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좋아하는 언니가 있다. 농담처럼 '올해의 인물' 감이라고 말하는 언니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언니의 남편으로부터 '이사람 어디가 좋아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그 언니를 참 좋아했고, 또 잘 따랐으며, 올 한 해 언니로부터 받은 영향력이 꽤 큰 편이다

오늘 언니와 통화하며, 언니는 언니 앞에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그런 거 아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큰 힘이 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 속이 상했다. 참, 너무 무력한 것만 같아 슬펐다. 그 어찌할 수 없는 힘 앞에서 무력하다 느끼는 언니도 무력하고 무슨 말을 해줘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나 역시 무력하다.


예전부터 신이 너에게 한가지 능력을 선물한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니,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나는 늘 '텔레포트'라고 답했다. 좀 더 예전에 가까운 시절에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고, 좀 더 요즘에 가까운 시절에는 교통 체증이 지긋지긋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갖고 싶은 한가지 능력을 묻고, 그 능력을 주는 일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을 왠지 모르게 늘 준비하고 살고 있는 나는 얼마 전부터 그 대답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적절한 위로의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니, 가장 적절한 위로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슬퍼하는 누군가, 힘들어하는 누군가 앞에서 내가 뭘 해야 할 지 몰라 항상 쩔쩔 맬 때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속이 상할 수가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해 빙빙 돌려대기만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를 보는 마음이 그저 어려워 매우 난감해 했었다, 그 외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힘든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저 들어주는 것 외에, 아무 말도 건넬 수 없는 내가 참 무력하게 느껴졌고, 그 무력함에 쩔쩔매는 나를 보는 일이 또 참 힘들었다.

때로는 눈으로, 때로는 맘으로, 때로는 행동으로, 때로는 한마디 말로, 누군가에게 가장 적절한 위로가 무언지 알아가는 일은 다행히 텔레포트처럼 비현실 적인 '초'능력이 아닌, 경험과 노력을 통해 체득될 수 있는 '능력'의 영역이기에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조금씩 익숙해지겠지. 다만 시행착오의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일은 언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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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10-06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소원으로
누군가에게 적절한 위로의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걸 말씀하시는 분이라면,
그 마음 그대로 그분을 대하시는것 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것 같은데요.

마음이란건 참 신기해서 진심을 담으면 상대에게 가 닿기도 해요. 그리고 백번의 말보다는 그 진심어린 마음이 더 좋은 위로가 될테구요. 그분은 참 좋은 벗을 두셨네요.

로그아웃하고 나가려다가 당사자도 아닌 제 마음이 움직여 잠깐 멈칫했습니다.

승주나무 2007-10-06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 님과 같은 기분으로 로그아웃을 하지 못하겠네요.
저의 경우는 두 가지 방비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역'(逆)이지요. 상처를 받으면 스스로 막 팹니다. 그러면 내 속에서 새록새록 기운이 샘솟으면서 막 대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증권시장에서는 이런 현상을 '바닥을 친다'라고 하더군요..ㅎㅎ
두 번째는 '청'(聽)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책 중에서 '싯다르타'가 기억나는데, 아직도 저는 '바수데바'라는 '청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의 조언도 하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도 말하는 사람을 감동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그 사람..저처럼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끼어드는 사람의 백마디보다는 옆에서 말없이 진득허니 이야기를 들어주는 '언니'가 더 고맙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니랑 회포를 잘 풀고 오세요~~~

Mephistopheles 2007-10-0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달리지 않고 장소를 달리는 웬디양이시군요..^^
저도 종종 그런 느낌이 들긴 해요 어쩌다가 어떤 난관에 부딪쳐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밀려오는 상실감...누군가 친한 지인이 소주나 한 잔 하자며 그냥 아무말이 없어도 잔을 주고 받다 보면 알게 모르게 느끼는 안도감..^^

웽스북스 2007-10-06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 어떤 부분이 다락방님의 마음을 멈칫,하게 했을까요- 다락방님 말 믿고, 그 마음 그대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승주나무님 // 내일은 '청'을 하고 와야 할 것 같아요- 역시 저 동양 철학적 접근이라니 말이죠
메피스토님 // 시간이든 장소들 달리기는 영 꽝인 웬디양입니다 ^^

2007-10-06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10-0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과 대화 한마디 해본 적 없지만, 이 글을 보면서 까닭 모르게 저도 위로가 됩니다. 아마 웬디양님이 좋아하시는 그 언니분도 위로를 느꼈을 겁니다.

웽스북스 2007-10-06 23:40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마노아님
오늘 다행히 언니는 잘 만났고, 좋은 시간 보냈어요 ^^

누에 2007-10-0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런 친구 한 명 알고 있어요. 제가 힘들 때 '야옹~'하고 얘기해주죠.

웽스북스 2007-10-07 20:42   좋아요 0 | URL
야옹,이라니~ 너무 사랑스럽잖아요 ^^

시비돌이 2007-10-09 02:08   좋아요 0 | URL
야옹은 '야한 얘기를 많이 하는 노인네'란 뜻은 아니겠죠. ^^ 이러다가 맞겠다.

웽스북스 2007-10-09 12: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시비돌이님 혹시 장래희망은 아니시고요?

시비돌이 2007-10-09 15:49   좋아요 0 | URL
헉,,,,,