뒤끝백만년이거든요- 걸리기만 해봐라 그냥~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